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최진화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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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그것은 느리게 걷는 '나' 를 다그쳐서 뛰게 만드는 것.

 

그렇게 제 인생의 속도계가 올라갈수록

 

저는 '어른' 에 좀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속도계가 고장나 속력은 줄어들질 않고,

 

끝없는 앞을 향해 무섭게 질주하면 저는 두렵습니다.

 

숫사자의 등 뒤에 숨은 새끼 사자 처럼 두렵습니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두려워지는게 너무 많습니다.

 

'돈' 이 두렵고,

 

'돈 벌어야 하는 의무' 가 두렵고,

 

'사람' 이 두렵고,

 

'사람을 만나 사랑 하는 것' 이 두렵습니다.

 

'만남' 이 두렵습니다.

 

'우정' 이 두렵습니다.

 

'배신' 이 두렵습니다.

 

'이별' 이 두렵습니다.

 

'미련' 이 두렵습니다.

 

인생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달아

 

다시 인생의 가장 낮은 곳,

 

'죽음' 이라는 목적지로 걷고 계신

 

부모님의 주름진 연세가 두렵습니다.

 

모든것이 다 두렵습니다.

 

두렵습니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왜 이처럼 두려움 투성일까요.

 

전에는 없던 한숨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전에는 없던 피곤이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고,

 

전에는 없던 좌절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전에는 없던 이 모든 것들이 이젠 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고,

 

그 사람의 손에 하얀 부케를 쥐어주고 싶고,

 

훗날 그 사람과 저를 닮은 아이들을 낳고 싶고,

 

그 아이가 저처럼 곱슬머리가 되는것을 보며 웃고 싶고,

 

그 아이가 또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고,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그 아이의 아이가 태어나면

 

흰머리를 멋지게 빗어넘기곤 저의 손주녀석을 안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많은 아픔을 겪어야겠죠.

 

여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전, 결혼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사라진 믿음을 다시 찾아야하는 고통을 또 겪어야 할 것이고,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의 의무를 떠맡을 것이고,

 

돈을 벌어와야 하는 의무를 지키려면 저와 한 몸인

 

'그림' 이라는 것을 제 몸에서 찢어내야 하고,

 

밤새워 글을 쓰던 안락같은 일상도 버려야하고,

 

제 아이들과 함께 목욕탕에라도 갈때쯤엔 다른이들의

 

눈길을 제 아이들이 느끼지 못하게 하기위해

 

제 팔에 새겨진 '타투' 를 칼로 벗겨내야하고, 

 

제 아들이 태어나 저를 닮은 곱슬머리가 될 나이때엔

 

나이드신 저의 부모님은 제 곁을 떠나는 아픔을 주실것이며,

 

한 분, 한 분 저를 떠나실 때마다 상여를 가로막고

 

슬픔에 겨워 땅바닥에 엎드려 기절하도록 오열하는

 

저의 모습에 제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겉으로는 그냥 선체로

 

흐르는 눈물을 티슈로 간혹 닦는 척 하며 속으로는

 

부모를 잃은 천의 끓는 슬픔을 삭히며

 

이를 악물 고통을 참아야하고,

 

그 뒤로 오랜동안 제 입에서 풍기는 술 냄새 때문에

 

아침마다 안아주며 뽀뽀를 하던 아이들을 안으며

 

얼굴을 부비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부모를 떠나보낸 아픔이 사라질땐

 

언제 그랬냐는듯 전 또 저를 의지하는 가족을 위해

 

사냥을 떠나야하는 모습이 되겠죠.

 

그렇게 바쁘게 '적절한 삶' 을 지키려 살다보면

 

어느덧 저도 나이가 들어 제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며, 제 턱수염을 깎는 일이 귀찮아질 나이엔

 

까칠한 제 수염 때문에 저의 어여쁜 여우 같은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제 사랑하는 아이들과

 

항상 하던 아침 뽀뽀도 사라지겠죠.

