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그렇듯, 영화가 그렇듯, 세상이 그렇듯. 책도 읽고나면 여운이 있다. 그것이 슬픔의 공감이든, 기쁨의 여운이든간에.
어린왕자가 그렇고 장발장이 내게는 그렇다. 뭐, 그 외에도 많은 책들이 있겠지만서도 지금 내게 기억나는 책들은 이 두 권뿐이다. 무슨 책을 좋아하느냐, 라고 질문을 받으면 어린왕자라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왜' 좋아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 과정의 진실성을 따져보자며는 오히려 장발장을 좋아한다고 하는 쪽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서 장발장과 어린왕자의 차이는 의미의 부여에서 오는 차이다. 어린왕자의 의미를 학습을 통해서 알았다면, 장발장은 가슴으로부터의 울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장발장에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하지만, 인간 관계에 대해서 어린왕자가 던지는 메세지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말하고자 하는 바'에서 어린왕자가 조금 더 호소력을 갖기 때문에 나는 어린왕자를 좋아한다고 말을 한다.
서론이 길었다. 내가 끄적대보고 싶었던 것은, 각 인물들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에 대해서. 그리고 이 사회에 비교해보면서 우리가 이 작품에서 '건져내야'하는 것이 무엇일까, 에 대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쓰고 싶은게 너무 단편적인 것들이라. 에라. 모르겠다.
1. 미리엘 신부
조카들을 위해서 빵을 훔치다가 19년간의 복역으로 피폐해진 장발장은 사회적으로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한다. 책에서도 처음에 장발장이 감옥에서 공부를 한 이유를, '사회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감옥에서 나와서도 돈이 있음에도 여관에서 쫓겨나는 등의 일을 겪고, 차가운 돌층계에서 잠들려는 그에게 한 여인이 묵을 곳을 소개해준다. 그 곳이 바로 미리엘 신부의 집이었다.
신부는 그에게 따뜻함과 베품을 일러주었다.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누구든간에 베푸는 따뜻함. 이 책에서 배경이 되는 프랑스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따뜻하다기 보다는 차갑고 때로는 공격적이기까지하다. 그런 사회적 배경을 안고있는 작품에서, 미리엘 신부는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나는 그것을 인간미의 전이. 혹은 전파라고 부르고 싶다. 미리엘 신부가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 그가 등장하는 페이지는 장발장의 과거를 설명하는 부분보다도 짧다. 그러나 그가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가엾은 사람들을 말없이 돕는 장발장. 그의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이었든, 옳지 않은 것이었든. 미리엘 신부가 장발장에게 큰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애초에 그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더라면, 이 이야기는 전개자체가 불가능하니까.
2. 자벨 형사
처음부터 작가가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용서'라고 보인다. 학교에서 국어시간에 배울때 처럼 장발장의 주제 : 인간에 대한 용서 라고 딱 잘라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읽어내려가다 보면 느껴지는 것들이란 그런 것들이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자벨 형사라는 캐릭터는 여러가지 시점에서 이러한 주제를 잘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끝없이 자벨을 용서하는 장발장과 그러한 장발장을 '죄수'라는 면만 보고 잡아넣으려고 하는 자벨의 대립. 마지막에서 자벨은 결국 직업에 충실하느냐,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도리에 충실할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강물에 몸을 던져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강물에 뛰어들기 직전, '모자'라는, 자신의 신분으로 묘사되는 그것을 던져버림으로서 극적인 인간성의 회귀를 보여준다.
자벨이 장발장에게 가져다 준 곤란은 한 둘이 아니다. 시장 마들렌으로 있을때, 장발장을 경찰에 신고한 것, 그로 인해 무기징역수로 복역하던 장발장이 탈출했을 때 그를 알아보고 추격한 것, 테나르디에의 집에서 장발장이 위험에 빠졌을때도 그를 잡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 등등. 읽던 중 가장 가슴아팠던 것은, 시장 마들렌이 실은 자신의 신분을 기관에 밝히지 않고 가명으로 살아가는 죄수 장발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때의 일이었다. 죽어가는 팡틴을 위해 코제트를 데리러 갈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고, 환자를 배려하지 않는 언사로 인해 결국 정신적 쇼크로 팡틴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에서 자벨에게서의 인간성이 이미 소실되어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인간성의 소실로 차가워진 자벨에게 장발장은 어떤 의미였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 마지막 순간에 자벨은 장발장으로 인해 인간성을 되찾고 죽음을 선택한다. 나는 그것이 필요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서,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당황할 자벨의 모습을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지만..
