않아픈곳이 없을 정도로 나사하나 빠진 기계마냥 고장난곳이 없을 정도로 내 몸은 쇠약해졌다. 하긴 해마다 수술을 했으니....
2000년도엔 난소종양 제거수술, 01년도엔 셋째 낙태수술,02년도엔 상피내암, 2003년도인 삼년전 추석 명절 자궁경부암 수술을 했다 어린 두 남매는 친정에 맡기고 남편이 나의 간병인이 되어주었다.금식을 하고 이틀동안 시티촬영에 엠알아이에 이것저것 검사하느라 실오라기 들수없을 만큼 기운이 빠졌다.드디어 수술하는날 침대에 눕혀 간호사들에 의해 실려가는 내 몸은 두려움에 떨었고 천장만이 나를 위로 해주는것 같았다.
어느샌가 의식을 잃고 겨우겨우 귓가에 무슨 소음들이 울려댔다.
엄마 목소리 ,동생들 목소리 , 남편 목소리. 뒤석여서 알아듣질 못했다. "엄마 엄마, 괜찮아 엄마 으앙~~~~"
딸애 목소리다 틀림없는 딸애 목소리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뜨니
앞이 희미해지면서 사람들의 현상이 흐릿흐릿하게 보인다. 어깨와 배가 땅긴다, 고개도 못돌리고 눈만 깜빡거리며 딸애를 위로시킨다
하루가 지나니 의식을 확실히 찾고 몸도 천천히 움직였다.
"장이 유착될수 있으니 병실 복도 한바퀴 돌으세요. 운동을 않하면 큰일 납니다."의사의 말에 허리는 구부정하게 겨우겨우 걸을 수있었다 진통억제하는 무통 기계 줄에 닝겔줄에 영양제 줄에 소변줄에 이것 저것해서 다석개정도의 호수들을 달고 닝겔 걸이를 지팡이 삼아
사부작사부작 운동아닌 운동을 했다.난소가 하나 기능상실 되어 제거하고 허리의 림프선 절제에 자궁은 완전히 드러내어 내뱃속은 수술로 인한 까스만이 꽉 차있었다.
복도를 돌면서 다른 병실속에 환자들을 보게 된다. 306호실이었다
괘심치레하고 몸은 가누지 못해 흔들거려 보조 식탁에 누워있는 한 아주머니, 계속 토해내고 성질만 내는데 스무살쯤 되보이는 아가씨둘이 간병을 하고있었다.
"저사람은 말기라 아마 완치가 안될거야" 죽을날만 기다려야지뭐
"딸들만 불쌍하지 " 쯧쯧"
나와 동행하시던 같은 병실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그래 나는 초기니까 불행중 다행이다' 란 생각이 든다
밤11시가 되어 겨우 잠을 자련는데 앞에있는 아주머니 "아~~~악"
"아이구 아이구 아~~~~악~~~"
항문을 배에 연결해 구멍을 내어 비닐로 쌓여있던 아주머니가 고통을 호소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옆에 아주머니 엎드려서 두손모아 "흑흑흑흐느끼며 기도를 하고 있다
나의 통증또한 장난아니었다. 보호자 침대에서 코곯고 자고 있는
남편이 얄미울정도였다. 다음날도 다음날도 밤마다 고통소리 기도하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여지었었다.
저녁 9시가 되자 방송에서 "306호실로 의사들 모이라는건지 무어라 하는데 내머리에 스쳐간것은 '혹시 그 말기 아줌마 죽은건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환자들 제각기 다 밖으로 나와 고개를 빼쭘 내보이는데 환자들에게 불안함 없애기 위해서인지 바리게이트쳐서 통행금지를 시켰다 ." 엉어어어엉엉 엄마" 대성통곡하는 딸들의 울음소리가
내 가슴을 뛰게 했다.겨우 소란이 잦아지자 다들 잠자리에 들려는데 나또한 통증이 심해지면서 죽은사람에 대한 애도의 눈물이 흘렀다 어제 그제까지만해도 나와 눈마주쳤던 사람이 오늘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영안실로 갔다는 사실 조차 소름끼쳤다.
다음날도 몇호실의 환자가 시체가 되고 또 다음날도 방송은 계속 댔다. 점점 불안감이 밀려오고 두려웠다. 겨우 잠들고 눈을 뜨면 얼른 나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우리집이려니 했는데 아직도 병실이다.
침울한 분위기에 삶과죽음을 넘나드는 창쌀없는 감옥,아니 지옥같았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가져야 하나 내가 뭐하는건가 "
차라리 고통없이 죽어버렸으면.......
20일이 지나니 빨리 낳고 싶단 생각보단 우울증만 생겼다.
