작은 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하다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지만, 지나온 세월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키 작은 것이 도움이 될 때도 꽤 많았다.
힘이 장사였던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초 체력도 있긴 했지만, 학창 시절에 팔씨름은 날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늘 팔씨름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키가 큰 친구들과 팔씨름을 할 때는 내 팔 길이가 짧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된 탓도 있었다. 손을 서로 맞잡고 보면 나는 팔을 거의 60도 정도 각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팔이 긴 상대는 심하게는 90도 정도로 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팔씨름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 덕분에 반에서 싸움 잘 한다는 친구들로부터 그다지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나름대로 존중(?)을 받고 지낼 수 있었다.
학군단 1년차 때의 훈련소 시절에, 그 어렵다던 유격훈련을 스스로 내 정신력 테스트 기회로 삼아 다람쥐처럼 뛰어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작은 키가 유리하게 작용했던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키가 작아서 벌어진 고생의 마무리가 작은 키로 인해 무사히 해결되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키 큰 사람이 맨 앞에 선다. 그래서 중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언제나 군대식 사열로 아침 조회를 한 덕분에 정열을 할 일이 있으면 뒤로 가서 서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 뒷자리가 시야를 가리는 앞의 큰 녀석들의 등짝에 대한 거부감만 잘 소화하면 한편으로 마음은 편한 곳이다. 그래서 종종 긴장도 풀어지곤 한다.
훈련소에 입소할 때는 버스를 대절해서 함께 가는데, 대개 3개 교대가 거의 같은 시각에 맞춰서 도착한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 마자 교관들의 추상 같은 명령에 따라 급하게 중대 별로 정열을 해서 각 교관을 따라 자기 중대로 이동을 한다. 그런데 작년과 달리 이미 관록이 붙은 2년차답게 올해는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했다. 이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교관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14중대, 전체 앉아.”
“자기 가방을 머리 위로 든다.”
“오리 걸음으로 간다. 출발”
평소에 지나친 향학열 때문에 3주간 독서 계획을 세워 잔뜩 책을 넣어온 덕분에 내 가방은 다른 친구들 것 보다 1.5배는 크고 무거웠었다. 그 무거운 녀석을 지고 끙끙거리며 토끼뜀, 오리 걸음을 반복하여 가고 있는데 옆의 13중대는 그런 우리를 보며 히죽히죽 웃으며 지나간다.
간신히 중대 막사 앞에 도착해서는 인원 점검을 시작했다. 군번과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일종의 출석 체크를 하는 시간이었다. 주욱 번호와 이름을 확인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처음엔 서울교대생 이름을 다 불렀다. 그 다음엔 인천교대를 부르는데, 이상하게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춘천교대로 넘어간다. 그러더니 결국 “0000번 김홍도”, “예”, “음,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다 왔군.” 이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어, 왜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거지?’ 하는 생각에 다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손을 번쩍 들고 일어서서 외쳤다.
“구대장님, 제 이름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구대장이 그럴 리 없다는 듯이 날 보고 물었다.
“자네 군번이 몇 번인가?”
“예, 저는 000번입니다.”
“음, 000번 마장동?”
“아니요, 저는 강호중인데요….”
하는 순간 아차 하며 뭐가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른다. 구대장이 실눈을 뜨고 물어본다.
“자네 몇 중대인가?”
“예, 14중대입니다.”
“바보 같은 녀석. 여긴 13중대다. 어디 정신을 두고 자기 중대도 못 찾나! 이리 나와. 엎드려 뻗쳐!!!”
아까 벌 받지 않고 우리 보고 히죽거리며 룰루랄라 자기 중대를 찾아가던 그 부러운 중대가 바로 나의 14중대였다니......13, 14 중대가 나란히 서서 정렬할 때 맨 뒤에 있던 나는 그만 옆 중대에 가서 줄을 섰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무거운 가방을 들고 받을 필요가 없었던 벌을 받은 것이다. 창피하고 한심하고,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도 없고….
엎드려 뻗쳐 한 상태에서 다음 일을 걱정한다. 분명 내 중대에서는 출석 부를 때 내가 없어진 것을 이미 확인했을 것인데, 뒤늦게 쫓아가서 내 출석 사실을 다시 확인 받으며 한 번 망신을 당하고 혼나야 하나, 아니면 친구들이 말을 잘 해줘서 일단 무사히 넘어간 것일까?....
.
이 못된 구대장은 13중대에 대한 지시 사항을 다 끝내고 각 내무반 별로 해산하고 난 다음에야 날 풀어줬다. 부랴부랴 우리 중대 막사로 뛰어가니, 이미 14중대도 각 내무반 별로 짐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서둘러 우리 내무반으로 찾아 들어가자 친구들이 날 보고 급하게 일러준다.
