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밥(Bop) 137 8 1950년대의 재즈(Jazz in the 1950s) 167 9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196
재즈 역사가 중에는 모던 재즈의 시작을 1940년대로 보는 사람이 많다[초기 재즈-라고 할 때는 고전 시대를 가르킬 때가 종종 있다].
1940년대 이후에 생겨난 스타일 가운데 전 시대 스타일을 재생한 것을 제외한 것이 모던 재즈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최초의 모던 재즈 플레이어로서는 알토 색소폰의 찰리파커, 피아노의 셀로니어스 몽크, 트럼펫의 디지 길레스피 등이 있다. 그들은 트럼펫 주자 마일즈 데이비스,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을 비롯한 창조력 풍부한 많은 뮤지션을 동료로 끌어 들였다.
1940년대 후기에 파커와 길레스피는 빌리 엑스타인,클로드 손힐,우디 허맨 등의 빅 밴드에도 영향을 주었다. 모던 재즈는 재즈신(seen릿에 돌연 등장한 것은아니다, 스윙 시대 테너 색소폰의 레스터 영-돈바이어스, 피아노의 아트 테이텀-냇 킹 콜, 트럼펫의 로이 엘드리지, 기타의 찰리크리스찬,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리듬 섹션, 베이스의 지미 블랜튼, 기타 여러 사람들의 활동으로부터 서서히 발전해 왔다. 파커도, 길레스피도 그 음악 경력은 스윙 시대 스타일로 임프로비제이션을 연주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그음악을 넓히는 것과 함께 점점 새로운 테크닉을 도입했고 그 결과 그들의 연주가다른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스윙 시대 스타일과는 왜 거리가 있다고해도 모던 재즈는 역시 스윙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새로운 음악은 기본적으로 캄보 스타일로 연주되었는데, 그 이유를 젊은 즉흥 연주자가 스윙 시대의 빅 밴드의 연주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단순히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확실히 빅 밴드라는 것, 그리고 씌여진 악보를 사용한다는 것은 솔로를 위한 시간이 적어지고 솔로 주자와 반주자간의 자연스러운 음악적인 상호 작용을 억제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시대 에 있어서도 캄보와 빅 밴드의 양쪽이 존재하며 재즈 연주의 형식으로서 유용하다는 것도 확실하다.
사실 파커는 제이 맥 샨의 빅 밴드에 있었을 때 그의 혁신적인 임프로비제이션 스타일을 일보 전진시켰으며, 또 후에 마치토(Machito)의 라틴 아메리카 빅 밴드와 레코딩하거나 길레스피나 우디 허맨의 빅 밴드에도 참가했다,
길레스피는 캡 캘로웨이의 빅 밴드에서 연주하고 있었고, 더우기 1940년대의 얼 하인즈와 빌리 엑스타인의 각 밴드에서 파커와 길레스피가 함께 연주할 때도 있었다. 만약 모던 재즈가 빅 밴드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모던 재즈의 선두적인 뮤지션이 빅 밴드에 참가하거나, 혹은 길레스피,태드 존스-클락 테리 -마일즈 데이비스 길 에반스 제리 멀리간 등과 같이 자신의 밴드를 이끌어 가는 것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다,
스윙 시대에 어느 정도 번영을 이루었던 빅 밴드가 모던 재즈 시대에 들어와 적어지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빅 밴드에 의문을갖고 있던 뮤지션이 있었다는 점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데, 그것만이 원인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결국 캄보는 파플러 음악에 있어서 스탠더드한밴드 형식이 되었으며 재즈만이 커다란 앙상블 형식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다.
모던 재즈의 즉흥 연주자들은 동시대의 클래식 음악가에게서 영감을 받았다.1920년대의 빅스 바이더벡은 클로드 드뷔시나 모리스 라벨의 영향을 받았었다
1940년대에는 수많은 뮤지션이 벨라 바르토크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음악을 좋아하여 듣고 수용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찰스아이브스(Charles Ives),그리고 폴랜드 작곡가 크르지스토프 펜데레츠키 -Penderecla )등의 영향이 일부 스타일에 보여진다.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한다고 해서 옛날 스타일이 완전히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재즈의 역사는 아직남아 있고 그 역사상의 각 단계에서 여러 가지 다른 스타일이 공존하고 있다. 사실20세기의 마지막에 와 있는 오늘, 딕시랜드 재즈의 4대째 플레이어가 현재 활약하고 있다.
7 밥(Bop)
1940년대 초기 - 50년대 중기
---버드는 젊은 세대의 뮤지션간에 존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비평가들의 맹공격과 싸워야 했다. 비평가들은 재즈의 새로운 발전이 시작되면 반드시 다 그렇다고 해도 좋을 만큼 거기에 대해 적의를 품었던 것이다. 재즈계의 내부에서는 화제의 중심이었지만 아직 일반 대중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 PThe EneYcloped a of Jazzd, Leonard G.Feather-
-밥(Bop)스타일 뮤지션
Diny Gillespie Fats Nsvam, Howard McGhe8 Miles Devio Kenny Domsm Red Rodney Benny srris SonnyBennan Freddie Websta- Conte Csndoli Clerk Teny Idreesuliemen Benny Bailey
Trol bc
J.J.Jo RPon Kai린linding Bennie Green Frank Ro 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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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 Peniford Ray Brown Tommy Poner Cu y Rusoefl Nelson Boyd Al McKibbon Gene Remay Red Cal endBt Teddy I(otide Chubby Jackrron Eddie Safranr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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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d rll Gray Alien Eager Her ie Steward Brew Moors Gene Ammons Sonny Stitt Flip Phillips James Moody Chart Verrtura Zoot Sims Al Cohn Emie Itenry Leo Parker Sonny Criss 글erge Chalaff Don Lamphera Cha린is Rouse Sonny Rdlins Phil Urso Boots Muss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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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v Ganison Tar Far(ow Bill DeAran Jimmy Raney Johnny Collins Barry GJbraith Chuck Wayna Bam Kessel Billy Bauer Johnny Smith
ii fuller George Russell Neal Hehi Diny Gilleepie Cherlie Paticer Thelonious Onk Tadd Dameron John Lewis Shorty Rogers Ralph Bums Gil Evens Gerry Mu ligan
레스터 영-콜맨 호킨스-테디 윌슨,찰리 크리스찬,아트테이텀 로이 엘드리지 등 스윙 시대에 있어서 가장 선구적인 플레이어는 1940년대 초기에 나탄 '밥 또는 '비밥 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재즈 스타일에 커다란 영향을주었다, 밥 또는 비밥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불확실하지만 아마도 재즈 뮤지션이재즈의 프레이즈를 노래할 때 쓰였던 의미 없는 말의 표현에서 온 것은 아닐까. 그들은 '라라라' 혹은 '다다다'라고 노래하는 대신에 '드위 리 두 비 밥울라쿠'라거나 그것과 비슷한 반복의 노래를 했다. 또 길레스피가 (Bebop)이라는 곡을 쌨는데 그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밥 스타일은 알토 색소폰의 찰리 파커, 피아노의 셀로니어스 몽크, 트럼펫의 디지 길레스피의 연주에서 처음 나타났다. 그들의 연주는 각기 자유로운 발전을 보였지만 서로 자극하며 잘 조화되었다. 파커 ,길레스피 ,몽크는 함께 연주하는 가운데 매우 복잡한, 그러나 세련된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임프로비제이션은대개 8분 음표나 16분 음표로 구성되고 그 연주는 자유롭게 뛰어 다니는 듯한 풍부 한 전개를 보여 주었다. 멜로디 라인의 흐름은 매끄럽지는 않았으며 음의 구성이돌연 변화할 때에는 큰 인터벌이 생기는 때도 종종 있었다. 이 멜로디 라인에 따르는 리듬은 그때까지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어떤 음악에서도 찾지 못할 정도로 많은싱커페이션이 사용되었고 템포는 빠르고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대부분 멜로디에서 벗어나 오직 코드 진행만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종종 새로운 코드를 부가하여 코드의 진행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스윙 플레이어와 초기 재즈 플레이어는 12소절 블루스에 대하여 5--10혹은 그것보다도 적은 코드밖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밥 플레이어가 되면 10--M)정도의 코드 체인지를 하게 된다.
아트 테이텀은 멜로디에 대한 리하모니제이션(reharmon2zatto짓과 기존의 코드에 새로운 코드를 더해 주는 것을 이미 하고 있었다. 레스터 영과 콜맨 호킨스는실제로 잘 사용하는 코드 체인지에 정통했다. 그들과 테이텀은 파커와 길레스피의'멜로디의 복잡화'와 '새로운 코드의 부가'를 위한 사전 준비를 했던 것이다. 코드의 부가는 종종 '대용(rubstit tlon) '으로 불리웠는데 이것은 싱글 코드나 보통의 코드 시권스의 자리에 새로운 코드가 대용되었기 때문이다, 밥 라인에는 원래 곡에는 없는 코드를 갖는 것이 있었는데, 이들 코드는 충격적인 효과를 내기 위하여때로는 의도적으로 원곡의 하모니에 대립하도록 연주되었다. 코드 체인지의 다른경우로는 즉흥 연주의 멜로디의 흐름에 의해 암시되는 새로운 하모니의 전개에 맞추어 리듬 섹션이 즉시 코드 체인지하여 진행을 변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밥의 리듬 섹션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매우 예민하게 임기 응변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밥 플레이어는 새로운 코드를 부가하거나 바꾸어 놓는 것만 아니라 원래 코드그 자체에도 변화를 가했다. 예를 들면 5도 음을 반음 내리는 식은 밥에서 잘 사용된다. 3도나 7도 음을 반음 내리는 것은 초기 재즈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 5도 음을 반음 내리는 것도 재즈의 특징이 되어 갔다. 밥 플레이어는 이 세가지를 모던재즈다운 맛을 내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음조로서 사용했다. 밥 뮤지션은 복잡한 코드 진행에 따라 임프로비제이션하기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새로운 오리지널 코드 진행을 종종 만들었다,
디지 길레스피의 (Con Alma)가 그 한 예인데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은 (Cherokee), 021l◎e Things You Ar쓸 등 파플러 송의 코드 진행에 따라 임프로비제이션을 했다 찰리 파커는 그의 곡 (Ko-K꼬를(Cheroke끄의 코드 진행을 사용해 썼다(결국 (Ko-K꼬에서의 즉흥 연주가(Cherokee)에서의 임프로비제이션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곡은 이름도 붙이지 않고 연주될 때가 많았으며, 이런 식으로 리듬 섹션의 멤버는 이전에 전혀 들어 본적이 없는 곡도 곧 연주할 수 있었다.이 테크닉은 스윙과 초기 재즈에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으며 12소절 블루스 진행은 그와 같은 목적에서 쓰여져 왔다.
조지 거슈윈의 (I Got Rhythm)의 코드 진행은 뮤지션들에게 매우 잘 사용되어 그 코드 체인지는 단지 '리듬 체인지'라고 부르기도 했다-IGot만lythm chord change쏘가 사용될 때는 (I Got만lythm changes),(rhythm changes),혹은 단순히 (rhyth$이라고 써서 나타냈다). (Indiana), (WhatIs This Thing Called Love), (Whispenn◎, (How High◎eMoon)등의 팝은 제각기 밥 곡인 (Donna Lee), (보ot House), (Groovin' High), (Omithology)가 되었다.
모던 재즈 플레이어는 그 이전의 즉흥 연주자와 같이 반복이 되는 곳이나 혹은 그전에서 프레이즈를 자르는 것은 중단했다. 밥 플레이어는 레스터 영의 연주에 힌트를 얻어 전통적인 틀을 깨고 8소절 섹션 중간부터 프레이즈를 시작했다(블루스에서는 12소절). 그들은 더욱 일보 전진하여 곡의 기초가 되는 코드 진행에 의한속박을 점점 줄여가 발전된 임프로비제이션을 전개했다.
파플러(Popular)의 매력
밥은 스윙이 이전에 그랬던 만큼 대중적이지 못했다. 1955년 찰리 파커가 세상을떠났을 때 베니 굿맨같이 그는 유명하지 않았다. 베니 굿맨의 이름은 일반에 잘 알려져 있었고, 분별이 있는 사람들은 스윙에 비교해 밥이 인기가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밥은 주로 캄보 음악으로, 일반 감상자가 즉흥 연주의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하는 멜로디 라인보다도 단순하게 되풀이되어 가는 빅 밴드의 앙상블 쪽이 훨씬 친근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재연이 가능한 것이나 악보에 쓰여진 편곡에 따른 연주는 감상자의 부담을 가볍게 한다. 감상자는방송이나 레코드에서 들은 적이 있는 연주를 라이브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러한연주는 매회 새롭게 즉흥 연주되는 연주보다도 인상 깊고 또 친해지기 쉽다. 캄보재즈에서는 씌여진 편곡에서 완전히 벗어나 임프로비제이션이 전개되었다. 이와같이 매회 다르게 연주되는 음악은 감상자에 있어서는 난해한 것으로 그 결과 인기가 없어지게 된다.
밥이 인기가 없음을 설명하는 다른 이유로는 가수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예전부터 가수는 악기 주자보다도 인기가 있었으며, 더우기 사람들은 서정성이 강한 것을 좋아한다. 밥 시대는 빌리 엑스타인과 사라 본 같은 위대한 가수를 탄생시켰으나 스윙 시대에 비하면 훨씬 가수가 적었다. '스윔은 춤출 수 있지만 밥에서는 춤출 수 없다'는 것도 밥이 인기가 없는 하나의 이유가 되는 것 같다(물론 예외는 있 다). 임프로비제이션의 멜로디와 본래 곡과의 관계를 알아내기 어렵다는 것도 영향을 주는 요인일 것이다. 감상자는 꽤 당황하며 대다수 감상자에 있어서 재즈의임프로비제이션은 어려운 문제로, 즐기는 데까지는 도저히 가지 못하게 된다. 밥이 보다 복잡하고 보다 수준 높은 것을 추구해도 이미 임프로비제이션 라인을 따라 가지 못하는 감상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밥의 출현에 따라 재즈의 발전은 파플러 음악이라기보다도 실내악적으로 되어갔다. 재즈 연주가 고도로 엄밀한 것을 요구함에 따라 보다 '예술적'인 음악이 되었고 대중적인 매력은 엷어져 갔다, 재즈는 아메리카의 파플러 음악의 흐름에서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밥 스타일이 난해하고 파플러한 매력이 적어졌다고해도 전연 팬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음악적인 구성이나 역사적인 중요성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해도 실제 사운드 그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팬 중에는 전문 음악가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각각의 즉흥 연주자가하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필자는 감상자가 모든 스타일의 재즈를 즐길 때 어떤 음악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풍부한 지식이 있으면 음악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기는 하지만. ). 결국 재즈는 모던재즈 시대에 그 인기가 적어져 1970년대에 재즈 록이나 퓨전으로 새로운 팬을 얻을때까지 인기를 되찾지 못했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 1920--1955)
밥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는 콜맨 호킨스와 레스터 영 등 위대한 선배의 음악을 흡수하여 우아하게 스윙하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파커가 영과 호킨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가능하면 여러 가지 연주를비교해 들어 보자, 예를 들면 1940년 제이 맥 샨의 리더 앨범에서 (Lady Be Good)을 불고 있는 파커와, 같은 곡을 1936년 카운트 베이시의 리더 앨범에서 연주하고있는 레스터 영을 비교해 들으면 영의 파커에 대한 영향을 알 수 있고, 또 역시1940년 제이 맥 샨의 리더 앨범에서 (Body and Soul)을 부는 파커와 1937년의 콜맨호킨스의 연주를 비교하면 이것도 또한 과연 그렇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1930년대 캔자스 시티 재즈의 중심적인 인물인 알토 색소폰 주자 버스터 스미스(Buster Smith)도 초기의 파커에 중대한 영향을 루었다).
