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새로운 해에 광복절을 맞으면 늘 이런 문제와 봉착하게 된다. 그러다가 8.15 하루가 지나면 그냥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흐지부지 되어 버린다.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리는 것이 구경거리가 된 것이 요즘의 세태가 아닌 가 쉽다. 8.15 은 직장인들과 학생들에겐 또 하나의 쉬는 날 일이 된 것도 역시 오래전의 일이다.
공인교육기관인 학교와 가정에서 이런 기본 교육이 이루어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즘에 학교와 가정에서 이런 교육을 시키는 선생이나 부모와 또한 이런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 속 깊은 관심을 가지며 배우려는 학생들은 또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본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한국이 프랑스와 같이 올곧은 국민정서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까닭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대한민국 세상은 일본인들에 빌붙어 온갖 부와 권세를 누린 세력들은 그대로 광복이후 미군이 진주하자 그대로 미국의 묵인 하에 부와 권력을 그대로 승계하였다. 그것은 친미파인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에 의해 김구주석이 암살되고, 일본군 소좌출신인 박정희 정권에 의해 광복군인 장준하 선생이 암살된 사례가 우리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이다.
8.15 해방이 광복군의 자력에 의해 해방이 된 것이 아니고, 미국에 의해 해방이 되면서 북에는 소련이 남에는 미국이 주둔하면서 새로운 이념이 싹텄다. 북에는 공산주의가 남에는 민주주의가 결국은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또 앞으르도 흘러갈 것이다.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은 대부분 친일세력들과 그 후손들이다.
그런 반면 한국사회의 하층민을 이루고 있는 것은 광복군의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엄청난 갭이 있는 현실에서 친일파 청산운운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좀 더디더라도 미국이 한국에 주둔한 후의 흐른 세월과 같이 친미파인 이승만이 집권후 종료된 세월만큼과 일본군 소촤 출신인 박정희가 5.16 군사혁명이후 장기 집권한 세월만큼이나,
그리고 박정희의 친자와도 같은 자식들이 그 양아버지인 박정희에게 배워 그대로 답습했던 전두환과 노태우가 실행한 광주학살 만행에 이은 집권과 정권 종료 때 까지를 버텨온 것은 국민들 이었나 아니면 친일파의 잔존 세력들과 그 후손들이었는가를 생각할 적에 그리고 이후 민주정부라 불렸던 김영삼과 국민의 정부로 불렸던 김대중 정부와 지금의 참여정부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흘러갔지만,
아직도 친일파의 후손들은 한국사회 각 부문에서 득세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들은 열외로 치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들은 과연 친일파 청산에 있어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그리고 광복군의 후손들을 위해 무슨 일을 벌였는가를 생각해볼 적에 그냥 가슴이 꽉 막혀온다. 그런 만큼 광복은 되었으되 진정한 광복은 우리들 가슴에 찾아오지 않은 것과 같이 그냥 미완의 광복으로 남아 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일은 점점 멀어지고 있고,
이런 것을 그대로 고착화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젊은 국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한다. 그리고 어제는 “한국, 일본, 대만” 3국민들을 대상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참여여부를 묻는 여론 조사 질문에 한국민들이 가장 낮았다고 한다. 그럼 반대로 한국과 일본이 또다시 전쟁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를 생각해본다.
일본 자위대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국방력으로 인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럼 그들에게 육탄이든 낮은 화력으로 맞서 대적할 국민들은 누구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논의되고 한 자주국방을 점진적으로 실현 할 기회가 왔는데, 그렇다고 당장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미국에게서 “전시 작전통수권”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역대 전직 국방장관들은 “전시 작전통수권을 미국으로부터 넘겨받아선 안 된다.”고 하며 극력 말리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전 정세균 통일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국방장관을 하면서 무엇을 했는가”를 묻고 있다. 언제쯤 우리는 진정한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될까를 생각하게 된다.
남과 북이 강대국(미국과 소련.중국)에 의해 오랜시간 갈라져 있고, 민주와 공산 이념도 깊게 골이 패인 상황에서 남과 북이 만나는 것도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남과 북을 에워싼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4강대국들의 눈치를 보거나 허가를 받으면서 남과 북이 교류를 해야 하는 것이 2006년 오늘 우리민족에게 처한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의 상황과는 달리 중국은 옛 고구려 땅인 저 광활한 만주벌판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우기며 합리화 시키려 노력(?)하고 있고, 옆으로는 일본이 호시탐탐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영토침해를 노리고 있는데도, 남과 북은 상호 100만이상의 대군이 서로 총부리를 들이대며 대치해 있는 상황이다.
또한 남한 정부 내에선 영남과 호남 그리고 충청도로 4분5열로 나뉘어 서로 자신들만의 좁은 영역을 기반으로 반쪽 대통령을 하겠다고 노는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저 답답한 마음뿐이다. 매회 남과 북의 우여곡절 협상 끝에 보게 되는 남과 북으로 훝어져 있는 이산가족상봉의 눈물은 언제쯤 멈추게 될까?