“내무반장 집합하라는 방송 나온 지 한참 됐어. 빨리 가봐.”
‘그렇지. 이번에 내가 내무반장으로 결정돼 있었지.’
친구들이 출석확인만 제대로 해 줬으면 내무반에서 적당히 뭉개보려던 희망은 일단 사라졌다. 서둘러 집합 장소로 뛰어가니 이미 내무반장들이 횡렬로 서서 구대장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콩콩 뛰는 가슴을 진정하고 무조건 줄의 맨 끝에 가서 조용히 섰다. 나를 보는 구대장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뭐하다 이제오나?”
“예, 중대를 잘못 찾아서 늦었습니다.”
뭐, 달리 핑계 댈 것도 생각 나지 않아 애라 모르겠다고 사실대로 말해버렸다. 혼나봐야 몇대 얻어터지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한심하다는 듯이 날 보던 구대장이 뭔가 다음 말을 하려다 말고 갑자기 우리들을 죽 둘러본다. 순간 얼굴에 살짝 흐르는 미소. 그리고 아주 짧은 침묵. 그러더니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뀌며 손에 든 작대기가 내 머리 위로 서서히 움직인다.
그리고는 가볍게 내 머리를 통하고 치며 구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도”였다. 이어서 옆 친구들의 머리를 차례로 통통치면서 하는 말.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어떻게 우연의 일치였는지, 내무반장들의 횡렬 종대가 키 순서대로 서게 된 것이었다. 물론 내가 지각을 하지 않고 내무반 별로 제대로 섰더라면 가장 키가 작은 내가 중간에 폭 꺼진 모양이었겠지만, 지각을 해서 맨 끝에 서다 보니 완벽하게 키 순서대로의 정열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도레미 정렬이 험악할 뻔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줬다. 그렇게 “도레미파”를 부른 구대장의 입에서 다시 험악한 꾸중소리가 나올 리가 있었겠는가?
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학군단과 관계는 없지만,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로 발령을 받기 전에 일주일 정도 연수를 받는 과정이 있었다. 장소는 파주에 있는 연수원이었는데, 나는 1년 휴학한 덕분에 후배들과 함께 연수를 받아야 했다.
맨 마지말 날은, 조 별로 한 명씩 대표를 뽑아 5분 스피치를 하는 것으로 모든 공식적인 교육이 끝나기로 돼 있었다.
누구를 대표를 뽑을까라는 말이 나오자 마자 "당연히 선배님이 하셔야죠."라는 어떤 녀석의 전략적인 발언에 밀려 내가 대표가 돼 버렸다.
큰 강당에 이백여명의 예비 교사들과 교수진들이 모였다. 모두 열 개 조에서 열 명이 나왔는데, 말하는 순서를 제비 뽑기로 정했다. 내가 맨 끝에 걸렸다.
소감 발표가 시작됐다. 그런데 첫 번째 발표자의 이야기가 시작됐는데, 관중석이 조용해 지질 않는다. 그리고 그 어수선한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져 이젠 앞에 나와서 이야기는 하는 사람이 무안해질 정도가 돼 버렸다. 그 암담한 상황은 결국 마지막 내 차례가 될 때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나 또한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들어와야 되는 것인가 심한 갈등을 느끼면 무대에 올라가 섰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교탁 앞에 선 순간 갑자기 모두가 조용해 진 것이다. 짧은 순간 관중과 내가 함께 모두 말을 잃었다. 도대체 이 정적의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누군가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이야, 참 작으시다."
이어지는 폭소들.....
교탁에 가려서 내가 거의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 급하게 발판을 들고 뛰어왔고, 비로소 사람이 모습을 드러 냈을 때, 그 키 작은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호기심에 힘 입어 마침내 모두가 조용히 내 말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돼 버렸다.
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준비한 말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여러분은 사람들로부터 선생님 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지 마십시요. 선생님이 잘못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나 큰 벌을 받습니다."라는 성경 구절로 모든 말을 마무리할 때까지 단 한 명도 주의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내 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뢰와 같은 박수도 받았다.
실은 난 어려서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기껏해야 학급 반장으로서 차려, 경례나 외치는 정도였다. 200여명씩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단 말이다. 그러니 그 두렵고 떨리는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치름으로써 이후로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됐으니, 그런 멋진 체험을 선사해준 나의 키에 대해 당연히 감사히 여기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학군단 이야기 4 – 모든 구름의 위쪽은 은빛으로 빛난다.
