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self-esteem

최태용200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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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문화, 즉 유교에서는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여 주어야 미덕으로 생각한다. 더구나 한국의 교회 안에서는 자기 자신을 높이거나 드러내거나 하면 교만이라 하여 절대적인 금기사항이 되어 왔다.


 


이런 유교와 한국의 기독교 문화로 인하여 한국 사람들은 매우 낮은 self-esteem을 가지고 있다. 즉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존감이 낮은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여자들에게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한국의 여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야 했고, 부부인 경우 여자는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여 남자를 위해 주는 것을 본능적으로 사랑이라 생각해 봤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남자가 오랑캐의 포로가 되어 잡혀 갔다가 살아 돌아 오면 국가적인 영웅이 되지만, 여자의 경우는 화냥년이 되어 같은 여자들 사이에서도 버림을 받게 된다.


 


한국의 여자들은 이러한 차별과 본능을 당연시 여기며 낮은 자존감을 지니게 된것이다. 여자들은 이를 부정하고 세상은 변했다고 해도 일제 36년간의 잔재가 아직도 영향을 끼치듯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부인할 수없다.


 


상담에서도 부부사이의 만족도를 점수로 매겨 보면 보통 남자가 높은 점수를 준다.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만, 여자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남자가 원하는 대로 해야 사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한국 여자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양 여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즉 이것은 여자의 본능인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유교 문화가 더해져서 한국 여자들의 자존감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한국의 남자들도 윗사람에게 굽신거려야 하고 함부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하면 건방진 놈이 되기 십상이다.


교회 안에서도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은 자존감을 나타내었다가는 교만한 자라 하여 배척 대상이 되기도 하고, 중보기도 대상자가 되기도 한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 19:18)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쨰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을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이 두 말씀의 공통점은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한글 성경에서는 "네몸과 같이" 지만, 영어 성경에서는 "네 자신과 같이"이다.


즉 내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네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남을 사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를 지키지 않고는 더 나아가 첫째되는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즉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내 가족을 등한시하며, 내 이웃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는 것은 거짓 사랑인 것이다.


 


자존감은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내 자신을 존중해야 하고 내 자신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감 또한 자존감에 포함되는 것이다. 내 자신을 스스로 믿지 못하는 낮은 자신감이야 말로 낮은 자존감으로의 지름길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 안에서 이런 자신감, 자존감을 보인다면 교만이라 하여 죄악시 한다. 나는 이런 한국 교회의 문화가 교회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여 주어야만 겸손한 자가 되어 하늘에서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예수님도 그것을 몸소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겸손이 지나치게 되면 자기 자신을 과소 평가하게 되고 남에게 일을 미루게 된다. 지나친 겸손은 사람을 소극적으로 만든


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실 정도로 겸손을 보여주셨지만, 그릇된 일에는 변명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책망을 하셨고,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여겨 거룩히 하셨다.


 


겸손이 지나쳐서 자신을 낮추고 과소평가 하는 것은 우리 몸을 성전에 비유하신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성전을 낮추는 것이 되는 것이다. 교만만이 죄악이고 성전을 낮추고 하찮게 여기는 것은 죄악이 아니란 말인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2~13)


 


한국의 "유교 교회"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말씀은 굉장히 교만한 고백이다. 하지만  이 바울의 고백은 왜 교만이 되지 않는가? 바로 하나님 안에서 삶의 만족을 배우고 높은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는 자니라 (고후 10:17~18)


 


자랑이라는 말 자체가 한국 교회 안에서는교만이다. 주안에서의 자랑은 하나님의 칭찬이 되는 것이다.


 


민수기 20장의 므리바 물 사건과 같이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한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 이적이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처럼 행한다면 그것이 교만인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40년간 준비 되어지고, 또다른 40년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 가지 못한다. 


 


이렇듯 교만은 크나큰 죄악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에서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므리바 물 사건 사이에서 교만의 차이를 정의해 주지 못한다.


 


무조건 낮추는 것만이 믿음은 아니다. 높은 자존감을 죄악시 여기는 한국 교회의 풍토는 바뀌어야 한다.


성도 개개인에게 하나님 안에서의 자존감을 일깨워주고, 그것을 가르쳐 지케게 하여 몸에 배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주어야만 믿음은 아닌것이다. 그 사랑을 간직하고 내 자신에게도 그 사랑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내 자신을 사랑하는 일조차 하나님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교회 내에서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제가 무슨...." 이렇게 낮추어야만 믿음있고 겸손한 자로 여겨진다. 이제 우리의 반응은 바뀌어야 한다.


 


"저도 알아요.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돌려요"


 


높은 자존감이 갖추어져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그로 인해 교회의 발전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것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랑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내자신을 보고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최대의 self-esteem일 것이다. 이 또한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 세상의 자랑과 하나님의 칭찬은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