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5월이었지요 teda중심호텔에서 근무하다가 서구 공장 임시사무실로 이전하여 식당에서 처음 식사를 하게 되었을때입니다. 당시 남경공장 식당관할 사장의 천진공장 식당까지도 연계하여 운영하는 것으로 하고서 남경에서 조선족 아주머니 두분이 오셨지요 나름대로들 열심히 하셨고 저도 제가 주어진 역할과 권한내에서 무자게 잘 해 드렸습니다. 한분은 부부간에 같이 오셨었고 한분은 4살짜리 손주애만 데리고 왔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식당의 정성이 들어간 맛있는 밥을 또한 근무환경의 개선을 위하여 아주머니들은 더불어 직장과 가내의 평온의 시간들을 위하여 제가 너무 오버한것이 아닌가는 모르겠는데 적은돈들여 서로가 마음을 열고서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또한 더불어 다 같이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또한 어떤 저의 소신이기도 하였구요 늘상 사람들이 해오던 습관적인 것들은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미래의 가장의 최고의 중국공장 타이어를 위하여는 서로가 마음을 열고서 습관이 아닌 내가 존재함으로 회사에 이익이 미래에는 전체에게 이익이 라는 모토로 적은 일 하나하나라도 대하곤 했지요 그래서 식당 아주머니들하고도 또한 경비들하고도 또한 기사들하고도 아주 사이좋게 서로가 열심히 도와주고 일했었지요 그때 그 4살짜리 손주하나 데리고 왔었던 식당 아줌마도 최씨였고 성질이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었었고 자부심도 있으셨고 본인은 나중에 한국으로 시집가는것을 생각하고 계시다고 여러차례 술자리도 했엇고 매일매일 회사를 위하여 식당을 위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지요 그러던 작년 7월인가요 자기 아들(김욱성)이 지금 심양에 있는데 여기와서 무슨 할일이 없겠느냐며 직장을 하나 구해줄수 있겠느냐 하며 부탁을 하길레, 더불어 너무너무 착한 아들이라고......... 그래서 일단 오라 했지요 그래서 처음 만난날 물었지요 너 할수 있는게 무엇이냐 나이는 저보다 한살이 어린 그때 서른여덟이었으니까요 운전면허증은 있느냐? 과거에 식당을 했다면 조리사자격증은 있느냐? 둘다 아무것도 없다 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키기를 지금부터 두달의 시간을 줄테니 운전면허증을 따 올수 있겠느냐 ? 면허증을 따 온다면 할 수 있는 일을 주겠다 이렇게 시작을 하였지요 그러다가 제가 8월에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남경에 갔다가 서울에 병원에 갔다가 10월초에 한국에서 들어왔지요 그때 당시는 작은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심양에 갔다고 그러길레 그러면 면허증은 땄다요 물었더니 당연히 땄다고 이야기하길레 그럼 천진으로 오라고 그러세요 해서 김욱성이란 친구가 천진에 내려왔지요 운전면허증 보자 했더니 운전면허증을 가져왔다라구요 그 면허증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내가 의심할 여지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러냐 하고 조그마한 일을 주었지요 그러다 회사상황과 저와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확실히 퇴사를 할 생각으로 마음을 굳히고서 평소에 제가 하고자 했던 물류를 포함한 여행사업,무역등을 준비했지요 그래서 1톤 화물트럭을 한대 구입하였고 그걸 운전하라고 키를 주었지요 웬걸 차량구입한지 20일정도 지났나요 사무실에서 테다를 가다가 신호위반으로 경찰에 걸렸는데 가짜면허증인게 탄로나서 차량을 압수당했다 하네요 그냥 허허 하고 웃어 버렸지요 얼척이 없어서 그래서 정말 웃어버리고 말았지요 네가 정말 형님 하기로 했으면 그러면 됐다 하고 차량은 어떻게 찾으면 된다 하더냐 물었더니 자기의 정식면허증이 내려오면 그때는 구속안되고도 가능하다고 그래서 12월말까지 기다렸고 11월30일자로 저는 금호를 그만두었고 ........... 천진에서 여러가지 상황들을 준비하였지요 가게도 얻고 직원도 구하고 그러면서 12월말에 공항가까이 있는 지금 이글을 쓰고 잇는 한청빈관에 도서대여점 및 한국특산품 /한국식품매장을 열었지요 그러면서 이제 언제쯤 차량이 나오느냐 1월중순이면 나온다 나온다 하고 기다렸지요 그러면서 본인 아들이랑 엄마랑 같이 살 집도 마련해 주었고 최씨 아주머니는 계속 금호식당을 다니고 잇었으니까요. 