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YLE type=text/css> A:link {text-decoration:none;} A:visited {text-decoration:none;} A:active {text-decoration:none;} A:hover {text-decoration:none;}@font-face {font-family:화이트데이; src:url(http://home.freechal.com/~takejihye/font/whiteday10.wdwf) };body,table,tr,td,select,input,div,form,textarea,font{font-family:화이트데이; font-size=10pt; } 예전에 인터넷하다가 우연히 읽게 된 글이예요... 좀 오래된 글이지만 컴퓨터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해서 올립니다. 어떤 비평가분께서 쓰신 글이라던데... 올해로 정확히 故서지원님이 떠나신지 10년이 지났네요. 팬의 한사람으로써... 서지원님의 이름이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남길 바라며...-------------------------------------------------------------------- 난 요즘 악동클럽이란 프로에 나오는 한 아이가 내눈물모아, 아이미스유 등 서지원의 노래를 자주 불러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인 서지원이란 가수에 대해 뒤늦은 관심을 가지고 원곡을 찾아 들어보게 되었다.96년 1월 서지원이 죽은 당시엔 '아 그냥 가수 하나가 죽었구나.'싶어서 그냥 지나쳤는데, 며칠전 그가 죽음을 결심하고 불렀을 노래들을 들어보고, 난 뒤통수를 맞은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마지막 노래에 자신의 영혼을 바쳤던 것이다. 오디션이란 만화에서도 본 것 같다. 자살을 결심하고 부른 곡엔 영혼이 있다고.. 그게 어떤 가수였더라? 암튼 철없는 열아홉 가수로 생각했던 서지원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눈물모아 라는 곡은 그야말로 명곡이었으며, 동양인은 가지기 힘든 가스펠적 성대와 가성과 두성을 자기 마음대로 넘나드는 그는 실력있는 가수였다.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 난 그노래를 몇년만에 제대로 다시 들어보면서, 이런 능력있는 가수가 왜 죽어야만 했을까. 음악을 그토록 사랑했다는데 왜 스스로 그런 음악과도 이별을 고해야만 했을까...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서지원 팬사이트를 검색해봤다. 아주 놀랍게도 그가 죽은지 오년이 넘은 지금도 그를 위한 사이트는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죽은 김성재나 김환성,김광석과 같이 기획사나 유가족들이 남아 전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 자리를 지켜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년이 넘도록.. 난 그의 죽음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지만, 그의 팬들의 반응은 이제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식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나에게 메일을 보내왔고, 난 그 메일로 인해 서지원이란 어떤 가수였으며 왜 그가 죽음을 선택했어야만 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의 닭대가리 연예인들과는 달리 어렸을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쭉 미국에서 합창단 활동등을 하며 자랐다고 한다. 피아노는 유치원때부터 배웠으며 모든 건반악기를 능숙하게 다뤘고, 첼로,바이올린을 다루는 실력도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건 미국에서 하버드 다음으로 꼽히는 유씨 버클리대 심리학과에 특례로 합격한 영광을 뿌리치고, 오직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국으로 날아왔던 것이다. 한국에 와서는 김완선인가? 암튼 그사람이 하는 기획사에 천대일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으나 잔심부름만 시키고 데뷔를 안시켜줘서 거기서 나와 미용실등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다 한 기획사 사장의 눈에 띄어 데뷔를 했단다. 그런데 그 기획사에서는 자신이 하고싶던 음악과는 거리가 먼 쇼프로에 나가 생쇼를 할 것을 요구했으며, 신인이었기에 어쨋든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려는 마음에 내키진 않았지만 1집때 쇼프로 엠씨를 보고 했단다. 그는 점점 인기가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그 기획사에서 나오는 신인들은 그 빼고 모두 망하던 터라, 그에게 상당한 부담을 줬다고 한다. 군대에 가야하는데 그 문제로도 압력이 잦았으며, 아무튼 그가 활동할 당시 기획사의 횡포는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기획사의 횡포는 그가 죽은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2집은 성공적이었다. 그가 온 영혼을 바쳐 부른 곡들이었고 완벽한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아 만들어진 곡들이었기에 그리고 어쩌면 그의 죽음때문에 2집이 성공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돈을 전혀 먹이지 않고 당당히 삼개 방송국에서1위를 차지했으며, 그의 음반도 엄청나게 팔려나갔다고한다. 