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신혜령200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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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출처 : 네이버 블로그 u-편안한 세상


  예전에 3월 학기가 시작되던 날,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셨다. “너희 중에 몇 명이나 노동자가 될 것 같니?” 대답이 없자 다시 물으셨다. “누가 노동자가 되겠니?” 아이들은 주위를 흘끗흘끗 둘러봤다. 노동자라는 단어는 어쩌면 교사, 군인, 의사, 디자이너, 출판업자 같은 단어와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들 모두가 노동자가 된다. 나도 노동자고.”

이 말의 의미는 지나치게 확대할 필요 없이 간단명료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노동이라는 단어를 낯설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사회문화’ 교과서를 잡기 시작한 고등학생들이 막 배웠던 것이다. 노동, 그러니까 “일”을 해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그만큼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이며, 고용주와의 적절한 관계 설정에 대한 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에 와서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를 필두로 한 세계화 때문이다.

  최근 300만 명 이상의 젊은 프랑스 학생들과 청년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3월 11일에는 소르본대학이 농성장이 되면서 사실상 폐관 상태가 지속되기도 했다. 이 거대한 집회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바로 “CPE(le Contrat Premire Embauche, 최초고용계약)”였다.

 

  CPE는 프랑스 의회에서 통과되었던 ‘최초고용계약’이다. 보수적 성향의 집권세력인 빌팽 내각에서 추진했던 법안인데, 핵심 내용은 ‘기업주가 26살 미만의 청년을 고용한 뒤 처음 2년 동안에는 자유롭게 고용 해지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실업률은 22%로, 고용 창출이 절실히 필요했다.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주면, 그만큼 기업들이 청년들을 고용하려고 나설 것이라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법안이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젊은 층에서는 자신들의 해고를 기업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리를 쥐게 된다며 즉각 시위에 돌입했다. 결국 CPE는 대대적인 수정을 거치기로 했는데 그 내용은 당초와 판이하게 다르게 “최저생계를 잇기 힘든 저학력 노동층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으로 바뀌어, 사실상 애초의 CPE는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최초고용계약이라는 법안 자체의 의도는 실업을 해소하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노동자, 그러니까 피고용인들에게 사실상 권리의 제한을 가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용이 불안정해질 거라는 심리적 불안감을 확산시킨 것이 결국 철회되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노동 시장에서 각종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유연성을 확대하려고 하는 시도는 CPE가 아닌 다른 형태로도 얼마든지 새롭게 등장할 수 있다. 법으로 기업의 권리를 보장하려고 하는 움직임에 대해 프랑스는 강한 집단적 반발로 평등과 노동자 보호의 의지를 천명했지만, 신자유주의가 가져다 주는 경제적 이득의 총 합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충돌은 더욱 잦을 것으로 보인다. 분배와 안정은 우선순위상에서 계속 부차적인 위치에 놓일 수 있는 것일까? 자본보다 인간을 보호하려고 하는 목소리는 ‘사회의 균형’을 주장하는 집단운동으로 구체화된다. 그 어떤 제도와 법도 모두 사람의 삶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의 발전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출처 : 네이버 카페

 

  이름만 다를 뿐 프랑스의 CPE와 너무나 흡사한 우리나라 비정규직 법안은 지난 3월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민주노동당의 반대로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좌절됐다. 그러나 고용 유연화 정책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 시장정책인 비정규직 법안이 참여정부에 의해 강행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56%인 850만명이 비정규직인 나라. 그래서 대통령이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 나라다. 그런데 왜 사회 양극화를 몰고 올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인가? 겉으로는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지만 사실은 교육시장을 개방하고 한미 FTA 협상을 강행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비정규직 법안은 자본의 입장을 두둔하는 법으로 노동자들에게는 상시적인 고용불안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노동 기본권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에서도 장기불황에 대비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고용창출을 꾀한다는 미명하에 ‘파견법’을 제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규직을 파견노동자로 대체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주기적 해고로 노동의 불안정화를 가속화시키는 악법이 되고 말았다.

  비정규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어떻게 되는가? 비정규직 법안은 자본에게는 무한정의 자유를 주고, 저임금·비정규직의 노동자를 양산해 심각한 사회 양극화를 불러 오게 된다.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다.

  사회 양극화 현상은 실업률의 증가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비정규직 법안 뿐 아니라 한미 FTA 협상을 강행하고 교육시장을 개방하는 일련의 조치들은 대량실업과 교육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안다. 연 2000만원이 넘는 외국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자립형 사립고를 확대하면서 어떻게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비정규직의 문제는 결과적으로 가난을 대물림하는 현대판 골품제다. 전교조가 최근 실시한 비정규직에 대한 학생의식 조사에 따르면, 취업시 90% 가까운 학생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길 희망하고 있다. 정부가 진심으로 사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면 비정규직 법안부터 철폐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근원적인 대안과 무상교육 전면실시를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최초고용계약(CPE)이란 이름의 고용법 통과 반대를 외치는
프랑스 대학생 시위대, 20일 현재 시위대의 수는 오십 만에
이르고 있다. 만 26세 이하의 청년 노동자들에 대한 자유로운
해고를 보장하는 법안에 대해 반대 투쟁하는 시위대의 모습,


우리는 비정규직개악입법에 무얼 하는가.

오늘도 대학 캠퍼스는, 토익책 넘기는 소리로 가득 하다.


(사진:프로메테우스)

 

  우리나라 학생들...자기는 저렇게 될 거라고 생각 안 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다 되는 줄 아나보다. 노동자라 하면 공사장에서 일하고, 공장에서 일하는...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해도 쥐꼬리만한 월급 받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실업자가 넘쳐나는 이 험한 세상에 다 자신의 일이고, 자기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학교 졸업해서 자신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잊지 않으면 비정규직 법안이 나왔을 때 학생들이 가만히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