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국비 장학생 1호로 광운대학교를 거쳐 벨기에의 로얄 앤트워프에 입단,1년이 지난 후 바로 벨기에 최고명문인 안더레흐트로 이적 후 04년까지 활약합니다.
그는 2004년,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안정성을 무시하고 벨기에의 명문 안더레흐트를 떠나서 잉글랜드 2부 리그 (챔피언쉽 리그) 의 울버햄튼 원더러스로 이적합니다. 그는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주소를 wolvesplayer라고 표기해놓는 등 울버햄튼에서의 목표 수립은 아주 비장했습니다. 울버햄튼은 정말 아쉽게도 그가 입단하기 바로 전 시즌은 03-04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소속이었는데, 2004년 8월 설기현 선수가 입단한 후부터는 2부 리그라 할 수 있는 챔피언쉽 리그에서 시즌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왜 벨기에의 최고 명문인 안더레흐트에서 안주하지 않고 잉글랜드 2부 리그에 갔을까요. 답은 너무나도 뻔합니다. 잉글랜드의 영향력 없는 클럽에 진출하더라도, 열심히 선수 생활을 하면 충분히 많은 축구인들의 바람인 프리미어리그로 승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기현 선수는 대체적으로 도전적인 성격을 지녔습니다. 벨기에에서 정상의 위치에 올랐다고 해서 거기서 만족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생각하듯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죠. 그럼 왜 네덜란드에서 최고 대접을 받는 박지성 선수, 이영표 선수가 그 견디기 힘들다는 프리미어리그로 옮겼을까요.
설기현 선수는 비록 팀은 2부 리그지만, 거기서 배울 점이 많고, 피땀 흘려 노력하면 충분히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할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두 번의 시즌동안 열심히 뛰어줬습니다. 그는 당시 울버햄튼의 루마니아 출신 바이오 가네아의 공백을 메꾸는 형식으로 입단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잉글랜드의 왕년의 스타 폴 잉스와 함께 막강한 공격력을 과시했습니다. 물론 근래에는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 어려운 처지를 이번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어느정도 해소시켰습니다.바로 G조 조별 리그 두번째 경기인 프랑스전에서 박지성 선수의 골을 완성시키는데 1차적 원조를 해준 것입니다. 그의 장기는 바로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드리블 능력과, 가끔 날카롭게 터져주는 크로스 능력이죠. 그는 순간적으로 프랑스 왼쪽 수비수인 아비달을 제끼고 프랑스 문전에서 달려오는 조재진 선수의 머리 위치에 정확하게 올려줬습니다. 그의 크로스가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박지성 선수의 기적같은 골은 안 나왔을 것입니다.
이 장면 외에도, 우리에겐 너무나도 친숙하고 감동적인 설기현 선수의 역사가 있었으니. 바로 2002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의 동점 골입니다. 게임이 거의 끝나가고, 우리는 16강에 만족해야할 상황에서, 그는 이탈리아 문전에서의 혼전 중 우리나라 공격진으로부터 날아온 패스를 이탈리아 수비수 파누치가 놓쳐버린 것을 왼발로 여지없이 때려넣어 기적적으로 동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설기현 선수는 이렇게 우리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닥쳤을 때 해결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선수입니다.
물론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의 미련할 정도로까지 보이는 무딘 공격력과, 이 월드컵 이후 이유모를 성적 부진이 겹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그 자신으로서도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원하던 대로 프리미어리거가 되었습니다.
레딩 FC. 135년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한 역사 깊고, 한 많은 팀입니다. 그들은 줄곧 3부 리그와 4부 리그를 오가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올 시즌 챔피언쉽 리그에서 2부 리그 연승 행진을 꾸준히 기록하면서 승점을 벌려나가는 기염을 토해냈고, 결국 곧바로 06-07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티프 코펠 감독이 2003년 부임 후부터 점점 팀의 색깔이 잡혀져 갔고,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1부 리그 입성을 135년만에 이뤄냈습니다.
드디어 '세올' 의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친선 경기에서 역주행을 해서 욕을 먹었건, 정교하지 못한 크로스로 빈축을 샀건간에, 당신의 경기를 보려고 늦은밤 충혈된 눈으로 TV앞에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거 설기현
2000 ~ 2001 로얄 엔트워프 (벨기에)
2001 ~ 2004 안더레흐트 (벨기에)
2004 ~ 2006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잉글랜드)
2006 ~ 레딩 FC (잉글랜드)
우리들은 아직도 설기현하면 역주행을 떠올립니다
느려터졌느니, 기어다니느니 라면서
하지만 설기현이야말로
자신의 꿈을 찾아 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간
인간승리의 전형!!!
