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 주차된 자동차의 와이퍼에서 전단지를 찾는 일이란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너무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대리운전, 보험, 마사지, 심지어 돈을 받아주겠다는 흥신소 영업까지 유흥가와 주택가, 학교근처를 가리지 않고 빼곡히 전단지를 꽂아 대고 있다. 광고법의 규제 대상 조차 되지 못하는 이것들은 과대, 과장, 허위 광고 메뉴얼의 집대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일 전, 홍대 앞 골목에서도 어김없이 전단지를 발견했다.
이 광고물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기존의 광고와는 뭔가 다르다.
우선 솔직한 사진이 눈에 띈다. 모델, 영화배우 빰치는, 심지어 어떤 것은 진짜 배우가 등장하기도 해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여타의 유흥업소 광고들과는 달리 너무도 극사실적이어서 믿음이 가는 사진이 전단지 중앙에 떡 하니 박혀있다. 그것도 아줌마와 아가씨용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 채 말이다. 이쯤 되면 광고가 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자기 암시가 효력을 발휘한다. 광고카피는 한 술 더 뜬다. 은유와 비유를 적절히 섞어가며 구매자의 잠재심리를 건드려 의욕을 불태우는 것이 일반적인 광고의 형식이건만 이것은 너무도 노골적임에도 불구하고 옆 집 아저씨의 말씀을 듣고 있거나 이 물건을 판매하는 사장님과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만큼 문장자체에 은유는 고사하고 편집 조차 없다. 성기, 음경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말을 악착같이 '고추'라고 반복해 놓은 것은 이 전단지의 백미이다. 이 카피를 만들어낸 사람은 내공이 출중한 천재이거나, 무념무상의 비상식적 인간임에 틀림없다.
이 광고는 인간이 평생을 착각하며 사는 그릇된 성적 판타지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반영한다 . 섹스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짜릿한 하이틴 로맨스나 높은 난이도로 아흔 아홉가지의 체위를 구사하는 포르노 비디오를 섹스와 동일시하는 것 처럼 말이다. 커다란 성기를 가지면 여성들이 미치도록 좋아할 것이라는 비과학적인 문장은 C.S.I 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남자란 동물의 심리를 그대로 후벼파는 -모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성기가 크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거의 없다고 한다-비열한 상술이 내포되어 있다. 상식을 운운하고 때로는 포르노물의 추악함까지 경고하는 문장을 보면 도덕성을 강조하여 제품과 판매자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광고의 고전적 포맷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끝무렵에 난립한 근본 없고, 대책 없으며 추잡하기까지 한 막가피식 예술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너무 거창했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섹스는 몸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교감에서 몸은 서로의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 줄 뿐, 사실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문제는, 하루 세끼 쌀밥만 먹고 산다는 북한의 선동 삐라보다 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광고가 다 큰 어른들에게 어느정도 -절박한 몇 몇의 사람에겐 더욱-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섹스는 어느 분야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는 사회적 이슈의 소재이지만 개인과 개인 간에 발생하는 지극히 사적인 교류여서 드러냈을때 효과를 발하는 담론의 형성이나 교육에 의한 계도가 그리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맹점도 동시에 갖고 있다. 때문에 어릴 적 보았던 연출된 포르노그래피의 환상을 어른이 될 때까지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neo realism post-modern copywriting
신 사실주의 포스트모던 광고문안의 정수!
노상 주차된 자동차의 와이퍼에서 전단지를 찾는 일이란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너무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대리운전, 보험, 마사지, 심지어 돈을 받아주겠다는 흥신소 영업까지 유흥가와 주택가,
학교근처를 가리지 않고 빼곡히 전단지를 꽂아 대고 있다.
광고법의 규제 대상 조차 되지 못하는 이것들은 과대, 과장, 허위 광고 메뉴얼의 집대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일 전, 홍대 앞 골목에서도 어김없이 전단지를 발견했다.
이 광고물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기존의 광고와는 뭔가 다르다.
우선 솔직한 사진이 눈에 띈다.
모델, 영화배우 빰치는, 심지어 어떤 것은 진짜 배우가 등장하기도 해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여타의 유흥업소 광고들과는 달리 너무도 극사실적이어서 믿음이 가는 사진이 전단지
중앙에 떡 하니 박혀있다.
그것도 아줌마와 아가씨용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 채 말이다.
이쯤 되면 광고가 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자기 암시가 효력을 발휘한다.
광고카피는 한 술 더 뜬다.
은유와 비유를 적절히 섞어가며 구매자의 잠재심리를 건드려 의욕을 불태우는 것이 일반적인 광고의 형식이건만
이것은 너무도 노골적임에도 불구하고 옆 집 아저씨의 말씀을 듣고 있거나 이 물건을 판매하는 사장님과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만큼 문장자체에 은유는 고사하고 편집 조차 없다.
성기, 음경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말을 악착같이 '고추'라고 반복해 놓은 것은 이 전단지의 백미이다.
이 카피를 만들어낸 사람은 내공이 출중한 천재이거나, 무념무상의 비상식적 인간임에 틀림없다.
이 광고는 인간이 평생을 착각하며 사는 그릇된 성적 판타지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반영한다 .
섹스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짜릿한 하이틴 로맨스나 높은 난이도로 아흔 아홉가지의 체위를 구사하는
포르노 비디오를 섹스와 동일시하는 것 처럼 말이다.
커다란 성기를 가지면 여성들이 미치도록 좋아할 것이라는 비과학적인 문장은 C.S.I 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남자란 동물의 심리를 그대로 후벼파는 -모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성기가 크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거의 없다고 한다-비열한 상술이 내포되어 있다.
상식을 운운하고 때로는 포르노물의 추악함까지 경고하는 문장을 보면 도덕성을 강조하여 제품과
판매자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광고의 고전적 포맷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끝무렵에 난립한 근본 없고, 대책 없으며 추잡하기까지 한 막가피식 예술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너무 거창했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섹스는 몸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교감에서 몸은 서로의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 줄 뿐,
사실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문제는, 하루 세끼 쌀밥만 먹고 산다는 북한의 선동 삐라보다 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광고가 다 큰
어른들에게 어느정도 -절박한 몇 몇의 사람에겐 더욱-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섹스는 어느 분야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는 사회적 이슈의 소재이지만 개인과 개인 간에 발생하는
지극히 사적인 교류여서 드러냈을때 효과를 발하는 담론의 형성이나 교육에 의한 계도가 그리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맹점도 동시에 갖고 있다.
때문에 어릴 적 보았던 연출된 포르노그래피의 환상을 어른이 될 때까지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번쯤 몸이 아닌 感을 믿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