작은 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하다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지만, 지나온 세월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키 작은 것이 도움이 될 때도 꽤 많았다.
힘이 장사였던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초 체력도 있긴 했지만, 학창 시절에 팔씨름은 날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늘 팔씨름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키가 큰 친구들과 팔씨름을 할 때는 내 팔 길이가 짧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된 탓도 있었다. 손을 서로 맞잡고 보면 나는 팔을 거의 60도 정도 각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팔이 긴 상대는 심하게는 90도 정도로 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팔씨름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 덕분에 반에서 싸움 잘 한다는 친구들로부터 그다지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나름대로 존중(?)을 받고 지낼 수 있었다.
학군단 1년차 때의 훈련소 시절에, 그 어렵다던 유격훈련을 스스로 내 정신력 테스트 기회로 삼아 다람쥐처럼 뛰어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작은 키가 유리하게 작용했던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키가 작아서 벌어진 고생의 마무리가 작은 키로 인해 무사히 해결되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키 큰 사람이 맨 앞에 선다. 그래서 중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언제나 군대식 사열로 아침 조회를 한 덕분에 정열을 할 일이 있으면 뒤로 가서 서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 뒷자리가 시야를 가리는 앞의 큰 녀석들의 등짝에 대한 거부감만 잘 소화하면 한편으로 마음은 편한 곳이다. 그래서 종종 긴장도 풀어지곤 한다.
훈련소에 입소할 때는 버스를 대절해서 함께 가는데, 대개 3개 교대가 거의 같은 시각에 맞춰서 도착한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 마자 교관들의 추상 같은 명령에 따라 급하게 중대 별로 정열을 해서 각 교관을 따라 자기 중대로 이동을 한다. 그런데 작년과 달리 이미 관록이 붙은 2년차답게 올해는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했다. 이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교관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14중대, 전체 앉아.”
“자기 가방을 머리 위로 든다.”
“오리 걸음으로 간다. 출발”
평소에 지나친 향학열 때문에 3주간 독서 계획을 세워 잔뜩 책을 넣어온 덕분에 내 가방은 다른 친구들 것 보다 1.5배는 크고 무거웠었다. 그 무거운 녀석을 지고 끙끙거리며 토끼뜀, 오리 걸음을 반복하여 가고 있는데 옆의 13중대는 그런 우리를 보며 히죽히죽 웃으며 지나간다.
간신히 중대 막사 앞에 도착해서는 인원 점검을 시작했다. 군번과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일종의 출석 체크를 하는 시간이었다. 주욱 번호와 이름을 확인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처음엔 서울교대생 이름을 다 불렀다. 그 다음엔 인천교대를 부르는데, 이상하게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춘천교대로 넘어간다. 그러더니 결국 “0000번 김홍도”, “예”, “음,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다 왔군.” 이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어, 왜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거지?’ 하는 생각에 다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손을 번쩍 들고 일어서서 외쳤다.
“구대장님, 제 이름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구대장이 그럴 리 없다는 듯이 날 보고 물었다.
“자네 군번이 몇 번인가?”
“예, 저는 000번입니다.”
“음, 000번 마장동?”
“아니요, 저는 강호중인데요….”
하는 순간 아차 하며 뭐가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른다. 구대장이 실눈을 뜨고 물어본다.
“자네 몇 중대인가?”
“예, 14중대입니다.”
“바보 같은 녀석. 여긴 13중대다. 어디 정신을 두고 자기 중대도 못 찾나! 이리 나와. 엎드려 뻗쳐!!!”
아까 벌 받지 않고 우리 보고 히죽거리며 룰루랄라 자기 중대를 찾아가던 그 부러운 중대가 바로 나의 14중대였다니......13, 14 중대가 나란히 서서 정렬할 때 맨 뒤에 있던 나는 그만 옆 중대에 가서 줄을 섰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무거운 가방을 들고 받을 필요가 없었던 벌을 받은 것이다. 창피하고 한심하고,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도 없고….
엎드려 뻗쳐 한 상태에서 다음 일을 걱정한다. 분명 내 중대에서는 출석 부를 때 내가 없어진 것을 이미 확인했을 것인데, 뒤늦게 쫓아가서 내 출석 사실을 다시 확인 받으며 한 번 망신을 당하고 혼나야 하나, 아니면 친구들이 말을 잘 해줘서 일단 무사히 넘어간 것일까?....
.