2000년 국비 장학생 1호로 광운대학교를 거쳐 벨기에의 로얄 앤트워프에 입단,1년이 지난 후 바로 벨기에 최고명문인 안더레흐트로 이적 후 04년까지 활약합니다.
그는 2004년,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안정성을 무시하고 벨기에의 명문 안더레흐트를 떠나서 잉글랜드 2부 리그 (챔피언쉽 리그) 의 울버햄튼 원더러스로 이적합니다. 그는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주소를 wolvesplayer라고 표기해놓는 등 울버햄튼에서의 목표 수립은 아주 비장했습니다. 울버햄튼은 정말 아쉽게도 그가 입단하기 바로 전 시즌은 03-04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소속이었는데, 2004년 8월 설기현 선수가 입단한 후부터는 2부 리그라 할 수 있는 챔피언쉽 리그에서 시즌을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왜 벨기에의 최고 명문인 안더레흐트에서 안주하지 않고 잉글랜드 2부 리그에 갔을까요. 답은 너무나도 뻔합니다. 잉글랜드의 영향력 없는 클럽에 진출하더라도, 열심히 선수 생활을 하면 충분히 많은 축구인들의 바람인 프리미어리그로 승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기현 선수는 대체적으로 도전적인 성격을 지녔습니다. 벨기에에서 정상의 위치에 올랐다고 해서 거기서 만족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생각하듯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죠. 그럼 왜 네덜란드에서 최고 대접을 받는 박지성 선수, 이영표 선수가 그 견디기 힘들다는 프리미어리그로 옮겼을까요.
설기현 선수는 비록 팀은 2부 리그지만, 거기서 배울 점이 많고, 피땀 흘려 노력하면 충분히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할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두 번의 시즌동안 열심히 뛰어줬습니다. 그는 당시 울버햄튼의 루마니아 출신 바이오 가네아의 공백을 메꾸는 형식으로 입단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잉글랜드의 왕년의 스타 폴 잉스와 함께 막강한 공격력을 과시했습니다. 물론 근래에는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 어려운 처지를 이번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어느정도 해소시켰습니다.바로 G조 조별 리그 두번째 경기인 프랑스전에서 박지성 선수의 골을 완성시키는데 1차적 원조를 해준 것입니다. 그의 장기는 바로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드리블 능력과, 가끔 날카롭게 터져주는 크로스 능력이죠. 그는 순간적으로 프랑스 왼쪽 수비수인 아비달을 제끼고 프랑스 문전에서 달려오는 조재진 선수의 머리 위치에 정확하게 올려줬습니다. 그의 크로스가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박지성 선수의 기적같은 골은 안 나왔을 것입니다.
이 장면 외에도, 우리에겐 너무나도 친숙하고 감동적인 설기현 선수의 역사가 있었으니. 바로 2002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의 동점 골입니다. 게임이 거의 끝나가고, 우리는 16강에 만족해야할 상황에서, 그는 이탈리아 문전에서의 혼전 중 우리나라 공격진으로부터 날아온 패스를 이탈리아 수비수 파누치가 놓쳐버린 것을 왼발로 여지없이 때려넣어 기적적으로 동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설기현 선수는 이렇게 우리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닥쳤을 때 해결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선수입니다.
물론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의 미련할 정도로까지 보이는 무딘 공격력과, 이 월드컵 이후 이유모를 성적 부진이 겹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그 자신으로서도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원하던 대로 프리미어리거가 되었습니다.
레딩 FC. 135년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한 역사 깊고, 한 많은 팀입니다. 그들은 줄곧 3부 리그와 4부 리그를 오가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올 시즌 챔피언쉽 리그에서 2부 리그 연승 행진을 꾸준히 기록하면서 승점을 벌려나가는 기염을 토해냈고, 결국 곧바로 06-07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티프 코펠 감독이 2003년 부임 후부터 점점 팀의 색깔이 잡혀져 갔고,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1부 리그 입성을 135년만에 이뤄냈습니다.
드디어 '세올' 의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친선 경기에서 역주행을 해서 욕을 먹었건, 정교하지 못한 크로스로 빈축을 샀건간에, 당신의 경기를 보려고 늦은밤 충혈된 눈으로 TV앞에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경기는 설기현의 설기현에 의한 설기현을 위한 정말 최고의 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