버드(Bird,찰리 파커의 애칭)는 그의 혁신적인 시도를 확실한 알토 색소폰 솔로로 구체화했다. 그의 연주는 스윙 시대 알토의 거장 쟈니 호지스나 베니 카터와는확실히 달랐다. 호지스나 카터는 깊이 있는 톤으로 세밀한 비브라토를 사용했지만 버드는 건조한 톤으로 느린 비브라토로 연주했다. 버드의 임프로비제이션은 실로많은 음악에 영감을 주었다.
그는 레스터 영의 솔로, 전통적인 멜로디(예를 들면 Reuben, Reuben, I've Been Thinking), On a Coun GardenS등-오페라[ 111(Georges BiZet)의 arme 은 파커와 길레스피가 좋아했다3, 20세기 클래식 음악(예를 들면 스트라빈스키의 etrouchkaa ),그리고 미국 흑인 음악(블루스 가수나초기 재즈의 관악기 주자)의 수많은 전통적인 멜로디의 단편들을 인용하여 즉흥적으로 교묘하게 구성했다.
버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 넘치는 연주를 전개했으며 머리에 떠오르는 임프로비제이션을 즉각 음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I Remember You), (TheSong Is YoU>, (April in Paris), O\utumn m New York)등 팝곡 연주에서는 따뜻함과 자신 넘치는 풍부한 표현으로 곡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다. 버드는 창조성이 풍부한 뛰어난 즉흥 연주자였으며 그의 솟아나오는 아이디어는 밑이 없는 샘과 같았다. 버드의 수준 높은 테크닉과 창조력은 그를 재즈사상 가장 조화를 이룬 즉흥 연주자로 만들었다.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캄보를 이끈 후, 파커는 밥의 최고 플레이어(트럼펫 주자 마일즈 데이비스-레드 로드니(Red Rodney)-패츠 나바로-하워드매기 , 케니 도햄(Kenny Dorham),피아니스트 알 헤이그, 드러머 맥스 로치, 기타뮤지션들) 몇 사람과 자기의 그룹을 이끌었다. 파커의 연주는 자기 캄보뿐 아니라디지 길레스피의 빅 밴드, 우디 허맨 빅 밴드, 마치토의 라틴 밴드, 노만 그랜츠(Norman Granz)가 이끈 올스타 잼 세션, 그리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오보에,리듬 섹션에 의한 그룹에서도 들을 수 있으며, 각각의 레코딩은 마치 파커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들린다('The Savoy RecoldingsJ, 'Charlie Parker On Dial Vol. 1-6J, rNow'sThe Time_l).
버드는 신선하고 매력있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조화를 이룬 논리적인 멜로디를교묘하게 구성했다. 그것들은 팝의 감각에서 보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재즈로서는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다. 파커의 프레이즈는 임프로바이즈된 것과 악보에씌여진 것 모두 재즈 뮤지션에 의해 모방되고 분석되었다. 알토 색소폰 주자뿐만아니라 모든 악기 연주자가 버드의 주법을 공부했다. 아마도 버드는 다른 어떤 밥 뮤지션보다도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파커 작품의 대부분은 12소절의 블루스로 만들어져 있다((Billie's Bounce), (Cheryl),(Barbados), (Au Privave),(sloomdido), (Bird Feathers), (Now's◎e Time), (Air Conditionin◎ 등). 파커의곡 중에는 오리지널 코드 진행을 갖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팝의 코드 진행에기본을 두고 만들어졌다. 그러한 작품 중에 (Confirmation)(Billie'sBounce),(Now's theT=쓱 등의 곡은 재즈의 스탠더드가 되었다.
버드는 필 우즈(Phil Woods),찰리 마리아노(Charlie Mariano)-사히브 시하브(sahib Shihab),어니 헨리(Erme Henry)-소니 크리스(Sonny Criss)-찰리 맥퍼슨(Charlie McPherson ),프랭크 스트로저(Frank Strozier)-지미 히스(Jimmyeath), 루 도날드슨(Leu Donaldson), 데비 쉴드크로트(Davey Schildkraut)-소니스티트,제임스 무디(James Moody),재키 맥린(Jackie McLean)-캐논볼 애덜리(CannonballAdderley),에릭 돌피(Eric Dolphy)등셀수없을정도로많은알토색소폰 주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밥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도 자기 스타일의 중요한 영향을 파커로부터 받았으며, 밥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은 버드의수법을 모텔로 했다. 1960년대를 리드했던 색소폰(테너와 소프라노) 주자 존 콜트레인도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하기까지는 버드 스타일로 알토 색소폰을 연주했다고한다. 파커의 곡이나 때때로 그가 사용하기 좋아했던 프레이즈는 1960년대의 혁신적인 두 사람의 색소폰 주자 오네트 콜맨과 앨버트 아일러의 초기 레코딩에서 볼수 있다.
재즈에 있어서 파커의 영향력은 실로 광범위해서 심지어는 재즈 클럽에까지 그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뉴욕에는 '버드랜드껸irdlan신'라는 클럽이, 또 시카고에는 '버드 하우스(irdhouse) '라는 곳이 있다. 밥 가수인 에디 제퍼슨은 곡의 멜로디와 버드의 임프로비제이션 양쪽에 가사를 붙여 (Billie's Boune쓱와 (Parker'sMood>를 노래했다(파커의 가사가 붙은 작품을 들으면 파커의 멜로디에 대한 능력을 잘알수 있다). 1970년대에 베이스주자버디 클락(Buddy Clark)이 중심이 되어 리듬 섹션과 5대의 색소폰으로 이루어진 '슈퍼색스(Supersax) 라는 그룹을 만들었는데 이 '슈퍼색스'는 파커의 임프로비제이션에 하모니를 만든 편곡으로 연주했다('SupersaXPlay Binl ).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 ze 1917-
루이 암스트롱은 1920년대 후기부터 30년대 초기에 걸친 최고의 트럼펫 주자였다. 30년대 후기에는 로이 엘드리지라는 명트럼펫 주자가 활약했다. 그리고 1940년대에는 디지 길레스피가 고음역의 연주나 악기의 전반적인 테크닉과 혁신적인 멜로디 개념으로 그의 시대를 만들었으며, 그 후의 시대에 있어서도 그의 스타일은잘 조화되었다. 다른 많은 뮤지션에 영향을 주었던 그의 스타일은 색소폰 스타일의 음의 라인과 로이 엘드리지의 어프로치를 흡수하였다. 그의 '리듬감'은 독특했고 복잡했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활력 있는 사운드를 만드는 싱커페이션을 사용했다((shaw NufD).
디지의 프레이즈는 쾌활하고 항상 신선한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하모니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서 그 자신도 그것을 자기의 커다란 특징으로 삼았다. 게다가 디지는 하나의 프레이즈에서 키를 바꾸어 불안정한 효과를 내는 연주를 하였다. 그는 종종 프레이즈의 한가운데에서뜻밖에 고음역건igh-registe놋을 강조하여 불었으며, 멜로딕한 아이디어를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다. 디지가 부는 즉흥 연주에는 많은 음이 연이어 있어서 업 템포로연주될 때도 그 음의 라인에는 확실한 의미가 있었다.
디지는 재즈 이외의 곡에서 인용한 프레이즈를 즐겨 사용했는데 비제의 Carme 은 파커와 마찬가지로 그의 마음에 드는 곡 중 하나였다, 그는 해리 '스위트' 에디슨과 같이 여러 가지 리듬 패턴을 바꾸어 하나의 곡을 가지 각색으로 표현했으며, 또 다른 인상을 주기 위해 로이 엘드리지처럼 음의 강도나 톤의 변화를이용했다. 그는 뛰어난 테크닉과 독특하고 풍부한 창조성에 그의 넘쳐나오는 에너 지를 쏟아부었다. 이러한 그의 개성이 흡족하게 발휘되었던 걸작의 하나로서 1945년의 O Cant Get Started)의 솔로를 들 수 있다,
디지의 프레이즈는 두 세대에 걸쳐 재즈 트럼펫 주자의 '관용구'가 되었으며,이 프레이즈는 피아니스트, 기타리스트, 색소폰 주자, 트롬본 주자의 연주 등에서도 들을 수 있다. 1940년대에는 하워드 매기 , 레드 로드니 베니 해리스(BennyHams ),콘트 캔돌리(Conte Candoli)-케니 도햄 -패츠 나바로-마일즈 데이비스,태드존스,클락 테리 등수많은트럼펫 주자가그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플레이어들과 비교하여 연령적으로는 그다지 차이가 없어도 디지는 동세대의 사람이라기보다 대선배 같은 느낌이었다. 1970년대에도 트럼핏 주자 존 패디스(JonFaddis)등은 1940년대에 디지가 레코딩했던 것을 종종 인용하였다. 디지는 작곡자로서도 모던 재즈에 커다란 공헌을 했는데 그의 대표작으로서 (Birks Works),(Emanon) ,(Groovin' High), (Bluen' Boogie), (Salt Peanuts), (WoodynYou>, (ConAlma), (A Night in TuIllsla)등을들수있다. 특히 (Con Alma), (Groovm' H:gh),그리고 (A Night in Tunis◎는 모던 재즈의 스탠더드 넘버가 되었다.
찰리 파커와 함께 캄보를 이끌고 또 자기의 캄보를 몇 개 이끈 후에 디지는 모던빅 밴드를 만들었다. 이 밴드를 위해 그 자신도 편곡이나 작곡을 했지만 길 풀러(Gil Fuller)-태드 다메론(Tadd Dameron),존 루이스 등과 같은 뛰어난 작, 편곡자에게 의뢰했다((Thmgs to Come)). 길레스피의 곡에서 특히 흥미를 끄는 아프로쿠반견fro-Cuban musi릿 작품으로는 빅 밴드 넘버인 (Manteca)r그리고 두 곡의콤비네이션인 (Cubano Be), (Cubano Bop)등이 있다. 콩가 드러머인 차노 포조(Chano PotO)를 기용하여 만든 이들 곡은 모던 재즈에 아프로 쿠반 프레이즈를 도입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디지는 1940년대 후반을 통해 이 밴드를 유지하고 50년대중반에 미합중국 국무성 파견에 의한 해외 연주 여행을 하기 위해 다른 밴드를 구성했다. 그의 캄보와 빅 밴드에는 강력한 멤버가 많았으며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그룹을 병행하여 이끌고 있어 어느 쪽으로든지 활약을 계속하고 있었다. 디지는국무성 투어 후에도 때때로 빅 밴드를 이끌었지만 보통은 캄보 편성의 연주를 하였다. 그는 1947년 이후에 그의 트럼펫 스타일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았고 1980년대 에도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는 플레이어이다.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1917--1982)
밥에 있어서는 역시 임프로비제이션이 중심이 되었지만 작곡면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사람도 있다.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셀로니어스 몽크는 밥 레퍼터리로많은 우수한 작품을 쌨다. 그는 독창적인 멜로디와 어려운 코드 체인지의 곡을 냈으며, 또한 불규칙하게 악센트를 붙이는 데 특징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거의예상하지 못하는 음으로 엔딩의 프레이즈를 만들었지만 그 자신은 당연한 것처럼하고 있었으며, 이와 같은 예로서 (Off Minor)가 있다. 그는 독창적인 효과를 내기위해 작곡시에 간단한 고안을 해냈는데 (Straight, No Chaser)에서 그는 하나의 프레이즈를 반복하여 치며 그 때마다 다르게 타임을 잡았다. 이 연주는 기본적으로는 한 프레이즈에 대한 일련의 리듬 바리에이션(rhythmic variatlo짓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Str ht, No Chaser)는 12소절 블루스 진행에 기본을 두고 독창적으로 고안된 작품으로, 그 코드의 연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릉했다.
그의 (Miste-= 또한 단순하고 분명한 걸작으로, 끝이 없는 듯한 8분 음표가 연속된 12소절의 반복 구성이다. 일관성도 없고 또 쉬지도 않고 오직 끊이지 않는 8분 음표의 흐름인 것이다. 이러한 8분 음표는 밥 형식으로 구성되지 않고, 쉬지 않으며 일정하게 단계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듯 서서히 움직여갔다.
몽크 작품의 대부분은 32소절의 A-A-B-A형식으로 씌여 있다. (Epistrophy)나 -Round MidnIght)는 그 예로 (Epistrophy)는 몽크적인 단순함을 갖는 완전한 오리지널 곡이며, ('Round Mid ht)는 밥 시대에 자주 연주된 발라드의 대표곡이다. 필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멜로디를 갖는 이 곡도 형식에 따르지 않는 변칙적인 부분이 있다. 몇 개의 소절에서는 네 개의 다른 코든가 사용되었고 곡이 코드 진행의첫 비트에서 시작되고 있다. 작곡자로서의 몽크는 재즈 역사상 중요한 존재로(s ht, NOChaser), (Well, You Needn't), ('Round Midnig◎) 등은 재즈의 스탠더드가 되었다. 밥 피아니스트인 버드 파웰은 'Po옳It of Thelolllous_l라는 앨범을 레코딩했고, 소프라노 색소폰 주자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의 레퍼터리는 몽크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몽크는 실로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데 그의 스트라이드 피아노 테크닉은 패츠 월러를 연상시키며, 관악기 같은 음의 라인은 얼 하인즈의 연주와 비슷하고, 보이싱에 있어서는 엘링튼과 흡사하다. 몽크와 엘링튼의 스타일에는두 사람 모두 강렬한 피아노 터치로 연주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몽크의 경우는 키를 친 후 잠깐 말 없이 생각하고 끝까지 생각한 이후 다음 음을 울렸다. 또 몽크는 낮은 음역을 쓰기 좋아했다. 몽크가 치는 멜로디 라인에는 마치 장난하고있는 것처럼 꿈틀꿈틀한 것이 있어서, 예를 들면 돌연 ' hole tone scale'을 삽입하곤 했다.
몽크는 베이시처럼, 혹은 한 때의 엘링튼같이 극단적으로 음을 절약했으며 침묵을 그의 임프로비제이션에서 특히 중요시했다. 몽크는 음의 선택에 있어서 몹시신중했지만 선택된 음에는 매우 계산된 여운이 있었다. 몽크는 테디 윌슨이나 냇킹 콜과 같은 릴랙스한 스윙감은 없었다. 그는 전혀 스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사람도 있지만 그의 그룹은 스윙 베이스 주자와 드러머를 거느리고 스윙하는 연주도 들려준다.