3. 코제트, 그리고 장발장
자신의 조카들을 먹이기 위해 빵을 훔쳤던 장발장은 19년간이나 감옥에 있게 된다. 이 책의 내용에서는 장발장의 조카들에 대해 이후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조카들이 굶어죽을까봐 탈옥을 시도했던 장발장임을 고려해보았을때, 조카들이 정말로 굶어죽었거나 혹은 19년이나 흘렀음에도 자신들의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거나.. 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리고 여기서 장발장에게 부여된 코제트의 의미를 추측해본다. 조카들에 대한 아련한 향수, 혹은 안타까움과 가엾은 여인 팡틴에 대한 동정이 겹쳐지면서 코제트에 대한 장발장의 감정은 사랑으로 승화된다. 내가 읽은 것이 어린이를 위한 장발장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내용이 생략되고 첨가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다. 원본에서는 조금 더 탁하게,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표현되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렇게 된다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접근이 가능하다. 무엇에 대한 접근이냐고? 다름이 아니라, 코제트의 사랑. 마리우스와 장발장의 갈등에 대해서 말이다.
금지옥엽 딸을 애지중지 기른 아버지. 이렇게 보인다면 당신은 정말 순수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탁한건가? 내 눈에 비치는 장발장은 여인으로서의 코제트를 사랑하는 한 남성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남자의 사랑. 자신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한 여성을 지켜주고 감싸주던 남자가 어느 순간 그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장발장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한 남자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피해망상으로 그 사랑을 손에 쥐지 못하고 다른 남자, 마리우스에게 코제트를 맡기게 되지만.
전체적으로 코제트가 장발장에게 주는 의미는, 위에서 언급했듯, 조카와 팡틴에 대한 감정이 사랑으로 승화된 것이라고 본다. 장발장이 코제트에게 주는 의미는, 음.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에 대한 사랑? 아, 몰라. 그런거 있잖아. 그런거. 응. 그런거. 아버지라고 부르는 남자에 대한 사랑.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에 대한 동경. 받는 입장을 고려해 보았을 때, 조금 슬픈 사랑..
..그래 난 지금 어린이 명작을 망치고 있는거다[..]
4. 마리우스
처음 읽었을때, 가장 미워했던 캐릭터가 바로 마리우스였다. 장발장과 코제트를 못살게 굴었던 자벨 형사나 테나르디에가 아니라. 마지막장을 읽을때까지도 장발장과 코제트를 막는 꽉막힌 나쁜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원작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중에는, 장발장-코제트-마리우스의 삼각관계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 그렇게 봐야 글의 전개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마리우스가 자신의 장인인 장발장에게 질투를 느낄 일이 달리 뭐가 있을까? 딸 사랑하는 장인을 미워하는 사위가 세상에 몇이나 되려나?
장발장의 뒷부분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마지막에 가서 마리우스가 장발장에게 가졌던 오해들이 모두 풀렸다고, 과연, 책의 뒷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될까? 가능하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마리우스는 코제트에게 '부족한 남자'다. '늙고 죄수였던' 장발장에게 있어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코제트와 어울리는 젊음과 깨끗한 신분'뿐이다. 코제트를 버리고 사회개혁을 위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에서는 여러가지 모습이 교차된다. 결국 그는 사랑보다 자신의 이상을 선택하는 남자들중 하나일 뿐이다. 자신의 이상을 위해 사랑을 희생하는 남자일 뿐이다. 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코제트를 위해서 바쳤던 장발장과 확연히 대비된다.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이 젊을적의 잠시 잠깐 불타는 감정이라고 말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까놓고 그래. 마리우스가 장발장보다 돈이 많나, 능력이 많나.. 내가 상상하는 장발장의 뒷 이야기는 대략 이러하다. 자신의 아버지보다 못한 남자와 사는 코제트의 실망이 극에 달하면, 당연히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가정은 파경에 달할것이다. 게다가 자신과 아버지를 갈라놓아서 기껏 죽기 전에 얼굴 한 번 본게 고작인데. 과연 원망하는 마음이 없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Min_Gray [서
빅토르 위고의
Min_Gray
[서론]
노래가 그렇듯, 영화가 그렇듯, 세상이 그렇듯. 책도 읽고나면 여운이 있다. 그것이 슬픔의 공감이든, 기쁨의 여운이든간에.