 

그럴때면 잊었던 그림이 다시 생각이나

 

아내몰래 제 월급에서 빼돌린 만 원, 이 만원으로

 

물감과 붓을 사 집에 몰래 숨겨 들어가 캔바스도 아닌

 

작고 낡은 연습장에 아내와 아이들 몰래 그림을 그리며

 

혼자 흐뭇해하는 아픔이 있을 것이며,

 

가끔씩, 아주 아주 가끔씩 걸려오는 친구의 전화에

 

구겨진 양복을 입고나가 친구와 포장마차에서

 

닭똥집과 소주를 시키곤 둘이 앉아 술잔을 기울이다

 

친구가 먼저 가버리면 혼자 남아 처량하게 남은 소주를

 

잔에 따라 마시며 포장마차 아주머니와 잡담을 할 것이고,

 

그렇게 취해 집에 들어가면 아내는 TV 드라마에 빠져

 

저의 존재는 아랑곳 없어 식은 국과 밥을 저 혼자 차려먹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혼자 밥을 먹을때

 

학원때문에 뒤늦게 집에 들어온 아이들은 인사도 없이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밥을 다 먹은 뒤엔 아내의 잔소리가 자존심 상해

 

더 자존심 상하는 혼자 먹은 밥의 설겆이를 혼자 해놓고

 

백년은 묵은 듯 무거운 양복을 벗곤

 

침대에 누워 한달이 넘게 잠자리 조차 없던

 

아내를 기다려보지만 유선방송까지 보다 새벽에야

 

안방으로 들어온 아내는 제 뒤척임에는 아랑곳 없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자리를 거부하고,

 

이런저런 회의감과 깎일대로 깎인 자존심에

 

술 생각이나서 오랜만에 방에 틀어박힌 아들을 불러보지만

 

듣고도 일부러 대답을 안하는 것인지 대답없는

 

아들의 방문 손잡이를 돌리려다 한숨을 내쉬며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고 안에 있는 반쯤 남은

 

소주의 차가운 뚜겅을 열고 신 김치를 안주삼아

 

불꺼진 거실과 주방에 혼자 앉아 그렇게 술을 비우고나면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라는 상실감에 부모님 돌아가신 이후로

 

눈물이 자꾸 흐르려고 하지만 억지로 참아내곤

 

쇼퍼에 누워 이불도 없이 그렇게 굽어 누워 잠이 들겠죠.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이런 것을 참아야 그제야 '어른' 의 자격이 되지 않을까요.

 

위의 이야기는 불행한 사람의 삶이 아닙니다.

 

그냥 보통의 한국 사람들 중 한국 가장들의 삶 입니다.

 

 

 

우리 아버지도 옛날엔 '소년' 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옛날엔 '소녀' 였습니다.

 

삶의 두 갈래 길 앞에서 어느 길을 택하느냐가

 

누군가에겐 이런 삶을,

 

누군가에겐 저런 삶을 가져다 주는가 봅니다.

 

 

 

 

굳게 닫혀진 제 맘의 문을 이젠 조금씩 열듯,

 

내일이라도 제 방문 문고리를 조금씩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 아직 '어른' 이 될 준비를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 여전히 천방지축 철없는 '진화' 라는 꼬맹이 입니다.

 

꼬맹이 답지 않게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수염까지 자라는

 

못된 꼬맹이 입니다.

 

 

 

 

'어른'

 

 

 

 

 

 

 

 

 

 

 

 

 

1978년 10월 23일.

 

 

"당신 힘들었지?"

 

"으... 아냐... 우리 애기는?"

 

"애기 잘있어. 그러지 말고 당신 좀 쉬어."

 

"싫어. 다시 보여줘."

 

"500g 모자라서 우량아 등록 못했다. ㅎㅎㅎ 걱정마."

 

"그래도... 내 아들."

 

"기다려. 간호사한테 말해서 데려올께."

 

"우리아들 어딨는데?"

 

"벌써 예방 접송하러 데려갔어."

 

"자기야."

 

"어?"

 

"누구 닮았어?"

 

"... 고놈 아까 옹알이 하는거 보니까 눈이 당신 닮았어."

 

"그래?..."

 

"고마워."

 

"으음... 뭐가..."

 

"첫 녀석 잘 낳아줘서."

 

"자기야. 이름은? 아버님 지어주신 이름으로 할꺼지?"

 

"그럼. 그래야지."

 

"나좀 일으켜줘."

 

"왜. 더 누워 있어. 그러지말고."

 

"싫어, 봐야지. 내 아들."

 

"..."

 

"우리 진화 봐야지...."

 

"그래요. 이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