잠이 않와 흐느끼는 소리에 복도로 나왔다
저쪽 구석에서 흑흑흑 흐느끼는 소리에 다가갔다.
나이27세에 난소암으로 이병원을 왔는데 검사해보니 자궁암까지 겹쳐 난소 자궁 다 드러낸 그 아가씨였다 ,아직 결혼도 않고 아이도 없는 새파란 이십대의 그 마음이 오죽 했으랴,
그래도 난 결혼도했고 애둘도 있으니 거기다 초기인데 우울증이라니. .... 내가 저 아가씨라면 정말 살기 싫을것이다.
당장에 고통보다 앞으로의 살날에 자신이 없어질것이다.
25일째 되는날 퇴원하고 림프선절재때문인지 다리는 퉁퉁 부어 절룩거리며 일주일 이상을 냉찜질에 맛사지에 신경좀 썼다.그러나 배의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뒹굴었다 ,암센타에 응급실로 급히갔다. 겨우 응급처치하고 살만하니 같은 병실에 있던 아주머니를 만났다. 재발해서 또 수술하러 왔다고.....
전에 내 침실옆에 있던 아주머니도 재수술이라 하던데.. 무섭다.
나도 재발하면 어쩌지? 그때는 남편과 애들에게 짐 않주고 조용히
사라져야겠다 생각을 하니 구슬같은 눈물이 또 다시 쏟아진다.
'그래 내가 힘내야해 내가 건강해야 애들이 행복하고 내가 건강해야 남편도 안심하고 일을 하며 집안이 잘 돌아가지'
그런지 벌써 삼년이 되간다.아직도 소화불량에 두통ㅇ에 여러 잔병은 있지만 재발없이 살아가고 있다.그러나 검사 결과 나오기전까진 바늘방석이다.
지금은 아무리 부대끼고 먹기싫어도 아침에도 밥한술 뜨며 줄넘기며 훌라후프며 걷기 운동 꾸준히 한다. 옛날같았음 불치병이던 암이 요즘엔 속출하고 있어서 병원마다 병실이 모자랄 지경이다.
"어디 아프세요? 살이 자꾸 빠지는 것 같네.
"어디 아프세요? 살이 자꾸 빠지는 것 같네.혈색도 않좋고...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하는 인사다
일명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들어는 보셨는지.....
않아픈곳이 없을 정도로 나사하나 빠진 기계마냥 고장난곳이 없을 정도로 내 몸은 쇠약해졌다. 하긴 해마다 수술을 했으니....
2000년도엔 난소종양 제거수술, 01년도엔 셋째 낙태수술,02년도엔 상피내암, 2003년도인 삼년전 추석 명절 자궁경부암 수술을 했다 어린 두 남매는 친정에 맡기고 남편이 나의 간병인이 되어주었다.금식을 하고 이틀동안 시티촬영에 엠알아이에 이것저것 검사하느라 실오라기 들수없을 만큼 기운이 빠졌다.드디어 수술하는날 침대에 눕혀 간호사들에 의해 실려가는 내 몸은 두려움에 떨었고 천장만이 나를 위로 해주는것 같았다.
어느샌가 의식을 잃고 겨우겨우 귓가에 무슨 소음들이 울려댔다.
엄마 목소리 ,동생들 목소리 , 남편 목소리. 뒤석여서 알아듣질 못했다. "엄마 엄마, 괜찮아 엄마 으앙~~~~"
딸애 목소리다 틀림없는 딸애 목소리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뜨니
앞이 희미해지면서 사람들의 현상이 흐릿흐릿하게 보인다. 어깨와 배가 땅긴다, 고개도 못돌리고 눈만 깜빡거리며 딸애를 위로시킨다
하루가 지나니 의식을 확실히 찾고 몸도 천천히 움직였다.
"장이 유착될수 있으니 병실 복도 한바퀴 돌으세요. 운동을 않하면 큰일 납니다."의사의 말에 허리는 구부정하게 겨우겨우 걸을 수있었다 진통억제하는 무통 기계 줄에 닝겔줄에 영양제 줄에 소변줄에 이것 저것해서 다석개정도의 호수들을 달고 닝겔 걸이를 지팡이 삼아
사부작사부작 운동아닌 운동을 했다.난소가 하나 기능상실 되어 제거하고 허리의 림프선 절제에 자궁은 완전히 드러내어 내뱃속은 수술로 인한 까스만이 꽉 차있었다.
복도를 돌면서 다른 병실속에 환자들을 보게 된다. 306호실이었다
괘심치레하고 몸은 가누지 못해 흔들거려 보조 식탁에 누워있는 한 아주머니, 계속 토해내고 성질만 내는데 스무살쯤 되보이는 아가씨둘이 간병을 하고있었다.