몽크는 항상 '음과 코드의 선택을 생각하는 작곡가'로서 연주하고있었다. 그의 리듬 감각은 스윙적이지 않았으나 어프로치는 실로 강렬하고 충격적이었는데 그는 문을 노크하듯이 연속적으로 몇 번이나 음과 코드를 쳤다((CnssCross>, (EvIdence), (I Should Care)). 몽크는 모던 재즈의 작곡과 임프로비제이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스타일은 피아니스트인 랜디 웨스튼(Randy Weston),허비 니콜스(Herbie Nichols),세실 테일러 ,말 왈드론(Mar Wal◎on),버드 파쇨-안소니 데이비스(Anthony Davis)-칼 베르거(Karl Berger)-칙 코리아-앤드류 힐(Andrew Hill)-미샤 멘겔베르그(Misja Mengelbelg)-달라 브랜드(Dollar Brand)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몽크는 파커나 길레스피와 레코딩하는 일도 드물었으며 언제나 자기의 그룹을이끌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났던 것은 1959년부터 1970년까지 테너 색소폰 주자인 찰리 라우즈와 함께 이끌던 쿼텟이었다. 그들은 콜롬비아와 그외 몇 개의 레코드 회사에서 훌릉한 레코드를 만들었다. 라우즈는 밥 테너 스타일에 뿌리를 두었지만 때때로 마치 몽크가 색소폰을 부는 것처럼 연주했다. 밥의 8분 음표의 긴 멜로디 대신 라우즈는 종종 몽크와 같은 어프로치를 사용했으며 몽크와 마찬가지로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었다. 그는 곧잘 몽크의 특색인 음을 때리는 듯한 강렬한 스타카토를 사용했는데 스타일은 어둡고 건조하고 무뚝뚝하여 청중에게 호감을주지는 못했다. 몽크는 꽤 오랜 시간 콤핑을 하지 않고 침묵한 때가 곧잘 있었다. 그러한 때 라우즈는 베이스와 드럼만을 뒤에 두고 애드립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솔로는 완전히 독창적인 것이어서 모던 피아니스트와 같은 매끄러움은없었다. 몽크의 콤핑은 드럼의 스넨어와 같았다. 몽크와 라우즈, 그리고 베이스와드럼으로 구성된 이 쿼텟은 다른 모던 재즈 그룹에는 없는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밥 트럼펫 주자(Bop Trumpeter)
디지 길레스피는 밥 시대 초기를 리드하는 트럼펫 주자였다, 그리고 1940년대 후기가 되면 마일즈 데이비스가 등장한다. 1950년대 초기, 패츠 나바로는 클리포드브라운에 영향을 주었으며 50년대에 가장 많은 플레이러에 모방된 트럼펫 주자이다.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가 밴드를 해산한 후 마일즈 데이비스가 파커의 새로운 트럼펫 주자가 되었다.
마일즈와 파커는 1945년부터 194 년까지 레코딩을 함께 했지만 그 후는 때때로 함께 하는 정도로 변해 갔다. 사보이에서의 레코덩까지 합치면 그들의 레코딩은 100회 이상이 된다. 이들 녹음에서 마일즈에게는 길레스피와 파커의 양쪽 영향이 엿보이나 길레스피와 같이 고음역은 그다지 사용하지 않고 가볍고 부드럽게 불었다. 이러한 마일즈의 스타일은다른 플레이어에도 영향을 주었으나, 프레디 웰스터(Freddie Webster)나 클락 테리는 파커 세션에서 듣는 마일즈처럼 연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마일즈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1945년 당시에 있어 마일즈는 독창적인 재능을 받은 임프로바이저이다. 파커 캄보에서의 연주나 쇼티 로저스(ShortyRogers), 쳇 베이커(Chet Baker)잭 실든(Jack Sheldon)등에 주었던 영향을 보아도 이것은 확실하다.
패츠 나바로(Fats Navarro 1923--1950)
-길레스피와 쌍벽을 이루는 트럼펫 주자는 패츠 나바로이다. 그는 길레스피와 마찬가지로 테크닉이 뛰어났고 높은음역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스피드감이 넘치는 플레이를 했으며, 길레스피보다도더욱 풍부한 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길레스피와 같은 모험적인 쾌활한 면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바로의 연주 스타일에 길레스피가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나바로 자신은 길레스피를 라이벌로 생각하였다(1948년 레코딩한 태드 다메론의 (Lady Bird)에서 나바로의 연주를 들어 보자),
밥 리듬 섹션(Bop Rhythm Section)
리듬 섹션의 연주는 솔로 연주 정도의 진전은 없었다, 길레스피와 파커에 의해1947년 초기에 레코딩된 몇 곡에서는 멜로디와 임프로비제이션은 독창적인 밥 스타일이지만, 리듬 섹션은 스윙 시대의 스타일로 연주하고 있다. 길레스피의 리듬섹션의 몇 사람은 스윙 스타일의 플레이어로 루이 암스트롱-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와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사이드맨보다도 훨씬 앞서 있었다. 모던 재즈의초기 레코드에서 모던 재즈 스타일의 리듬 섹션을 찾는 것은 어렵다.
스튜디오 세션 레코드보다도 나이트 클럽에서의 레코딩이나 라디오 방송을 위한 연주 쪽이 밥스타일의 리듬 섹션이었다. 맥스 로치 -케니 클락(Kenny Clarke)-조 해리스(JoeHams)등의 드러머는 레코딩 스튜디오에서는 종래대로의 스타일로 연주했지만 나이트 클럽의 활동 등은 보다 실험적이고 모험적이었다. 피아니스트인 알 헤이그와도도 마마로사, 그리고 조 알바니(Joe Albany)등은 라이브 연주에서도, 레코딩에서도 모던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 1922--1960)-
라이브 연주와 레코딩의어느 쪽에 있어서도 베이스 연주를 분간해 듣는 것은 힘들다. 오스카 페티포드는1940년대에 듀크 엘링튼과 레코딩을 했던 밥 베이스 주자였다. 그때의 전체 연주는밥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녹음 상태가 좋아 베이스 연주가 분명하게 들린다. 엘링튼의 베이스 주자 지미 블랜튼은 페티포드를 포함한 많은 밥 베이스 주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밥 베이스 주자 중 많은 사람이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월터 페이지의스윔 스타일을 기본으로 연주했지만 동시에 블랜튼 테크닉의 몇 가지도 배우려고했다, 그중 몇 명은블랜튼의 톤과 경쾌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블랜튼사후 20년, 그의 스타일은 모던 재즈 베이스의 스탠더드 플레이의 하나가 되었다.
레이 브라운(Ray Brown)-토미 포터(Tommy Potter)-알맥키본(Al McKibbon)-컬리 러셀(Cur1y Russell)등도 밥 밴드 리더가 마음에 들어 하는 베이스 주자였지만블랜튼의 최대 후계자라고 한다면 역시 오스카 페티포드일 것이다. 페티포드는 베이스 솔로의 가능성을 추구하고 폴 챔버스(Paul Chambers)-더그 와트킨스(DougWatk s )-샘 존스(sam Jones)등 1950년대의 강력한 베이스 솔로 주자에 시사를주었다.
케니 클락(Kenny Clarke)-맥스 로치(Max Roach)-찰스 밍거스는 작곡가나 밴드 리더로서의 활약 쪽이 보다 중요시되고 있지만 그도 밥 시대에 나타난 창조성 풍부한 베이스 주자였고, 조 존스와 시드니 캐틀렛은 밥 드러밍 스타일의 발전에 기여한 스윙 드러머였다
존스는 솔로 주자와 드러머간의 유연한 상호 관계를 두드러지게 해 보였지만 캐틀렛은 1930년대의 드러머로서 발군의 스윙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밥과 스윙 어느 쪽의 밴드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많지 않은 드러머의 한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의 드러밍의 아이디어는 케니 클락과 맥스 로치의 연주에서 구체화되었다(마일즈 데이비스의 (Boplic◎)와 태드 다메론의 사이에서의 클락과, 찰리 파커의 (Klactoveesedsten쓰과 (Ko-Ko) ,소니 롤린스의 (slue Seven)과(Pent-Up HOuse)에서의 맥스 로치를 들어 보자).
클락은 심벌 연주에서 라이드 리듬을 넣어 주목을 받았는데 템포는 전통적으로각 비트를 베이스 드럼으로 처서 유지되었다. 클락은 그 패턴에 베이스 드럼과 스네어 드럼으로 악센트를 줌과(때로 닌ropping bombs'라고 불린다) 동시에 또한 스윙 드러머 이상으로 유연하게 베이스 드럼을 계속해서 치는 수법을 첨가했다. 또그와 맥스 로치는 스네어 드럼을 쳐서 관악기 연주에 악센트를 주었다, 그들의 연주에서 fill은 그들과 즉흥 연주자간의 교류로 밥 드러머들은 단순한 타임 키퍼는아니었다.
밥 드러머, 특히 맥스 로치는 스윙 드러머 이상으로 악기에 정통해 있었다. 악기 연주 테크닉의 향상은 밥 플레이어 전반에 나타난 것이지만 리듬 섹션에있어서는 그것에 의해 그룹의 사운드가 확충되고 또 보다 강력한 연주를 추진할수 있게 되었다. 많은 밥 작품은 매우 빠르게 연주되어 평균적인 템포는 스윙에 비해 훨씬 속도가 증가했다. 밥 드러머는 그러한 템포에서도 여유를 갖고 연주할 수있도록 테크닉이 더욱 요구되었다.
밥 시대의 작, 편곡가(ComposerArrangers)
태드 다머-론(Tadd Dameron 1917--1965)-
밥에서 인 기가 있던 작곡가의한 사람에 피아니스트인 태드 다메론이 있다. 그의 작품에는 폭넓은 음역이 사용되었고 팝의 코드 진행에 기본을 둔 곡이 많았으며(예를 들면 (What Is T us ThingC래ed Lov쓰의 코드진행을 기본으로 한 (Hot House)),또중간정도규모의 밴드(medium-siZed ban인를 위한 편곡을 많이 썼다. 다메론은 작은 밴드에서 빅 밴드사운드를 만드는 데 뛰어났으며, 편곡은 두꺼운 느낌과 리드믹한 밥 피아노 스타일의 보이싱을 갖고 있었는데, 그 보이싱의 음역은 3옥타브 내에 들어가 있다.
다메론 편곡의 콘셉트는후에 베니 골슨-지지 그라이스(Gi Glyce)-선 라등의 작품에 계승되고 있다. 다메론의 (Hot House), (Our Delight), (Good Ba t), (Ladysid>등의 곡은 밥 뮤지션에 매우 인기가 있었다. 1956년에 테너 색소폰 주자 존콜트레인은 다메론의 매혹적인 발라드 (On a Misty Night), (Soultran쓱 등을 포함한 다메론의 곡집 앨범 'On a Misty Nlght_l을 만들었다. 다메론은 훌륭한 송라이터였다. 그의 (If You Could See Me Now)는 서정적인 곡으로 사라 본이 노래하기도했다.
존 루이스(John Lewis 1920---
디지 길레스피 빅 밴드에는 훌륭한작곡가가 있었다. 길 풀러 -조지 러셀-존루이스, 그리고길레스피 자신이다. 그중에서도 피아니스트 존 루이스는 재즈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캄보 모던 재즈 쿼텟(ModemJazz Quartet)에서 4반세기에 걸친 활약을 하기 전에 작곡가로서 길레스피 악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길레스피 악단에 만들어 준 루이스의 작품에서 최고의 작품으로는 (Two Bass Hit)((La Rond쏙라고도 알려져 있다)과 (Toccata forTrumpet andOrchestr코를 들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Django), (Ska ilg m Cen-tral ParlS등 MJQ에서의 작품이 유명하다.
루이스의 작곡에서 흥미로운 것은 클래식과 재즈의 결합으로 이 스타일을'Third◎Team music'이라고 하며, 클래식 음악의 특색과 재즈의 임프로비제이션이나 재즈 필링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MJQ는 종종 ◎ ird Stream'의 곡을 연주했다. 'ThirdTeam에 관심을 보인 다른 작곡가로는 군터 슬러(GuntherSchuller)가 잘 알려져 있는데, 그가 특별히 MJQ를 위하여 쓴 (Concertino for JazzQuartet andOIchestr쏘는 특히 유명하다.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결합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재즈의 모든 시대의 밴드 리더와 작곡가에게 영향을 미쳤다[1920년대의 폴화이트맨, 3O년대의 아티 쇼, 40년대 초기의 듀크 엘링튼과 존 루이스, 1950년대초기의 찰스 밍거스,군터 슬러 ,스탄 켄튼-존 루이스-조지 러셀-지미 쥬프리(Jimmy GiUffre),마일즈 데이비스-길 에반스, 60년대 및 70년대의 돈 엘리스 빅밴드 등).1952년에 존 루이스와 원래 길레스피 악단의 사이드맨이었던 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밴드는 당초 'The Milt Jackson Quartet'으로불리웠지만그후 곧 'TheModem JaZZQuartet 으로 고쳐졌다.
비브라하프 주자인 밀트 잭슨(Milt Jackson),피아니스트 존 루이스, 베이스 주자 퍼시 히스(Percy Heath),드러머 케니 클락은 밥 한가운데 억제된 쿨한 사운드를 창출했다. 1955년에 케니 클락이 빠지고 대신코니 케이(Connie Kay)가 멤버로 들어갔다. MJQ는 몇 년 동안 재즈 잡지의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뛰어난 연주와 밴드 운영에 의해 콘서트홀에서 연주한사상 최초의 재즈 그룹이 되었다. MJQ는 섬세함과 세련되고 위엄이 넘치는 실내악적 사운드를 갖고 있었다.
밀트 잭슨(Milt Jackson 1923---
디지 길레스피 그룹의 뛰어난 존재였던 밀트 잭슨은 모던 재즈의 주도적인 비브라하피스트로서 1950년대부터 주목을받았다. 1960년대가 되어 게리 버튼(Gary Burton)과 바비 허처슨(BobbyHutcherson)이 등장하기까지 비브라하프는 '그만의 악기 '로 느껴졌다. 잭슨 -버튼,그리고 허처슨은 제각기 개성적인 연주를 했다. 잭슨은 1950년대 후기와 60년대의초기 재즈계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기계적으로 타악기적인 비브라하프라는 악기를 잭슨은 따뜻한 사운드로 이끌어내는 데 노력했고, 비브라토의 빠르기를(그는특히 느린 비브라토를 사용했다) 주의 깊게 조절하면서 블루스조의 멀로디를 쳤다.
그는 테너 색소폰 주자의 비브라토와 비브라하프의 비브라토의 관계에 주의를기울였다. 그의 라인은 매끄럽고 우아하여 각각의 프레이즈는 실로 교묘하게 이어져 합척졌으며, 이해하기 쉽고 멜로딕하게 실로 멋지게 스윙했다. 잭슨의 스타일은 후배에 대한 영향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재즈 트럼펫이나 플루트 주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잭슨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비브라하프로 아름답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임프로바이저이다.