나도 그해 겨울에 길거리에서 내눈물모아를 질리도록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기획사에서는 90만장을 바라보는 그의 앨범판매량을 35만장이라고 속였으며, 그리고 원래는 2집 수록곡이었던 '그때가 좋았어' 라는 곡을 살짝 빼돌려 그가 죽은지 100일을 기념한답시고, 그 곡과 생전의 라이브를 끼워넣어 3집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의 생전 활동사진을 캡쳐해 영상집을 만들어 엄청나게 팔아먹었다. 그의 추모콘서트 역시 성공적이었으며 꽤 많은 수익금이 모여졌다. 그의 유가족들은 그 수익금 모두를 받지 않으며, 서지원을 위한 추모사업에 잘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 사장은 고인의 유가족의 마음이 담긴 그 소중한 돈으로 자기집 냉장고와 가구를 바꿨단다. 그리고 애초 세우기로 약속했던 추모비 역시 입을 쓱삭 닦아버리고, 그를 기리는 소설집과, 영화제작 이야기 역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기획사에서 나온 신인들의 피알용으로 고인이 된 서지원의 이름을 들먹이게 했다는 것이다. " 저희는 서지원 형의 팬이고요,그를 존경합니다" 하는 식으로 떠벌리게 했다는 것이다. 서지원 노래가 뭐 있는지도 모르는 애들한테까지.. 기획사의 횡포가 그쯤 가자 그의 팬들이 항의를 하기 시작했고 그가 죽은지 3년이 지나 더 이상 해먹을게 없다고 판단한 기획사측은 팬들 모르게 기획사 사무실을 이전하고 이름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시중에 남아있는 서지원의 마지막 음반들을 모두 싹 거둬들여 사라졌다고 한다. 나중에 그의 음반을 찾는 사람들에게 돈을 보태서 팔아먹을 수작으로.. 참, 고인을 가지고 그렇게 돈장난을 치다니.. 그가 살았을땐 얼마나 많은 부담을 줬을지 상상이 갔다. 가정의 불화라든가, 2집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거라고는 한다. 연예인이 된 후로 가식적인 인간관계에 속상해했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난 조금은 짐작이 간다.. 그의 유서에도 쓰여 있듯이, 나 혼자서 사무실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내가 이토록 흥분해 그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쓰는 이유는.. 아마 그의 노래를 들어본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그의 노래를 모르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소리바다에서 ' 내눈물모아' 를 검색해보기 바란다. 그럼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했던 한 어린 가수의 죽음이 이해가 갈지도.. 오년이 지난 지금, 하마터면 영원히 아이돌 반짝이스타로 오해할뻔 했던 서지원이란 가수를 다시 알고나서 참 씁쓸했다. -------------------------------------------------------------------------------- 8
故 서지원님을 기억하시나요?
http://<STYLE type=text/css> A:link {text-decoration:none;} A:visited {text-decoration:none;} A:active {text-decoration:none;} A:hover {text-decoration:none;}@font-face {font-family:화이트데이; src:url(http://home.freechal.com/~takejihye/font/whiteday10.wdwf) };body,table,tr,td,select,input,div,form,textarea,font{font-family:화이트데이; font-size=10pt; }
예전에 인터넷하다가 우연히 읽게 된 글이예요...
좀 오래된 글이지만 컴퓨터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해서 올립니다.
어떤 비평가분께서 쓰신 글이라던데...
올해로 정확히 故서지원님이 떠나신지 10년이 지났네요.
팬의 한사람으로써... 서지원님의 이름이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남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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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즘 악동클럽이란 프로에 나오는 한 아이가
내눈물모아, 아이미스유 등 서지원의 노래를 자주 불러
이미 고인이 된지 오래인 서지원이란 가수에 대해
뒤늦은 관심을 가지고 원곡을 찾아 들어보게 되었다.
96년 1월 서지원이 죽은 당시엔
'
아 그냥 가수 하나가 죽었구나.'싶어서 그냥 지나쳤는데,
며칠전 그가 죽음을 결심하고 불렀을 노래들을 들어보고,
난 뒤통수를 맞은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마지막 노래에 자신의 영혼을 바쳤던 것이다.
오디션이란 만화에서도 본 것 같다.
자살을 결심하고 부른 곡엔 영혼이 있다고..
그게 어떤 가수였더라?
암튼 철없는 열아홉 가수로 생각했던 서지원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눈물모아 라는 곡은 그야말로 명곡이었으며,
동양인은 가지기 힘든 가스펠적 성대와
가성과 두성을 자기 마음대로 넘나드는 그는 실력있는 가수였다.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
난 그노래를 몇년만에 제대로 다시 들어보면서,
이런 능력있는 가수가 왜 죽어야만 했을까.
음악을 그토록 사랑했다는데 왜 스스로 그런 음악과도
이별을 고해야만 했을까...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서지원 팬사이트를 검색해봤다.
아주 놀랍게도 그가 죽은지 오년이 넘은 지금도
그를 위한 사이트는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죽은 김성재나 김환성,김광석과 같이
기획사나 유가족들이 남아 전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 자리를 지켜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년이 넘도록..
