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립식 컴퓨터''를 고집하는 이유

김영종200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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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희동 기자] 새 컴퓨터 구매

컴퓨터를 새로 장만했다. 5년 전에 샀던 컴퓨터가 디카를 장만하고 난 뒤 언제부터인가 만성적인 용량부족을 나타내더니, 본격적으로 '버벅'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공포의 파란 화면. 결국 한 달 아르바이트 비가 통장에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한 대 사기로 결심했다. 때마침 고전 PC게임의 <삼국지11>이 발매됨에 따라 그에 걸맞은 사양의 컴퓨터가 필요한 것도 이유 중 하나.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컴퓨터를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컴맹까지는 아니더라도 낯선 컴퓨터 용어들만 보면 이내 주눅 들어 버리는 것이 나의 현실 아니었던가. 때문에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는지 몰라 결국은 친구, 친척에게 부탁해 컴퓨터를 사왔던 것이 지금까지 나의 컴퓨터 구매의 일반적 패턴이었다.

물론 조립식 컴퓨터를 고집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메이커의 컴퓨터를 산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웬만한 동네 대리점에 가서 컴퓨터를 사겠다고 말만 하면 설치부터 A/S까지 일사천리일 것이며, 요즘은 인터넷으로 완제품을 구입해도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조립식 컴퓨터에 대한 고집

내가 ''조립식 컴퓨터''를 고집하는 이유▲ 컴퓨터 조립하기 ⓒ2006 이희동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끝까지 조립식 컴퓨터를 고집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완제품 컴퓨터를 구매할 때 느끼는 바로 그 무기력함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컴퓨터. 어느덧 컴퓨터를 사용한지 어언 15년쯤 됐지만 난 아직까지 컴퓨터를 조립할 줄 모른다.

물론 나와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분명 주위에는 컴퓨터를 조립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며 게다가 그들을 통해 본 컴퓨터 조립은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컴퓨터 역시 그 순환이 매우 짧은 대표적인 문명의 이기 중 하나지만, 자동차나 핸드폰 등 여느 상품과 달리 소비과정뿐만 아니라 조립과정에도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우리는 소비주체로 거듭 태어나길 강요당한다. 소비를 하면서 자신이 소비의 주체인양 착각을 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끊임없는 자본의 순환과정 속에서 그것을 촉진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소비에 대한 욕망은 사회에 의해 조작되어지며, 소비를 향한 끝없는 욕구는 현재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제품으로부터 소외당한다. 그리고 기술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제품의 수명이 짧으면 짧을수록 그 소외는 깊어간다. 상품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단순한 소비밖에 없기 때문이며, 우리가 구매하는 상품은 '근원적인 소외의 시대' 속에서 그 물건 자체가 아니라 체제가 만들어낸 하나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무기력함의 정체는 소외된 사람이 느끼는 바로 그 감정일지도 모른다.

드디어, 컴퓨터 조립에 성공하다

내가 ''조립식 컴퓨터''를 고집하는 이유▲ 선무당이었기에 더욱 지저분했던 내 방 ⓒ2006 이희동이런저런 생각에 이번에는 아예 스스로 컴퓨터를 조립하기로 마음먹었다.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컴퓨터를 구매할 때면 느껴야 했던 그 무기력함에서 좀 더 확실하게 벗어나고 싶었다. 물론 '컴퓨터의 생산과정에 있어서 조립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소외를 운운하느냐'는 핀잔이 있을 수도 있고, '컴퓨터 구매를 결심하는 자체가 이미 체제에 대한 순응'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컴퓨터를 사기로 마음먹은 이상, 단순한 소비주체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생각에 시작했던 컴퓨터 조립은 역시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당장 CPU를 조립하는 과정에서부터 여기저기 복잡하게 널려 있는 전선들을 각각의 설명에 맞게 연결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윈도우 깔고 지우기를 계속 반복했으며 통신을 연결하면서도 '전문가를 부를까' 하룻밤에도 수십 번 갈등해야만 했다. 작업실이었던 방은 논문을 쓸 당시보다 더 너저분해져 거실에 나가 새우잠을 잤으며, 늦은 밤 제일 만만한 사촌 동생을 전화로 불러내기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며칠 밤을 새워 결국 컴퓨터 완성. 비록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내 스스로가 참으로 대견한 순간이었다. 어쨌든 15년 동안 언감생심 넘보지도 못했던 컴퓨터 조립 아니었던가. 단순한 소비주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늘었다는 점은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재 이 글은 새로 조립한 컴퓨터로 작성되고 있다. 소비사회에서 당당한 주체로 살아남길 꿈꾸며.

/이희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