피아니스트인 존 루이스와 비브라하프 주자 밀트 잭슨은 때에 따라 대위법에서의 임프로바이즈를 시도했는데, 이 임프로비제이션에서는 서로 자극을 받으면서두 개의 라인이 각각의 아이디어로 나아갔다. 또 루이스는 마치 전에 악보에 씌여져 있는 것처럼 잭슨의 라인에 잘 맞추어 연주했다. 한편 잭슨은 루이스 외에 셀로니어스 몽크와도 훌륭한 연주를 하였다. 루이스와 몽크 두 사람은 때때로 유연성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재즈계에서 가장 신선하고 독창적인 피아니스트였다.
비브라하프
비브라하프(Vlbraharp)는 건반 아래에 늘어진 관예 의해 마림바나 큰 실로폰처럼 보인다. 연주 방법은 비슷하지만구조는 다르다. 비브라하프의 건반은 금속이고 실로폰과 마림바는 나무이다. 비브라하프의 공명관은 마림바와 같지만각각의 관에는 전기 모터로 회전하는 원반이 붙어 있다. 회전하는 원반은 서스틴(sUs토눈을 걸어 음에 울림을 주고 또음을 진동시켜 비브라토 효과를 번다. 이 비브라토의 음은 우리들의 귀에 교대로 전파해 들어온다. 비브라하프에는 로터 모터(rotormotor)에 붙어 있는 다이얼을 조절함으로써 비브라토를 콘트롤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또 비브라하프는 푸트 페달로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음을조절한다.
밥 피아니스트(Bop Pianist)
밥 스타일의 발전에 따라 재즈 피아노도 임프로비제이션에 있어서 트럼펫이나색소폰의 수준에 도달했으며, 단순히 밴드와 함께 연주할 뿐 아니라 콤핑을 요구하게 되었다. 재즈 피아노의 종래 스타일에서 생각하면 밥 피아니스트의 스타일은실로 특이한 것이었다. 그들은 얼 하인즈나 테디 윌슨의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았다.
밥 피아니스트는 부기우기나 스윙 피아노에서 잘 사용되었던 스트라이드 주법에서의 왼손의 베이스 기능을 거의 쓰지않게 되었고, 이 새로운 왼손 연주 스타일은 그 후 몇 십년 동안이나 재즈 피아노의 특징으로서 발전해 갔다. 버드 파웰은주어진 코드를 왼손으로 연주할 경우 구성음을 생략하며 쳤는데 즉 왼손은 3성이나 4성 코드 대신에 2성 코드를 쳤다. 이 두 음은 코드 진행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되었다(통상 이 2성은 코드의 근음과 7도의 음으로 구성되었다).
밥 피아니스트는음악의 전개를 이해하고 재치가 풍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또 밥 관악기 주자의 임프로비제이션과 같이 할 때에는 보다 효과적인 솔로가 요구되었다. 그들은버드나 디지의 하모니와 리듬에서의 혁신적인 면을 이해하고 솔로 주자의 콤핑을하기 위해 그들의 연주에 호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밥 피아니스트는 상상력이풍부한 리드미컬한 솔로와 코드 진행으로 그룹 전체의 연주를 진행시키며 영감을주었다.
버드 파웰(Bud Powell 1924--1966)-
버드 파웰은 색소폰 주자에 있어서의 버드나 트럼펫 주자에서의 디지와 같이 피아니스트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퐈웰은 아트 테이텀이나 냇 킹 콜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테이텀 이상으로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 창조성이 높은 왼손의 움직임을 들려 주었다. 최초(1950년대 후반 이전) 파괼은 버드나 디지의 연주에 어울리는 피아노 솔로를 창조하여 밥의 싱커페이트하는 리듬을 익히고 힘차게 그의 솔로를 발전시켜 갔다. 그는 얼 하인즈의 옥타브 주법과 아트 테이텀의 복잡하게 손가락을 사용하여 만드는 멜로디 기법을 자기 스타일에 도입했다.
파웰은 1920년대의 제임스 P.존슨과 같이 1940년대부터 50년대에 걸쳐 많은 피아니스트의 모델이 되었으나 1966년에 타계하여 그 활동기간은 짧았다 그는 알 헤이그가 각 레코딩 세션에 얼굴을 내밀게 된 무렵에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알 헤이그(Al Haig 1924--1982)-
헤이그는 어디에서나 인기있는 밥 피아니스트로 파커의 밴드나 스탄 겟츠 밴드 등 많은 톱 그룹과 투어를 했다. 그는 수많은 레코딩을 했고 흐르는 듯한 솔로와 깊은 맛이 있는 콤핑으로 1950년대 중반과60년대 초기의 토미 플라나간이나 60년대의 허비 핸콕과 같이 밥 피아니스트로서의 한 위치를 얻는다. 그가 디지와 1947년에 레코딩했을 무렵은 아직 발전 단계의밥 피아니스트였지만 1949년에 스탄 겟츠와 레코딩을 할 때는 뛰어난 명연주글 들려 주었다. 아이디어를 잃는 일은 그에게는 없었으며 그의 터치는 가볍고 깨끗했고, 또한 발라드 연주도 상당했다, 때로는 매우 화려한 연주도 했지만 언제나 실로직선적인 스윙을 하는 플레이어였다.
조지 쉬어링(George Shearing 1919---
헤이그나 파웰 이상으로 많은 감상자의 지지를 얻은 사람은 조지 쉬어링과 오스카 피터슨, 두 명의 밥 피아니스트이다. 쉬어링은 그가 만들어낸 그룹 사운드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피아노사운드는 피아노, 기타, 비브라하프, 베이스, 그리고 드럼의 부드럽고 잘 다듬어진 앙상블이다. 쉬어링은 밥 피아니스트에 있어서도 가장 깨끗하고 가벼운 피아노 사운드의 소유자였다. 그의 음악은 실로 세련되어 우아한 밥으로 불리웠다.
싱글 노트 라인(smgle note lin끗과 옥타브 보이싱 라인(octave voiced fin릿에 의한연주에 덧붙여 그는 1940년대 중기의 밀트 버크너가 시도한 록 핸드 스타일긴ock-ed-hands styl핏을 보다 파플러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쉬어링의 보이싱은 버크너 와는 달랐다. 쉬어링은 우아하고 풍부한 하모니의 재즈 피아노 스타일을 갖고 있었으며, 하모니 혹은 옥타브 주법의 앙상블 연주로 코드를 만드는 형태로 멜로디를 만들어 갔다. 베이스와 드럼이 타임을 맞추고 있을 때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비브라하프가같은 음으로 혹은 하모니를 만들어 멜로디를 연주했다. 각각솔로는 앙상블의 fill이나'ending'이 따라와 잘 맞추어졌으며 전체가 잘 스윙하고 억제되어 있었다. 쉬어링은 또 라틴 아메리카의 요소와 밥의 융합을 도모하여 아만도 페 라자(Armando Peraza 는 1954년부터 1964년까지 쉬어링의 그룹에서 퍼커션을 담당하고 있었다.
쉬어링의 베이스 주자 알 맥키본은 쿠바의 드러머 차노 포조와 함께디지 길레스피 빅 밴드에서 아프로 , 쿠바적인 음악을 연주하면서 라틴 아메리칸베이스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맥키본은 페라자를 쉬어링에게 끌어와 페라자와 함께 라틴 리듬과 쉬어링의 스타일을 융합하는 데 일역을 담당했다. 페라자는 단지익사이팅한 것만이 아닌 보다 심오한 그 무엇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기타리스트 척 웨인(Chuck Wayne),조 패스(Joe Pass)-비브라하프의 칼 제이더(Gal Tjader)-게리 버튼, 그외 많은우수한모던 재즈뮤지션이 쉬어링 그룹에서 활약했다. 쉬어링은 또한 흥미로운 많은 곡을 썼는데 어려운 코드 체인지의(Conceptio군은 (Deceptio룬으로 제목이 바뀌었지만 마일즈 데이비스에 의해 2회레코딩되었다, (Local 802 Blue죠는 1940년대 후반과 50년대 초기 뮤지션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뉴욕의 재즈 클럽 '버드랜드(Birdlan련'의 테마송인 쉬어링의(Lullaby of Birdland)는 매우 인기있는 재즈 스탠더드가 되었다.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1925---
오스카 피터슨은 재즈 역사에서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된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다. 그의 굉장한 테크닉과노력은 베이스 주자와 드러머가 간신히 따라갈 수 있는, 믿기 어려운 빠른 템포의연주를가능하게 했다. 피터슨은냇 킹 콜 버드파쇨 아트테이텀 등의 어프로치와는 다른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그는 창작력에 있어서 그들보다 뒤떨어졌지만 박력에 있어서는 그들을 전부 합한 정도의 힘이 있었다. 1950년대에는 호레이스 실버가 히트친 펑키한 가스펠풍의 연주를 자기 스타일에 가미했다. 피터슨의 발라드 연주는 마치 풀 편성 오케스트라와 같다. 그는 압도적인 테크닉으로 건반 전체를 횝쓸고 그 밀어닥치는 힘과 활기는 1940년대 후기 이후까지 조금도 쇠퇴 하지 않았으며 모던 재즈에 있어서 확고한 위치를 지켰다,
밥 클라리넷 주자(Bop Clarineter)
클라리넷은 모던 재즈에서는 스윙 시대와 같이 인기있는 악기는 아니었다. 밥클라리넷 주자의 이름을 꼽는 일은 밥 색소폰 주자나 밥 트럼펫 주자의 이름을 대는 정도의 쉬운 일이 아니다. 버디 디프랑코-토니 스코트(Tony Scott)-스탄 하셀가드(Stan Hass티pard)등은 밥에 클라리넷을 도입하려고 시도했지만 대단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밥 기타리스트(Bop Guitarist)
기타는 밥 시대의 리듬 섹션의 멤버로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솔로 악기로서 활약했다. 버드와 디지에 의해 리드된 밥 스타일은 곧 다른 악기 플레이어에게도 이해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기타리스트에 많은 밥 플레이어가 등장한 것은 비교적늦은 시기였다. 가장 강력한 밥 기타리스트는 1940년대 중반의 발전 시기보다도 40년대 후기와 50년대 초기에 더욱 두드러졌다. 지미 레이니(Jimmy Raney)와 탈 팔로우(Tal Farlow)는 뛰어난 밥 기타리스트였다. 레이니는 스탄 겟츠와 몇 장의 매우 인상적인 레코드를 만들었으며, 팔로우는 레드 노보(Red Norvo)와 함께 레코딩을 했다. 두 사람은 모두 버디 디프랑코의 섹스텟에서 활약했다.
밥 트롬본 주자(Bop Trombonist)
밥 스타일은 특히 고도의 연주 기술이 요구되었으며 슬라이드 트롬본(slidetrombon릿은 매우 어려운 악기였다. 그러한 가운데 두 사람의 뛰어난 트롬본 주자JJ. 존슨과 카이 윈딩은 간단한 밸브 트롬본(valve trombon릿을 사용하지 않았다. 거기에 비해 밸브 트롬본의 명수 밥 브룩마이어는 존슨이나 윈딩과 같이 하이 스피드 스타일건링h-speed styl릿로 연주하지 않고 느리고 하기 쉬운 주법을 더 좋아했다. 브룩마이어도 때로는 스피드감 넘치는 연주를 했지만 대개는 억제된 기분의사운드를 연주했다.
J.J.존슨(James Louis Johnson 1924---
JJ.존슨의 연주는 중후하고 깨끗하여 활력 넘치는 윈딩의 사운드와 비교하면 약간 우울한 것이었다. 그의 연주는 단순했고 스윙을 항상 염두에 두어 비브라토는 조금 사용했다. 트롬본주자이자 리더 겸 작 핀곡가로서 존슨은 1950년부터 60년대의 모던 재즈에 있어서커다란 존재였다. 그러나 70년대 초기에는 재즈 연주에 비해 영화나 TV의 작 -편곡에 집중하였다. 그의 스타일은 50년대부터 60년대의 대부분의 트롬본 주자에 영향을 주었다. 그 외에도 몇가지 모던 재즈 트롬본 스타일이 있지만(밥 브룩마이어스타일, 프랭크 로솔리노(Frank Rosolino)스타일, 러스웰 러드(Ruswell Rudd)스타일, 그리고 지미 네퍼(Jimmy Knepper)스타일 등),역시 JJ.존슨의 스타일이 가장 인기가 있었고 음악성도 높다('First Place_l).
밥테너 색소폰 주자(Bop TenorSaxophonzst)
밥의 테너 색소폰 주자는 그들의 스타일을 두가지 중요한 근원에서 이끌어냈다.하나는 레스터 영과 찰리 파커, 또 하나는 콜맨 호킨스-허셜 에반스-일리노이 자켓 돈 바이어스 등이다.
레스터 영과 찰리 파커의 프레이즈를 모방하여 그대로 연주하는 플레이어도 있었지만 창조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는 독자적인 아이디어에몇가지 요소를 혼합했다. 어느 누구도 파커의 재능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몇 사람은 소니 롤린스와 존 콜트레인의 기본적인 부분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밥 테너 색소폰 주자는 몇가지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덱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톤의 차이에 의한 분류(imension of tone)이다. 플레이어 중에는 가벼운 톤을 좋아하는 사람과 무겁고 어두운 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가벼운 혼의 플레이어에는 스탄 겟츠, 허비 스튜워드 , 알렌 이거, 브류 무어나 약간 뛰의 스타일(WestCoas꾸의 플레이어들, 즉버디 콜레트(Buddy Collette)-빌 퍼킨스-밥쿠퍼-리치 카뮤커 등이 있다. 그리고 무거운 톤의 플레이어에는 덱스터 고든 -진 아몬즈 -럭키 톰슨 워델 그레이 ,소니 스티트 등이 있다.
덱스터 고든(Dexter Gordon 1923---
덱스터 고든은 받 테너 색소폰 주자 중 가장 형에 들어맞지 않는 플레이어의 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 변화가 풍부한 멜로디적 고안을 했으며, 프레이즈와 리듬도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그의 톤은 깊고 어둡고 풍부했으며, 그 스타일은 아주 과감했지만 연주 전체는 묵직하고 매우 침착함을 느끼게 했다. 그는 테너 음역 전체를 사용했지만 특히 저음역 쪽을 좋아했다.
고든은 후에 하드 밥 테너로 불리워진 많은 색소폰 주자들이 좋아하던 플레이어였는데 그 중에는 존 콜트레인도 있었다. 콜트 레인이 1950년대 초기에 쟈니 호지스나 디지 길레스피와 레코딩한 것은 고든과 비슷한 사운드였다, 고든은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훌륭한 레코딩 경력을 갖고 있으며 40년이 지나도 깊이와 스윙감을 잃지 않고 있다.
워델 그레이(Wardell Gray 1921--1955)-
워델 그레이는 자주 고든과 비교된다. 두 사람이 자주 공연했고 서로가 밥 테너의 최고의 연주를
제3부 모던재즈 7. Bop
제3부
모던재즈 1
1940년대 초기 -- 60년대 초기
7 밥(Bop) 137
8 1950년대의 재즈(Jazz in the 1950s) 167
9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196
재즈 역사가 중에는 모던 재즈의 시작을 1940년대로 보는 사람이 많다[초기 재즈-라고 할 때는 고전 시대를 가르킬 때가 종종 있다].
