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앞집 과부와 뒷집 홀아비 5

은하철도200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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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과부와 뒷집 홀아비



5


개비아범은 힘겹게 방문을 열었습니다. 밖은 초여름의 햇살이 쨍쨍하지만 몸에는 겨울 한기가 몰아쳤어요. 벌써 3일째 여름감기에 고생하고 있는 중이에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왼쪽으로 꼰 채 물끄러미 밖을 내다봤어요. 도대체 사람 사는 게 뭔지 참 힘들기만 합니다. 아내가 어린 개비를 남기고 죽은 지 벌써 십 오년이 넘었어요. 너무 긴 세월이었는지 이제는 살아생전 아내의 모습이 가물가물 대기만 합니다. 몸이 기웃뚱 한쪽으로 기운 채 개비를 의지하며 살았지만 개비도 커서 아내를 얻어 나갔으니, 이렇게 몸이 아플 때는 참으로 외로웠어요.

그젯밤에는 악몽을 꾸었어요. 열이 펄펄 나서 밤새도록 신음소리를 내며 뒤척이는데 천둥 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몰아쳤어요. 꼭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죠. 더구나 엷은 잠결에 죽은 아내가 비쳤는데,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던 모습이었어요. 자세히 보니깐 아내가 빨고 있던 옷은 죽은 사람이 입는 수의였어요. 저 수의를 나에게 입히려고 아내가 빨아 너는 것인가 해서 개비아범은 꿈속에서 아내를 마구 야단쳤어요. 얼굴을 돌린 아내는 슬픈 표정을 짓더니 그냥 스르르 사라져 버렸어요. 꿈에서 벌떡 깬 개비아범이 멍한 의식으로 앉아 있는데 또 천둥번개가 번쩍 우르릉 지축을 흔들었죠. 아이구, 이러다가 죽는 게 사람인가 보네, 하는 탄식을 터뜨렸어요.


날은 더웠지만 몸이 으슬으슬 또 떨려옵니다. 개비아범은 억지로 목을 앞으로 빼며 침을 꼴깍 삼켰어요.

“에휴, 여자가 갱년기 되면 몸이 달아올랐다 차가워졌다 한다는데, 내가 갱년기인가......”

중얼대며 개비아범은 벽을 붙들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세상이 휭 도는 느낌입니다. 다리도 후들거렸어요. 더듬더듬 부엌으로 나가니 먹을 게 없습니다. 삼일 동안 개비아범은 물만 마셨거든요. 그러니 며칠 전에 해 둔 된장찌개도 상했고 밥통에 들은 밥도 쉬었습니다.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던 개비아범은 밥과 된장국을 쏟아버리고 밀린 설거지를 했어요.

이럴 때면 목숨이 참 지겹기도 합니다. 하루에 세 끼니씩 꼬박꼬박 먹으며 평생을 사는 삶이 모질었어요.

“먹지 않고는 못 사나? 에휴, 지겨워.”

또 중얼중얼 대는 개비아범입니다. 부엌을 대충 치우고 걸레를 들고 들어와 방도 훔쳤습니다. 그리고 또 폭 쓰러져 누웠어요. 세상만사가 다 귀찮습니다. 이쪽저쪽으로 뒤척이며 돌아눕는 자기가 꼭 버려진 쓰레기 같았어요. 하지만 뭐라도 먹어야 기운을 차릴 수 있겠죠. 별안간 칼칼하고 시원한 국이 먹고 싶었습니다.


복실엄마는 궁금했어요. 매일 염장을 퍽퍽 질러대던 개비아범이 벌써 며칠동안 꼼짝 안 하는 거예요. 밤에는 방에 불이 켜져 있는데 밖을 도통 나서지 않으니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알 수가 없었죠. 어찌 보면 좀 재미가 없기도 했어요. 개비아범이 그 얄미운 얼굴을 내밀고 삐쭉삐쭉 대던 순간이 복실엄마에게 어떤 긴장감을 주기도 했거든요. 복실이와 가게에 앉아 선풍기를 쐬고 있는데 별안간 복실이가 옆구리를 쿡 찔렀어요.

