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스크린이나 TV 브라운관, 나아가 한층 진보된 손바닥 안의 각종 영상매체는 사각형 안의 세상일 뿐 이지만 현실을 반영한 세상이기에 우리 사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가 청소년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영상매체가 불러오는 영향은 쉽게 지나칠 수 없다.
관련 업계는 이미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청소년층을 직접적인 수요자로 하는 각종 영상컨텐츠 제작에 지속적으로 심혈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재미와 흥미만을 위주로 한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들은 반드시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만을 주는지는 미지수다.
이 중 재미와 흥미만을 추구하는 오락성 청소년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시각으로 제작되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TV 청소년 대상 드라마를 살펴보면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 그리고 청소년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교사와 교육현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본격 청소년 드라마를 표방하고 방영된 ‘사춘기(1993년, MBC, 연출 장용우)’는 당시 드라마 속 주인공과 동년배의 청소년들을 그 대상으로 삼고 제작되어 많은 인기를 누렸다. ‘사춘기’ 이전에도 청소년 이하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은 존재했지만, 그것들은 순수한 ‘교육’이나 ‘계도(啓導)’, ‘재미’의 제공이 그 목적이었으며 수용하는 시청자들도 당연시 그 목적에 반응해 왔다. 여기에 드라마 ‘사춘기’의 방영은 이전의 프로그램들이 주지 못했던 색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사춘기’는 그동안 청소년 이하 대상 프로그램들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드라마 자체가 사춘기를 겪듯, 이전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보여줬다. 첫사랑의 느낌을 알고 난 후 어쩔 줄 모르는 주인공의 모습, 외모에 자신이 없어 갖은 방법으로 이를 극복해 내려는 친구의 모습 등 ‘사춘기’의 주인공과 주인공 주변의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이전 프로그램들이 다루지 않은, 당시로썬 작은 파격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범주에까지 손을 대며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드라마 ‘사춘기’에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 요소가 있다. 바로 현실적인 교육과 교사의 모습이 그리 많이 비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춘기’의 제일의 수요자는 바로 청소년이었다. 철저히 청소년의 눈에 맞춰 청소년과 동일한 생각으로 청소년과 동일한 행동을 보여준 ‘사춘기’는 그 청소년을 이끌어주고 만들어주는 교사, 그리고 그 환경이라 할 수 있는 교육에까지 그 진지함을 나누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사춘기’가 드라마 제목과 똑같이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갈등, 기쁨과 환희를 함께 해 주고 있을 때, 교사와 교육계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참관자로써만 함께 할 뿐이었다.
드라마 ‘사춘기’가 성공적인 평가를 받으며 막을 내리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은 타 방송사에서도 예전과 달리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며 자연스레 질적으로도 낳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 중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한 청소년드라마 ‘나(1996년, MBC, 연출 배한천·김영호)’는 ‘사춘기’ 이후 제작된 청소년 프로그램 중 ‘사춘기’의 명성을 이어갈만한 청소년 드라마로 꼽히고 있다.
한명의 주인공이 성장하며 겪는 다양한 심적 갈등을 소재로 한 ‘사춘기’와는 달리, 드라마 ‘나’는 남녀공학 고교의 써클인 방송반 구성원 전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춘기’에서의 주인공 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제한적인 경험과 감성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인물들이 골고루 가질 수 있는 감성들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사춘기’가 사춘기 청소년의 복잡 다양한 성장기 감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시청대상자인 청소년들에게 동질성을 느끼게 했다면, ‘나’는 여기에서 진화되어 인물끼리의 관계설정에도 큰 비중을 두며 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에피소드들을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사춘기’가 그러했듯 ‘나’도 철저한 등장인물과 동년배의 대상자들을 위한 눈높이 드라마로 기획된, 교육과 교육자의 시각이 들어서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물론 몇 개의 에피소드들을 할애하며 교사의 애환을 진지하게 다루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당시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보여준 드라마 이상은 아니었으며 그로써 만족해야 했다.