이 못된 구대장은 13중대에 대한 지시 사항을 다 끝내고 각 내무반 별로 해산하고 난 다음에야 날 풀어줬다. 부랴부랴 우리 중대 막사로 뛰어가니, 이미 14중대도 각 내무반 별로 짐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서둘러 우리 내무반으로 찾아 들어가자 친구들이 날 보고 급하게 일러준다.
“내무반장 집합하라는 방송 나온 지 한참 됐어. 빨리 가봐.”
‘그렇지. 이번에 내가 내무반장으로 결정돼 있었지.’
친구들이 출석확인만 제대로 해 줬으면 내무반에서 적당히 뭉개보려던 희망은 일단 사라졌다. 서둘러 집합 장소로 뛰어가니 이미 내무반장들이 횡렬로 서서 구대장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콩콩 뛰는 가슴을 진정하고 무조건 줄의 맨 끝에 가서 조용히 섰다. 나를 보는 구대장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뭐하다 이제오나?”
“예, 중대를 잘못 찾아서 늦었습니다.”
뭐, 달리 핑계 댈 것도 생각 나지 않아 애라 모르겠다고 사실대로 말해버렸다. 혼나봐야 몇대 얻어터지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한심하다는 듯이 날 보던 구대장이 뭔가 다음 말을 하려다 말고 갑자기 우리들을 죽 둘러본다. 순간 얼굴에 살짝 흐르는 미소. 그리고 아주 짧은 침묵. 그러더니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뀌며 손에 든 작대기가 내 머리 위로 서서히 움직인다.
그리고는 가볍게 내 머리를 통하고 치며 구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도”였다. 이어서 옆 친구들의 머리를 차례로 통통치면서 하는 말.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어떻게 우연의 일치였는지, 내무반장들의 횡렬 종대가 키 순서대로 서게 된 것이었다. 물론 내가 지각을 하지 않고 내무반 별로 제대로 섰더라면 가장 키가 작은 내가 중간에 폭 꺼진 모양이었겠지만, 지각을 해서 맨 끝에 서다 보니 완벽하게 키 순서대로의 정열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도레미 정렬이 험악할 뻔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줬다. 그렇게 “도레미파”를 부른 구대장의 입에서 다시 험악한 꾸중소리가 나올 리가 있었겠는가?
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학군단과 관계는 없지만,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로 발령을 받기 전에 일주일 정도 연수를 받는 과정이 있었다. 장소는 파주에 있는 연수원이었는데, 나는 1년 휴학한 덕분에 후배들과 함께 연수를 받아야 했다.
맨 마지말 날은, 조 별로 한 명씩 대표를 뽑아 5분 스피치를 하는 것으로 모든 공식적인 교육이 끝나기로 돼 있었다.
누구를 대표를 뽑을까라는 말이 나오자 마자 "당연히 선배님이 하셔야죠."라는 어떤 녀석의 전략적인 발언에 밀려 내가 대표가 돼 버렸다.
큰 강당에 이백여명의 예비 교사들과 교수진들이 모였다. 모두 열 개 조에서 열 명이 나왔는데, 말하는 순서를 제비 뽑기로 정했다. 내가 맨 끝에 걸렸다.
소감 발표가 시작됐다. 그런데 첫 번째 발표자의 이야기가 시작됐는데, 관중석이 조용해 지질 않는다. 그리고 그 어수선한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져 이젠 앞에 나와서 이야기는 하는 사람이 무안해질 정도가 돼 버렸다. 그 암담한 상황은 결국 마지막 내 차례가 될 때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나 또한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들어와야 되는 것인가 심한 갈등을 느끼면 무대에 올라가 섰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교탁 앞에 선 순간 갑자기 모두가 조용해 진 것이다. 짧은 순간 관중과 내가 함께 모두 말을 잃었다. 도대체 이 정적의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누군가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이야, 참 작으시다."
이어지는 폭소들.....
교탁에 가려서 내가 거의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 급하게 발판을 들고 뛰어왔고, 비로소 사람이 모습을 드러 냈을 때, 그 키 작은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호기심에 힘 입어 마침내 모두가 조용히 내 말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돼 버렸다.
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준비한 말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여러분은 사람들로부터 선생님 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지 마십시요. 선생님이 잘못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나 큰 벌을 받습니다."라는 성경 구절로 모든 말을 마무리할 때까지 단 한 명도 주의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내 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뢰와 같은 박수도 받았다.
실은 난 어려서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기껏해야 학급 반장으로서 차려, 경례나 외치는 정도였다. 200여명씩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단 말이다. 그러니 그 두렵고 떨리는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치름으로써 이후로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됐으니, 그런 멋진 체험을 선사해준 나의 키에 대해 당연히 감사히 여기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