“엄마, 저것 좀 봐. 저 아저씨가 이상해.”

고개 돌려보니 개비아범이 골목을 살살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어요. 아주 폭삭 늙은 모습에 수염도 까칠까칠했고, 남들은 덥다고 다 반소매 옷을 입었는데 혼자서 긴 소매의 옷에다가 봄잠바까지 걸치고 있었거든요. 또 허리도 구부정합니다. 꼭 금방 쓰러질 것 같았어요. 개비엄마는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슬쩍슬쩍 개비아범을 보고 속으로 중얼거렸어요.

“흥, 꽁치 두 마리 뺏어다 먹더니 병났군, 서너 마리 더 뺏어갔으면 송장 되었겠네.”


개비아범은 위태로운 발길로 살금살금 복실엄마 가게 앞을 지나서 저쪽으로 갔습니다. 채소가게에서 대파를 사더니 또 무를 하나 집어 드는 모습이었어요. 비닐에 넣고 돌아선 개비아범은 또 넘어질 새라 살살 걸어오더니 복실엄마 가게 앞에 섰어요. 목을 길게 빼고 이것저것을 내려다보던 개비아범이 손가락으로 생태를 가리켰어요. 그리고 아주 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었죠.

“이거 얼마요?”

복실이가 한 마리에 만원이라고 말하려는데, 뒤에 있던 복실엄마의 목소리가 대뜸 날아왔어요.

“그거 한 마리에 만 오천원이예요.”

복실이는 깜짝 놀라서 엄마를 바라봤어요. 한 마리에 만원이라고 해도 뭐라고 궁시렁 대는 개비아범인데 오천 원을 더 붙여 불렀으니 황당했죠. 복실이는 고개를 돌려 개비아범을 긴장된 눈초리로 쳐다봤어요.

개비아범은 목을 길게 빼고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어 기웃기웃 대더니, 주머니에서 만 오천  원을 꺼내어 더듬거리며 그냥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어요. 복실이가 조심스럽게 돈을 받아 넣고는 생태를 가져다가 엄마에게 주었어요. 복실엄마는 도마위에 생태를 놓더니 칼을 들어서 머리를 팍~ 내장을 박박~ 또 몸뚱이를 두 토막으로 팍팍 내리쳤어요. 꽁치 두 마리의 분풀이를 하듯 말이에요. 비닐봉투에 담아서 복실이한테 건네주었어요.

“예따, 저 아저씨 주어라.”

개비아범은 내주는 생선을 말없이 받아 들고는 풀린 눈동자만 꺼먹꺼먹 대며 돌아섰어요. 그리고 또 살금살금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아이, 저 아저씨 불쌍해.”

복실이가 속삭이듯 말했어요. 그러자 복실엄마가 날카롭게 응수했어요.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오늘 노는 꼴을 보니 죽을 때가 다 된 모양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복실엄마는 개비아범이 아까부터 불쌍해 보였어요. 며칠 앓는 동안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으니 너무 늙어버린 모습이었죠. 다시 한번 삐쭉 개비아범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복실엄마였어요.


개비아범은 집에 들어오자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조금 움직였는데 등에는 진땀이 배고 머리도 휭휭 돕니다. 한참 숨을 고르다가 칼을 가져다가 무를 까고 파를 다듬어 썰었습니다. 생태를 냄비에 넣으며 갸웃했어요. 좀 비싼 느낌이었거든요. 물끄러미 생태를 내려보다가 입맛을 쩝 다셨죠. 까짓 것이 비싸건 싸건, 사람이 죽으면 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에 개비아범은 부엌의 벽에 기대어 고개를 왼쪽으로 꼰 채 생태국이 끓는 것을 바라 봤어요. 죽은 아내는 남해안의 조그만 어촌에서 성장했어요. 이랬어예~ 저랬어예~ 하면서 경남사투리를 썼는데, 몸에 착착 감기는 듯한 애교스런 목소리가 참 좋았거든요. 아내가 남긴 것은 무엇보다도 입맛이었어요. 해안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생선요리를 무척 잘 했거든요. 고등어조림, 꽁치구이, 각종 회무침, 매운탕뿐만 아니라 비린 갈치로 국을 끓이기도 했는데 참 맛있었죠. 이렇게 길들여진 입맛만 남기고 아내가 떠났으니, 지금 보글보글 끓으며 먹음직한 냄새를 풍기는 국이 별안간 서럽게 느껴졌어요. 눈물이 찔끔 개비아범의 눈가에 비쳤어요.


