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영화평을 끄적여본지가 얼마만인지를 모르겠다. 부족한 실력으로 영화를 보고 평(내 글이 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인지는 의문...)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기에 그 동안은 귀찮아서 한 두 줄짜리 평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하지만 괴물은 2시간을 그냥 즐기고 넘어가기가 상당히 찝찝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무언가를 이야기가 하고 싶어 미치게 만드는 힘 이것이 봉준호 감독의 힘일까?
괴물의 포커스는 포스터에도 쓰여 있듯이 가족의 사투이다. 다시 말하면 괴물과 대한민국, 혹은 서울시와의 한판 전쟁이 아닌 괴물과 하류층 가족간의 사투이다. 시점을 한 가족에게 머무르게 하는 미시적 시각은 스필버그의 우주 전쟁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인터넷을 돌다가 어떤 사람이 봉준호가 괴물을 통해 스필버그처럼 가족주의 코드를 들고 나왔다며 맹렬히 비판하는 글을 보았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좁은 시야에서 바라본 것이다. 비록 영화가 가족 중심으로 서술된다고 할지라도 영화에서 보여지는 가족은 봉준호 감독이 하고 싶었던 더 큰 이야기를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는 미군이 한강에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시퀀스에서 낚시꾼들을 통해 한강에서 무언가가 자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있었던 맥팔랜드 사건이 영화 속 괴물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봉준호는 미국을 단지 원인 제공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없는 바이러스를 찾겠다고 희생자들을 검사하고 나선 미군의 모습이 없는 생화학 무기 찾겠다고 나선 부시의 모습과 오버랩된 것은 나 혼자 뿐일까? 어쨌든 괴물은 미국이 만들었지만 그들은 근본적 해결보다는 한 발짝 뒤에서 그 광경을 즐기고 있는 존재로 그려졌다.
봉준호의 냉소는 비단 미군에만 그치지 않는다. 싸늘한 풍자는 한발 나아가 사회 시스템 모두에게 향한다. 경찰, 의사 그 누구도 가족의 하소연에 귀기울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외침을 해결해주기에 거대한 정부 시스템은 너무도 복잡해(?) 현서의 생사를 알아만 보는것도 귀찮은 것이었다. 결국 봉준호는 전작 살인의 추억과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사태를 악화시키고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사회 시스템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화성 연쇄 살인범은 당시의 말도 안 되는 수사방식 때문에 잡을 수 없었고 현서는 정부의 무책임함 때문에 죽었다.
하지만 스토리 텔링이 거의 완벽에 가깝던 전작과 달리 이번 괴물에서는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가 눈에 밟히는 것도 사실이다. 내내 의문이 들었던 것은 한강에 괴물이 출몰해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사실을 정부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이러스의 원인을 찾는데 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물론 미군이 바이러스 발견에 혈안이 되어있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는 해보지만 영화 속에서 정부도 미국도 괴물을 잡으려는 움직임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주제를 부각시키려다 보니 약간은 억지를 부렸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이 갖는 의의는 크다. 그것은 단지 연일 흥행기록을 다시 쓰고 있는 것에만 지나지 않는다. 헐리웃의 전유물로만 알고 있던 괴수장르에 우리의 목소리를 덧입혀 미국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묘한 통쾌함이다. 그들의 오만방자함을 마음껏 희화하고 조롱했다는 데에서 오는 짜릿함... 그것이 괴물의 가장 큰 재미이다.
괴물 - 상업성으로 포장된 정치 영화
경고
스포일러 주의,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읽지 말길 권합니다.
이곳에 영화평을 끄적여본지가 얼마만인지를 모르겠다. 부족한 실력으로 영화를 보고 평(내 글이 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인지는 의문...)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기에 그 동안은 귀찮아서 한 두 줄짜리 평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하지만 괴물은 2시간을 그냥 즐기고 넘어가기가 상당히 찝찝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무언가를 이야기가 하고 싶어 미치게 만드는 힘 이것이 봉준호 감독의 힘일까?
괴물의 포커스는 포스터에도 쓰여 있듯이 가족의 사투이다. 다시 말하면 괴물과 대한민국, 혹은 서울시와의 한판 전쟁이 아닌 괴물과 하류층 가족간의 사투이다. 시점을 한 가족에게 머무르게 하는 미시적 시각은 스필버그의 우주 전쟁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인터넷을 돌다가 어떤 사람이 봉준호가 괴물을 통해 스필버그처럼 가족주의 코드를 들고 나왔다며 맹렬히 비판하는 글을 보았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좁은 시야에서 바라본 것이다. 비록 영화가 가족 중심으로 서술된다고 할지라도 영화에서 보여지는 가족은 봉준호 감독이 하고 싶었던 더 큰 이야기를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는 미군이 한강에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시퀀스에서 낚시꾼들을 통해 한강에서 무언가가 자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있었던 맥팔랜드 사건이 영화 속 괴물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봉준호는 미국을 단지 원인 제공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없는 바이러스를 찾겠다고 희생자들을 검사하고 나선 미군의 모습이 없는 생화학 무기 찾겠다고 나선 부시의 모습과 오버랩된 것은 나 혼자 뿐일까? 어쨌든 괴물은 미국이 만들었지만 그들은 근본적 해결보다는 한 발짝 뒤에서 그 광경을 즐기고 있는 존재로 그려졌다.
봉준호의 냉소는 비단 미군에만 그치지 않는다. 싸늘한 풍자는 한발 나아가 사회 시스템 모두에게 향한다. 경찰, 의사 그 누구도 가족의 하소연에 귀기울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외침을 해결해주기에 거대한 정부 시스템은 너무도 복잡해(?) 현서의 생사를 알아만 보는것도 귀찮은 것이었다. 결국 봉준호는 전작 살인의 추억과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사태를 악화시키고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사회 시스템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화성 연쇄 살인범은 당시의 말도 안 되는 수사방식 때문에 잡을 수 없었고 현서는 정부의 무책임함 때문에 죽었다.
하지만 스토리 텔링이 거의 완벽에 가깝던 전작과 달리 이번 괴물에서는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가 눈에 밟히는 것도 사실이다. 내내 의문이 들었던 것은 한강에 괴물이 출몰해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사실을 정부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이러스의 원인을 찾는데 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물론 미군이 바이러스 발견에 혈안이 되어있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는 해보지만 영화 속에서 정부도 미국도 괴물을 잡으려는 움직임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주제를 부각시키려다 보니 약간은 억지를 부렸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이 갖는 의의는 크다. 그것은 단지 연일 흥행기록을 다시 쓰고 있는 것에만 지나지 않는다. 헐리웃의 전유물로만 알고 있던 괴수장르에 우리의 목소리를 덧입혀 미국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묘한 통쾌함이다. 그들의 오만방자함을 마음껏 희화하고 조롱했다는 데에서 오는 짜릿함... 그것이 괴물의 가장 큰 재미이다.
written by 민물장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