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이나 특정한 원인에 의해 병이 생긴다는 것은 지금은 너무 자연스러운 이론이지만, 150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낯선 가설이었다. 고대시대 이래 동서를 막론하고 질병은 대체로 몸 전체의 균형이나 조화와 관련된 문제였다. 18세기 중엽까지의 서양의학은 오늘날과는 달리 한의학과 체계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유래된 서양의학은 네 가지 체액의 균형 여부가 건강과 질병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 이론의 요체인 ‘4 체액설’이 그 핵심이었던 것이다. 4 체액설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혈액, 점액, 흑담즙, 황담즙 등 네 가지 체액의 균형과 조화가 유지되는 것이 건강한 상태이며 이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긴다는 학설이다. 당연히 병의 치료보다는 예방과 식이요법 등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음양의 조화와 섭생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기는 한의학과 매우 흡사한 면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자의 치료도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것이 중요한 치료법이었다. 네 가지 체액의 균형과 조화를 회복시키는데 치료가 집중된 것이다. 혈액이 부족하다고 진단되면 혈액을 만든다고 여겨지는 음식이나 약초를 복용하게 해 부족한 것을 보(補)하게 하고, 혈액이 많다 싶으면 사혈(瀉血)로 과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다. 또 점액이 부족하다 싶으면 점액을 만드는 음식이나 약초를 섭취하게 하고, 많다 싶으면 구토나 설사를 유도해 점액을 제거해 균형을 찾도록 했다. 다시 말해 서양의학도 동양의학처럼 전인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부족한 것은 보충하고 넘치는 것은 제거한다는 치료원칙이 한의학에 독특한 것 이라기보다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의학의 특징이었던 것이다.
인류 역사 초기에는 신이 노하거나 악령이 들어 병에 걸린다고 생각했다. 중세 시대에는 질병을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겼고 르네상스 시대엔 달과 별이 인간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전통의학은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과학적 관찰에 그 근거를 두기 보다는 철학적인 바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던 중 르네상스 이후 서양의학에 조그만 혁명이 시작된다. 그 시작에는 ‘해부학 혁명’을 주도한 ‘베살리우스’가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4 체액설 이후 서양에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해부가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화와 균형을 중요시 여기는 의학의 특성상 신체의 구조를 자세하게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체를 신의 완벽한 작품의 하나로 여기게 되는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 하면서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혁명이 시작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해부를 하고 관찰한 신체구조를 자세히 묘사하게 된 것이다. 병리학, 즉 인체의 구조 변화가 질병으로 이어진다든지, 질환 때문에 인체의 특정 부위가 변한다든지 하는 지식은 해부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향후 과학적 관찰을 통한 질병의 기원을 밝히는 병리학의 기초가 되는 해부학적 지식의 바탕을, 바로 베살리우스가 세우게 된다. 의학의 영역이 철학에서, 과학으로 넘어가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현대적 질병관의 핵심은, 특정 질환에는 각각의 특정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정 원인을 발견하고 이를 제거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결국 각각의 질환에는 특정 치료법이 있다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2천년을 지배해온 4 체액설은, 해부학의 등장과 세포의 발견, 병리학의 발전으로 인해, 과학적인 근대의학에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특히 세균의 발견은, 전염병이 세균 때문이라는 세균병인설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특정 질환에는 특정 원인이 있다는 현대의학의 질병관을 더욱 확고히 했다는 의의가 있다.
1665년 로버트 훅이 현미경을 통해 코르크에서 발견한 작은 방들을 세포라고 명명한 뒤, 레벤후크는 더 발달한 현미경을 통해 미생물을 관찰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200년 동안 파스퇴르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균학은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한다.
파스퇴르는 각종 질병이나 부패현상이 특정 세균에 의해 생긴다는 밝히고, 현재도 사용하는 저온 살균법을 개발하는 등 세균학의 창시자가 된다. 이후 코흐는 세균학의 기본이 되는 ‘코흐의 공리’를 제시하게 되는데, 특정 세균이 특정한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특정 질환의 모든 경우에서 그 세균이 발견되어야 하고, 그 세균을 배양할 수 있어야 하며, 배양된 세균을 동물에 투입했을 때 그 질환이 생기고, 그 동물에서 다시 같은 세균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흐는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비롯한 수많은 세균을 발견하고 ‘코흐의 공리’를 확립함으로써 세균학을 반석위에 올려놓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과학적 관찰을 통해, 병의 특정한 원인을 찾아 ,그에 맞는 특정 치료를 제공한다는 현대의학의 기본 전제를 확고히 하게 된다. ‘만병통치약’이나 ‘보약’ 등 전통의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게 된 것이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세균이 발견되면서 수십만년간 인류를 괴롭혀오던 전염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질환은 특정한 원인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특효 치료가 있다는 개념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현대의학의 미시적 관점은 특정 질환에서 특정 원인만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인간이 배제되고 기계적인 치료가 제공되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하지만, 인류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데 엄청난 공헌을 하고 있는 현대의학을 부정할 수는 없다. 수십만 년간 30여년에 불과하던 인간의 수명을, 불과 몇십년 만에 백살에 가깝게 연장시킨 것은 바로 현대의학이기 때문이다.
전통의학은 조화와 균형을 중요시 여기는 등 전인적 관점을 갖고 있지만, 의학의 발전에 있어서 이미 그 실효성을 상실했다. 더욱이 과학적 관찰이 아닌 철학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전통 의학은, 현대의학을 보완하는 의미만 있을 뿐이다. 현대 의학의 한계를 파고든다면서, 마치 현대 의학을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나서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전통의학은 과연 경쟁력 있는가?