요즘의 젋은 세대들의 사고방식은 개인편향 주의자들이 대부분이어서 “통일은 되어서 무엇하냐, 오히려 내가 받은 밥그릇의 양만 줄어든다.”며 “전쟁이 나면 모두들 해외로 도피하겠다” 고 하는 생각을 가진 그들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남과북의 당국자들이 어렵게 자리를 마련하여 “남과 북으로 흩어져 있는 칠순 이상의 노인들이 만나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 가슴 뭉클해지는 이들이 불과 열 손가락에 든다”고 생각한다면 무리일까?
내가 너무 감성에 사로잡혀 오버하고 있는 자가당착형 센티멘털한 인간인지 모르겠다. 그런 저런 것들을 다시금 끄집어내어 종합적으로 가다듬으며 생각하게 되는 2006년 광복절을 또 맞이하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광복절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태극기를 어디에 계양할 까,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에서 나 혼자 중언부언 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오늘은 광복절 나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가? 상해임시정부의 김구주석, 안희제, 윤봉길, 이봉창, 나석주, 안중근의사와 이범석, 홍범도, 김좌진 장군과 그리고 이름도 없이 만주벌판에서 일본군의 총탄에 산화한 광복군들 마지막으로 8.15 해방후 상해에서 조용히 비행기 짐칸에 실려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 땅에 환영나온 국민 하나 없이 어느 이름 모를 미군 전용비행장에 조용히 내린 상해임시정부요인들
그분들이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조국 하늘과 그리운 조국 땅에 발을 딛으면서 들이마신 공기와 밟은 땅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셨을까? 조국 하늘에 희뿌옇게 드리운 미국과 소련 강대국에 의해 남과 북 한민족이 이념이 달라지고 결국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고, 그것도 모자라 지금 이 시간에도 “서로 너 죽고 나살자”는 식으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2006년 그 땅에 발 붙이고 사는 후손들의 “나만 잘살면 된다”, “내 아버지가 번돈으로 호의호식 누리는데 누가 뭐라 그러느냐” , “내 돈으로 해외여행도 하고, 내 가족들 편안하게 잘 살게 하는데 무슨 잘못이냐”, “통일은 무슨 통일, 그냥 이대로 살아도 걱정없다” 등의 사고로 똘똘 뭉친 철부지와도 같은 후손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광복 선열들께선 저 하늘나라에서 보시고 무슨 말씀들을 나누실까 를 생각할 적이 심히 부끄럽다.
미완의 광복절을 맞으며 생각한다
미완의 광복절을 맞으며 생각한다.
1.친일파 청산문제
2.친일파 재산환수 문제
3.친일파 후손 현실 득세
4.친일파 세력 및 후손들 기득권 구축화
5.친일파는 3대부자
6.광복군은 3대빈자
7.광복군 유자녀 공무원시험 가점 박탈
우리는 늘 새로운 해에 광복절을 맞으면 늘 이런 문제와 봉착하게 된다. 그러다가 8.15 하루가 지나면 그냥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흐지부지 되어 버린다.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리는 것이 구경거리가 된 것이 요즘의 세태가 아닌 가 쉽다. 8.15 은 직장인들과 학생들에겐 또 하나의 쉬는 날 일이 된 것도 역시 오래전의 일이다.
공인교육기관인 학교와 가정에서 이런 기본 교육이 이루어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즘에 학교와 가정에서 이런 교육을 시키는 선생이나 부모와 또한 이런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 속 깊은 관심을 가지며 배우려는 학생들은 또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본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한국이 프랑스와 같이 올곧은 국민정서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까닭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대한민국 세상은 일본인들에 빌붙어 온갖 부와 권세를 누린 세력들은 그대로 광복이후 미군이 진주하자 그대로 미국의 묵인 하에 부와 권력을 그대로 승계하였다. 그것은 친미파인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에 의해 김구주석이 암살되고, 일본군 소좌출신인 박정희 정권에 의해 광복군인 장준하 선생이 암살된 사례가 우리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이다.
8.15 해방이 광복군의 자력에 의해 해방이 된 것이 아니고, 미국에 의해 해방이 되면서 북에는 소련이 남에는 미국이 주둔하면서 새로운 이념이 싹텄다. 북에는 공산주의가 남에는 민주주의가 결국은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또 앞으르도 흘러갈 것이다.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은 대부분 친일세력들과 그 후손들이다.
