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의 양자의 아들인데, 황건난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어 마침내 헌제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을 휘두르게 되었다. 화북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는데, 건안 13년 손권, 유비의 연합군과 적벽에서 싸워 대패, 이후로 그 세력이 강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같은 해 승상, 동 18년 위공, 동 21년 위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정치상의 실권은 잡았으나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220년 정월 낙양에서 죽었다. 조조는 또한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신도 그 아들 조비, 조식과 함께 시부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의 흥륭을 가져오게 하였다. 후세에 조조는 간신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중국 사학계에서는 그의 재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일기도 하였다.
추가:솔직히 삼국지연의로 인한 간신의 이미지로 씌여왔었지만 유비의 덕(悳)을 뺀 모든것을 가진사람이 바로 조조라고 한다. 더군다나 조조가 사람을 마구 죽이도록하고 그런 이미지는 삼국지연의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볼수 있으나 진실은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유비못지 않게 국민을 아끼는 모습을 삼국지정사에서는 자주보여진다.
위의 국민들이 조조를 찬양할정도였다면 말할것없지 않은가?
게다가 흔히 알려진 손자병법에 주석을 달아서 편찬할정도로 뛰어난 지략을 갖고 있고 그 유명한 둔전제를 실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조건과 상관없이 널리 인재를 두루기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신분이나 이런 복잡한 상황탓에 시행하기가 어려웠었겠지만 강행하여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조조가 통치하던기간동안에 신하의 배반이나 국가내 반란등이 전혀없었다고 한다. 그에비해 촉국이나 오국같은 경우는 빈번했다고 한다. 단지 그가 뛰어남보다는 어쩌면 유비가 아닌 조조가 성군이라고 불려야 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사치를 즐기지도 않았을뿐더러, 유언으로 자신의 제사를 성대히 하지 말라고 했다고 까지 한다. 그리고 연의에서는 호색한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공처가였다고 하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있어서 흠집이 될만한 일을 절대 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현재는 조조맹덕에 대한 모든게 많이 폄하되어있지 않나 싶다. 혹여나 유비가 아닌 조조가 실제로 성군이었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하고 역사적으로도 재조명을 받아야 할 인물이 아닐까한다
조조 맹덕(曹操 孟德)
환관의 양자의 아들인데, 황건난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어 마침내 헌제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을 휘두르게 되었다. 화북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는데, 건안 13년 손권, 유비의 연합군과 적벽에서 싸워 대패, 이후로 그 세력이 강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같은 해 승상, 동 18년 위공, 동 21년 위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정치상의 실권은 잡았으나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220년 정월 낙양에서 죽었다. 조조는 또한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신도 그 아들 조비, 조식과 함께 시부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의 흥륭을 가져오게 하였다. 후세에 조조는 간신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중국 사학계에서는 그의 재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일기도 하였다.
추가:솔직히 삼국지연의로 인한 간신의 이미지로 씌여왔었지만 유비의 덕(悳)을 뺀 모든것을 가진사람이 바로 조조라고 한다. 더군다나 조조가 사람을 마구 죽이도록하고 그런 이미지는 삼국지연의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볼수 있으나 진실은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유비못지 않게 국민을 아끼는 모습을 삼국지정사에서는 자주보여진다.
위의 국민들이 조조를 찬양할정도였다면 말할것없지 않은가?
게다가 흔히 알려진 손자병법에 주석을 달아서 편찬할정도로 뛰어난 지략을 갖고 있고 그 유명한 둔전제를 실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조건과 상관없이 널리 인재를 두루기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신분이나 이런 복잡한 상황탓에 시행하기가 어려웠었겠지만 강행하여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조조가 통치하던기간동안에 신하의 배반이나 국가내 반란등이 전혀없었다고 한다. 그에비해 촉국이나 오국같은 경우는 빈번했다고 한다. 단지 그가 뛰어남보다는 어쩌면 유비가 아닌 조조가 성군이라고 불려야 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사치를 즐기지도 않았을뿐더러, 유언으로 자신의 제사를 성대히 하지 말라고 했다고 까지 한다. 그리고 연의에서는 호색한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공처가였다고 하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있어서 흠집이 될만한 일을 절대 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현재는 조조맹덕에 대한 모든게 많이 폄하되어있지 않나 싶다. 혹여나 유비가 아닌 조조가 실제로 성군이었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하고 역사적으로도 재조명을 받아야 할 인물이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