1940년대 이후에 생겨난 스타일 가운데 전 시대 스타일을 재생한 것을 제외한 것이 모던 재즈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최초의 모던 재즈 플레이어로서는 알토 색소폰의 찰리파커, 피아노의 셀로니어스 몽크, 트럼펫의 디지 길레스피 등이 있다. 그들은 트럼펫 주자 마일즈 데이비스,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을 비롯한 창조력 풍부한 많은 뮤지션을 동료로 끌어 들였다.
1940년대 후기에 파커와 길레스피는 빌리 엑스타인,클로드 손힐,우디 허맨 등의 빅 밴드에도 영향을 주었다. 모던 재즈는 재즈신(seen릿에 돌연 등장한 것은아니다, 스윙 시대 테너 색소폰의 레스터 영-돈바이어스, 피아노의 아트 테이텀-냇 킹 콜, 트럼펫의 로이 엘드리지, 기타의 찰리크리스찬,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리듬 섹션, 베이스의 지미 블랜튼, 기타 여러 사람들의 활동으로부터 서서히 발전해 왔다. 파커도, 길레스피도 그 음악 경력은 스윙 시대 스타일로 임프로비제이션을 연주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그음악을 넓히는 것과 함께 점점 새로운 테크닉을 도입했고 그 결과 그들의 연주가다른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스윙 시대 스타일과는 왜 거리가 있다고해도 모던 재즈는 역시 스윙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새로운 음악은 기본적으로 캄보 스타일로 연주되었는데, 그 이유를 젊은 즉흥 연주자가 스윙 시대의 빅 밴드의 연주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단순히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확실히 빅 밴드라는 것, 그리고 씌여진 악보를 사용한다는 것은 솔로를 위한 시간이 적어지고 솔로 주자와 반주자간의 자연스러운 음악적인 상호 작용을 억제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시대
에 있어서도 캄보와 빅 밴드의 양쪽이 존재하며 재즈 연주의 형식으로서 유용하다는 것도 확실하다.
사실 파커는 제이 맥 샨의 빅 밴드에 있었을 때 그의 혁신적인
임프로비제이션 스타일을 일보 전진시켰으며, 또 후에 마치토(Machito)의 라틴 아메리카 빅 밴드와 레코딩하거나 길레스피나 우디 허맨의 빅 밴드에도 참가했다,
길레스피는 캡 캘로웨이의 빅 밴드에서 연주하고 있었고, 더우기 1940년대의 얼 하인즈와 빌리 엑스타인의 각 밴드에서 파커와 길레스피가 함께 연주할 때도 있었다. 만약 모던 재즈가 빅 밴드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모던 재즈의 선두적인 뮤지션이 빅 밴드에 참가하거나, 혹은 길레스피,태드 존스-클락 테리 -마일즈 데이비스 길 에반스 제리 멀리간 등과 같이 자신의 밴드를 이끌어 가는 것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다,
스윙 시대에 어느 정도 번영을 이루었던 빅 밴드가 모던 재즈 시대에 들어와 적어지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빅 밴드에 의문을갖고 있던 뮤지션이 있었다는 점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데, 그것만이 원인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결국 캄보는 파플러 음악에 있어서 스탠더드한밴드 형식이 되었으며 재즈만이 커다란 앙상블 형식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다.
모던 재즈의 즉흥 연주자들은 동시대의 클래식 음악가에게서 영감을 받았다.1920년대의 빅스 바이더벡은 클로드 드뷔시나 모리스 라벨의 영향을 받았었다
1940년대에는 수많은 뮤지션이 벨라 바르토크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음악을 좋아하여 듣고 수용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찰스아이브스(Charles Ives),그리고 폴랜드 작곡가 크르지스토프 펜데레츠키 -Penderecla )등의 영향이 일부 스타일에 보여진다.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한다고 해서 옛날 스타일이 완전히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재즈의 역사는 아직남아 있고 그 역사상의 각 단계에서 여러 가지 다른 스타일이 공존하고 있다. 사실20세기의 마지막에 와 있는 오늘, 딕시랜드 재즈의 4대째 플레이어가 현재 활약하고 있다.
7 밥(Bop)
1940년대 초기 - 50년대 중기
---버드는 젊은 세대의 뮤지션간에 존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비평가들의 맹공격과 싸워야 했다. 비평가들은 재즈의 새로운 발전이 시작되면 반드시 다 그렇다고 해도 좋을 만큼 거기에 대해 적의를 품었던 것이다. 재즈계의 내부에서는 화제의 중심이었지만 아직 일반 대중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 PThe EneYcloped a of Jazzd, Leonard G.Feather-
-밥(Bop)스타일 뮤지션
Diny Gillespie
Fats Nsvam,
Howard McGhe8
Miles Devio
Kenny Domsm
Red Rodney
Benny srris
SonnyBennan
Freddie Websta-
Conte Csndoli
Clerk Teny
Idreesuliemen
Benny Bailey
Trol bc
J.J.Jo RPon
Kai린linding
Bennie Green
Frank Ro ino
-
Oscar Peniford
Ray Brown
Tommy Poner
Cu y Rusoefl
Nelson Boyd
Al McKibbon
Gene Remay
Red Cal endBt
Teddy I(otide
Chubby Jackrron
Eddie Safranrki
Suophocw
Cha긴is Par
Darter Gordon
Lucky ThompsOn
또an Getz
Ward rll Gray
Alien Eager
Her ie Steward
Brew Moors
Gene Ammons
Sonny Stitt
Flip Phillips
James Moody
Chart Verrtura
Zoot Sims
Al Cohn
Emie Itenry
Leo Parker
Sonny Criss
글erge Chalaff
Don Lamphera
Cha린is Rouse
Sonny Rdlins
Phil Urso
Boots Mussull-
VWnhrrp
Mik Jad son
Teddy Cha긴86
Tarry Gibbs
Kenny Clar
Max Roadr
Joe Harris
긴ny Kahn
Don Lamond
Roy Hsynes
JohnMM
Danzil Best
Pine
므ud Powell
AIHaig
Dodo MarmarOFB
Joe Albany
Welter Bishop,」-
Duke Jordan
George Shearing
Oscar Peterson
Billy Taylor
HankJonas
Hampton HewB6
John Lewis
Tedd Dameron
ahmad Jamel
Ou)tlr
Arv Ganison
Tar Far(ow
Bill DeAran
Jimmy Raney
Johnny Collins
Barry GJbraith
Chuck Wayna
Bam Kessel
Billy Bauer
Johnny Smith
ii fuller
George Russell
Neal Hehi
Diny Gilleepie
Cherlie Paticer
Thelonious Onk
Tadd Dameron
John Lewis
Shorty Rogers
Ralph Bums
Gil Evens
Gerry Mu ligan
레스터 영-콜맨 호킨스-테디 윌슨,찰리 크리스찬,아트테이텀 로이 엘드리지 등 스윙 시대에 있어서 가장 선구적인 플레이어는 1940년대 초기에 나탄 '밥 또는 '비밥 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재즈 스타일에 커다란 영향을주었다, 밥 또는 비밥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불확실하지만 아마도 재즈 뮤지션이재즈의 프레이즈를 노래할 때 쓰였던 의미 없는 말의 표현에서 온 것은 아닐까. 그들은 '라라라' 혹은 '다다다'라고 노래하는 대신에 '드위 리 두 비 밥울라쿠'라거나 그것과 비슷한 반복의 노래를 했다. 또 길레스피가 (Bebop)이라는 곡을 쌨는데 그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밥 스타일은 알토 색소폰의 찰리 파커, 피아노의 셀로니어스 몽크, 트럼펫의 디지 길레스피의 연주에서 처음 나타났다. 그들의 연주는 각기 자유로운 발전을 보였지만 서로 자극하며 잘 조화되었다. 파커 ,길레스피 ,몽크는 함께 연주하는 가운데 매우 복잡한, 그러나 세련된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임프로비제이션은대개 8분 음표나 16분 음표로 구성되고 그 연주는 자유롭게 뛰어 다니는 듯한 풍부
한 전개를 보여 주었다. 멜로디 라인의 흐름은 매끄럽지는 않았으며 음의 구성이돌연 변화할 때에는 큰 인터벌이 생기는 때도 종종 있었다. 이 멜로디 라인에 따르는 리듬은 그때까지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어떤 음악에서도 찾지 못할 정도로 많은싱커페이션이 사용되었고 템포는 빠르고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대부분 멜로디에서 벗어나 오직 코드 진행만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종종 새로운 코드를 부가하여 코드의 진행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스윙 플레이어와 초기 재즈 플레이어는 12소절 블루스에 대하여 5--10혹은 그것보다도 적은 코드밖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밥 플레이어가 되면 10--M)정도의 코드 체인지를 하게 된다.
아트 테이텀은 멜로디에 대한 리하모니제이션(reharmon2zatto짓과 기존의 코드에 새로운 코드를 더해 주는 것을 이미 하고 있었다. 레스터 영과 콜맨 호킨스는실제로 잘 사용하는 코드 체인지에 정통했다. 그들과 테이텀은 파커와 길레스피의'멜로디의 복잡화'와 '새로운 코드의 부가'를 위한 사전 준비를 했던 것이다. 코드의 부가는 종종 '대용(rubstit tlon) '으로 불리웠는데 이것은 싱글 코드나 보통의
코드 시권스의 자리에 새로운 코드가 대용되었기 때문이다, 밥 라인에는 원래 곡에는 없는 코드를 갖는 것이 있었는데, 이들 코드는 충격적인 효과를 내기 위하여때로는 의도적으로 원곡의 하모니에 대립하도록 연주되었다. 코드 체인지의 다른경우로는 즉흥 연주의 멜로디의 흐름에 의해 암시되는 새로운 하모니의 전개에 맞추어 리듬 섹션이 즉시 코드 체인지하여 진행을 변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밥의 리듬 섹션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매우 예민하게 임기 응변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밥 플레이어는 새로운 코드를 부가하거나 바꾸어 놓는 것만 아니라 원래 코드그 자체에도 변화를 가했다. 예를 들면 5도 음을 반음 내리는 식은 밥에서 잘 사용된다. 3도나 7도 음을 반음 내리는 것은 초기 재즈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 5도 음을 반음 내리는 것도 재즈의 특징이 되어 갔다. 밥 플레이어는 이 세가지를 모던재즈다운 맛을 내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음조로서 사용했다. 밥 뮤지션은 복잡한
코드 진행에 따라 임프로비제이션하기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새로운 오리지널 코드 진행을 종종 만들었다,
디지 길레스피의 (Con Alma)가 그 한 예인데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은 (Cherokee), 021l◎e Things You Ar쓸 등 파플러 송의 코드 진행에 따라 임프로비제이션을 했다 찰리 파커는 그의 곡 (Ko-K꼬를(Cheroke끄의 코드 진행을 사용해 썼다(결국 (Ko-K꼬에서의 즉흥 연주가(Cherokee)에서의 임프로비제이션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곡은 이름도 붙이지 않고 연주될 때가 많았으며, 이런 식으로 리듬 섹션의 멤버는 이전에 전혀 들어 본적이 없는 곡도 곧 연주할 수 있었다.이 테크닉은 스윙과 초기 재즈에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으며 12소절 블루스 진행은 그와 같은 목적에서 쓰여져 왔다.
조지 거슈윈의 (I Got Rhythm)의 코드 진행은 뮤지션들에게 매우 잘 사용되어 그 코드 체인지는 단지 '리듬 체인지'라고 부르기도 했다-IGot만lythm chord change쏘가 사용될 때는 (I Got만lythm changes),(rhythm changes),혹은 단순히 (rhyth$이라고 써서 나타냈다). (Indiana), (WhatIs This Thing Called Love), (Whispenn◎, (How High◎eMoon)등의 팝은 제각기 밥 곡인 (Donna Lee), (보ot House), (Groovin' High), (Omithology)가 되었다.
모던 재즈 플레이어는 그 이전의 즉흥 연주자와 같이 반복이 되는 곳이나 혹은 그전에서 프레이즈를 자르는 것은 중단했다. 밥 플레이어는 레스터 영의 연주에 힌트를 얻어 전통적인 틀을 깨고 8소절 섹션 중간부터 프레이즈를 시작했다(블루스에서는 12소절). 그들은 더욱 일보 전진하여 곡의 기초가 되는 코드 진행에 의한속박을 점점 줄여가 발전된 임프로비제이션을 전개했다.
파플러(Popular)의 매력
밥은 스윙이 이전에 그랬던 만큼 대중적이지 못했다. 1955년 찰리 파커가 세상을떠났을 때 베니 굿맨같이 그는 유명하지 않았다. 베니 굿맨의 이름은 일반에 잘 알려져 있었고, 분별이 있는 사람들은 스윙에 비교해 밥이 인기가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밥은 주로 캄보 음악으로, 일반 감상자가 즉흥 연주의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하는 멜로디 라인보다도 단순하게 되풀이되어 가는 빅 밴드의 앙상블 쪽이 훨씬 친근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재연이 가능한 것이나 악보에 쓰여진 편곡에 따른 연주는 감상자의 부담을 가볍게 한다. 감상자는방송이나 레코드에서 들은 적이 있는 연주를 라이브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러한연주는 매회 새롭게 즉흥 연주되는 연주보다도 인상 깊고 또 친해지기 쉽다. 캄보재즈에서는 씌여진 편곡에서 완전히 벗어나 임프로비제이션이 전개되었다. 이와같이 매회 다르게 연주되는 음악은 감상자에 있어서는 난해한 것으로 그 결과 인기가 없어지게 된다.
밥이 인기가 없음을 설명하는 다른 이유로는 가수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예전부터 가수는 악기 주자보다도 인기가 있었으며, 더우기 사람들은 서정성이 강한 것을 좋아한다. 밥 시대는 빌리 엑스타인과 사라 본 같은 위대한 가수를 탄생시켰으나 스윙 시대에 비하면 훨씬 가수가 적었다. '스윔은 춤출 수 있지만 밥에서는 춤출 수 없다'는 것도 밥이 인기가 없는 하나의 이유가 되는 것 같다(물론 예외는 있
다). 임프로비제이션의 멜로디와 본래 곡과의 관계를 알아내기 어렵다는 것도 영향을 주는 요인일 것이다. 감상자는 꽤 당황하며 대다수 감상자에 있어서 재즈의임프로비제이션은 어려운 문제로, 즐기는 데까지는 도저히 가지 못하게 된다. 밥이 보다 복잡하고 보다 수준 높은 것을 추구해도 이미 임프로비제이션 라인을 따라 가지 못하는 감상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밥의 출현에 따라 재즈의 발전은 파플러 음악이라기보다도 실내악적으로 되어갔다. 재즈 연주가 고도로 엄밀한 것을 요구함에 따라 보다 '예술적'인 음악이 되었고 대중적인 매력은 엷어져 갔다, 재즈는 아메리카의 파플러 음악의 흐름에서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밥 스타일이 난해하고 파플러한 매력이 적어졌다고해도 전연 팬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음악적인 구성이나 역사적인 중요성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해도 실제 사운드 그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팬 중에는 전문 음악가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각각의 즉흥 연주자가하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필자는 감상자가 모든 스타일의 재즈를 즐길 때 어떤 음악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풍부한 지식이 있으면 음악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기는 하지만. ). 결국 재즈는 모던재즈 시대에 그 인기가 적어져 1970년대에 재즈 록이나 퓨전으로 새로운 팬을 얻을때까지 인기를 되찾지 못했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 1920--1955)
밥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는 콜맨 호킨스와 레스터 영 등 위대한 선배의 음악을 흡수하여 우아하게 스윙하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파커가 영과 호킨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가능하면 여러 가지 연주를비교해 들어 보자, 예를 들면 1940년 제이 맥 샨의 리더 앨범에서 (Lady Be Good)을 불고 있는 파커와, 같은 곡을 1936년 카운트 베이시의 리더 앨범에서 연주하고있는 레스터 영을 비교해 들으면 영의 파커에 대한 영향을 알 수 있고, 또 역시1940년 제이 맥 샨의 리더 앨범에서 (Body and Soul)을 부는 파커와 1937년의 콜맨호킨스의 연주를 비교하면 이것도 또한 과연 그렇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1930년대 캔자스 시티 재즈의 중심적인 인물인 알토 색소폰 주자 버스터 스미스(Buster
Smith)도 초기의 파커에 중대한 영향을 루었다).
