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신문광고는 예매율, 점유율 등 각종 기록을 언급하며 신기록 경신에 떨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기록경신에 동참을 호소하는 것은 최근 한국영화 홍보의 중요한 경향이다.
이 개봉 8일만에 470만 관객을 삼켜버렸다. 신문 광고는 각종 숫자를 언급하며 기록 깨기에 동참하라고 촉구하는 격문으로 나부끼고 언론들도 나서서 다른 영화들과 견주면서 최다, 최단 같은 수식어를 붙이기에 바쁘다. 영화사는 물론 언론과 관객들까지 목소리를 모아 외치는 목표는 '1천만명 돌파', 바로 그것이다.
'1천만 관객 국민영화'. 나는 요즘 우리 영화계를 지배하는 깃발을 이렇게 정의한다.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보는 사람, 비평하는 사람 모두 이 깃발 아래 동맹을 맺고 있다. 대세를 만들고 기꺼이 대세에 동참하며 어느 신용카드 광고처럼 "1천만명이 보는 영화라면 정말 좋은 영화 아니겠어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국민영화' 반열에 오른다. 지금 충무로는 '1천만 관객 국민영화'에 중독돼 있다.
1천만명이라면 대략 한 집에서 한 명 이상은 이 영화를 본다는 얘기가 된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한 편의 영화가 이처럼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는 일은 없다. 그것도 다양한 배급 단계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극장 개봉 하나로만 이 숫자를 다 채운다. 월드컵 하나에 모든 것을 바치는 한국적 특수성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말 그대로 특수한 양상이다. 문제는 이 특별 사례가 충무로의 상식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는 것이다.
2002년 이후 흥행 성적을 살펴보면 (1230만명), (1174만명), (1108만명), (800만명), (610만명), (566만명), (550만명), (518만명), (516만명), (480만명)을 기록했다. 4년간 1천만명을 돌파한 영화가 3편이 있었고 상위 10편은 평균 755만명을 동원했다.
좋은 쪽으로 볼 때 한국영화 경쟁력이 강화된 결과다. 이나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500만명 안팎에서 움직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내수시장에서만큼은 할리우드 영화를 압박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힘이라 하겠다.
배급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영화를 번갈아 틀기 보다는 한 편으로 1천만명을 모으는 쪽이 홍보비를 비롯해 원가가 훨씬 적게 드니 유리하다. 극장들도 아직까지는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수익 배분에 있어서도 유리하기 때문에 역시 쌍수 들어 환영한다.
역시 천만관객을 노렸지만 언론과 관객이 적극적인 지지를 하지 않아 주춤하고 있다. 영화가 내거는 강한 민족주의가 부담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배급의 힘으로 지방을 공략하고 있어 소기의 목표에는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1천만 관객 국민영화'는 어떻게 태어날까? 순서들은 조금 달라도 어느덧 정리된 규칙이 있다.
비교적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다. 스타들도 중요하지만 감독 파워가 더 중요하다. 해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는 것은, 미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나 후반기 탄력을 줄 때 꼭 필요하다. 개봉할 때 최대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고 물량 공세로 나가는 것은 필수며, 개봉 첫달 안에 목표 관객의 절반 이상은 달성해야 한다. 제작비 못지 않은 홍보비 지출은 상식이며 후반기 뒷심을 위해서는 평소 극장을 잘 찾지 않는 장년층을 움직여야 한다는 첨언도 있다.
'1천만 관객 국민영화'를 만드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세'를 이루는 것이다.1 천만명을 목표로 하는 영화들은 이 영화가 1천만명을 돌파해야 하는 이유를 설정하고 사상 공세를 펼친다.
의 경우 "처음으로 1천만명을 돌파하자" 자체가 이유였고 의 경우 "이 정도 제작비를 들인 영화가 망하면 안 된다"가 이유였다. 이런 사상 공세에서는 언론의 동참이 필수여서 의 경우 다양한 이유를 들어 반복 관람을 촉구했다.
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할리우드에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고 잘 만든 한국영화를 지지하자"는 임무가 개봉 전부터 주어졌다. 칸 영화제에서 호평 받았다는 정보가 여러 경로를 통해 주어지면서 분위기를 잡았고 개봉 전 TV 광고도 칸 영화제를 부각했다.
