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허형재200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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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국민학교의 첫 기억은 친할머니 손을 잡고 학교로 간것이었다.

학교는 서울의 오류남 국민학교 거기에서 한 줄 뒤쪽에 선나는

할머니와 나란히 서서 학교 입학 명부에 나의 이름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대부분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들이랑 왔을거라고 생각된다. 우는 애들, 떼쓰는 애들,나처럼 가만히 있는애들등 많은 애들이 있었다. 아마 내가 태어나서 보는 가장 많은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내 곁에 있는 할머니..나의 친할머니시다.

나는 의식적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무서워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7살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가 보다. 사실 그 전 기억은 희미하니깐..

부모님이 7살때 이혼한후 나는 할머니네에서 살았다. 우리 할머니는 서울에서 제법 크게 벽돌공장을 하셨다. 다 할머니가 이루신 성과였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할아버지네가 아니라 할머니네라고 했던가보다. 성이 최씨였는데 최씨가 고집이 있다고 하던데

우리 할머니의 경우를 보면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내가 살고 있는 가족의 구성원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가끔 들어오시는 아버지 그리고 막내삼촌과 상주하며 일하는 인부들이 전부였다. 나는 할머니네 이사온 후로 얼마 안 있어 가장 친한 친구가 생겼다. 그건 바로 오락실이었다. 내가 오락을 했을때는

85,86년도 였을 것이다. 나는 하루종일 오락실에 있었다.

너구리와 보글보글 그리고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재밌는 각종

오락들. 나는 또래보다 용돈을 많이 받는 편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부산으로 왕복 트럭운전을 하셔서 1주일에 1번 보기 힘들었었다. 그래서 아버진 그 공백을 용돈으로 채워주신게 아닌가 싶다. 그땐 뭣도 모르고 좋아했었다. 천원만 받아도 그때 오락이

10원짜리,50원짜리라서 실컷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가니 주인아저씨도 날 아시고, 가끔가다가 공짜 오락도 시켜주곤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주인아저씨의 일종의 상술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어느날이었던가? 내가 오락실에 가는걸 아시고 계셨던 할머니는 이러면은 안되겠다 싶으셨던지 오락실에 못가게 하셨다.

그때부터 나와 할머니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나는 어떻게든 가려했고 할머니는 못가게 하고, 처음에는 나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난 학교가 파한후 학교 주변에 산재하며 나를 유혹하고 있는 오락실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면서 그 중 한곳으로 가서 나만의 유희를 즐기곤 했다. 그리고 늦게 들어오면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혼나곤 했다.

처음에는 말로 혼나다가, 나중에는 매를 드셨다. 하지만 그런다고 나의 오락에 대한 정열이 꺽이진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그리워했고, 그리워만 하지 않고 오락실로 찾아가곤 했다. 돈이 수중에 있으면은 오락을 하러, 돈이 없으면은 구경을 하러...

시간이 흘러갈수록 할머니와의 전쟁이 패색이 짙어져갔다.

할머니가 원군을 요청하셨던것이다. 바로 막내 삼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백수였던 삼촌을 시켜서 날 학교가 끝난후 데려오게 한다던지 오락실에 갔던 나를 붙잡아 오게 하셨다.

그때부였던가? 난 오락실에 가면은 전에 비할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맞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어느순간부터였던가?

오락실에 가면은 맞는다라는 공식이 성립한듯 하다.

다른건 하면 할수록 늘지만은 매는 맞으면 맞을수록 아프니깐..

난 그 후 오락실에 거의 가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끔 피씨방에는 갔지만은 난 오락실에 가지 않는다.ㅋㅋ

지금 생각해보면은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감사함마저 든다.

흔히 롤플레잉이다 리니지다 등등 오락을 하지만은 난 그런게 별로 관심이 없다. 다 그 덕이 우리 친할머니 할아버지 덕이 아닐까?

ps:하지만 막내삼촌 지금은 막내 작은 아버지가 된 분은

    마치 조선인 순사노릇한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ㅠㅠ

    별로 고마운 마음은 들지 않는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