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발명가들은 표면의 공기호스 없이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기를 꿈꾸어 왔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였다. 딘 형제, 시베 등의 발명가들에 의해 수중에서 보다 오랫동안 체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언제나 수상으로부터 공기호스를 통해 공기를 공급받아야만 했고 공기호스는 잠수사의 생명유지에 불가피하기는 했지만 잠수사의 운신과 활동범위에는 큰 지장을 주었다. 스쿠버(SCUBA)란 Self-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의 합성어로서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는 수중에서 호흡하는 기구고 Self-Contained는 독립되었다는 뜻으로, 즉 독립된 휴대용 잠수기구를 착용하여 직접 잠수사가 물 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수중자가호흡기구」다. 따라서 스쿠버장비로 물에 들어간다고 해서 스쿠버잠수며, 이는 표면에서 기체를 공급해 주는 표면공급식잠수와 구분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나온 용어다. 과거에는 기술력 부족으로 스쿠버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했었고, 또 고압에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압력통이나 기체를 압축시킬 수 있는 공기압축기가 없었다. 최초의 스쿠버 잠수장비가 고안된 것은 1866년이며 브노아. 루케이요(Benoist Rluquayrol)에 의한 호흡조절기의 발명이다. 물론 고압 공기를 채울 수 있는 강력한 공기통이 발명되지 못한 관계로 반쪽의 발명이었지만 루케이요는 기존의 헬멧에 호흡조절기를 장착시킴으로써 폐쇄식 스쿠버장비의 발전을 가속화 시켰다. 스쿠버잠수장비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폐쇄식 스쿠버, 둘째 반폐쇄식 스쿠버, 셋째 개방식 스쿠버이다. 1878년 최초의 폐쇄식 스쿠버가 개발되면서 반폐쇄식 스쿠버와 개방식 스쿠버가 차례로 개발되었다. 폐쇄식 스쿠버는 100% 산소만을 사용하며 잠수사가 호흡하고 내 뱉은 이산화탄소를 정화하여 재순환시키기 때문에 압축공기를 사용하는 개방식 스쿠버처럼 고압의 공기통은 필요치 않았다. 또 정화된 이산화탄소는 물 표면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때 공작, 침투용으로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다. 비록 폐쇄식 스쿠버는 그 사용이 얕은 수심에 국한되어 있고 수심 7m 이상에서는 산소중독의 위험성이 노출되었지만 고도의 반폐쇄식 스쿠버를 고안하게 하는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 반폐쇄식 스쿠버는 폐쇄식 스쿠버의 특수한 형태로서 모든 면에서 폐쇄식 스쿠버와 동일하며 100%의 산소호흡도 가능하지만 무엇보다 산소-질소, 산소-헬륨 혼합기체를 사용할 수 있고 일부의 기체는 물 표면으로 배출되기도 하고 또는 전혀 배출되지 않도록 하여 해저체류시간을 상당히 연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개방식 스쿠버는 루케이요가 호흡조절기를 발명한지 60년이 지난 1943년에 비로소 발명되었다. 개방식 스쿠버의 발전은 1933년 프랑스 해군 중령인 르 쁘레르(Le Prieur)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며, 그는 압축공기통을 이용한 새로운 개방식 스쿠버의 장비를 개발하였지만 호흡조절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잠수사들이 민첩하게 수동으로 밸브를 조작해야만 공기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불편과 더불어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수중에서 체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도 않았고 사용되지도 않았다. 그 후 안타깝게도 스쿠버의 발전은 주로 폐쇄식 스쿠버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고 폐쇄식 스쿠버와 반폐쇄식 스쿠버는 2차 세계대전의 군사잠수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43년 2차 세계대전 말기의 독일 점령지인 프랑스 지중해변의 소읍에서 드디어 개방식 스쿠버가 발명되었는데, 프랑스 해군 대위인 자크-이브. 쿠스토(Jacque-Yves Cousteau)와 고압가스 전문가이자 공학자인 에밀 가냥(Emile Gagman)이 호흡조절기와 고압의 공기통을 공동으로 발명하였던 것이다. 당시 가냥의 부친은 프랑스에서 액화 기체를 제조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부친 밑에서 가냥은 자동차의 레귤레이터와 병원에서 수술용으로 사용되는 기체 호흡조절기 등을 발명하여 이미 그 방면에서는 전문가였었다. 두 사람의 공적은 수 백년 동안 이어 왔던 스쿠버 발전의 결실이었으며 시베, 루케이요, 르 쁘레르 등의 업적이 뒷받침이 되지 않았다면 결코 발명될 수 없었던 것이다. 쿠스토는 이 발명품을 아쿠아-렁(Agua-Lung)이라고 불렀다. 아쿠아(Agua)는 물, 렁(Lung)은 허파를 말하며, 이 두 단어를 합치면 수폐가 된다. 아쿠아-렁, 즉 개방식 스쿠버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개방식 스쿠버의 출현으로 바다 속의 활동이 자유스러워짐에 따라 심해에 대한 인간의 도전은 폭발적으로 증대되어 스쿠버는 모든 잠수의 대명사로 부각되었고, 특히 스포츠·레저잠수에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적인 장비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산업잠수(Commercial Diving)에서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곤 스쿠버장비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스쿠버의 발전은 전쟁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시작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스포츠 또는 레저로 몰렸고 스쿠버잠수는 그런 사람들의 욕구와 스트레스를 충분히 해소시킬 수 있는 활력소가 되었던 것이다.