버드(Bird,찰리 파커의 애칭)는 그의 혁신적인 시도를 확실한 알토 색소폰 솔로로 구체화했다. 그의 연주는 스윙 시대 알토의 거장 쟈니 호지스나 베니 카터와는확실히 달랐다. 호지스나 카터는 깊이 있는 톤으로 세밀한 비브라토를 사용했지만 버드는 건조한 톤으로 느린 비브라토로 연주했다. 버드의 임프로비제이션은 실로많은 음악에 영감을 주었다.
그는 레스터 영의 솔로, 전통적인 멜로디(예를 들면 Reuben, Reuben, I've Been Thinking), On a Coun GardenS등-오페라[ 111(Georges BiZet)의 arme 은 파커와 길레스피가 좋아했다3, 20세기 클래식 음악(예를 들면 스트라빈스키의 etrouchkaa ),그리고 미국 흑인 음악(블루스 가수나초기 재즈의 관악기 주자)의 수많은 전통적인 멜로디의 단편들을 인용하여 즉흥적으로 교묘하게 구성했다.
버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 넘치는 연주를 전개했으며 머리에 떠오르는 임프로비제이션을 즉각 음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I Remember You), (TheSong Is YoU>, (April in Paris), O\utumn m New York)등 팝곡 연주에서는 따뜻함과 자신 넘치는 풍부한 표현으로 곡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다. 버드는 창조성이 풍부한 뛰어난 즉흥 연주자였으며 그의 솟아나오는 아이디어는 밑이 없는 샘과 같았다. 버드의 수준 높은 테크닉과 창조력은 그를 재즈사상 가장 조화를 이룬 즉흥 연주자로 만들었다.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캄보를 이끈 후, 파커는 밥의 최고 플레이어(트럼펫 주자 마일즈 데이비스-레드 로드니(Red Rodney)-패츠 나바로-하워드매기 , 케니 도햄(Kenny Dorham),피아니스트 알 헤이그, 드러머 맥스 로치, 기타뮤지션들) 몇 사람과 자기의 그룹을 이끌었다. 파커의 연주는 자기 캄보뿐 아니라디지 길레스피의 빅 밴드, 우디 허맨 빅 밴드, 마치토의 라틴 밴드, 노만 그랜츠(Norman Granz)가 이끈 올스타 잼 세션, 그리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오보에,리듬 섹션에 의한 그룹에서도 들을 수 있으며, 각각의 레코딩은 마치 파커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들린다('The Savoy RecoldingsJ, 'Charlie Parker On Dial Vol. 1-6J, rNow'sThe Time_l).
버드는 신선하고 매력있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조화를 이룬 논리적인 멜로디를교묘하게 구성했다. 그것들은 팝의 감각에서 보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재즈로서는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다. 파커의 프레이즈는 임프로바이즈된 것과 악보에씌여진 것 모두 재즈 뮤지션에 의해 모방되고 분석되었다. 알토 색소폰 주자뿐만아니라 모든 악기 연주자가 버드의 주법을 공부했다. 아마도 버드는 다른 어떤 밥
뮤지션보다도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파커 작품의 대부분은 12소절의 블루스로 만들어져 있다((Billie's Bounce), (Cheryl),(Barbados), (Au Privave),(sloomdido), (Bird Feathers), (Now's◎e Time), (Air Conditionin◎ 등). 파커의곡 중에는 오리지널 코드 진행을 갖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팝의 코드 진행에기본을 두고 만들어졌다. 그러한 작품 중에 (Confirmation)(Billie'sBounce),(Now's theT=쓱 등의 곡은 재즈의 스탠더드가 되었다.
버드는 필 우즈(Phil Woods),찰리 마리아노(Charlie Mariano)-사히브 시하브(sahib Shihab),어니 헨리(Erme Henry)-소니 크리스(Sonny Criss)-찰리 맥퍼슨(Charlie McPherson ),프랭크 스트로저(Frank Strozier)-지미 히스(Jimmyeath), 루 도날드슨(Leu Donaldson), 데비 쉴드크로트(Davey Schildkraut)-소니스티트,제임스 무디(James Moody),재키 맥린(Jackie McLean)-캐논볼 애덜리(CannonballAdderley),에릭 돌피(Eric Dolphy)등셀수없을정도로많은알토색소폰 주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밥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도 자기 스타일의 중요한 영향을 파커로부터 받았으며, 밥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은 버드의수법을 모텔로 했다. 1960년대를 리드했던 색소폰(테너와 소프라노) 주자 존 콜트레인도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하기까지는 버드 스타일로 알토 색소폰을 연주했다고한다. 파커의 곡이나 때때로 그가 사용하기 좋아했던 프레이즈는 1960년대의 혁신적인 두 사람의 색소폰 주자 오네트 콜맨과 앨버트 아일러의 초기 레코딩에서 볼수 있다.
재즈에 있어서 파커의 영향력은 실로 광범위해서 심지어는 재즈 클럽에까지 그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뉴욕에는 '버드랜드껸irdlan신'라는 클럽이, 또 시카고에는 '버드 하우스(irdhouse) '라는 곳이 있다. 밥 가수인 에디 제퍼슨은 곡의 멜로디와 버드의 임프로비제이션 양쪽에 가사를 붙여 (Billie's Boune쓱와 (Parker'sMood>를 노래했다(파커의 가사가 붙은 작품을 들으면 파커의 멜로디에 대한 능력을 잘알수 있다). 1970년대에 베이스주자버디 클락(Buddy Clark)이 중심이 되어 리듬 섹션과 5대의 색소폰으로 이루어진 '슈퍼색스(Supersax) 라는 그룹을 만들었는데 이 '슈퍼색스'는 파커의 임프로비제이션에 하모니를 만든 편곡으로 연주했다('SupersaXPlay Binl ).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 ze 1917-
루이 암스트롱은 1920년대 후기부터 30년대 초기에 걸친 최고의 트럼펫 주자였다. 30년대 후기에는 로이 엘드리지라는 명트럼펫 주자가 활약했다. 그리고 1940년대에는 디지 길레스피가 고음역의 연주나 악기의 전반적인 테크닉과 혁신적인 멜로디 개념으로 그의 시대를 만들었으며, 그 후의 시대에 있어서도 그의 스타일은잘 조화되었다. 다른 많은 뮤지션에 영향을 주었던 그의 스타일은 색소폰 스타일의 음의 라인과 로이 엘드리지의 어프로치를 흡수하였다. 그의 '리듬감'은 독특했고 복잡했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활력 있는 사운드를 만드는 싱커페이션을 사용했다((shaw NufD).
디지의 프레이즈는 쾌활하고 항상 신선한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하모니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서 그 자신도 그것을 자기의 커다란 특징으로 삼았다. 게다가 디지는 하나의 프레이즈에서 키를 바꾸어 불안정한 효과를 내는 연주를 하였다. 그는 종종 프레이즈의 한가운데에서뜻밖에 고음역건igh-registe놋을 강조하여 불었으며, 멜로딕한 아이디어를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다. 디지가 부는 즉흥 연주에는 많은 음이 연이어 있어서 업 템포로연주될 때도 그 음의 라인에는 확실한 의미가 있었다.
디지는 재즈 이외의 곡에서 인용한 프레이즈를 즐겨 사용했는데 비제의 Carme 은 파커와 마찬가지로 그의 마음에 드는 곡 중 하나였다, 그는 해리 '스위트' 에디슨과 같이 여러 가지 리듬 패턴을 바꾸어 하나의 곡을 가지 각색으로 표현했으며, 또 다른 인상을 주기 위해 로이 엘드리지처럼 음의 강도나 톤의 변화를이용했다. 그는 뛰어난 테크닉과 독특하고 풍부한 창조성에 그의 넘쳐나오는 에너
지를 쏟아부었다. 이러한 그의 개성이 흡족하게 발휘되었던 걸작의 하나로서 1945년의 O Cant Get Started)의 솔로를 들 수 있다,
디지의 프레이즈는 두 세대에 걸쳐 재즈 트럼펫 주자의 '관용구'가 되었으며,이 프레이즈는 피아니스트, 기타리스트, 색소폰 주자, 트롬본 주자의 연주 등에서도 들을 수 있다. 1940년대에는 하워드 매기 , 레드 로드니 베니 해리스(BennyHams ),콘트 캔돌리(Conte Candoli)-케니 도햄 -패츠 나바로-마일즈 데이비스,태드존스,클락 테리 등수많은트럼펫 주자가그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플레이어들과 비교하여 연령적으로는 그다지 차이가 없어도 디지는 동세대의 사람이라기보다 대선배 같은 느낌이었다. 1970년대에도 트럼핏 주자 존 패디스(JonFaddis)등은 1940년대에 디지가 레코딩했던 것을 종종 인용하였다. 디지는 작곡자로서도 모던 재즈에 커다란 공헌을 했는데 그의 대표작으로서 (Birks Works),(Emanon) ,(Groovin' High), (Bluen' Boogie), (Salt Peanuts), (WoodynYou>, (ConAlma), (A Night in TuIllsla)등을들수있다. 특히 (Con Alma),
(Groovm' H:gh),그리고 (A Night in Tunis◎는 모던 재즈의 스탠더드 넘버가 되었다.
찰리 파커와 함께 캄보를 이끌고 또 자기의 캄보를 몇 개 이끈 후에 디지는 모던빅 밴드를 만들었다. 이 밴드를 위해 그 자신도 편곡이나 작곡을 했지만 길 풀러(Gil Fuller)-태드 다메론(Tadd Dameron),존 루이스 등과 같은 뛰어난 작, 편곡자에게 의뢰했다((Thmgs to Come)). 길레스피의 곡에서 특히 흥미를 끄는 아프로쿠반견fro-Cuban musi릿 작품으로는 빅 밴드 넘버인 (Manteca)r그리고 두 곡의콤비네이션인 (Cubano Be), (Cubano Bop)등이 있다. 콩가 드러머인 차노 포조(Chano PotO)를 기용하여 만든 이들 곡은 모던 재즈에 아프로 쿠반 프레이즈를 도입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디지는 1940년대 후반을 통해 이 밴드를 유지하고 50년대중반에 미합중국 국무성 파견에 의한 해외 연주 여행을 하기 위해 다른 밴드를 구성했다. 그의 캄보와 빅 밴드에는 강력한 멤버가 많았으며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그룹을 병행하여 이끌고 있어 어느 쪽으로든지 활약을 계속하고 있었다. 디지는국무성 투어 후에도 때때로 빅 밴드를 이끌었지만 보통은 캄보 편성의 연주를 하였다. 그는 1947년 이후에 그의 트럼펫 스타일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았고 1980년대
에도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는 플레이어이다.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1917--1982)
밥에 있어서는 역시 임프로비제이션이 중심이 되었지만 작곡면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사람도 있다.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셀로니어스 몽크는 밥 레퍼터리로많은 우수한 작품을 쌨다. 그는 독창적인 멜로디와 어려운 코드 체인지의 곡을 냈으며, 또한 불규칙하게 악센트를 붙이는 데 특징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거의예상하지 못하는 음으로 엔딩의 프레이즈를 만들었지만 그 자신은 당연한 것처럼하고 있었으며, 이와 같은 예로서 (Off Minor)가 있다. 그는 독창적인 효과를 내기위해 작곡시에 간단한 고안을 해냈는데 (Straight, No Chaser)에서 그는 하나의 프레이즈를 반복하여 치며 그 때마다 다르게 타임을 잡았다. 이 연주는 기본적으로는 한 프레이즈에 대한 일련의 리듬 바리에이션(rhythmic variatlo짓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Str ht, No Chaser)는 12소절 블루스 진행에 기본을 두고 독창적으로 고안된 작품으로, 그 코드의 연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릉했다.
그의 (Miste-= 또한 단순하고 분명한 걸작으로, 끝이 없는 듯한 8분 음표가 연속된 12소절의 반복 구성이다. 일관성도 없고 또 쉬지도 않고 오직 끊이지 않는 8분 음표의 흐름인 것이다. 이러한 8분 음표는 밥 형식으로 구성되지 않고, 쉬지 않으며 일정하게 단계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듯 서서히 움직여갔다.
몽크 작품의 대부분은 32소절의 A-A-B-A형식으로 씌여 있다. (Epistrophy)나 -Round MidnIght)는 그 예로 (Epistrophy)는 몽크적인 단순함을 갖는 완전한 오리지널 곡이며, ('Round Mid ht)는 밥 시대에 자주 연주된 발라드의 대표곡이다. 필적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멜로디를 갖는 이 곡도 형식에 따르지 않는 변칙적인 부분이 있다. 몇 개의 소절에서는 네 개의 다른 코든가 사용되었고 곡이 코드 진행의첫 비트에서 시작되고 있다. 작곡자로서의 몽크는 재즈 역사상 중요한 존재로(s ht, NOChaser), (Well, You Needn't), ('Round Midnig◎) 등은 재즈의 스탠더드가 되었다. 밥 피아니스트인 버드 파웰은 'Po옳It of Thelolllous_l라는 앨범을 레코딩했고, 소프라노 색소폰 주자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의 레퍼터리는 몽크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몽크는 실로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데 그의 스트라이드 피아노 테크닉은 패츠 월러를 연상시키며, 관악기 같은 음의 라인은 얼 하인즈의 연주와 비슷하고, 보이싱에 있어서는 엘링튼과 흡사하다. 몽크와 엘링튼의 스타일에는두 사람 모두 강렬한 피아노 터치로 연주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몽크의 경우는 키를 친 후 잠깐 말 없이 생각하고 끝까지 생각한 이후 다음 음을 울렸다. 또
몽크는 낮은 음역을 쓰기 좋아했다. 몽크가 치는 멜로디 라인에는 마치 장난하고있는 것처럼 꿈틀꿈틀한 것이 있어서, 예를 들면 돌연 ' hole tone scale'을 삽입하곤 했다.
몽크는 베이시처럼, 혹은 한 때의 엘링튼같이 극단적으로 음을 절약했으며 침묵을 그의 임프로비제이션에서 특히 중요시했다. 몽크는 음의 선택에 있어서 몹시신중했지만 선택된 음에는 매우 계산된 여운이 있었다. 몽크는 테디 윌슨이나 냇킹 콜과 같은 릴랙스한 스윙감은 없었다. 그는 전혀 스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사람도 있지만 그의 그룹은 스윙 베이스 주자와 드러머를 거느리고 스윙하는 연주도 들려준다.