이후 주간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교실(1995)’나 단막극 형식의 ‘신세대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1996)’, ‘성장느낌 18세(1996), '스타트(1997)’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가 꾸준히 제작되어 왔고, 이들 드라마는 소재의 고갈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점점 다양한 소재들을 끌어들이며 진보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에피소드들에서 관찰자, 주변인으로써 그 임무를 다하거나 나아가 방관자의 역할로까지 치부되던 교사, 학부모들을 주인공으로 한 에피소드들도 준비되었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정점에 다다른 드라마가 바로 ‘학교(1999년, KBS, 연출 이민홍)’가 아닌가 싶다.
‘학교’는 이전의 청소년 드라마와는 달리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어 빠른 이야기 전개와 확실한 주제전달이 크게 어필되며 단순히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아닌, 일반 미니시리즈와 엇비슷한 시청자층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이전의 드라마들이 주인공의 성장기를 통해 동질성에 호소했다면, ‘학교’는 학교의 현장을 가감 없이 표현하며 교육 안의 현실과 밖의 이상의 차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학교’가 보여준 다양한 시도는 이전의 드라마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사춘기’에서 잘 그려진 주인공의 심리표현과, ‘나’에서 시도된 각기 비중 있는 인물들끼리의 유기적인 갈등묘사가 ‘학교’에서는 미니시리즈라는 옷을 입고 빠르고 섬세하게 구성됐다.
여기에 가장 돋보이는 점은 학생들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며 대부분의 극을 이끌었던 이전 드라마에 반해,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가 거의 동일한 비중을 차지하며 극을 이끌어 나간다는 점이다.
기존의 청소년 드라마는 사춘기 방황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고 사건들을 접하며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전개였다면, ‘학교’에서는 이 학생을 계도하기 위해 나서는 교사를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그려내고, 교사 나름대로의 직업적 고뇌를 보여준다.
더군다나 눈에 띄는 점은 기존 청소년 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이 학교 교실과 동아리방에 한정됐다면, ‘학교’에서는 교무실도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후에 학교 2, 3, 4편이 제작되며 교무실뿐만 아니라 학년별 교무실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이 교무실에서는 이전에는 듣지 못했고 들을 수도 없었던 교사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고, 교사들의 생활도 엿볼 수 있다.
학생을 처벌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침울해 있는 교사, 삐뚤어진 제자를 바로잡기 위한 방법을 고뇌하는 교사 등 교육현장에서 부딪히는 현실에 고심하는 모습부터 선생은 정신적 노동에 비해 상대적 박봉인 직업이라는 넋두리를 하며 목돈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도움을 구하는 개인사로 고뇌하는 교사의 모습까지 볼 수 있는 곳이 이 교무실이라는 공간이다.
‘학교’는 이러한 제작방향으로 다양한 계층에서 호응을 일으켜 인기를 끌자 주간단막극 형식의 ‘학교 2’, ‘학교 3’. ‘학교 4’까지 제작, 방영되었으며, 모든 시리즈에서 ‘학교’에서 보여 준 교사의 인간적인 면과 교육자가 느끼는 교육의 현실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특히 2001년 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제작된 ‘학교 4’에서는 교무실을 중요한 공간으로 훨씬 더 부각시키며 단지 학교에만 딸린 부수적인 공간이 아니고 직위에 따른 이해 갈등, 또한 언젠가 예술가를 꿈꿨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선생님의 좌절과 꿈을 통해 교사들의 내면을 그리는 중요한 소재로 쓰이는 등 또 하나의 어른들의 세계를 그리는 곳으로 쓰였다.
‘학교’는 기존의 프로그램에서 다룬 같은 공간·같은 소재를 과감하게 미니시리즈로 편성한 점, 빙빙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교육현실을 꼬집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듯 제목 자체를 ‘학교’라고 명명한 점, 특히 극의 구성원을 폭넓게 다루며 똑같은 학교·교육의 구성원인 교육자에 대한 비중을 높인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드라마임은 분명하다.