개봉 직전에는 괴물 CG로, 개봉 직후에는 반미영화 논란으로 불을 지폈다. 개봉 2주차가 되는 지금, 모든 광고가 기록 깨기로 집중되어 있고 언론들 역시 신기록 중계로 동참하고 있다. "중장년층 참여가 1천만명의 관건"이라는 기사조차 비판적인 전망이 아니라 약점 보강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느껴진다.
월드컵 당시 모두가 붉은 옷을 입었던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모두가 을 봐야하는 분위기다. 이 시점에서 에 대한 비판적 발언은 자살행위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 가능할 것이다.
이 반미요소를 감췄던데 비해 은 '반미영화'라 불리기를 자처했고 화염병 등장 역시 숨기지 않았다. 천만관객을 위해서는 중장년층 참여가 필수라면 가족애라는 호감과 반미라는 비호감 사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1천만 관객 국민영화'가 업계에 주는 이점은 분명하고 영화 선택에서 실패를 줄이고 싶어하고 대세에 민감한 한국 관객 특성을 볼 때 '1천만 관객 국민영화'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깃발이다. 하지만 지난 월드컵 때 그랬던 것처럼 대세만 존재하는 경향은, 특히 다양성이 중요한 문화에서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가져온다.
'1천만 관객'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한국영화 산업이 가진 전반적인 힘이 약해지고 있다. 영화 산업은 대박-중박-소박이 알맞게 배합되고, 극장-유료채널-소장용-대여용 같은 여러 배급 경로가 살아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영화 산업은 초대박-극장개봉이라는 하나의 통로만 북적거리고 나머지는 말라가고 있다.
어느 경로를 거치건 총 액수만 채우면 될 것 같지만 다양한 경로가 사라져 버린 틈에서 초대박이 나올 가능성 자체도 줄어든다. 유소년 축구와 K-리그가 무너지는 마당에 월드컵만 집중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몰아주기 속에서 소수가 소외되는 문제도 있다. '1천만 관객'을 위해 스크린 몰아주기를 하다 보니 같은 시기 개봉하는 다른 한국영화들은 개봉 기회마저 잡지 못하는 사정인데 같은 배급사 영화들까지 피해를 볼 정도로 몰아주기와 나눠주기가 주먹구구로 진행되어 피해는 더 커지고 있다. 언론과 비평이 몰아주기의 주체로 동참하다 보니 개봉관에서 소외된 영화들은 언론의 관심에서도 소외되는 이중고를 겪는다. 언론 스스로도 가능한 비판에 대해 스스로 침묵을 지키는 피해를 본다.
할리우드의 경우 한 편이 흥행하면 다른 영화들도 분위기를 타면서 전반적인 호경기로 가고 불경기도 같은 원리로 흐름을 타는 추세로 이것이 영화 흥행에서 일반적인 경향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영화는 초대박이 하나 터지면 모든 역량이 결집된 나머지 일종의 피로가 누적되었다고 할까, 그 영화가 내려지면 극장이 불경기로 접어든다. 대개 할리우드 배급사들은 이 시기를 노려 영화를 투입하기 때문에 최근 언론에서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에 밀린다"고 보도한 현상들은 라는 '1천만 관객 국민영화'에 이어 온 후유증이기도 했다.
"수준 미달의 한국영화를 만드니 할리우드에 밀리지" 하는 외침들은 또 다른 '1천만 관객 국민영화'에 대한 갈증을 바꿔 말한, 일종의 금단증세였다.
와 이 금단증세를 해소할 후보로 우리 앞에 섰고 일단 '1천만 관객 국민영화'의 깃발은 괴물이 꼬리를 휘둘러 거머쥔 셈이다. 아마도 가 내세우는 강렬한 민족주의보다 이 다루고 있는 가족애와 사회비판 쪽이 언론이나 관객들이 지지하기에 좀더 나은 재료였을 것이다.
천만관객은 아니었지만 깐느 영화제를 통해 국민영화에 오른 는 몰아주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금기와 폭력을 다룬 강도높은 영화였지만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고 문화부 장관 앞에서 훈장까지 받았다.
대세를 타는 것이 한국적 특징이라면 그것을 살리는 것이 방법일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꼭 문제는 아니며 초대박을 만들 수 있다면 굳이 그걸 마다할 이유 역시 없다.
문제는 초대박으로만 모든 것을 대체하려는 경향이다. 스스로 다양성을 파괴하는 문화치고 잘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 좋아하는 초대박을 위해서라도 문화 다양성을 보장하고 산업의 고른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괴물>, '천만관객 국민영화'는 정해진 운명?