그런데 1월16일인가 그날은 낮에 잡지사 기자들이랑 이상한 조선족 깡패녀석이랑 낮술을 많이 먹었지요 저녁늦게 깨어났더니 안보이더라구요 전화도 안되고 일주일을 기다렸지요 그리고 상황을 점검했더니 그때 업무용으로 타고 다니던 250cc오토바이하고 핸드폰하고 현금 일부랑 해서 그냥 도망가 버렸더라구요 얼척이 없어서 한달을 기다렸지요 그래도 연락이 없길레 금호식당에서 일하고 잇는 최씨 아줌마를 찾아갔지요 정문앞에서 만났는데 혹시 나한티 두들겨 맞을까봐 정문 경비들이랑 같이 나왔더라구요 만나서 하는 이야기 욱성이 어디있소 청도에 있다고 전화왔어요 그래서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그 훌륭한 아들이 가짜 면허증가지고서 차량을 저렇게 압류당한채로 아직도 차를 못 빼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몰랐어요 정말 미안해요 ................... 하나 더 물었지요 무면허로 심양에서 운전하면서 아주머니랑 같이 식당을 운영했다고 그러던데 그리고 와이프하고는 이혼한 상태이고 심양에서 백수로 도박판만 쫒아다니다가 여기에 왔다고 하던데 이것이 정말 훌륭한 아들이고 그래서 저한테 소개했었습니까.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제 명함주고서 언제든 욱성이 연락되면 전화하고 오라하세요 한번 형동생 하기로 했으면 이렇게 쉽게 끊어지는것이 아닙니다. 하고 이것이 마지막이었지요 이 차량으로 인해 중국사업의 일들이 꾀이기 시작했다고 보면 무리가 없으리라 보여집니다. 직원들 믿고서 사람을 믿고서 여러가지를 벌려놓았는데 앞서의 김욱성이처럼 그냥 조금만 상황되면 가지고 가버리거나 도망가버리거나. 그래서 장옥래나 김욱성이 보면서 느꼈던 심정은 역시 못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의 특색은 정말로 똑 같다. 똑같아. 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저는 아직 나이도 젊고 기회는 많습니다. 답답한 이야기이지만 하나씩 하나씩 타산지석으로 삼아 향후에는 이제는 그러한 실수를 아니하는 것이 또한 참된 경험의 가치이겠지요 정말 못 배우긴 했지만 욱성이 녀석의 말처럼 정말 형님 죽어도 나는 형님것이요 했었고 같이 4개월가까이 생활하면서 술도 마시고 일도 하고 돌아다녔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을 허하게 만든것이 정말 답답할 따름입니다. 1
내가만난중국사람-김욱성과모친
작년5월이었지요
teda중심호텔에서 근무하다가 서구 공장 임시사무실로
이전하여 식당에서 처음 식사를 하게 되었을때입니다.
당시 남경공장 식당관할 사장의 천진공장 식당까지도 연계하여
운영하는 것으로 하고서
남경에서 조선족 아주머니 두분이 오셨지요
나름대로들 열심히 하셨고 저도 제가 주어진 역할과 권한내에서
무자게 잘 해 드렸습니다.
한분은 부부간에 같이 오셨었고 한분은
4살짜리 손주애만 데리고 왔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식당의 정성이 들어간 맛있는 밥을
또한 근무환경의 개선을 위하여
아주머니들은 더불어 직장과 가내의 평온의 시간들을 위하여
제가 너무 오버한것이 아닌가는 모르겠는데
적은돈들여 서로가 마음을 열고서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또한 더불어 다 같이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또한 어떤 저의 소신이기도 하였구요
늘상 사람들이 해오던 습관적인 것들은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미래의 가장의 최고의 중국공장 타이어를 위하여는 서로가 마음을 열고서 습관이 아닌 내가 존재함으로 회사에 이익이 미래에는
전체에게 이익이 라는 모토로 적은 일 하나하나라도 대하곤 했지요
그래서 식당 아주머니들하고도 또한 경비들하고도 또한 기사들하고도 아주 사이좋게 서로가 열심히 도와주고 일했었지요
그때 그 4살짜리 손주하나 데리고 왔었던 식당 아줌마도 최씨였고
성질이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었었고
자부심도 있으셨고 본인은 나중에 한국으로 시집가는것을
생각하고 계시다고
여러차례 술자리도 했엇고 매일매일 회사를 위하여
식당을 위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지요
그러던 작년 7월인가요
자기 아들(김욱성)이 지금 심양에 있는데 여기와서
무슨 할일이 없겠느냐며 직장을 하나 구해줄수 있겠느냐
하며 부탁을 하길레, 더불어 너무너무 착한 아들이라고.........