세균이나 특정한 원인에 의해 병이 생긴다는 것은 지금은 너무 자연스러운 이론이지만, 150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낯선 가설이었다. 고대시대 이래 동서를 막론하고 질병은 대체로 몸 전체의 균형이나 조화와 관련된 문제였다. 18세기 중엽까지의 서양의학은 오늘날과는 달리 한의학과 체계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유래된 서양의학은 네 가지 체액의 균형 여부가 건강과 질병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 이론의 요체인 ‘4 체액설’이 그 핵심이었던 것이다. 4 체액설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혈액, 점액, 흑담즙, 황담즙 등 네 가지 체액의 균형과 조화가 유지되는 것이 건강한 상태이며 이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긴다는 학설이다. 당연히 병의 치료보다는 예방과 식이요법 등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음양의 조화와 섭생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기는 한의학과 매우 흡사한 면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자의 치료도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것이 중요한 치료법이었다. 네 가지 체액의 균형과 조화를 회복시키는데 치료가 집중된 것이다. 혈액이 부족하다고 진단되면 혈액을 만든다고 여겨지는 음식이나 약초를 복용하게 해 부족한 것을 보(補)하게 하고, 혈액이 많다 싶으면 사혈(瀉血)로 과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다. 또 점액이 부족하다 싶으면 점액을 만드는 음식이나 약초를 섭취하게 하고, 많다 싶으면 구토나 설사를 유도해 점액을 제거해 균형을 찾도록 했다. 다시 말해 서양의학도 동양의학처럼 전인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부족한 것은 보충하고 넘치는 것은 제거한다는 치료원칙이 한의학에 독특한 것 이라기보다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의학의 특징이었던 것이다.
인류 역사 초기에는 신이 노하거나 악령이 들어 병에 걸린다고 생각했다. 중세 시대에는 질병을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겼고 르네상스 시대엔 달과 별이 인간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전통의학은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과학적 관찰에 그 근거를 두기 보다는 철학적인 바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던 중 르네상스 이후 서양의학에 조그만 혁명이 시작된다. 그 시작에는 ‘해부학 혁명’을 주도한 ‘베살리우스’가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4 체액설 이후 서양에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해부가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화와 균형을 중요시 여기는 의학의 특성상 신체의 구조를 자세하게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체를 신의 완벽한 작품의 하나로 여기게 되는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 하면서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혁명이 시작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해부를 하고 관찰한 신체구조를 자세히 묘사하게 된 것이다. 병리학, 즉 인체의 구조 변화가 질병으로 이어진다든지, 질환 때문에 인체의 특정 부위가 변한다든지 하는 지식은 해부학적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향후 과학적 관찰을 통한 질병의 기원을 밝히는 병리학의 기초가 되는 해부학적 지식의 바탕을, 바로 베살리우스가 세우게 된다. 의학의 영역이 철학에서, 과학으로 넘어가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현대적 질병관의 핵심은, 특정 질환에는 각각의 특정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정 원인을 발견하고 이를 제거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결국 각각의 질환에는 특정 치료법이 있다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2천년을 지배해온 4 체액설은, 해부학의 등장과 세포의 발견, 병리학의 발전으로 인해, 과학적인 근대의학에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특히 세균의 발견은, 전염병이 세균 때문이라는 세균병인설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특정 질환에는 특정 원인이 있다는 현대의학의 질병관을 더욱 확고히 했다는 의의가 있다.
1665년 로버트 훅이 현미경을 통해 코르크에서 발견한 작은 방들을 세포라고 명명한 뒤, 레벤후크는 더 발달한 현미경을 통해 미생물을 관찰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200년 동안 파스퇴르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균학은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한다.
파스퇴르는 각종 질병이나 부패현상이 특정 세균에 의해 생긴다는 밝히고, 현재도 사용하는 저온 살균법을 개발하는 등 세균학의 창시자가 된다. 이후 코흐는 세균학의 기본이 되는 ‘코흐의 공리’를 제시하게 되는데, 특정 세균이 특정한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특정 질환의 모든 경우에서 그 세균이 발견되어야 하고, 그 세균을 배양할 수 있어야 하며, 배양된 세균을 동물에 투입했을 때 그 질환이 생기고, 그 동물에서 다시 같은 세균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흐는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비롯한 수많은 세균을 발견하고 ‘코흐의 공리’를 확립함으로써 세균학을 반석위에 올려놓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과학적 관찰을 통해, 병의 특정한 원인을 찾아 ,그에 맞는 특정 치료를 제공한다는 현대의학의 기본 전제를 확고히 하게 된다. ‘만병통치약’이나 ‘보약’ 등 전통의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게 된 것이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세균이 발견되면서 수십만년간 인류를 괴롭혀오던 전염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질환은 특정한 원인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특효 치료가 있다는 개념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현대의학의 미시적 관점은 특정 질환에서 특정 원인만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인간이 배제되고 기계적인 치료가 제공되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하지만, 인류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데 엄청난 공헌을 하고 있는 현대의학을 부정할 수는 없다. 수십만 년간 30여년에 불과하던 인간의 수명을, 불과 몇십년 만에 백살에 가깝게 연장시킨 것은 바로 현대의학이기 때문이다.
전통의학은 조화와 균형을 중요시 여기는 등 전인적 관점을 갖고 있지만, 의학의 발전에 있어서 이미 그 실효성을 상실했다. 더욱이 과학적 관찰이 아닌 철학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전통 의학은, 현대의학을 보완하는 의미만 있을 뿐이다. 현대 의학의 한계를 파고든다면서, 마치 현대 의학을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나서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