"저사람은 말기라 아마 완치가 안될거야" 죽을날만 기다려야지뭐
"딸들만 불쌍하지 " 쯧쯧"
나와 동행하시던 같은 병실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그래 나는 초기니까 불행중 다행이다' 란 생각이 든다
밤11시가 되어 겨우 잠을 자련는데 앞에있는 아주머니 "아~~~악"
"아이구 아이구 아~~~~악~~~"
항문을 배에 연결해 구멍을 내어 비닐로 쌓여있던 아주머니가 고통을 호소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옆에 아주머니 엎드려서 두손모아 "흑흑흑흐느끼며 기도를 하고 있다
나의 통증또한 장난아니었다. 보호자 침대에서 코곯고 자고 있는
남편이 얄미울정도였다. 다음날도 다음날도 밤마다 고통소리 기도하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여지었었다.
저녁 9시가 되자 방송에서 "306호실로 의사들 모이라는건지 무어라 하는데 내머리에 스쳐간것은 '혹시 그 말기 아줌마 죽은건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환자들 제각기 다 밖으로 나와 고개를 빼쭘 내보이는데 환자들에게 불안함 없애기 위해서인지 바리게이트쳐서 통행금지를 시켰다 ." 엉어어어엉엉 엄마" 대성통곡하는 딸들의 울음소리가
내 가슴을 뛰게 했다.겨우 소란이 잦아지자 다들 잠자리에 들려는데 나또한 통증이 심해지면서 죽은사람에 대한 애도의 눈물이 흘렀다 어제 그제까지만해도 나와 눈마주쳤던 사람이 오늘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영안실로 갔다는 사실 조차 소름끼쳤다.
다음날도 몇호실의 환자가 시체가 되고 또 다음날도 방송은 계속 댔다. 점점 불안감이 밀려오고 두려웠다. 겨우 잠들고 눈을 뜨면 얼른 나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우리집이려니 했는데 아직도 병실이다.
무섭다.개그맨 이주일씨도 이병원에서 폐암으로 죽었다는데 역시 연예인이든 뭐든간에 암말기는 극복할수 없는가보다.
침울한 분위기에 삶과죽음을 넘나드는 창쌀없는 감옥,아니 지옥같았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가져야 하나 내가 뭐하는건가 "
차라리 고통없이 죽어버렸으면.......
20일이 지나니 빨리 낳고 싶단 생각보단 우울증만 생겼다.
잠이 않와 흐느끼는 소리에 복도로 나왔다
저쪽 구석에서 흑흑흑 흐느끼는 소리에 다가갔다.
나이27세에 난소암으로 이병원을 왔는데 검사해보니 자궁암까지 겹쳐 난소 자궁 다 드러낸 그 아가씨였다 ,아직 결혼도 않고 아이도 없는 새파란 이십대의 그 마음이 오죽 했으랴,
그래도 난 결혼도했고 애둘도 있으니 거기다 초기인데 우울증이라니. .... 내가 저 아가씨라면 정말 살기 싫을것이다.
당장에 고통보다 앞으로의 살날에 자신이 없어질것이다.
25일째 되는날 퇴원하고 림프선절재때문인지 다리는 퉁퉁 부어 절룩거리며 일주일 이상을 냉찜질에 맛사지에 신경좀 썼다.그러나 배의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뒹굴었다 ,암센타에 응급실로 급히갔다. 겨우 응급처치하고 살만하니 같은 병실에 있던 아주머니를 만났다. 재발해서 또 수술하러 왔다고.....
전에 내 침실옆에 있던 아주머니도 재수술이라 하던데.. 무섭다.
나도 재발하면 어쩌지? 그때는 남편과 애들에게 짐 않주고 조용히
사라져야겠다 생각을 하니 구슬같은 눈물이 또 다시 쏟아진다.
'그래 내가 힘내야해 내가 건강해야 애들이 행복하고 내가 건강해야 남편도 안심하고 일을 하며 집안이 잘 돌아가지'
그런지 벌써 삼년이 되간다.아직도 소화불량에 두통ㅇ에 여러 잔병은 있지만 재발없이 살아가고 있다.그러나 검사 결과 나오기전까진 바늘방석이다.
지금은 아무리 부대끼고 먹기싫어도 아침에도 밥한술 뜨며 줄넘기며 훌라후프며 걷기 운동 꾸준히 한다. 옛날같았음 불치병이던 암이 요즘엔 속출하고 있어서 병원마다 병실이 모자랄 지경이다.
암이 않걸리기위해선 세가지를 꼭 지켜야한단다.
잘먹기, 운동하기, 편안한 마음 가지기 등
나는 다시 태어났다 생각하고 새 생활을 시작할것이다.
뜻대로 되진 않겟지만 소심한 나도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