그래서 일단 오라 했지요
그래서 처음 만난날
물었지요 너 할수 있는게 무엇이냐 나이는 저보다 한살이 어린
그때 서른여덟이었으니까요
운전면허증은 있느냐? 과거에 식당을 했다면 조리사자격증은
있느냐? 둘다 아무것도 없다 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키기를 지금부터 두달의 시간을 줄테니
운전면허증을 따 올수 있겠느냐 ? 면허증을 따 온다면
할 수 있는 일을 주겠다 이렇게 시작을 하였지요
그러다가 제가 8월에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남경에 갔다가
서울에 병원에 갔다가 10월초에 한국에서 들어왔지요
그때 당시는 작은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심양에 갔다고 그러길레
그러면 면허증은 땄다요 물었더니 당연히 땄다고 이야기하길레
그럼 천진으로 오라고 그러세요 해서 김욱성이란 친구가
천진에 내려왔지요
운전면허증 보자 했더니 운전면허증을 가져왔다라구요
그 면허증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내가 의심할 여지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러냐 하고 조그마한 일을 주었지요
그러다 회사상황과 저와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확실히 퇴사를 할 생각으로 마음을 굳히고서
평소에 제가 하고자 했던 물류를 포함한 여행사업,무역등을
준비했지요
그래서 1톤 화물트럭을 한대 구입하였고
그걸 운전하라고 키를 주었지요
웬걸 차량구입한지 20일정도 지났나요 사무실에서
테다를 가다가 신호위반으로 경찰에 걸렸는데
가짜면허증인게 탄로나서 차량을 압수당했다 하네요
그냥 허허 하고 웃어 버렸지요
얼척이 없어서 그래서 정말 웃어버리고 말았지요
네가 정말 형님 하기로 했으면 그러면 됐다 하고 차량은 어떻게
찾으면 된다 하더냐 물었더니 자기의 정식면허증이 내려오면
그때는 구속안되고도 가능하다고 그래서 12월말까지 기다렸고
11월30일자로 저는 금호를 그만두었고 ...........
천진에서 여러가지 상황들을 준비하였지요
가게도 얻고 직원도 구하고
그러면서 12월말에 공항가까이 있는 지금 이글을 쓰고 잇는
한청빈관에 도서대여점 및 한국특산품 /한국식품매장을 열었지요
그러면서 이제 언제쯤 차량이 나오느냐 1월중순이면 나온다
나온다 하고 기다렸지요
그러면서 본인 아들이랑 엄마랑 같이 살 집도 마련해 주었고
최씨 아주머니는 계속 금호식당을 다니고 잇었으니까요.
그런데
1월16일인가 그날은 낮에 잡지사 기자들이랑 이상한 조선족 깡패녀석이랑 낮술을 많이 먹었지요
저녁늦게 깨어났더니 안보이더라구요
전화도 안되고
일주일을 기다렸지요
그리고 상황을 점검했더니
그때 업무용으로 타고 다니던 250cc오토바이하고
핸드폰하고 현금 일부랑 해서 그냥 도망가 버렸더라구요
얼척이 없어서 한달을 기다렸지요
그래도 연락이 없길레 금호식당에서 일하고 잇는
최씨 아줌마를 찾아갔지요
정문앞에서 만났는데 혹시 나한티 두들겨 맞을까봐
정문 경비들이랑 같이 나왔더라구요
만나서 하는 이야기
욱성이 어디있소 청도에 있다고 전화왔어요
그래서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그 훌륭한 아들이
가짜 면허증가지고서 차량을 저렇게 압류당한채로 아직도
차를 못 빼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몰랐어요 정말 미안해요 ...................
하나 더 물었지요
무면허로 심양에서 운전하면서 아주머니랑 같이 식당을 운영했다고
그러던데 그리고 와이프하고는 이혼한 상태이고
심양에서 백수로 도박판만 쫒아다니다가 여기에 왔다고 하던데
이것이 정말 훌륭한 아들이고 그래서 저한테 소개했었습니까.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제 명함주고서 언제든 욱성이 연락되면 전화하고
오라하세요 한번 형동생 하기로 했으면 이렇게 쉽게 끊어지는것이
아닙니다. 하고 이것이 마지막이었지요
이 차량으로 인해 중국사업의 일들이 꾀이기 시작했다고 보면
무리가 없으리라 보여집니다.
직원들 믿고서 사람을 믿고서
여러가지를 벌려놓았는데 앞서의 김욱성이처럼
그냥 조금만 상황되면 가지고 가버리거나 도망가버리거나.
그래서 장옥래나 김욱성이 보면서 느꼈던 심정은
역시 못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의 특색은 정말로 똑 같다. 똑같아.
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저는 아직 나이도 젊고 기회는 많습니다.
답답한 이야기이지만 하나씩 하나씩 타산지석으로 삼아
향후에는 이제는 그러한 실수를 아니하는 것이
또한 참된 경험의 가치이겠지요
정말 못 배우긴 했지만
욱성이 녀석의 말처럼 정말 형님 죽어도 나는 형님것이요
했었고 같이 4개월가까이 생활하면서 술도 마시고
일도 하고 돌아다녔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을
허하게 만든것이 정말 답답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