SCUBA DIVING
스쿠버(SCUBA)란 Self-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의 합성어로서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는 수중에서 호흡하는 기구고 Self-Contained는 독립되었다는 뜻으로, 즉 독립된 휴대용 잠수기구를 착용하여 직접 잠수사가 물 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수중자가호흡기구」다. 따라서 스쿠버장비로 물에 들어간다고 해서 스쿠버잠수며, 이는 표면에서 기체를 공급해 주는 표면공급식잠수와 구분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나온 용어다.
과거에는 기술력 부족으로 스쿠버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했었고, 또 고압에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압력통이나 기체를 압축시킬 수 있는 공기압축기가 없었다. 최초의 스쿠버 잠수장비가 고안된 것은 1866년이며 브노아. 루케이요(Benoist Rluquayrol)에 의한 호흡조절기의 발명이다. 물론 고압 공기를 채울 수 있는 강력한 공기통이 발명되지 못한 관계로 반쪽의 발명이었지만 루케이요는 기존의 헬멧에 호흡조절기를 장착시킴으로써 폐쇄식 스쿠버장비의 발전을 가속화 시켰다.
스쿠버잠수장비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폐쇄식 스쿠버, 둘째 반폐쇄식 스쿠버, 셋째 개방식 스쿠버이다. 1878년 최초의 폐쇄식 스쿠버가 개발되면서 반폐쇄식 스쿠버와 개방식 스쿠버가 차례로 개발되었다. 폐쇄식 스쿠버는 100% 산소만을 사용하며 잠수사가 호흡하고 내 뱉은 이산화탄소를 정화하여 재순환시키기 때문에 압축공기를 사용하는 개방식 스쿠버처럼 고압의 공기통은 필요치 않았다. 또 정화된 이산화탄소는 물 표면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때 공작, 침투용으로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다. 비록 폐쇄식 스쿠버는 그 사용이 얕은 수심에 국한되어 있고 수심 7m 이상에서는 산소중독의 위험성이 노출되었지만 고도의 반폐쇄식 스쿠버를 고안하게 하는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
반폐쇄식 스쿠버는 폐쇄식 스쿠버의 특수한 형태로서 모든 면에서 폐쇄식 스쿠버와 동일하며 100%의 산소호흡도 가능하지만 무엇보다 산소-질소, 산소-헬륨 혼합기체를 사용할 수 있고 일부의 기체는 물 표면으로 배출되기도 하고 또는 전혀 배출되지 않도록 하여 해저체류시간을 상당히 연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개방식 스쿠버는 루케이요가 호흡조절기를 발명한지 60년이 지난 1943년에 비로소 발명되었다.
개방식 스쿠버의 발전은 1933년 프랑스 해군 중령인 르 쁘레르(Le Prieur)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며, 그는 압축공기통을 이용한 새로운 개방식 스쿠버의 장비를 개발하였지만 호흡조절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잠수사들이 민첩하게 수동으로 밸브를 조작해야만 공기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불편과 더불어 극히 짧은 시간 동안만 수중에서 체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도 않았고 사용되지도 않았다. 그 후 안타깝게도 스쿠버의 발전은 주로 폐쇄식 스쿠버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고 폐쇄식 스쿠버와 반폐쇄식 스쿠버는 2차 세계대전의 군사잠수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43년 2차 세계대전 말기의 독일 점령지인 프랑스 지중해변의 소읍에서 드디어 개방식 스쿠버가 발명되었는데, 프랑스 해군 대위인 자크-이브. 쿠스토(Jacque-Yves Cousteau)와 고압가스 전문가이자 공학자인 에밀 가냥(Emile Gagman)이 호흡조절기와 고압의 공기통을 공동으로 발명하였던 것이다. 당시 가냥의 부친은 프랑스에서 액화 기체를 제조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부친 밑에서 가냥은 자동차의 레귤레이터와 병원에서 수술용으로 사용되는 기체 호흡조절기 등을 발명하여 이미 그 방면에서는 전문가였었다. 두 사람의 공적은 수 백년 동안 이어 왔던 스쿠버 발전의 결실이었으며 시베, 루케이요, 르 쁘레르 등의 업적이 뒷받침이 되지 않았다면 결코 발명될 수 없었던 것이다. 쿠스토는 이 발명품을 아쿠아-렁(Agua-Lung)이라고 불렀다. 아쿠아(Agua)는 물, 렁(Lung)은 허파를 말하며, 이 두 단어를 합치면 수폐가 된다. 아쿠아-렁, 즉 개방식 스쿠버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개방식 스쿠버의 출현으로 바다 속의 활동이 자유스러워짐에 따라 심해에 대한 인간의 도전은 폭발적으로 증대되어 스쿠버는 모든 잠수의 대명사로 부각되었고, 특히 스포츠·레저잠수에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적인 장비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산업잠수(Commercial Diving)에서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곤 스쿠버장비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스쿠버의 발전은 전쟁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시작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스포츠 또는 레저로 몰렸고 스쿠버잠수는 그런 사람들의 욕구와 스트레스를 충분히 해소시킬 수 있는 활력소가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