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김명정200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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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민혁이가 아팠었다.

1년에 두 번 정도 아프다.

한 번은 감기, 또 한 번은 과로에 의한 기절초풍.

그런데 이번엔 왠일인 지 감기도 아니면서 열이 펄펄 끓었다.

눈만 마주치면 밥밥밥밥 밥타령하던 놈이

물 한모금 안 마시고 잠속으로만 기어들어가니

덩달아 숨이 막히고 피가 멈췄다.

자식이 아프면,

간호하는 시간 보다 아프도록 방치한 부모 자신을 질책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더 길고 따가운 법이다.

일곱살 나이에 스스로 의식주를 거뜬히 해결해온(실상 훈련받은)

민혁이여서, 늘 별 걱정 없을 거라 과신해온 데 대한

벌을 받는 시간.

불에 타는 듯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 새 민혁이가 스르르 눈을 뜨며 말했다.

 

"엄마.......있잖아........... 기념촬영해줘......."

 

뭐어?????????

다 죽어가는 와중에, 왠 기.념.촬.영인가 싶어서 다시 물었더니

대꾸하는 말.

 

"있잖아..... 아프니까 좋아서...."

"뭐? 아퍼서 좋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있잖아.. 난 잘 안 아프니까 아퍼서 좋다고... 엄마도 있고.."

 

자긴 잘 안 아프니까 아파서 좋다는 말.

민혁이의 그 말이 가슴을 콕 찔러왔다.

아프니까 바쁜 엄마가 옆에 있어주고,

아프니까 친구같던 엄마가 아기처럼 품어주고,

아프니까 냉정했던 엄마가 오냐오냐해주는 게

퍽이나 황송했던 모양이다.

 

"알았어 알았어. 찍어줄테니까 최대한 아프게, 포즈 취해봐!"

"그냥 찍어.... 지금 아프단 말야......"

"알았다."

 

찰칵!!

좋아?

그 와중에도 좋았는 지,

힘 없는 얼굴에 봉숭아 꽃물같은 미소가 슬며시 번진다.

그리고 반나절 후,

약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더니 배고파.... 한다.

밥을 차리면서,

이렇게 동작이 빠르고 신이 났던 게 언제였는 지 모르겠다.

 

 

자식

 

 

"야 임마, 맛 있어?"

"......................"

"맛 있냐고?!"

"말 시키지마!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은 거 몰라?"

 

민혁이가 밥을 찾으면,

민혁이가 시건방을 떨면,

그제야 괜찮아진 거다.

그제야 벌을 서던 마음을 내려놔도 되는 거다.

 

"민혁아, 너무 과식하지마. 굶다가 먹는 거 안 좋아."

"언제 과식하게 소고기 사줘봤어? 이건 밥이니까 괜찮아."

 

건방진 새끼. 내 새끼.

조금 살만하니까 또 입만 살아서는.

 

 

자식

 

 

엽기 포즈라고, 너무 얼굴들 찌푸리지 마시라!

하루 종일 얼마나 그리워했던 민혁이의 모습인 지 모른다.

괴물같은 시건방에

괴물같은 엽기춤에

괴물같은 식욕이지만......

이게 진짜 민혁이다.

그 괴물같은 에너지를 내게 뿜어,

괴물같은 삶을 기꺼이 버티고 맞짱뜨게 해주는!

 

"아싸! 나 이제 기분 좋아졌으니까 엄마도 맥주 한잔 해!"

 

기분 좋아졌으니까 엄마도 기분 좋아해, 도 아니고..

기분 좋아졌으니까 엄마도 춤 춰, 도 아니고..

맥주라니. 늘 이 딴 식이다.

그래도...........................

에라, 기분이다. 오늘은 한 잔 땡겨야 겠다.

 

자고로

스님의 행복은 사리를 낳아야 완성되고,

여자의 행복은 자식을 낳아야 완성된다고 했던가.

맞는 말인 거 같다.

 

자식은,

희노애락의 결정체.

슬픔인 채로 행복이다.

가장 독하디 독한, 생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