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Caecilia of Rome

윤상희200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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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Caecilia of Rome

축일:11월22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Santa Cecilia Vergine e martire

St. Caecilia of Rome

martyred c.117(230?)

Emblema: Giglio, Organo, Liuto, Palma

Name Meaning=blind

옛 전설에 의하면 성녀 체칠리아는 로마의 유서 깊은 명문 귀족의 딸로서, 행복한 가정과 인정을 끊어 버리고 하느님께 몸을 바쳤으며, 신앙과 동정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희생하신 분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찍이 발레리아노라는 한 귀족의 청년을 사위로 삼을 생각이었다.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성대한 결혼식이 끝난후 체칠리아는 발레리아노에게 종신 동정을 서원했다는 것을 밝히고, 자기에게는 천사의 특별한 보호가 있음을 말해주었다.

이교도인 발레리아노는 그 천사가 어떤 것인가를 한 번 보고 싶어 심히 간청했으므로, 체칠리아는 그를 우르바노 교황께 보내어 교리를 연구케 하고 마침내는 세례를 받게 했는데, 그 후 그는 기이하게도 체칠리아의 수호 천사를 뚜렷이 목격하게 되어 한층 더 체칠리아를 존경하며 그녀의 서원에 쾌히 동의하고,그의 동샌 티부르시오까지도 신앙에 인도했다.

발레리아노 형제의 신앙은 매우 열렬했으며, 어떠한 장소에서도 신앙을 용감하게 고백하고 공공연히 전교를 했으므로 마침내 알마키오의 미음을 사게 되어 체포되었다. 동시에 체칠리아도 법정에 소환되어 배교를 강요당했다.
그러나 이미 막대한 재산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었고, 또 자기 주택까지 성당으로 제공한 체칠리아인지라, 그런 요구가 통할 리 만무했다.
갖은 위협과 감언이설을 배격하고 신앙을 위해 희생할 결의를 표명했으므로, 알마키오는 하는 수 없이 체칠리아의 자택에서 사형을 집행하도록 판결을 내렸고, 그 당시 흔히 사형수에게 적용한 방법인 목욕탕에 가두어 쪄서 죽이는 가혹한 처형법을 적용토록 결정되었다.

드디어 체칠리아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목욕실에 가두어진지 24시간이 경과했다. 문을 열어 보니 체칠리아에게는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었다.
그러자 목을 베어 죽이기로 다시 결정했다.
그러나 형리의 서툰 솜씨로 목을 베인 후에도 체칠리아는 무진 고통을 겪었고, 마침내 한 떨기 깨끗한 백합화로 하느님께 바쳐졌다.
여기에 감탄할 사실이 있었다.

즉 그런 고통 중에도 오른쪽 손가락 세개와 왼손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자기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그 일을 위해 죽는다는 것을 표시했다니, 그녀의 신덕의 견고 열렬함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후에 신자들은 그 유해를 정중히 매장했는데, 821년에 때의 교황 파스칼 1세가 그 무덤을 열어 보니, 조금도 썩지 않고 살아 있는 모습이었으며, 화제의 손가락도 그대로였다 한다.

교황은 예식을 갖추어 거룩한 유해를 그녀에게 봉헌된 장려한 대성당 지하 묘소에 정중히 안치했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성당에는 순례자의 줄이 끊어지지 않으며 모든 이의 존경의 표식이 되고 있다.

그녀의 묘 위에 1599년 이탈리아의 어느 유명한 조각가가 고귀한 대리석으로 성녀의 순교 시의 상을 조각해 모셨다.

성녀 체칠리아가 교회 초기부터 성대한 공경을 받아온 것은 미사 본문 성변화 후의 기도문에 그녀의 이름이 기입된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체칠리아의 순교 연대는 분명치는 않으나, 아마 258년부터 시작된 발레리아노 황제의 박해 중이라고 추측했다.

귀족 가문 태생으로 체칠리라고도 알려진 그녀는 로마에서 태어났으며, 크리스챤으로 교육받고 성장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레리안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으로 하여금 자신의 동정을 존중해 주도록 확신시켰고 마침내는 크리스챤으로 개종시켰다.

또한 그녀는 오빠인 띠부르씨오를 개종시키는 놀라운 열성을 보였다.
발레리안(축일:4월14일)과 띠부르씨오는 그 때부터 늘 자선 활동에 전념하다가 순교하였다.
그들이 행정관인 알마치오 앞으로 끌려가 이방신전에 희생하라는 강요를 거절하자, 심한 매질을 당하였고, 로마 근교 빠구스 뜨리삐오에서 막시무스(4월 14일)와 함게 참수당하였다.
이 막시무스는 그들이 보여 준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신앙을 보고 감화받아 크리스챤이 되었다가 순교한 것이다.
체칠리아는 이 3명의 순교자들을 장례지낸 뒤에 체포되었다.

그녀는 용감하게 알마치오와 논쟁하였으며, 그가 체칠리아의 신앙을 도저히 꺽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사형을 언도하였다.
질식사시키려던 그녀의 사형 집행이 기적적으로 중단되었을 때, 한 군인이 그녀의 목을 베도록 선발되었다.
그가 맡은 일을 서투르게 처리하므로써, 그녀는 3일 동안이나 누워있다가 9월 16일에 운명하였다.

성녀 체칠리아의 공경은 수세기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아주 보편화 되었고, 그녀의 행적들이 수많은 전설이 되어 전해 내려 오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연대는 미상이다.
암부르씨오를 비롯한 다른 성인들은 알렉산델 황제 치하에서(225~35)순교하였다고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어느 정도 추정할 수는 있다.

체칠리아는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다.
그 이유는 그녀의 결혼식 때 그녀는 결혼 음악과 환호하는 소리들을 듣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녀의 내심으로만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녀의 문장은 오르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