‘사춘기’가 청소년 드라마를 처음 본격적으로 그려냈고, ‘나’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며 업그레이드 됐으며, ‘학교’가 동명의 제목을 긴 시간동안 이어가며 기존의 청소년 드라마를 교육현실의 드라마로 조금씩 바꾸는 역할을 해 오는 동안, 이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는 시청자층의 눈높이도 함께 자라왔다. 그러면서 인터넷 등으로 청소년의 관심이 TV에 멀어지고, ‘학교’가 있긴 했지만 기존의 장기간 이어져온 청소년물이 계몽적인 드라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청소년들이 흥미를 잃어버리며 청소년 드라마 제작은 한동안 공백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지만, 교육계의 현실과 애환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결국 청소년 드라마 이외에는 적절한 것이 없었기에 소강상태에 있는 청소년 드라마 제작은 아쉽기만 했다. 영상매체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생각해 본다면 청소년을 흥미위주의 표면적으로 다룬 드라마가 아닌, 청소년의 진정한 고민을 담아내는 청소년 드라마가 필요한 시점이었으며, 교사와 교육계를 잘 나타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기에 그 갈증은 더해만 갔다.
그러던 중 새롭게 제작이 시도된 드라마가 ‘반올림’이다.
‘반올림(2003년, KBS, 연출 최세경 외)’은 ‘성장드라마’라는 주제를 제목과 함께 내걸고 이전의 청소년 드라마들과의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부터 노력의 흔적을 보여줬다.
이전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입시에 따른 갈등을 보여줄 수 있고, 성인이 되기 전의 청소년 심리를 보여줄 수 있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했다면, ‘반올림’은 중학교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정신적·육체적 성장기가 빨라져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는 연령이 고등학교 세대에서 중학교 세대로 옮겨간 이 시점에서 중학교를 배경으로 한 점은 오히려 성장기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더욱 잘 그릴 수 있었다고 본다.
또한 기존의 청소년 드라마들이 남학생, 혹은 소수의 여학생과 다수의 남학생의 눈으로 보여진 세상이었다면, ‘반올림’은 주인공을 여학생으로 내세워 남자보다 더 섬세하고 예민한 심리묘사를 그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반올림’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여력을 쏟은 탓인지 교육자와 교육여건에 대한 현실을 그려내는 데에는 이전의 청소년 드라마에서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반올림’ 자체가 사춘기 여학생의 개인감정과 감성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두며 배경을 학교 외에 가정과 친구들에 많은 할애를 하며 그 위주로 극을 진행한 데에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반올림’이 종영하고 바로 이어진 ‘반올림2’로 이어지며 다소 변화된 모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반올림2’는 ‘반올림’이 미처 일반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그 단점을 보완해 청소년의 우정, 사랑은 물론 가족문제, 사회문제 등 성인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나타냈다.
특히 ‘반올림2’에서는 기성세대들이 공감하고 추억할 수 있는 장치와 함께 교육자의 현실과 애환이 작지 않은 비중으로 들어가 있다. 집 안 거실과 분식집, 공원 등 학교 이외의 공간이 학교 교실에 버금갈 정도로 배경으로 사용되는 장면이 눈에 띄게 많으며, 교무실 역시 학교 속의 공간이 아닌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간의 의사소통의 장으로 등장한다. 또한 학교 안에서만 볼 수 있었던 교사는 학교 밖(심지어 교사 자취방까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대사 또한 우리 아버지·어머니, 옆집 아저씨·아줌마가 내뱉는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철없는 여주인공과 보수적인 학생주임 교사와의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포용하기도 하는 갈등구조를 그려내며 상호간의 인간관계에도 초점을 맞추기도 하는 등 이전의 청소년 드라마와는 차별된 모습을 보였다. 공부도 못하고 성격도 좋지 않게 표현된 여주인공의 비교대상인물이 당연히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주인공 친구여야 맞을진데, 여주인공을 질책하고 훈계하고 때로는 힘을 북돋워주는 학생주임 교사로 그려지기까지 했다는 점은 청소년 드라마 속에서 과감히 나설 수 없었던 교사의 위치가 많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사가 많이 드러나게 됨으로써 자연히 교사의 애환도 상당부분 표현됐음은 당연한 결과이다.