몽크는 항상 '음과 코드의 선택을 생각하는 작곡가'로서 연주하고있었다. 그의 리듬 감각은 스윙적이지 않았으나 어프로치는 실로 강렬하고 충격적이었는데 그는 문을 노크하듯이 연속적으로 몇 번이나 음과 코드를 쳤다((CnssCross>, (EvIdence), (I Should Care)). 몽크는 모던 재즈의 작곡과 임프로비제이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스타일은 피아니스트인 랜디 웨스튼(Randy Weston),허비 니콜스(Herbie Nichols),세실 테일러 ,말 왈드론(Mar Wal◎on),버드 파쇨-안소니 데이비스(Anthony Davis)-칼 베르거(Karl Berger)-칙 코리아-앤드류 힐(Andrew Hill)-미샤 멘겔베르그(Misja Mengelbelg)-달라 브랜드(Dollar Brand)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몽크는 파커나 길레스피와 레코딩하는 일도 드물었으며 언제나 자기의 그룹을이끌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났던 것은 1959년부터 1970년까지 테너 색소폰 주자인 찰리 라우즈와 함께 이끌던 쿼텟이었다. 그들은 콜롬비아와 그외 몇 개의 레코드 회사에서 훌릉한 레코드를 만들었다. 라우즈는 밥 테너 스타일에 뿌리를 두었지만 때때로 마치 몽크가 색소폰을 부는 것처럼 연주했다. 밥의 8분 음표의
긴 멜로디 대신 라우즈는 종종 몽크와 같은 어프로치를 사용했으며 몽크와 마찬가지로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었다. 그는 곧잘 몽크의 특색인 음을 때리는 듯한 강렬한 스타카토를 사용했는데 스타일은 어둡고 건조하고 무뚝뚝하여 청중에게 호감을주지는 못했다. 몽크는 꽤 오랜 시간 콤핑을 하지 않고 침묵한 때가 곧잘 있었다. 그러한 때 라우즈는 베이스와 드럼만을 뒤에 두고 애드립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솔로는 완전히 독창적인 것이어서 모던 피아니스트와 같은 매끄러움은없었다. 몽크의 콤핑은 드럼의 스넨어와 같았다. 몽크와 라우즈, 그리고 베이스와드럼으로 구성된 이 쿼텟은 다른 모던 재즈 그룹에는 없는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밥 트럼펫 주자(Bop Trumpeter)
디지 길레스피는 밥 시대 초기를 리드하는 트럼펫 주자였다, 그리고 1940년대 후기가 되면 마일즈 데이비스가 등장한다. 1950년대 초기, 패츠 나바로는 클리포드브라운에 영향을 주었으며 50년대에 가장 많은 플레이러에 모방된 트럼펫 주자이다.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가 밴드를 해산한 후 마일즈 데이비스가 파커의 새로운 트럼펫 주자가 되었다.
마일즈와 파커는 1945년부터 194 년까지 레코딩을 함께 했지만 그 후는 때때로 함께 하는 정도로 변해 갔다. 사보이에서의 레코덩까지 합치면 그들의 레코딩은 100회 이상이 된다. 이들 녹음에서 마일즈에게는 길레스피와 파커의 양쪽 영향이 엿보이나 길레스피와 같이 고음역은 그다지 사용하지 않고 가볍고 부드럽게 불었다. 이러한 마일즈의 스타일은다른 플레이어에도 영향을 주었으나, 프레디 웰스터(Freddie Webster)나 클락 테리는 파커 세션에서 듣는 마일즈처럼 연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마일즈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1945년 당시에 있어 마일즈는 독창적인 재능을 받은 임프로바이저이다. 파커 캄보에서의 연주나 쇼티 로저스(ShortyRogers), 쳇 베이커(Chet Baker)잭 실든(Jack Sheldon)등에 주었던 영향을 보아도 이것은 확실하다.
패츠 나바로(Fats Navarro 1923--1950)
-길레스피와 쌍벽을 이루는 트럼펫 주자는 패츠 나바로이다. 그는 길레스피와 마찬가지로 테크닉이 뛰어났고 높은음역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스피드감이 넘치는 플레이를 했으며, 길레스피보다도더욱 풍부한 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길레스피와 같은 모험적인 쾌활한 면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바로의 연주 스타일에 길레스피가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나바로 자신은 길레스피를 라이벌로 생각하였다(1948년 레코딩한 태드 다메론의 (Lady Bird)에서 나바로의 연주를 들어 보자),
밥 리듬 섹션(Bop Rhythm Section)
리듬 섹션의 연주는 솔로 연주 정도의 진전은 없었다, 길레스피와 파커에 의해1947년 초기에 레코딩된 몇 곡에서는 멜로디와 임프로비제이션은 독창적인 밥 스타일이지만, 리듬 섹션은 스윙 시대의 스타일로 연주하고 있다. 길레스피의 리듬섹션의 몇 사람은 스윙 스타일의 플레이어로 루이 암스트롱-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와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사이드맨보다도 훨씬 앞서 있었다. 모던 재즈의초기 레코드에서 모던 재즈 스타일의 리듬 섹션을 찾는 것은 어렵다.
스튜디오 세션 레코드보다도 나이트 클럽에서의 레코딩이나 라디오 방송을 위한 연주 쪽이 밥스타일의 리듬 섹션이었다. 맥스 로치 -케니 클락(Kenny Clarke)-조 해리스(JoeHams)등의 드러머는 레코딩 스튜디오에서는 종래대로의 스타일로 연주했지만 나이트 클럽의 활동 등은 보다 실험적이고 모험적이었다. 피아니스트인 알 헤이그와도도 마마로사, 그리고 조 알바니(Joe Albany)등은 라이브 연주에서도, 레코딩에서도 모던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 1922--1960)-
라이브 연주와 레코딩의어느 쪽에 있어서도 베이스 연주를 분간해 듣는 것은 힘들다. 오스카 페티포드는1940년대에 듀크 엘링튼과 레코딩을 했던 밥 베이스 주자였다. 그때의 전체 연주는밥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녹음 상태가 좋아 베이스 연주가 분명하게 들린다. 엘링튼의 베이스 주자 지미 블랜튼은 페티포드를 포함한 많은 밥 베이스 주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밥 베이스 주자 중 많은 사람이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월터 페이지의스윔 스타일을 기본으로 연주했지만 동시에 블랜튼 테크닉의 몇 가지도 배우려고했다, 그중 몇 명은블랜튼의 톤과 경쾌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블랜튼사후 20년, 그의 스타일은 모던 재즈 베이스의 스탠더드 플레이의 하나가 되었다.
레이 브라운(Ray Brown)-토미 포터(Tommy Potter)-알맥키본(Al McKibbon)-컬리 러셀(Cur1y Russell)등도 밥 밴드 리더가 마음에 들어 하는 베이스 주자였지만블랜튼의 최대 후계자라고 한다면 역시 오스카 페티포드일 것이다. 페티포드는 베이스 솔로의 가능성을 추구하고 폴 챔버스(Paul Chambers)-더그 와트킨스(DougWatk s )-샘 존스(sam Jones)등 1950년대의 강력한 베이스 솔로 주자에 시사를주었다.
케니 클락(Kenny Clarke)-맥스 로치(Max Roach)-찰스 밍거스는 작곡가나 밴드 리더로서의 활약 쪽이 보다 중요시되고 있지만 그도 밥 시대에 나타난 창조성 풍부한 베이스 주자였고, 조 존스와 시드니 캐틀렛은 밥 드러밍 스타일의 발전에 기여한 스윙 드러머였다
(카운트 베이시의 (Doggin' Around), (Taxi WarDance>, (Lester Leaps IIS에서의 존스와, 디지 길레스피의 (shaw Nuff)에서의 캐
틀렛을 들어 보자).
존스는 솔로 주자와 드러머간의 유연한 상호 관계를 두드러지게 해 보였지만 캐틀렛은 1930년대의 드러머로서 발군의 스윙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밥과 스윙 어느 쪽의 밴드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많지 않은 드러머의 한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의 드러밍의 아이디어는 케니 클락과 맥스 로치의 연주에서 구체화되었다(마일즈 데이비스의 (Boplic◎)와 태드 다메론의 사이에서의 클락과, 찰리 파커의 (Klactoveesedsten쓰과 (Ko-Ko) ,소니 롤린스의 (slue Seven)과(Pent-Up HOuse)에서의 맥스 로치를 들어 보자).
클락은 심벌 연주에서 라이드 리듬을 넣어 주목을 받았는데 템포는 전통적으로각 비트를 베이스 드럼으로 처서 유지되었다. 클락은 그 패턴에 베이스 드럼과 스네어 드럼으로 악센트를 줌과(때로 닌ropping bombs'라고 불린다) 동시에 또한 스윙 드러머 이상으로 유연하게 베이스 드럼을 계속해서 치는 수법을 첨가했다. 또그와 맥스 로치는 스네어 드럼을 쳐서 관악기 연주에 악센트를 주었다, 그들의 연주에서 fill은 그들과 즉흥 연주자간의 교류로 밥 드러머들은 단순한 타임 키퍼는아니었다.
밥 드러머, 특히 맥스 로치는 스윙 드러머 이상으로 악기에 정통해 있었다. 악기 연주 테크닉의 향상은 밥 플레이어 전반에 나타난 것이지만 리듬 섹션에있어서는 그것에 의해 그룹의 사운드가 확충되고 또 보다 강력한 연주를 추진할수 있게 되었다. 많은 밥 작품은 매우 빠르게 연주되어 평균적인 템포는 스윙에 비해 훨씬 속도가 증가했다. 밥 드러머는 그러한 템포에서도 여유를 갖고 연주할 수있도록 테크닉이 더욱 요구되었다.
밥 시대의 작, 편곡가(ComposerArrangers)
태드 다머-론(Tadd Dameron 1917--1965)-
밥에서 인 기가 있던 작곡가의한 사람에 피아니스트인 태드 다메론이 있다. 그의 작품에는 폭넓은 음역이 사용되었고 팝의 코드 진행에 기본을 둔 곡이 많았으며(예를 들면 (What Is T us ThingC래ed Lov쓰의 코드진행을 기본으로 한 (Hot House)),또중간정도규모의 밴드(medium-siZed ban인를 위한 편곡을 많이 썼다. 다메론은 작은 밴드에서 빅 밴드사운드를 만드는 데 뛰어났으며, 편곡은 두꺼운 느낌과 리드믹한 밥 피아노 스타일의 보이싱을 갖고 있었는데, 그 보이싱의 음역은 3옥타브 내에 들어가 있다.
다메론 편곡의 콘셉트는후에 베니 골슨-지지 그라이스(Gi Glyce)-선 라등의 작품에 계승되고 있다. 다메론의 (Hot House), (Our Delight), (Good Ba t), (Ladysid>등의 곡은 밥 뮤지션에 매우 인기가 있었다. 1956년에 테너 색소폰 주자 존콜트레인은 다메론의 매혹적인 발라드 (On a Misty Night), (Soultran쓱 등을 포함한 다메론의 곡집 앨범 'On a Misty Nlght_l을 만들었다. 다메론은 훌륭한 송라이터였다. 그의 (If You Could See Me Now)는 서정적인 곡으로 사라 본이 노래하기도했다.
존 루이스(John Lewis 1920---
디지 길레스피 빅 밴드에는 훌륭한작곡가가 있었다. 길 풀러 -조지 러셀-존루이스, 그리고길레스피 자신이다. 그중에서도 피아니스트 존 루이스는 재즈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캄보 모던 재즈 쿼텟(ModemJazz Quartet)에서 4반세기에 걸친 활약을 하기 전에 작곡가로서 길레스피 악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길레스피 악단에 만들어 준 루이스의 작품에서 최고의 작품으로는 (Two Bass Hit)((La Rond쏙라고도 알려져 있다)과 (Toccata forTrumpet andOrchestr코를 들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Django), (Ska ilg m Cen-tral ParlS등 MJQ에서의 작품이 유명하다.
루이스의 작곡에서 흥미로운 것은 클래식과 재즈의 결합으로 이 스타일을'Third◎Team music'이라고 하며, 클래식 음악의 특색과 재즈의 임프로비제이션이나 재즈 필링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MJQ는 종종 ◎ ird Stream'의 곡을 연주했다. 'ThirdTeam에 관심을 보인 다른 작곡가로는 군터 슬러(GuntherSchuller)가 잘 알려져 있는데, 그가 특별히 MJQ를 위하여 쓴 (Concertino for JazzQuartet andOIchestr쏘는 특히 유명하다.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결합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재즈의 모든 시대의 밴드 리더와 작곡가에게 영향을 미쳤다[1920년대의 폴화이트맨, 3O년대의 아티 쇼, 40년대 초기의 듀크 엘링튼과 존 루이스, 1950년대초기의 찰스 밍거스,군터 슬러 ,스탄 켄튼-존 루이스-조지 러셀-지미 쥬프리(Jimmy GiUffre),마일즈 데이비스-길 에반스, 60년대 및 70년대의 돈 엘리스 빅밴드 등).1952년에 존 루이스와 원래 길레스피 악단의 사이드맨이었던 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밴드는 당초 'The Milt Jackson Quartet'으로불리웠지만그후 곧 'TheModem JaZZQuartet 으로 고쳐졌다.
비브라하프 주자인 밀트 잭슨(Milt Jackson),피아니스트 존 루이스, 베이스 주자 퍼시 히스(Percy Heath),드러머 케니 클락은 밥 한가운데 억제된 쿨한 사운드를 창출했다. 1955년에 케니 클락이 빠지고 대신코니 케이(Connie Kay)가 멤버로 들어갔다. MJQ는 몇 년 동안 재즈 잡지의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뛰어난 연주와 밴드 운영에 의해 콘서트홀에서 연주한사상 최초의 재즈 그룹이 되었다. MJQ는 섬세함과 세련되고 위엄이 넘치는 실내악적 사운드를 갖고 있었다.
밀트 잭슨(Milt Jackson 1923---
디지 길레스피 그룹의 뛰어난 존재였던 밀트 잭슨은 모던 재즈의 주도적인 비브라하피스트로서 1950년대부터 주목을받았다. 1960년대가 되어 게리 버튼(Gary Burton)과 바비 허처슨(BobbyHutcherson)이 등장하기까지 비브라하프는 '그만의 악기 '로 느껴졌다. 잭슨 -버튼,그리고 허처슨은 제각기 개성적인 연주를 했다. 잭슨은 1950년대 후기와 60년대의초기 재즈계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기계적으로 타악기적인 비브라하프라는 악기를 잭슨은 따뜻한 사운드로 이끌어내는 데 노력했고, 비브라토의 빠르기를(그는특히 느린 비브라토를 사용했다) 주의 깊게 조절하면서 블루스조의 멀로디를 쳤다.