그런 반면 한국사회의 하층민을 이루고 있는 것은 광복군의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엄청난 갭이 있는 현실에서 친일파 청산운운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좀 더디더라도 미국이 한국에 주둔한 후의 흐른 세월과 같이 친미파인 이승만이 집권후 종료된 세월만큼과 일본군 소촤 출신인 박정희가 5.16 군사혁명이후 장기 집권한 세월만큼이나,
그리고 박정희의 친자와도 같은 자식들이 그 양아버지인 박정희에게 배워 그대로 답습했던 전두환과 노태우가 실행한 광주학살 만행에 이은 집권과 정권 종료 때 까지를 버텨온 것은 국민들 이었나 아니면 친일파의 잔존 세력들과 그 후손들이었는가를 생각할 적에 그리고 이후 민주정부라 불렸던 김영삼과 국민의 정부로 불렸던 김대중 정부와 지금의 참여정부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흘러갔지만,
아직도 친일파의 후손들은 한국사회 각 부문에서 득세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들은 열외로 치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들은 과연 친일파 청산에 있어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그리고 광복군의 후손들을 위해 무슨 일을 벌였는가를 생각해볼 적에 그냥 가슴이 꽉 막혀온다. 그런 만큼 광복은 되었으되 진정한 광복은 우리들 가슴에 찾아오지 않은 것과 같이 그냥 미완의 광복으로 남아 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일은 점점 멀어지고 있고,
이런 것을 그대로 고착화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젊은 국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한다. 그리고 어제는 “한국, 일본, 대만” 3국민들을 대상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참여여부를 묻는 여론 조사 질문에 한국민들이 가장 낮았다고 한다. 그럼 반대로 한국과 일본이 또다시 전쟁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를 생각해본다.
일본 자위대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국방력으로 인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럼 그들에게 육탄이든 낮은 화력으로 맞서 대적할 국민들은 누구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논의되고 한 자주국방을 점진적으로 실현 할 기회가 왔는데, 그렇다고 당장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미국에게서 “전시 작전통수권”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역대 전직 국방장관들은 “전시 작전통수권을 미국으로부터 넘겨받아선 안 된다.”고 하며 극력 말리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전 정세균 통일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국방장관을 하면서 무엇을 했는가”를 묻고 있다. 언제쯤 우리는 진정한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될까를 생각하게 된다.
남과 북이 강대국(미국과 소련.중국)에 의해 오랜시간 갈라져 있고, 민주와 공산 이념도 깊게 골이 패인 상황에서 남과 북이 만나는 것도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남과 북을 에워싼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4강대국들의 눈치를 보거나 허가를 받으면서 남과 북이 교류를 해야 하는 것이 2006년 오늘 우리민족에게 처한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의 상황과는 달리 중국은 옛 고구려 땅인 저 광활한 만주벌판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우기며 합리화 시키려 노력(?)하고 있고, 옆으로는 일본이 호시탐탐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영토침해를 노리고 있는데도, 남과 북은 상호 100만이상의 대군이 서로 총부리를 들이대며 대치해 있는 상황이다.
또한 남한 정부 내에선 영남과 호남 그리고 충청도로 4분5열로 나뉘어 서로 자신들만의 좁은 영역을 기반으로 반쪽 대통령을 하겠다고 노는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저 답답한 마음뿐이다. 매회 남과 북의 우여곡절 협상 끝에 보게 되는 남과 북으로 훝어져 있는 이산가족상봉의 눈물은 언제쯤 멈추게 될까?
요즘의 젋은 세대들의 사고방식은 개인편향 주의자들이 대부분이어서 “통일은 되어서 무엇하냐, 오히려 내가 받은 밥그릇의 양만 줄어든다.”며 “전쟁이 나면 모두들 해외로 도피하겠다” 고 하는 생각을 가진 그들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남과북의 당국자들이 어렵게 자리를 마련하여 “남과 북으로 흩어져 있는 칠순 이상의 노인들이 만나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 가슴 뭉클해지는 이들이 불과 열 손가락에 든다”고 생각한다면 무리일까?
내가 너무 감성에 사로잡혀 오버하고 있는 자가당착형 센티멘털한 인간인지 모르겠다. 그런 저런 것들을 다시금 끄집어내어 종합적으로 가다듬으며 생각하게 되는 2006년 광복절을 또 맞이하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광복절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태극기를 어디에 계양할 까,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에서 나 혼자 중언부언 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오늘은 광복절 나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가? 상해임시정부의 김구주석, 안희제, 윤봉길, 이봉창, 나석주, 안중근의사와 이범석, 홍범도, 김좌진 장군과 그리고 이름도 없이 만주벌판에서 일본군의 총탄에 산화한 광복군들 마지막으로 8.15 해방후 상해에서 조용히 비행기 짐칸에 실려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 땅에 환영나온 국민 하나 없이 어느 이름 모를 미군 전용비행장에 조용히 내린 상해임시정부요인들
그분들이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조국 하늘과 그리운 조국 땅에 발을 딛으면서 들이마신 공기와 밟은 땅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셨을까? 조국 하늘에 희뿌옇게 드리운 미국과 소련 강대국에 의해 남과 북 한민족이 이념이 달라지고 결국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고, 그것도 모자라 지금 이 시간에도 “서로 너 죽고 나살자”는 식으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2006년 그 땅에 발 붙이고 사는 후손들의 “나만 잘살면 된다”, “내 아버지가 번돈으로 호의호식 누리는데 누가 뭐라 그러느냐” , “내 돈으로 해외여행도 하고, 내 가족들 편안하게 잘 살게 하는데 무슨 잘못이냐”, “통일은 무슨 통일, 그냥 이대로 살아도 걱정없다” 등의 사고로 똘똘 뭉친 철부지와도 같은 후손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광복 선열들께선 저 하늘나라에서 보시고 무슨 말씀들을 나누실까 를 생각할 적이 심히 부끄럽다.
우리들이 지금의 너희들을 위해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