학생주임 교사는 ‘반올림2’가 막을 내리며 이어진 ‘반올림3’에서도 등장하며 두 시리즈의 유일한 교두보 역할을 한다.
이전의 ‘반올림’, ‘반올림2’와는 달리 주인공을 평범한 남학생으로 내세우고, 그가 속한 문제학생들로 구성된 특별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 ‘반올림3’는 처음 시작부터 학생주임 교사가 극을 이끌어간다. 또한, 문제 학생들이 모인 특별반은 학생주임 교사가 느끼는 심리갈등에 더 없이 좋은 장치이기에 이전 시리즈보다 더 진지해진 교사의 애환을 그린다.
단순히 드라마 안에 교사의 모습이 많이 비춰지고, 교사의 비중이 커진다고 해서 그 드라마가 교사와 교육의 현실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사와 교육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선 누군가 어떤 수단을 통해 노출을 시켜야 하고, 그게 지속되다 보면 점차 예전과는 다른 다양한 평가들과 변화들도 나오기 마련이다.
청소년 드라마는 청소년 드라마이지, 결코 교육(교사) 드라마는 아니다. 청소년만을 위한 드라마는 될 수 있어도 교육(교사)만을 위한 드라마는 될 수 없다. 아직까지 교육(교사)의 현실을 담을 수 있는 곳은 청소년 드라마에서 준비해 주는 한 쪽의 공간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청소년 드라마들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며 여유를 가지고 교육과 교사의 이야기를 조금씩 할애해줬듯 이와 같은 행보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나아가 문제해결과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청소년·교육 드라마가 등장할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듯 영상매체의 컨텐츠들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에 앞에 열거한 청소년 드라마들로써 청소년과 교사가 느끼고 있는 교육현실을 보다 발전시키는데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사춘기'부터 '반올림'까지..
드라마 '사춘기'부터 '반올림'까지 이어지는
우리 청소년의 모습.
그리고 그 안에 함께 비춰지는 학교, 교육, 교사의 모습
극장 스크린이나 TV 브라운관, 나아가 한층 진보된 손바닥 안의 각종 영상매체는 사각형 안의 세상일 뿐 이지만 현실을 반영한 세상이기에 우리 사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가 청소년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영상매체가 불러오는 영향은 쉽게 지나칠 수 없다.
관련 업계는 이미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청소년층을 직접적인 수요자로 하는 각종 영상컨텐츠 제작에 지속적으로 심혈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재미와 흥미만을 위주로 한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들은 반드시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만을 주는지는 미지수다.
이 중 재미와 흥미만을 추구하는 오락성 청소년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시각으로 제작되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TV 청소년 대상 드라마를 살펴보면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 그리고 청소년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교사와 교육현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본격 청소년 드라마를 표방하고 방영된 ‘사춘기(1993년, MBC, 연출 장용우)’는 당시 드라마 속 주인공과 동년배의 청소년들을 그 대상으로 삼고 제작되어 많은 인기를 누렸다. ‘사춘기’ 이전에도 청소년 이하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은 존재했지만, 그것들은 순수한 ‘교육’이나 ‘계도(啓導)’, ‘재미’의 제공이 그 목적이었으며 수용하는 시청자들도 당연시 그 목적에 반응해 왔다. 여기에 드라마 ‘사춘기’의 방영은 이전의 프로그램들이 주지 못했던 색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사춘기’는 그동안 청소년 이하 대상 프로그램들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드라마 자체가 사춘기를 겪듯, 이전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보여줬다. 첫사랑의 느낌을 알고 난 후 어쩔 줄 모르는 주인공의 모습, 외모에 자신이 없어 갖은 방법으로 이를 극복해 내려는 친구의 모습 등 ‘사춘기’의 주인공과 주인공 주변의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이전 프로그램들이 다루지 않은, 당시로썬 작은 파격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범주에까지 손을 대며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드라마 ‘사춘기’에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 요소가 있다. 바로 현실적인 교육과 교사의 모습이 그리 많이 비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춘기’의 제일의 수요자는 바로 청소년이었다. 철저히 청소년의 눈에 맞춰 청소년과 동일한 생각으로 청소년과 동일한 행동을 보여준 ‘사춘기’는 그 청소년을 이끌어주고 만들어주는 교사, 그리고 그 환경이라 할 수 있는 교육에까지 그 진지함을 나누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사춘기’가 드라마 제목과 똑같이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갈등, 기쁨과 환희를 함께 해 주고 있을 때, 교사와 교육계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참관자로써만 함께 할 뿐이었다.