의 신문광고는 예매율, 점유율 등 각종 기록을 언급하며 신기록 경신에 떨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기록경신에 동참을 호소하는 것은 최근 한국영화 홍보의 중요한 경향이다.
이 개봉 8일만에 470만 관객을 삼켜버렸다. 신문 광고는 각종 숫자를 언급하며 기록 깨기에 동참하라고 촉구하는 격문으로 나부끼고 언론들도 나서서 다른 영화들과 견주면서 최다, 최단 같은 수식어를 붙이기에 바쁘다. 영화사는 물론 언론과 관객들까지 목소리를 모아 외치는 목표는 '1천만명 돌파', 바로 그것이다.
'1천만 관객 국민영화'. 나는 요즘 우리 영화계를 지배하는 깃발을 이렇게 정의한다.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보는 사람, 비평하는 사람 모두 이 깃발 아래 동맹을 맺고 있다. 대세를 만들고 기꺼이 대세에 동참하며 어느 신용카드 광고처럼 "1천만명이 보는 영화라면 정말 좋은 영화 아니겠어요?"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국민영화' 반열에 오른다. 지금 충무로는 '1천만 관객 국민영화'에 중독돼 있다.
1천만명이라면 대략 한 집에서 한 명 이상은 이 영화를 본다는 얘기가 된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한 편의 영화가 이처럼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는 일은 없다. 그것도 다양한 배급 단계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극장 개봉 하나로만 이 숫자를 다 채운다. 월드컵 하나에 모든 것을 바치는 한국적 특수성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말 그대로 특수한 양상이다. 문제는 이 특별 사례가 충무로의 상식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는 것이다.
2002년 이후 흥행 성적을 살펴보면 (1230만명), (1174만명), (1108만명), (800만명), (610만명), (566만명), (550만명), (518만명), (516만명), (480만명)을 기록했다. 4년간 1천만명을 돌파한 영화가 3편이 있었고 상위 10편은 평균 755만명을 동원했다.
좋은 쪽으로 볼 때 한국영화 경쟁력이 강화된 결과다. 이나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500만명 안팎에서 움직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내수시장에서만큼은 할리우드 영화를 압박하고 있는 한국영화의 힘이라 하겠다.
배급하는 입장에서는 여러 영화를 번갈아 틀기 보다는 한 편으로 1천만명을 모으는 쪽이 홍보비를 비롯해 원가가 훨씬 적게 드니 유리하다. 극장들도 아직까지는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수익 배분에 있어서도 유리하기 때문에 역시 쌍수 들어 환영한다.
역시 천만관객을 노렸지만 언론과 관객이 적극적인 지지를 하지 않아 주춤하고 있다. 영화가 내거는 강한 민족주의가 부담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배급의 힘으로 지방을 공략하고 있어 소기의 목표에는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1천만 관객 국민영화'는 어떻게 태어날까? 순서들은 조금 달라도 어느덧 정리된 규칙이 있다.
비교적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다. 스타들도 중요하지만 감독 파워가 더 중요하다. 해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는 것은, 미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나 후반기 탄력을 줄 때 꼭 필요하다. 개봉할 때 최대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고 물량 공세로 나가는 것은 필수며, 개봉 첫달 안에 목표 관객의 절반 이상은 달성해야 한다. 제작비 못지 않은 홍보비 지출은 상식이며 후반기 뒷심을 위해서는 평소 극장을 잘 찾지 않는 장년층을 움직여야 한다는 첨언도 있다.
'1천만 관객 국민영화'를 만드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세'를 이루는 것이다.1 천만명을 목표로 하는 영화들은 이 영화가 1천만명을 돌파해야 하는 이유를 설정하고 사상 공세를 펼친다.
의 경우 "처음으로 1천만명을 돌파하자" 자체가 이유였고 의 경우 "이 정도 제작비를 들인 영화가 망하면 안 된다"가 이유였다. 이런 사상 공세에서는 언론의 동참이 필수여서 의 경우 다양한 이유를 들어 반복 관람을 촉구했다.
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할리우드에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고 잘 만든 한국영화를 지지하자"는 임무가 개봉 전부터 주어졌다. 칸 영화제에서 호평 받았다는 정보가 여러 경로를 통해 주어지면서 분위기를 잡았고 개봉 전 TV 광고도 칸 영화제를 부각했다.