어린왕자가 그렇고 장발장이 내게는 그렇다. 뭐, 그 외에도 많은 책들이 있겠지만서도 지금 내게 기억나는 책들은 이 두 권뿐이다. 무슨 책을 좋아하느냐, 라고 질문을 받으면 어린왕자라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왜' 좋아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 과정의 진실성을 따져보자며는 오히려 장발장을 좋아한다고 하는 쪽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서 장발장과 어린왕자의 차이는 의미의 부여에서 오는 차이다. 어린왕자의 의미를 학습을 통해서 알았다면, 장발장은 가슴으로부터의 울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장발장에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하지만, 인간 관계에 대해서 어린왕자가 던지는 메세지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말하고자 하는 바'에서 어린왕자가 조금 더 호소력을 갖기 때문에 나는 어린왕자를 좋아한다고 말을 한다.
서론이 길었다. 내가 끄적대보고 싶었던 것은, 각 인물들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에 대해서. 그리고 이 사회에 비교해보면서 우리가 이 작품에서 '건져내야'하는 것이 무엇일까, 에 대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쓰고 싶은게 너무 단편적인 것들이라. 에라. 모르겠다.
1. 미리엘 신부
조카들을 위해서 빵을 훔치다가 19년간의 복역으로 피폐해진 장발장은 사회적으로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한다. 책에서도 처음에 장발장이 감옥에서 공부를 한 이유를, '사회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감옥에서 나와서도 돈이 있음에도 여관에서 쫓겨나는 등의 일을 겪고, 차가운 돌층계에서 잠들려는 그에게 한 여인이 묵을 곳을 소개해준다. 그 곳이 바로 미리엘 신부의 집이었다.
신부는 그에게 따뜻함과 베품을 일러주었다.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누구든간에 베푸는 따뜻함. 이 책에서 배경이 되는 프랑스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따뜻하다기 보다는 차갑고 때로는 공격적이기까지하다. 그런 사회적 배경을 안고있는 작품에서, 미리엘 신부는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나는 그것을 인간미의 전이. 혹은 전파라고 부르고 싶다. 미리엘 신부가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 그가 등장하는 페이지는 장발장의 과거를 설명하는 부분보다도 짧다. 그러나 그가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가엾은 사람들을 말없이 돕는 장발장. 그의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이었든, 옳지 않은 것이었든. 미리엘 신부가 장발장에게 큰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애초에 그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더라면, 이 이야기는 전개자체가 불가능하니까.
2. 자벨 형사
처음부터 작가가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용서'라고 보인다. 학교에서 국어시간에 배울때 처럼 장발장의 주제 : 인간에 대한 용서 라고 딱 잘라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읽어내려가다 보면 느껴지는 것들이란 그런 것들이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자벨 형사라는 캐릭터는 여러가지 시점에서 이러한 주제를 잘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끝없이 자벨을 용서하는 장발장과 그러한 장발장을 '죄수'라는 면만 보고 잡아넣으려고 하는 자벨의 대립. 마지막에서 자벨은 결국 직업에 충실하느냐,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도리에 충실할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강물에 몸을 던져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강물에 뛰어들기 직전, '모자'라는, 자신의 신분으로 묘사되는 그것을 던져버림으로서 극적인 인간성의 회귀를 보여준다.
자벨이 장발장에게 가져다 준 곤란은 한 둘이 아니다. 시장 마들렌으로 있을때, 장발장을 경찰에 신고한 것, 그로 인해 무기징역수로 복역하던 장발장이 탈출했을 때 그를 알아보고 추격한 것, 테나르디에의 집에서 장발장이 위험에 빠졌을때도 그를 잡는데 혈안이 되었던 것, 등등. 읽던 중 가장 가슴아팠던 것은, 시장 마들렌이 실은 자신의 신분을 기관에 밝히지 않고 가명으로 살아가는 죄수 장발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때의 일이었다. 죽어가는 팡틴을 위해 코제트를 데리러 갈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고, 환자를 배려하지 않는 언사로 인해 결국 정신적 쇼크로 팡틴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에서 자벨에게서의 인간성이 이미 소실되어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인간성의 소실로 차가워진 자벨에게 장발장은 어떤 의미였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 마지막 순간에 자벨은 장발장으로 인해 인간성을 되찾고 죽음을 선택한다. 나는 그것이 필요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서,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당황할 자벨의 모습을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지만..