드라마 ‘사춘기’가 성공적인 평가를 받으며 막을 내리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은 타 방송사에서도 예전과 달리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며 자연스레 질적으로도 낳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 중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한 청소년드라마 ‘나(1996년, MBC, 연출 배한천·김영호)’는 ‘사춘기’ 이후 제작된 청소년 프로그램 중 ‘사춘기’의 명성을 이어갈만한 청소년 드라마로 꼽히고 있다.
한명의 주인공이 성장하며 겪는 다양한 심적 갈등을 소재로 한 ‘사춘기’와는 달리, 드라마 ‘나’는 남녀공학 고교의 써클인 방송반 구성원 전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춘기’에서의 주인공 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제한적인 경험과 감성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인물들이 골고루 가질 수 있는 감성들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사춘기’가 사춘기 청소년의 복잡 다양한 성장기 감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시청대상자인 청소년들에게 동질성을 느끼게 했다면, ‘나’는 여기에서 진화되어 인물끼리의 관계설정에도 큰 비중을 두며 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에피소드들을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사춘기’가 그러했듯 ‘나’도 철저한 등장인물과 동년배의 대상자들을 위한 눈높이 드라마로 기획된, 교육과 교육자의 시각이 들어서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물론 몇 개의 에피소드들을 할애하며 교사의 애환을 진지하게 다루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당시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보여준 드라마 이상은 아니었으며 그로써 만족해야 했다.
이후 주간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교실(1995)’나 단막극 형식의 ‘신세대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1996)’, ‘성장느낌 18세(1996), '스타트(1997)’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가 꾸준히 제작되어 왔고, 이들 드라마는 소재의 고갈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점점 다양한 소재들을 끌어들이며 진보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에피소드들에서 관찰자, 주변인으로써 그 임무를 다하거나 나아가 방관자의 역할로까지 치부되던 교사, 학부모들을 주인공으로 한 에피소드들도 준비되었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정점에 다다른 드라마가 바로 ‘학교(1999년, KBS, 연출 이민홍)’가 아닌가 싶다.
‘학교’는 이전의 청소년 드라마와는 달리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어 빠른 이야기 전개와 확실한 주제전달이 크게 어필되며 단순히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아닌, 일반 미니시리즈와 엇비슷한 시청자층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이전의 드라마들이 주인공의 성장기를 통해 동질성에 호소했다면, ‘학교’는 학교의 현장을 가감 없이 표현하며 교육 안의 현실과 밖의 이상의 차이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학교’가 보여준 다양한 시도는 이전의 드라마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사춘기’에서 잘 그려진 주인공의 심리표현과, ‘나’에서 시도된 각기 비중 있는 인물들끼리의 유기적인 갈등묘사가 ‘학교’에서는 미니시리즈라는 옷을 입고 빠르고 섬세하게 구성됐다.
여기에 가장 돋보이는 점은 학생들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며 대부분의 극을 이끌었던 이전 드라마에 반해,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가 거의 동일한 비중을 차지하며 극을 이끌어 나간다는 점이다.
기존의 청소년 드라마는 사춘기 방황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고 사건들을 접하며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전개였다면, ‘학교’에서는 이 학생을 계도하기 위해 나서는 교사를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그려내고, 교사 나름대로의 직업적 고뇌를 보여준다.