난 그의 죽음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지만,
그의 팬들의 반응은 이제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식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나에게 메일을 보내왔고,
난 그 메일로 인해 서지원이란 어떤 가수였으며
왜 그가 죽음을 선택했어야만 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의 닭대가리 연예인들과는 달리
어렸을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쭉 미국에서
합창단 활동등을 하며 자랐다고 한다.
피아노는 유치원때부터 배웠으며 모든 건반악기를 능숙하게 다뤘고,
첼로,바이올린을 다루는 실력도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건 미국에서 하버드 다음으로 꼽히는
유씨 버클리대 심리학과에 특례로 합격한 영광을 뿌리치고,
오직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국으로 날아왔던 것이다.
한국에 와서는 김완선인가?
암튼 그사람이 하는 기획사에 천대일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으나
잔심부름만 시키고 데뷔를 안시켜줘서
거기서 나와 미용실등등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다
한 기획사 사장의 눈에 띄어 데뷔를 했단다.
그런데 그 기획사에서는 자신이 하고싶던 음악과는 거리가 먼
쇼프로에 나가 생쇼를 할 것을 요구했으며,
신인이었기에 어쨋든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려는 마음에
내키진 않았지만 1집때 쇼프로 엠씨를 보고 했단다.
그는 점점 인기가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그 기획사에서 나오는 신인들은 그 빼고 모두 망하던 터라,
그에게 상당한 부담을 줬다고 한다.
군대에 가야하는데 그 문제로도 압력이 잦았으며,
아무튼 그가 활동할 당시 기획사의 횡포는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기획사의 횡포는 그가 죽은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2집은 성공적이었다.
그가 온 영혼을 바쳐 부른 곡들이었고
완벽한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아 만들어진 곡들이었기에
그리고 어쩌면 그의 죽음때문에 2집이 성공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돈을 전혀 먹이지 않고 당당히 삼개 방송국에서1위를 차지했으며,
그의 음반도 엄청나게 팔려나갔다고한다.
나도 그해 겨울에 길거리에서
내눈물모아를 질리도록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기획사에서는
90만장을 바라보는 그의 앨범판매량을 35만장이라고 속였으며,
그리고 원래는 2집 수록곡이었던 '그때가 좋았어' 라는 곡을
살짝 빼돌려 그가 죽은지 100일을 기념한답시고,
그 곡과 생전의 라이브를 끼워넣어 3집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의 생전 활동사진을 캡쳐해 영상집을 만들어
엄청나게 팔아먹었다.
그의 추모콘서트 역시 성공적이었으며 꽤 많은 수익금이 모여졌다.
그의 유가족들은 그 수익금 모두를 받지 않으며,
서지원을 위한 추모사업에 잘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 사장은 고인의 유가족의 마음이 담긴
그 소중한 돈으로 자기집 냉장고와 가구를 바꿨단다.
그리고 애초 세우기로 약속했던 추모비 역시 입을 쓱삭 닦아버리고,
그를 기리는 소설집과, 영화제작 이야기 역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기획사에서 나온 신인들의 피알용으로
고인이 된 서지원의 이름을 들먹이게 했다는 것이다.
" 저희는 서지원 형의 팬이고요,그를 존경합니다"
하는 식으로 떠벌리게 했다는 것이다.
서지원 노래가 뭐 있는지도 모르는 애들한테까지..
기획사의 횡포가 그쯤 가자 그의 팬들이 항의를 하기 시작했고
그가 죽은지 3년이 지나 더 이상 해먹을게 없다고 판단한
기획사측은 팬들 모르게 기획사 사무실을 이전하고
이름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시중에 남아있는 서지원의 마지막 음반들을
모두 싹 거둬들여 사라졌다고 한다.
나중에 그의 음반을 찾는 사람들에게 돈을 보태서
팔아먹을 수작으로..
참, 고인을 가지고 그렇게 돈장난을 치다니..
그가 살았을땐 얼마나 많은 부담을 줬을지 상상이 갔다.
가정의 불화라든가, 2집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거라고는 한다.
연예인이 된 후로 가식적인 인간관계에 속상해했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난 조금은 짐작이 간다..
그의 유서에도 쓰여 있듯이,
나 혼자서 사무실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내가 이토록 흥분해 그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쓰는 이유는..
아마 그의 노래를 들어본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그의 노래를 모르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소리바다에서 ' 내눈물모아' 를 검색해보기 바란다.
그럼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했던
한 어린 가수의 죽음이 이해가 갈지도..
오년이 지난 지금,
하마터면 영원히 아이돌 반짝이스타로 오해할뻔 했던
서지원이란 가수를 다시 알고나서 참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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