그는 테너 색소폰 주자의 비브라토와 비브라하프의 비브라토의 관계에 주의를기울였다. 그의 라인은 매끄럽고 우아하여 각각의 프레이즈는 실로 교묘하게 이어져 합척졌으며, 이해하기 쉽고 멜로딕하게 실로 멋지게 스윙했다. 잭슨의 스타일은 후배에 대한 영향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재즈 트럼펫이나 플루트 주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잭슨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비브라하프로 아름답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임프로바이저이다.
피아니스트인 존 루이스와 비브라하프 주자 밀트 잭슨은 때에 따라 대위법에서의 임프로바이즈를 시도했는데, 이 임프로비제이션에서는 서로 자극을 받으면서두 개의 라인이 각각의 아이디어로 나아갔다. 또 루이스는 마치 전에 악보에 씌여져 있는 것처럼 잭슨의 라인에 잘 맞추어 연주했다. 한편 잭슨은 루이스 외에 셀로니어스 몽크와도 훌륭한 연주를 하였다. 루이스와 몽크 두 사람은 때때로 유연성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재즈계에서 가장 신선하고 독창적인 피아니스트였다.
비브라하프
비브라하프(Vlbraharp)는 건반 아래에 늘어진 관예 의해 마림바나 큰 실로폰처럼 보인다. 연주 방법은 비슷하지만구조는 다르다. 비브라하프의 건반은 금속이고 실로폰과 마림바는 나무이다. 비브라하프의 공명관은 마림바와 같지만각각의 관에는 전기 모터로 회전하는 원반이 붙어 있다. 회전하는 원반은 서스틴(sUs토눈을 걸어 음에 울림을 주고 또음을 진동시켜 비브라토 효과를 번다.
이 비브라토의 음은 우리들의 귀에 교대로 전파해 들어온다. 비브라하프에는 로터 모터(rotormotor)에 붙어 있는 다이얼을 조절함으로써 비브라토를 콘트롤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또 비브라하프는
푸트 페달로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음을조절한다.
밥 피아니스트(Bop Pianist)
밥 스타일의 발전에 따라 재즈 피아노도 임프로비제이션에 있어서 트럼펫이나색소폰의 수준에 도달했으며, 단순히 밴드와 함께 연주할 뿐 아니라 콤핑을 요구하게 되었다. 재즈 피아노의 종래 스타일에서 생각하면 밥 피아니스트의 스타일은실로 특이한 것이었다. 그들은 얼 하인즈나 테디 윌슨의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았다.
밥 피아니스트는 부기우기나 스윙 피아노에서 잘 사용되었던 스트라이드 주법에서의 왼손의 베이스 기능을 거의 쓰지않게 되었고, 이 새로운 왼손 연주 스타일은 그 후 몇 십년 동안이나 재즈 피아노의 특징으로서 발전해 갔다. 버드 파웰은주어진 코드를 왼손으로 연주할 경우 구성음을 생략하며 쳤는데 즉 왼손은 3성이나 4성 코드 대신에 2성 코드를 쳤다. 이 두 음은 코드 진행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되었다(통상 이 2성은 코드의 근음과 7도의 음으로 구성되었다).
밥 피아니스트는음악의 전개를 이해하고 재치가 풍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또 밥 관악기 주자의 임프로비제이션과 같이 할 때에는 보다 효과적인 솔로가 요구되었다. 그들은버드나 디지의 하모니와 리듬에서의 혁신적인 면을 이해하고 솔로 주자의 콤핑을하기 위해 그들의 연주에 호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밥 피아니스트는 상상력이풍부한 리드미컬한 솔로와 코드 진행으로 그룹 전체의 연주를 진행시키며 영감을주었다.
버드 파웰(Bud Powell 1924--1966)-
버드 파웰은 색소폰 주자에 있어서의 버드나 트럼펫 주자에서의 디지와 같이 피아니스트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퐈웰은 아트 테이텀이나 냇 킹 콜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테이텀 이상으로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 창조성이 높은 왼손의 움직임을 들려 주었다. 최초(1950년대 후반 이전) 파괼은 버드나 디지의 연주에 어울리는 피아노 솔로를 창조하여 밥의 싱커페이트하는 리듬을 익히고 힘차게 그의 솔로를 발전시켜 갔다. 그는 얼 하인즈의 옥타브 주법과 아트 테이텀의 복잡하게 손가락을 사용하여 만드는 멜로디 기법을 자기 스타일에 도입했다.
파웰은 1920년대의 제임스 P.존슨과 같이 1940년대부터 50년대에 걸쳐 많은 피아니스트의 모델이 되었으나 1966년에 타계하여 그 활동기간은 짧았다 그는 알 헤이그가 각 레코딩 세션에 얼굴을 내밀게 된 무렵에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알 헤이그(Al Haig 1924--1982)-
헤이그는 어디에서나 인기있는 밥 피아니스트로 파커의 밴드나 스탄 겟츠 밴드 등 많은 톱 그룹과 투어를 했다. 그는 수많은 레코딩을 했고 흐르는 듯한 솔로와 깊은 맛이 있는 콤핑으로 1950년대 중반과60년대 초기의 토미 플라나간이나 60년대의 허비 핸콕과 같이 밥 피아니스트로서의 한 위치를 얻는다. 그가 디지와 1947년에 레코딩했을 무렵은 아직 발전 단계의밥 피아니스트였지만 1949년에 스탄 겟츠와 레코딩을 할 때는 뛰어난 명연주글 들려 주었다. 아이디어를 잃는 일은 그에게는 없었으며 그의 터치는 가볍고 깨끗했고, 또한 발라드 연주도 상당했다, 때로는 매우 화려한 연주도 했지만 언제나 실로직선적인 스윙을 하는 플레이어였다.
조지 쉬어링(George Shearing 1919---
헤이그나 파웰 이상으로 많은 감상자의 지지를 얻은 사람은 조지 쉬어링과 오스카 피터슨, 두 명의 밥 피아니스트이다. 쉬어링은 그가 만들어낸 그룹 사운드로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피아노사운드는 피아노, 기타, 비브라하프, 베이스, 그리고 드럼의 부드럽고 잘 다듬어진 앙상블이다. 쉬어링은 밥 피아니스트에 있어서도 가장 깨끗하고 가벼운 피아노 사운드의 소유자였다. 그의 음악은 실로 세련되어 우아한 밥으로 불리웠다.
싱글 노트 라인(smgle note lin끗과 옥타브 보이싱 라인(octave voiced fin릿에 의한연주에 덧붙여 그는 1940년대 중기의 밀트 버크너가 시도한 록 핸드 스타일긴ock-ed-hands styl핏을 보다 파플러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쉬어링의 보이싱은 버크너 와는 달랐다.
쉬어링은 우아하고 풍부한 하모니의 재즈 피아노 스타일을 갖고 있었으며, 하모니 혹은 옥타브 주법의 앙상블 연주로 코드를 만드는 형태로 멜로디를 만들어 갔다. 베이스와 드럼이 타임을 맞추고 있을 때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비브라하프가같은 음으로 혹은 하모니를 만들어 멜로디를 연주했다. 각각솔로는 앙상블의 fill이나'ending'이 따라와 잘 맞추어졌으며 전체가 잘 스윙하고 억제되어 있었다. 쉬어링은 또 라틴 아메리카의 요소와 밥의 융합을 도모하여 아만도 페
라자(Armando Peraza 는 1954년부터 1964년까지 쉬어링의 그룹에서 퍼커션을 담당하고 있었다.
쉬어링의 베이스 주자 알 맥키본은 쿠바의 드러머 차노 포조와 함께디지 길레스피 빅 밴드에서 아프로 , 쿠바적인 음악을 연주하면서 라틴 아메리칸베이스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맥키본은 페라자를 쉬어링에게 끌어와 페라자와 함께 라틴 리듬과 쉬어링의 스타일을 융합하는 데 일역을 담당했다. 페라자는 단지익사이팅한 것만이 아닌 보다 심오한 그 무엇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기타리스트 척 웨인(Chuck Wayne),조 패스(Joe Pass)-비브라하프의 칼 제이더(Gal Tjader)-게리 버튼, 그외 많은우수한모던 재즈뮤지션이 쉬어링 그룹에서 활약했다. 쉬어링은 또한 흥미로운 많은 곡을 썼는데 어려운 코드 체인지의(Conceptio군은 (Deceptio룬으로 제목이 바뀌었지만 마일즈 데이비스에 의해 2회레코딩되었다, (Local 802 Blue죠는 1940년대 후반과 50년대 초기 뮤지션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뉴욕의 재즈 클럽 '버드랜드(Birdlan련'의 테마송인 쉬어링의(Lullaby of Birdland)는 매우 인기있는 재즈 스탠더드가 되었다.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1925---
오스카 피터슨은 재즈 역사에서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된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다. 그의 굉장한 테크닉과노력은 베이스 주자와 드러머가 간신히 따라갈 수 있는, 믿기 어려운 빠른 템포의연주를가능하게 했다. 피터슨은냇 킹 콜 버드파쇨 아트테이텀 등의 어프로치와는 다른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그는 창작력에 있어서 그들보다 뒤떨어졌지만 박력에 있어서는 그들을 전부 합한 정도의 힘이 있었다. 1950년대에는 호레이스 실버가 히트친 펑키한 가스펠풍의 연주를 자기 스타일에 가미했다. 피터슨의 발라드 연주는 마치 풀 편성 오케스트라와 같다. 그는 압도적인 테크닉으로 건반 전체를 횝쓸고 그 밀어닥치는 힘과 활기는 1940년대 후기 이후까지 조금도 쇠퇴
하지 않았으며 모던 재즈에 있어서 확고한 위치를 지켰다,
밥 클라리넷 주자(Bop Clarineter)
클라리넷은 모던 재즈에서는 스윙 시대와 같이 인기있는 악기는 아니었다. 밥클라리넷 주자의 이름을 꼽는 일은 밥 색소폰 주자나 밥 트럼펫 주자의 이름을 대는 정도의 쉬운 일이 아니다. 버디 디프랑코-토니 스코트(Tony Scott)-스탄 하셀가드(Stan Hass티pard)등은 밥에 클라리넷을 도입하려고 시도했지만 대단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밥 기타리스트(Bop Guitarist)
기타는 밥 시대의 리듬 섹션의 멤버로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솔로 악기로서 활약했다. 버드와 디지에 의해 리드된 밥 스타일은 곧 다른 악기 플레이어에게도 이해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기타리스트에 많은 밥 플레이어가 등장한 것은 비교적늦은 시기였다. 가장 강력한 밥 기타리스트는 1940년대 중반의 발전 시기보다도 40년대 후기와 50년대 초기에 더욱 두드러졌다. 지미 레이니(Jimmy Raney)와 탈 팔로우(Tal Farlow)는 뛰어난 밥 기타리스트였다. 레이니는 스탄 겟츠와 몇 장의 매우 인상적인 레코드를 만들었으며, 팔로우는 레드 노보(Red Norvo)와 함께 레코딩을 했다. 두 사람은 모두 버디 디프랑코의 섹스텟에서 활약했다.
밥 트롬본 주자(Bop Trombonist)
밥 스타일은 특히 고도의 연주 기술이 요구되었으며 슬라이드 트롬본(slidetrombon릿은 매우 어려운 악기였다. 그러한 가운데 두 사람의 뛰어난 트롬본 주자JJ. 존슨과 카이 윈딩은 간단한 밸브 트롬본(valve trombon릿을 사용하지 않았다.
거기에 비해 밸브 트롬본의 명수 밥 브룩마이어는 존슨이나 윈딩과 같이 하이 스피드 스타일건링h-speed styl릿로 연주하지 않고 느리고 하기 쉬운 주법을 더 좋아했다. 브룩마이어도 때로는 스피드감 넘치는 연주를 했지만 대개는 억제된 기분의사운드를 연주했다.
J.J.존슨(James Louis Johnson 1924---
JJ.존슨의 연주는 중후하고 깨끗하여 활력 넘치는 윈딩의 사운드와 비교하면 약간 우울한 것이었다. 그의 연주는 단순했고 스윙을 항상 염두에 두어 비브라토는 조금 사용했다. 트롬본주자이자 리더 겸 작 핀곡가로서 존슨은 1950년부터 60년대의 모던 재즈에 있어서커다란 존재였다. 그러나 70년대 초기에는 재즈 연주에 비해 영화나 TV의 작 -편곡에 집중하였다. 그의 스타일은 50년대부터 60년대의 대부분의 트롬본 주자에 영향을 주었다. 그 외에도 몇가지 모던 재즈 트롬본 스타일이 있지만(밥 브룩마이어스타일, 프랭크 로솔리노(Frank Rosolino)스타일, 러스웰 러드(Ruswell Rudd)스타일, 그리고 지미 네퍼(Jimmy Knepper)스타일 등),역시 JJ.존슨의 스타일이
가장 인기가 있었고 음악성도 높다('First Place_l).
밥테너 색소폰 주자(Bop TenorSaxophonzst)
밥의 테너 색소폰 주자는 그들의 스타일을 두가지 중요한 근원에서 이끌어냈다.하나는 레스터 영과 찰리 파커, 또 하나는 콜맨 호킨스-허셜 에반스-일리노이 자켓 돈 바이어스 등이다.
레스터 영과 찰리 파커의 프레이즈를 모방하여 그대로 연주하는 플레이어도 있었지만 창조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는 독자적인 아이디어에몇가지 요소를 혼합했다. 어느 누구도 파커의 재능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몇 사람은 소니 롤린스와 존 콜트레인의 기본적인 부분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밥 테너 색소폰 주자는 몇가지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덱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톤의 차이에 의한 분류(imension of tone)이다. 플레이어 중에는 가벼운 톤을 좋아하는 사람과 무겁고 어두운 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가벼운 혼의 플레이어에는 스탄 겟츠, 허비 스튜워드 , 알렌 이거, 브류 무어나 약간 뛰의 스타일(WestCoas꾸의 플레이어들, 즉버디 콜레트(Buddy Collette)-빌 퍼킨스-밥쿠퍼-리치
카뮤커 등이 있다. 그리고 무거운 톤의 플레이어에는 덱스터 고든 -진 아몬즈 -럭키 톰슨 워델 그레이 ,소니 스티트 등이 있다.
덱스터 고든(Dexter Gordon 1923---
덱스터 고든은 받 테너 색소폰 주자 중 가장 형에 들어맞지 않는 플레이어의 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 변화가 풍부한 멜로디적 고안을 했으며, 프레이즈와 리듬도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그의 톤은 깊고 어둡고 풍부했으며, 그 스타일은 아주 과감했지만 연주 전체는 묵직하고 매우 침착함을 느끼게 했다. 그는 테너 음역 전체를 사용했지만 특히 저음역 쪽을 좋아했다.
고든은 후에 하드 밥 테너로 불리워진 많은 색소폰 주자들이 좋아하던 플레이어였는데 그 중에는 존 콜트레인도 있었다. 콜트
레인이 1950년대 초기에 쟈니 호지스나 디지 길레스피와 레코딩한 것은 고든과 비슷한 사운드였다, 고든은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훌륭한 레코딩 경력을 갖고 있으며 40년이 지나도 깊이와 스윙감을 잃지 않고 있다.
워델 그레이(Wardell Gray 1921--1955)-
워델 그레이는 자주 고든과 비교된다. 두 사람이 자주 공연했고 서로가 밥 테너의 최고의 연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