더군다나 눈에 띄는 점은 기존 청소년 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이 학교 교실과 동아리방에 한정됐다면, ‘학교’에서는 교무실도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후에 학교 2, 3, 4편이 제작되며 교무실뿐만 아니라 학년별 교무실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이 교무실에서는 이전에는 듣지 못했고 들을 수도 없었던 교사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고, 교사들의 생활도 엿볼 수 있다.
학생을 처벌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침울해 있는 교사, 삐뚤어진 제자를 바로잡기 위한 방법을 고뇌하는 교사 등 교육현장에서 부딪히는 현실에 고심하는 모습부터 선생은 정신적 노동에 비해 상대적 박봉인 직업이라는 넋두리를 하며 목돈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도움을 구하는 개인사로 고뇌하는 교사의 모습까지 볼 수 있는 곳이 이 교무실이라는 공간이다.
‘학교’는 이러한 제작방향으로 다양한 계층에서 호응을 일으켜 인기를 끌자 주간단막극 형식의 ‘학교 2’, ‘학교 3’. ‘학교 4’까지 제작, 방영되었으며, 모든 시리즈에서 ‘학교’에서 보여 준 교사의 인간적인 면과 교육자가 느끼는 교육의 현실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특히 2001년 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제작된 ‘학교 4’에서는 교무실을 중요한 공간으로 훨씬 더 부각시키며 단지 학교에만 딸린 부수적인 공간이 아니고 직위에 따른 이해 갈등, 또한 언젠가 예술가를 꿈꿨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선생님의 좌절과 꿈을 통해 교사들의 내면을 그리는 중요한 소재로 쓰이는 등 또 하나의 어른들의 세계를 그리는 곳으로 쓰였다.
‘학교’는 기존의 프로그램에서 다룬 같은 공간·같은 소재를 과감하게 미니시리즈로 편성한 점, 빙빙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교육현실을 꼬집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듯 제목 자체를 ‘학교’라고 명명한 점, 특히 극의 구성원을 폭넓게 다루며 똑같은 학교·교육의 구성원인 교육자에 대한 비중을 높인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드라마임은 분명하다.
‘사춘기’가 청소년 드라마를 처음 본격적으로 그려냈고, ‘나’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며 업그레이드 됐으며, ‘학교’가 동명의 제목을 긴 시간동안 이어가며 기존의 청소년 드라마를 교육현실의 드라마로 조금씩 바꾸는 역할을 해 오는 동안, 이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는 시청자층의 눈높이도 함께 자라왔다. 그러면서 인터넷 등으로 청소년의 관심이 TV에 멀어지고, ‘학교’가 있긴 했지만 기존의 장기간 이어져온 청소년물이 계몽적인 드라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청소년들이 흥미를 잃어버리며 청소년 드라마 제작은 한동안 공백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지만, 교육계의 현실과 애환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결국 청소년 드라마 이외에는 적절한 것이 없었기에 소강상태에 있는 청소년 드라마 제작은 아쉽기만 했다. 영상매체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생각해 본다면 청소년을 흥미위주의 표면적으로 다룬 드라마가 아닌, 청소년의 진정한 고민을 담아내는 청소년 드라마가 필요한 시점이었으며, 교사와 교육계를 잘 나타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기에 그 갈증은 더해만 갔다.
그러던 중 새롭게 제작이 시도된 드라마가 ‘반올림’이다.
‘반올림(2003년, KBS, 연출 최세경 외)’은 ‘성장드라마’라는 주제를 제목과 함께 내걸고 이전의 청소년 드라마들과의 차별성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부터 노력의 흔적을 보여줬다.
이전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입시에 따른 갈등을 보여줄 수 있고, 성인이 되기 전의 청소년 심리를 보여줄 수 있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했다면, ‘반올림’은 중학교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정신적·육체적 성장기가 빨라져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는 연령이 고등학교 세대에서 중학교 세대로 옮겨간 이 시점에서 중학교를 배경으로 한 점은 오히려 성장기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더욱 잘 그릴 수 있었다고 본다.