3. 코제트, 그리고 장발장
자신의 조카들을 먹이기 위해 빵을 훔쳤던 장발장은 19년간이나 감옥에 있게 된다. 이 책의 내용에서는 장발장의 조카들에 대해 이후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조카들이 굶어죽을까봐 탈옥을 시도했던 장발장임을 고려해보았을때, 조카들이 정말로 굶어죽었거나 혹은 19년이나 흘렀음에도 자신들의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거나.. 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리고 여기서 장발장에게 부여된 코제트의 의미를 추측해본다. 조카들에 대한 아련한 향수, 혹은 안타까움과 가엾은 여인 팡틴에 대한 동정이 겹쳐지면서 코제트에 대한 장발장의 감정은 사랑으로 승화된다. 내가 읽은 것이 어린이를 위한 장발장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내용이 생략되고 첨가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다. 원본에서는 조금 더 탁하게,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표현되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렇게 된다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접근이 가능하다. 무엇에 대한 접근이냐고? 다름이 아니라, 코제트의 사랑. 마리우스와 장발장의 갈등에 대해서 말이다.
금지옥엽 딸을 애지중지 기른 아버지. 이렇게 보인다면 당신은 정말 순수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탁한건가? 내 눈에 비치는 장발장은 여인으로서의 코제트를 사랑하는 한 남성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남자의 사랑. 자신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한 여성을 지켜주고 감싸주던 남자가 어느 순간 그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장발장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한 남자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피해망상으로 그 사랑을 손에 쥐지 못하고 다른 남자, 마리우스에게 코제트를 맡기게 되지만.
전체적으로 코제트가 장발장에게 주는 의미는, 위에서 언급했듯, 조카와 팡틴에 대한 감정이 사랑으로 승화된 것이라고 본다. 장발장이 코제트에게 주는 의미는, 음.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에 대한 사랑? 아, 몰라. 그런거 있잖아. 그런거. 응. 그런거. 아버지라고 부르는 남자에 대한 사랑.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에 대한 동경. 받는 입장을 고려해 보았을 때, 조금 슬픈 사랑..
..그래 난 지금 어린이 명작을 망치고 있는거다[..]
4. 마리우스
처음 읽었을때, 가장 미워했던 캐릭터가 바로 마리우스였다. 장발장과 코제트를 못살게 굴었던 자벨 형사나 테나르디에가 아니라. 마지막장을 읽을때까지도 장발장과 코제트를 막는 꽉막힌 나쁜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원작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중에는, 장발장-코제트-마리우스의 삼각관계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 그렇게 봐야 글의 전개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마리우스가 자신의 장인인 장발장에게 질투를 느낄 일이 달리 뭐가 있을까? 딸 사랑하는 장인을 미워하는 사위가 세상에 몇이나 되려나?
장발장의 뒷부분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마지막에 가서 마리우스가 장발장에게 가졌던 오해들이 모두 풀렸다고, 과연, 책의 뒷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될까? 가능하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마리우스는 코제트에게 '부족한 남자'다. '늙고 죄수였던' 장발장에게 있어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코제트와 어울리는 젊음과 깨끗한 신분'뿐이다. 코제트를 버리고 사회개혁을 위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에서는 여러가지 모습이 교차된다. 결국 그는 사랑보다 자신의 이상을 선택하는 남자들중 하나일 뿐이다. 자신의 이상을 위해 사랑을 희생하는 남자일 뿐이다. 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코제트를 위해서 바쳤던 장발장과 확연히 대비된다.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이 젊을적의 잠시 잠깐 불타는 감정이라고 말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까놓고 그래. 마리우스가 장발장보다 돈이 많나, 능력이 많나.. 내가 상상하는 장발장의 뒷 이야기는 대략 이러하다. 자신의 아버지보다 못한 남자와 사는 코제트의 실망이 극에 달하면, 당연히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가정은 파경에 달할것이다. 게다가 자신과 아버지를 갈라놓아서 기껏 죽기 전에 얼굴 한 번 본게 고작인데. 과연 원망하는 마음이 없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결론]
어라. 어린이 명작을 망쳤다. 문장 다듬기가 귀찮아서 마지막은 거의 만담수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