개봉 직전에는 괴물 CG로, 개봉 직후에는 반미영화 논란으로 불을 지폈다. 개봉 2주차가 되는 지금, 모든 광고가 기록 깨기로 집중되어 있고 언론들 역시 신기록 중계로 동참하고 있다. "중장년층 참여가 1천만명의 관건"이라는 기사조차 비판적인 전망이 아니라 약점 보강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느껴진다.
월드컵 당시 모두가 붉은 옷을 입었던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모두가 을 봐야하는 분위기다. 이 시점에서 에 대한 비판적 발언은 자살행위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 가능할 것이다.
이 반미요소를 감췄던데 비해 은 '반미영화'라 불리기를 자처했고 화염병 등장 역시 숨기지 않았다. 천만관객을 위해서는 중장년층 참여가 필수라면 가족애라는 호감과 반미라는 비호감 사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1천만 관객 국민영화'가 업계에 주는 이점은 분명하고 영화 선택에서 실패를 줄이고 싶어하고 대세에 민감한 한국 관객 특성을 볼 때 '1천만 관객 국민영화'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깃발이다. 하지만 지난 월드컵 때 그랬던 것처럼 대세만 존재하는 경향은, 특히 다양성이 중요한 문화에서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가져온다.
'1천만 관객'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한국영화 산업이 가진 전반적인 힘이 약해지고 있다. 영화 산업은 대박-중박-소박이 알맞게 배합되고, 극장-유료채널-소장용-대여용 같은 여러 배급 경로가 살아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영화 산업은 초대박-극장개봉이라는 하나의 통로만 북적거리고 나머지는 말라가고 있다.
어느 경로를 거치건 총 액수만 채우면 될 것 같지만 다양한 경로가 사라져 버린 틈에서 초대박이 나올 가능성 자체도 줄어든다. 유소년 축구와 K-리그가 무너지는 마당에 월드컵만 집중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몰아주기 속에서 소수가 소외되는 문제도 있다. '1천만 관객'을 위해 스크린 몰아주기를 하다 보니 같은 시기 개봉하는 다른 한국영화들은 개봉 기회마저 잡지 못하는 사정인데 같은 배급사 영화들까지 피해를 볼 정도로 몰아주기와 나눠주기가 주먹구구로 진행되어 피해는 더 커지고 있다. 언론과 비평이 몰아주기의 주체로 동참하다 보니 개봉관에서 소외된 영화들은 언론의 관심에서도 소외되는 이중고를 겪는다. 언론 스스로도 가능한 비판에 대해 스스로 침묵을 지키는 피해를 본다.
할리우드의 경우 한 편이 흥행하면 다른 영화들도 분위기를 타면서 전반적인 호경기로 가고 불경기도 같은 원리로 흐름을 타는 추세로 이것이 영화 흥행에서 일반적인 경향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영화는 초대박이 하나 터지면 모든 역량이 결집된 나머지 일종의 피로가 누적되었다고 할까, 그 영화가 내려지면 극장이 불경기로 접어든다. 대개 할리우드 배급사들은 이 시기를 노려 영화를 투입하기 때문에 최근 언론에서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에 밀린다"고 보도한 현상들은 라는 '1천만 관객 국민영화'에 이어 온 후유증이기도 했다.
"수준 미달의 한국영화를 만드니 할리우드에 밀리지" 하는 외침들은 또 다른 '1천만 관객 국민영화'에 대한 갈증을 바꿔 말한, 일종의 금단증세였다.
와 이 금단증세를 해소할 후보로 우리 앞에 섰고 일단 '1천만 관객 국민영화'의 깃발은 괴물이 꼬리를 휘둘러 거머쥔 셈이다. 아마도 가 내세우는 강렬한 민족주의보다 이 다루고 있는 가족애와 사회비판 쪽이 언론이나 관객들이 지지하기에 좀더 나은 재료였을 것이다.
천만관객은 아니었지만 깐느 영화제를 통해 국민영화에 오른 는 몰아주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금기와 폭력을 다룬 강도높은 영화였지만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고 문화부 장관 앞에서 훈장까지 받았다.
대세를 타는 것이 한국적 특징이라면 그것을 살리는 것이 방법일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꼭 문제는 아니며 초대박을 만들 수 있다면 굳이 그걸 마다할 이유 역시 없다.
문제는 초대박으로만 모든 것을 대체하려는 경향이다. 스스로 다양성을 파괴하는 문화치고 잘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 좋아하는 초대박을 위해서라도 문화 다양성을 보장하고 산업의 고른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