또한 기존의 청소년 드라마들이 남학생, 혹은 소수의 여학생과 다수의 남학생의 눈으로 보여진 세상이었다면, ‘반올림’은 주인공을 여학생으로 내세워 남자보다 더 섬세하고 예민한 심리묘사를 그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반올림’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에 여력을 쏟은 탓인지 교육자와 교육여건에 대한 현실을 그려내는 데에는 이전의 청소년 드라마에서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반올림’ 자체가 사춘기 여학생의 개인감정과 감성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두며 배경을 학교 외에 가정과 친구들에 많은 할애를 하며 그 위주로 극을 진행한 데에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반올림’이 종영하고 바로 이어진 ‘반올림2’로 이어지며 다소 변화된 모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반올림2’는 ‘반올림’이 미처 일반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그 단점을 보완해 청소년의 우정, 사랑은 물론 가족문제, 사회문제 등 성인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나타냈다.
특히 ‘반올림2’에서는 기성세대들이 공감하고 추억할 수 있는 장치와 함께 교육자의 현실과 애환이 작지 않은 비중으로 들어가 있다. 집 안 거실과 분식집, 공원 등 학교 이외의 공간이 학교 교실에 버금갈 정도로 배경으로 사용되는 장면이 눈에 띄게 많으며, 교무실 역시 학교 속의 공간이 아닌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간의 의사소통의 장으로 등장한다. 또한 학교 안에서만 볼 수 있었던 교사는 학교 밖(심지어 교사 자취방까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대사 또한 우리 아버지·어머니, 옆집 아저씨·아줌마가 내뱉는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철없는 여주인공과 보수적인 학생주임 교사와의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포용하기도 하는 갈등구조를 그려내며 상호간의 인간관계에도 초점을 맞추기도 하는 등 이전의 청소년 드라마와는 차별된 모습을 보였다. 공부도 못하고 성격도 좋지 않게 표현된 여주인공의 비교대상인물이 당연히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주인공 친구여야 맞을진데, 여주인공을 질책하고 훈계하고 때로는 힘을 북돋워주는 학생주임 교사로 그려지기까지 했다는 점은 청소년 드라마 속에서 과감히 나설 수 없었던 교사의 위치가 많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사가 많이 드러나게 됨으로써 자연히 교사의 애환도 상당부분 표현됐음은 당연한 결과이다.
학생주임 교사는 ‘반올림2’가 막을 내리며 이어진 ‘반올림3’에서도 등장하며 두 시리즈의 유일한 교두보 역할을 한다.
이전의 ‘반올림’, ‘반올림2’와는 달리 주인공을 평범한 남학생으로 내세우고, 그가 속한 문제학생들로 구성된 특별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 ‘반올림3’는 처음 시작부터 학생주임 교사가 극을 이끌어간다. 또한, 문제 학생들이 모인 특별반은 학생주임 교사가 느끼는 심리갈등에 더 없이 좋은 장치이기에 이전 시리즈보다 더 진지해진 교사의 애환을 그린다.
단순히 드라마 안에 교사의 모습이 많이 비춰지고, 교사의 비중이 커진다고 해서 그 드라마가 교사와 교육의 현실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사와 교육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선 누군가 어떤 수단을 통해 노출을 시켜야 하고, 그게 지속되다 보면 점차 예전과는 다른 다양한 평가들과 변화들도 나오기 마련이다.
청소년 드라마는 청소년 드라마이지, 결코 교육(교사) 드라마는 아니다. 청소년만을 위한 드라마는 될 수 있어도 교육(교사)만을 위한 드라마는 될 수 없다. 아직까지 교육(교사)의 현실을 담을 수 있는 곳은 청소년 드라마에서 준비해 주는 한 쪽의 공간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청소년 드라마들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며 여유를 가지고 교육과 교사의 이야기를 조금씩 할애해줬듯 이와 같은 행보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나아가 문제해결과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청소년·교육 드라마가 등장할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듯 영상매체의 컨텐츠들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에 앞에 열거한 청소년 드라마들로써 청소년과 교사가 느끼고 있는 교육현실을 보다 발전시키는데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