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몸을 붙이고 사는 주거 공간을 디자이너 최시영은 17년 동안 생각해 왔다. 그가 만든 집에는 문화와 예술적인 가치들이 공존하고, 즐거움의 요소가 있으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집은 머무르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한다고 최시영은 말한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들. (주)애시스를 이끌면서 그가 디자인한 공간은 말랑말랑한 스펀지처럼 부드럽고 편안하다. 그리고 물을 서서히 빨아들이듯 사람의 감정을 사로잡는 힘이 느껴진다. 이는 그가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불어넣은 감성들이 뿜는 매력이다.
심플함에 초점을 두었던 그의 공간을 두고 처음에 사람들은 ‘최시영의 공간은 갤러리 같다’, ‘차갑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미니멀’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텅 빈 듯하지만 작품들이 뿜는 기묘한 기운들로 가득 차 있는 갤러리 공간. 그곳은 우리를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상상의 여행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예술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주거 공간 안에 두었다. “그림이나 조각이 없으면 완성이 안 돼요. 작업 초반부터 ‘여기엔 그림이, 저기엔 조각품이 놓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염두해 두죠.” ‘한 집, 한 그림 걸기 운동’이 들려오는 것이 최근 일인데, 그보다 앞섰던 그의 생각들이 현실에 자연스럽게 흡수될 리 없었다. 건설, 분양하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신(新)’ 개념들을 이해시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며 그는 잠시 과거를 회상한다.
1990년대 초, 일반 개인 주택을 의뢰하는 고객들은 특정된 계층이었다. 그들이 집을 전문가에게 맡겼던 이유가 꼭 물질적인 풍요로움만은 아니라고 한다. 거기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앞선 욕구와 취향이 있었던 것. 클라이언트의 집을 디자인해 주고 나서 1백 가지가 넘는 ‘하자’ 리스트를 받은 기억을 떠올린다. 그 항목들을 일일이 지워가면서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1991년부터 7년간 월간지 을 통해 무료 개조 디자인 작업을 열심히 했다. 좋은 일이기도 했지만, 양질의 주거 문화를 일반 대중에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1 (좌)‘즐거움’이라는 그의 주거 개념에서 비롯된 ‘패밀리 룸’. 그가 디자인한 작품들마다 마주치는 곳으로 가족의 성격에 따라 다목적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는 이곳에 모로코의 주거 방식인 ‘리야드’를 응용, 이국적인 체험의 공간으로 완성했다. 위브 the state, 1999.
(우) 한국 전통 가옥에 있는 마당을 아파트 공간 안으로 끌어왔다. 시공이 만나는 관조의 장소인 마당은 동선 안에서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준다. SK view, 2004∼2005.
2 침실은 부부가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은 즐거운 공간이 되어야 한다. 공간 디자인은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페치카와 낮은 의자는 그들의 은은한 담소를 이끌어낸다. 미켈란(A type), 2003∼2004.
3 책에 대한 향수를 맡아보자는 취지 아래 시행 중인 ‘북 퍼퓸’ 프로젝트. 디지털에서 잠시 벗어나 아날로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책은 컴퓨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가 유달리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풍림 i want, 2005.
4 그는 공간을 통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 한다. 물이 가져다주는 순환의 에너지를 담은 디자인. 미켈란(B type), 2003∼2004.
아파트 분양가가 자율화되었던 1998년 이후, 아파트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뭔가 다르고 새롭게 다가왔던 그의 디자인은 건설 회사들에게 단비가 되어 주었고, 주거 문화의 대중화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었다. 게다가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서 주거 공간에 대한 개인의 욕구가 높아지던 때이기도 했다. 1999년, 그가 기획 및 내부 설계를 했던 도곡동 타워 팰리스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우리나라 주거 환경의 터닝 포인트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아파트의 동선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편하지만 반면 많은 것을 잃는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동선에 대한 고정관념은 버리고, 잃은 것은 되찾되 동선 안에서 다이내믹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 또한 주거 공간에 처음으로 그가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 컨셉트의 일환으로 ‘패밀리 룸’을 만들었다. 자녀들이 유학 중이거나 결혼으로 분가하게 되면, 방이 남아돈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독립적인 방 대신, 가족의 특성에 따라 다용도로 쓸 수 있는 빈 공간, 즉 작은 거실 같은 곳을 만들었다. 이곳은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 될 수도 있고, 서재 또는 취미활동을 위한 작업실이 될 수도 있다. 그의 디자인은 공간을 위한 공간이 아닌, 실제로 사는 사람들의 욕구를 능동적으로 이끌어 내는 커다란 그릇인 것이다.
주거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예술적 가치, 문화, 즐거움의 감성을 담으려던 그의 생각과 맞아 떨어졌던 것일까? 이제 ‘최시영 공간’은 하나의 스타일이 되어 많은 마니아 층을 이끌고 있다. 문을 열면 시공간이 공존하는 한국식 마당이 펼쳐지기도 하고, 모로코|인도 등 여행을 통해 마음으로 느낀 이국의 문화를 접목시키기도 한다. 또한 그는 문화 코드에서 더 나아가 ‘케어’의 개념까지 고려한다. 집은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물’에 닿았고, 공간 안에 물이 흐르도록 했다. 물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순환의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재 공간을 주목한다. 디지털 방식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책을 환기시키고 지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이다.
이제 그는 디자이너 인생 스무 해를 바라본다. 주거 환경을 이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강한 의무와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공간을 좋아할 순 없다고 말한다. 이제 주거 공간이 되었든, 상업 공간이 되었든 ‘자신의 공간을 누가 만들어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취향과 컨셉트에 따라 디자이너를 개인이 직접 고르는 시대가 온 것이죠. 따라서 자신만의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라며 공간 디자인에 대한 의식과 감각을 이제 개개인이 키워야 함을 강조한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려면 일단 알아야 됩니다. 호기심과 열정이 있으면 누구나 가능해요. 그렇게 해서 감각을 축적시킨 다음 자신만의 ‘정체성’을 넣는 것이죠. 그것이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최시영 자신의 작업 사진들을 모아 책 한 권으로 구성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공동 주택, 상업 주택 등 이제까지 발표한 공간뿐만 아니라, 공개하지 않았던 개인 주택 디자인까지 일일이 양해를 구해 수록했다. 주거 공간이 내용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내부와 외관 사진, 평면도 등으로 구성, 한국 주거 공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가인 디자인 그룹, 4만 원.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시영씨
자신의 작업 사진들을 모아 책 한 권으로 구성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공동 주택, 상업 주택 등 이제까지 발표한 공간뿐만 아니라, 공개하지 않았던 개인 주택 디자인까지 일일이 양해를 구해 수록했다. 주거 공간이 내용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내부와 외관 사진, 평면도 등으로 구성, 한국 주거 공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가인 디자인 그룹, 4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