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도 언젠가 부터 국내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부쩍 그
이름을 많이 들을 수 있게된 '프랑소와 오종'감독의 유명한(악명
높은??) 영화입니다. 아직 한창 나이임(67년생)에도 불구하고 국
내에서 인기리에 그의 회고전이 몇차례나 열리기도 하였죠. 그것
은 아마도 그의 영화가 가진 도발성이 국내에 크게 어필한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유독 여성팬들이 많은것은 아마도
그의 영화엔 국내에서 (특히 여성에게) 터부시 하는 성에 대한 강
박관념을 깨부시는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쨋건 이 작품은 국내에서 극장개봉한 '8명의 여인들'이나 '스위
밍풀'에 비해 초창기 작품이기 때문에 그 도발성은 두 작품들 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 중산층 가정의 허위의
식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동성애자이기도 한 감
독에게 가정이란 어쩌면 위선의 집합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로 동성애자운동사에서는 기존의 가족제도(특히 가부장적인)가
동성애자의 억압을 부추기고 곤고히 한다고 주장하고있습니다.
어쨋건 평화롭게만 보이는 한 가정에 어느날 아버지가 쥐를 사옵
니다. 그뒤로 부터 아들은 어느날 저녁식사 시간(전형적인 중산층
가적의 식사시간, 테이블에 식구들이 빙 둘러앉아서 미소를 지으
며 하루일을 얘기하는)에 동성애자임을 선언합니다. 딸은 어느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창밖으로 뛰어내려 하반신불구가 됩니다. 그
리고 어머니는 아들을 고치겠다며 근친상간을 합니다. 아버지?그
는 이 집안에서 제일 무기력하며 무가치해보이는 사람입니다. 그
가 사온 '쥐'라는 것은 사실 실제 하지 않는것이라고 보아도 무방
할것입니다. 단지 쥐라는 것은 중산층 가정에서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위선과 위악의 메타포일뿐입니다. 그 허위의식들이
곪아서 터져났을때 가족들은 모든 원인들을 아버지에게 돌려버립
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쥐를 없애라고 하자 그는 쥐를 요리해
먹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쥐가 되버립니다. 그리고 그 쥐가 되버린
아버지를 가족 모두 살해해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이제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 속의 '쥐'는
사라진게 아닙니다. 아마도 감독은 가족의 해체만이 그 문제를 해
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 동의하건
하지 않건간에 이 영화는 한번 쯤 보고 생각해볼만한 점이 있습니
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것들의 이면에 또다른 면모가 있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네요.
쥐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에 몇몇 분들은 난해함을 표현하기도
, 몇몇 분들은 조소를 보내기도 한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프란
츠 카프카의 '변신'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저 은유에 불과 한것임을
이해하셔야 할겁니다.
시트콤 (Sitcom, 1998)
갑작스럽게도 언젠가 부터 국내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부쩍 그 이름을 많이 들을 수 있게된 '프랑소와 오종'감독의 유명한(악명 높은??) 영화입니다. 아직 한창 나이임(67년생)에도 불구하고 국 내에서 인기리에 그의 회고전이 몇차례나 열리기도 하였죠. 그것 은 아마도 그의 영화가 가진 도발성이 국내에 크게 어필한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유독 여성팬들이 많은것은 아마도 그의 영화엔 국내에서 (특히 여성에게) 터부시 하는 성에 대한 강 박관념을 깨부시는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쨋건 이 작품은 국내에서 극장개봉한 '8명의 여인들'이나 '스위 밍풀'에 비해 초창기 작품이기 때문에 그 도발성은 두 작품들 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 중산층 가정의 허위의 식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동성애자이기도 한 감 독에게 가정이란 어쩌면 위선의 집합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로 동성애자운동사에서는 기존의 가족제도(특히 가부장적인)가 동성애자의 억압을 부추기고 곤고히 한다고 주장하고있습니다. 어쨋건 평화롭게만 보이는 한 가정에 어느날 아버지가 쥐를 사옵 니다. 그뒤로 부터 아들은 어느날 저녁식사 시간(전형적인 중산층 가적의 식사시간, 테이블에 식구들이 빙 둘러앉아서 미소를 지으 며 하루일을 얘기하는)에 동성애자임을 선언합니다. 딸은 어느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창밖으로 뛰어내려 하반신불구가 됩니다. 그 리고 어머니는 아들을 고치겠다며 근친상간을 합니다. 아버지?그 는 이 집안에서 제일 무기력하며 무가치해보이는 사람입니다. 그 가 사온 '쥐'라는 것은 사실 실제 하지 않는것이라고 보아도 무방 할것입니다. 단지 쥐라는 것은 중산층 가정에서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위선과 위악의 메타포일뿐입니다. 그 허위의식들이 곪아서 터져났을때 가족들은 모든 원인들을 아버지에게 돌려버립 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쥐를 없애라고 하자 그는 쥐를 요리해 먹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쥐가 되버립니다. 그리고 그 쥐가 되버린 아버지를 가족 모두 살해해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이제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 속의 '쥐'는 사라진게 아닙니다. 아마도 감독은 가족의 해체만이 그 문제를 해 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 동의하건 하지 않건간에 이 영화는 한번 쯤 보고 생각해볼만한 점이 있습니 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것들의 이면에 또다른 면모가 있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네요. 쥐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에 몇몇 분들은 난해함을 표현하기도 , 몇몇 분들은 조소를 보내기도 한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프란 츠 카프카의 '변신'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저 은유에 불과 한것임을 이해하셔야 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