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전경린

소연200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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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전경린 


여자가 폴짝 뛰었다가 또 폴짝 뛰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묶었던 머리가 풀려 산발이 되었고 얇은 여름 치마의 허리 부분이 내려와 엉덩이가 갈라지는 부위의 살이 드러났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가만히 보니 꽤 긴 붉은색 비닐 테이프가 젖은 길바닥에 찰싹 붙어 있었다. 여자는 붉은 테이프를 경계로 이쪽과 저쪽으로 폴짝 폴짝 뛰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두면 한없이 계속 한다는 것을 인근 점주들은 알고 있었다. 지난 겨울에는 거품을 물고 뒤로 꽈탕 나자빠질 때 까지 계속한 적도 있었다 한다. 그 후로 점주들은 가게 앞에 끄나풀 같은 것이 떨어져 있지 않는지 수시로 살핀다고 혜미가 말했었다. 여자는 보행 신호를 받고 횡단보도를 걷다가도 불현듯 도로의 중앙선을 폴짝 뛰어넘는다 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점주들이 달려 나가 여자를 달랑 들고 나올 때 까지. 버티는 힘이 워낙 완강해서 장정 세 사람은 힘을 합쳐야 들고 나올 수 있었다.

 

그 여자는 부산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십년이 다 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부간의 금슬은 무척 좋았던 모양이었다.

어느 봄날 남편과 유원지에 놀러간다고 집을 나섰다.

둘이 나란히 길을 걷다가 남편이 그녀의 풀어진 운동화 신발 끈을 묶어 주었다. 신발 끈을 다 묶자 여자는 남편의 가슴을 밀어 뒤로 넘어뜨리고 폴짝폴짝 뛰어갔다. 남편이 뒤쫓아 오는 줄로 알고 뛰다시피 걸었던 모양이다. 무인 차단기 내려지는 신호 소리에 여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남편이 무인 차단기가 내려진 철길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남편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휘어진 모퉁이 너머에서 기차 기적 소리를 울리며 나타났다. 남편의 얼굴이 석회처럼 허옇게 질렸다. 남편이 딛고 선 철로에 닥쳐오는 기차 바퀴의 진동이 왕왕왕 전율을 일으켰다. 귀신이 발바닥이라도 붙든 듯 남편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여자도 그 자리에서 못처럼 박혀 버렸다.

쇳덩이 용 같은 기차가 모퉁이를 번개처럼 굴러 왔을 것이다. 굉음으로 지축이 흔들리고 광풍으로 머리카락이 날리고 속도 때문에 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았을 것이다. 수많은 바퀴들이 철로에 불꽃을 튀기고 지나간 뒤,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는 그 뒤에 친정이 있는 이 곳으로 내려왔는데, 금만 보이면 불현듯 폴짝 넘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넘고 나면 어김없이 저쪽에서 다시 넘었기 때문에 한번 시작된 금 넘기는 스스로 끝을 내지 못했다. 가까이 가면 여자의 숨 가쁜 외침이 들렸다.

 

" 넘어, 여보야. 어서 넘어서 와. 내가 여기 있잖아. 이쪽으로, 이쪽으로, 금만 넘으면 사는 데. 여보야, 이렇게 폴짝, 이렇게 폴짝, 뛰어 넘어. 빨리. 제발, 제발, 넘어. 여보야 넘어 서...... 어서, 어서! 이렇게 폴짝..... "

 

바로 앞 빵가게의 점주가 나와 슬그머니 붉은 비닐 끈을 손끝으로 잡아끌고 들어가 버렸다. 여자는 문득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잃고 우두커니 서 버렸다.

 

전경린 -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내가 바이킹을 타는 이유는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