상을 차릴 필요도 없이 부뚜막에 밥을 떠놓고 숟가락질을 하는데 전화가 왔어요. 엉금엉금 기어서 방에 들어가 전화를 받으니 명랑하고 상쾌한 며느리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아버님, 뭐하세요?”

개비아범의 얼굴이 확 밝아졌어요. 며느리는 개비아범에게 청량제와 마찬가지거든요.

“응응, 밥 먹는 중인데.”

“어마나, 근데 아버님 목소리가 안 좋아요. 어디 편찮으세요?”

개비아범은 어깨를 으쓱했어요.

“아니, 아픈데 없어. 조금 목이 잠겼나?”

구차하거나 허약한 모습을 절대로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개비아범입니다.

“네. 아버님이 아픈가 했어요. 그런데 아빠가요 아버님에게 용돈을 보내라고 어제 삼십 만원을 주었거든요. 통장으로 보내드릴 테니 그렇게 아세요.”

개비아범은 펄쩍 뛰었어요.

“그만 둬라. 젊은 것들이 돈이 필요하지 나는 필요 없어. 보내지 마라.”

“아니에요. 이거 안 보내면 나 야단맞아요. 아버님이 안 받으시면 직접 가지고 갈게요.”

개비아범은 망설였어요. 언젠가 개비가 주는 용돈을 받으니깐 한편으로는 자랑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꼭 자기가 수족도 못 쓰는 노인처럼 느껴졌어요. 미안하기도 했고요.

“음...... 정 그렇다면, 반만 보내라. 십 오만 원은 네가 몰래 꼬불쳐, 여자도 남편 몰래 뒷주머니가 있어야 하거든. 남편이 맨날 돈 벌어오겠냐, 비상시에 쓸 돈은 몰래 모아 두어야지. 알았어?”

“호호호, 아버님의 말씀대로 할게요. 그러면 반은 제가 몰래 두었다가 아버님 돈 필요할 때에 드릴게요. 아셨죠?”


전화를 끊고 돌아선 개비아범은 흠흠 헛기침을 했어요. 며느리의 목소리도 참 좋았지만 개비가 기특했어요. 개비의 심중을 한 눈에 꿰뚫고 있었거든요. 개비는 결혼한 후에 아버지에게 무척 미안했어요.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에요. 고등학생 시절에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들여오자 원망하며 겉돌았던 자기의 행위가 가슴에 걸렸어요. 역시 부모는 부모가 되어봐야 이해할 수 있죠. 지금이라도 아버지가 여자를 얻어서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개비는 감히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어요.

“아버님, 좋은 여자 분이 계시면 같이 사세요. 제가 극진히 모실게요.”

언젠가 불쑥 아내가 아버지에게 던졌던 말이에요. 개비는 깜짝 놀라서 아버지를 쳐다보았어요. 개비아범은 눈을 흘기더니,

“됐어. 너희나 잘 살아.”했어요.

그때 이상하게도 개비의 눈에는 아버지가 섭섭해 하는 것처럼 비쳤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개비는 아내를 마구 야단쳤습니다.

“그런 말을 마구 하면 어떻게 해? 그러면 우리가 아버지를 모시기 귀찮아서 남에게 던지자는 뜻이 아니냐고? 이제 다 컸으니 아버지는 필요 없어요, 라고 말한 것 하고 똑같잖아. 안 그래?”

남다르게 속이 깊은 개비의 마음을 개비아범은 알고 있었어요. 씩 웃으며 밥을 뜨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습니다. <계속>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