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이 어떻게 고구려를 세웠는가 ?

황미란200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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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이 어떻게 고구려를 세웠는가 ? 

 

고구려는 곧 졸본부여이다. 혹은 지금(고려 때) 화주 또는 성주 등이라 하나, 모두 잘못이다. 졸본주는 요동방면에 있다.

 

국사 고려본기에 시조 동명성제의 성은 고씨요, 이름은 주몽이니, 이 앞서 북부여왕 해부루가 동부여로 피하고 부루가 돌아간 후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이때에 금와가 태백산 남쪽 우발산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대답하되 나는 본시 하백의 딸로 이름은 유화인데, 여러 아우들과 나와 놀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있어 자기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하고 나를 웅신산 밑의 압록강가의 집 속으로 꾀어 정을 통하고 가서 돌아오지 않으므로【단군기(檀君記)에는 「단군이 서하 하백의 딸과 친하여 아들을 낳아 부루라 이름하였다」하였는데, 지금 이 기사에는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정을 통하여 뒤에 주몽을 낳았다한다. 단군기에 「아들을 낳아 부루라 이름하였다」하니 부루와 주몽은 이복형제일 것이다】부모가 나의 중매 없이 혼인한 것을 꾸짖어 이곳으로 귀양보낸 것이라 하였다.

 

금와가 이상히 여겨 (그를) 방 속에 가두었더니 햇볕이 비쳐왔다. (그가) 몸을 피하매 그리로 쫓아와 비치었다. 이로 인하여 태기가 있더니 알 하나를 낳았다. 크기가 닷되들이만 하였다. 왕이 그것을 버리어 개와 돼지에게 주니 모두 먹지 않고, 또 길에 버리니 소와 말이 피하고, 들에 버리니 새와 짐승이 덮어주었다. 왕이 (이를) 깨트리려다가 깨트리지 못하고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골격과 외양이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나이 겨우 7세에 숙성하여 보통 사람들과 다르고 혼자 활과 살을 만들어 백 번 쏘면 백 번 다 맞추었다. 나라의 풍속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 하므로 그렇게 이름하였다.

 

금와에게는 아들 일곱이 있어, 항상 주몽과 노는데 기능이 따르지 못하였다. 큰 아들 대소가 왕에게 말하되 "주몽은 사람의 소생이 아니니, 진작 처치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합니다" 하였다. 왕이 듣지 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주몽은 준마를 알아보아 (일부러) 적게 먹여 파리하게 하고 늙은 말은 잘 먹여서 살찌게 하였다. 왕이 살찐 말을 자기가 타고 파리한 말은 주몽에게 주었다. 왕의 여러 아들과 신하들이 주몽을 장차 죽이려고 꾀하니 주몽의 어머니가 알고 그에게 말하되 나라 사람들이 장차 너를 죽이려고 하니 너의 재주로 어디를 간들 못살겠느냐, 속히 도망하라 하였다. 이에 주몽은 오이(烏伊) 등 세 사람으로 벗을 삼아 엄수【지금 자세치 않다】에 이르러 물에 말하되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자인데, 오늘 도망하는데 쫓는 자가 거의 닥치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으냐고 하였다. 이때에 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이루어 건너게 하고 곧 흩어지니, 쫓아오던 적의 기병이 건너지 못하였다.

 

졸본주에 이르러 도읍을 하였으나, 미처 궁궐을 지을 여가가 없고, 다만 집을 비류수 위에 짓고 거기에 기거하여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고로써 성씨로 삼았다【본래의 성은 해(解)였는데 지금 자기가 천제의 아들로 햇볕을 받고 낳다하여 스스로 고씨로 하였다】이때 나이 12세였으니 중국 한나라 효원제 때에 즉위하여 왕이라 일컬었다.

 

고구려가 전성하던 때는 22만 580호가 되었다. 주림전(珠琳傳)이란 책 제21권에는 "옛날 영품리왕(寧稟離王)의 노비가 임신하였는데 점장이가 점쳐 말하되 귀히 되어 왕이 되겠다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나의 자식이 아니니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노비가 아뢰되 하늘로부터 (무슨) 기운이 내려와 임신한 것이라 하였다. 그 아이가 나매 상스럽지 못하다하여 돼지우리에 버리니 돼지가 입김을 넣어 주고, (또) 마굿간에 버리니 말이 젖을 먹이어 죽지 않게 하여 마침내 부여왕이 되었다."고 실려 있다.

 

≫ 신화 분석

 

우리나라 신화 가운데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고대국가를 건립해 가는 영웅적 활동이 가장 생생하게 그려진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 속에는 고구려인의 씩씩한 기상을 그대로 보여 주며, 국가건립의 영웅인 주몽(朱蒙)을 중심으로 잘 짜여진 한 편의 영웅서사시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후대의 이규보가 「동명왕」을 대서사시로 읆은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주몽의 이채로운 탄생과 불우한 성장환경, 신천지로의 여행과 고난극복 과정, 활기에 찬 정복활동과 고대국가의 건립, 동명묘에 신으로 봉안되었던 것 같은 일련의 과정은 영웅전승으로 다루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몽신화를 영웅서사시와 같은 문학작품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합니다.

 

주몽신화는 주몽의 탄생과 활동을 통해, 고구려의 국가형성과정을 보여주는 건국신화로, 고구려의 초기 역사를 복원하는 역사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논형(論衡)』, 『삼국지』 등에 보이는 것과 같이, 동일한 신화의 모티브가 먼저 부여의 건국신화로 채용되었으며, 주몽신화는 고구려 왕실이 시조전승의 구성을 위해 중국 동북부지방일대에 퍼져있던 동명신화의 줄거리를 빌려 왔던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줄거리는 비슷하더라도, 그 내용은 고구려 국가형성기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주몽은 부여왕 금와(金蛙)와 하백의 딸 유화(柳花)의 사이에서 길러졌지만, 금와와 유화의 혼인으로 탄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햇볕이 유화를 따라 비쳐 알로 태어났고, 부여왕에게 버려진 알은 소와 말이 피해가고 깨려 해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햇빛으로 임신했다든지, 알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믿을 사람도 없고, 고구려인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몽의 뒤를 이었던 고구려 왕실은 시조의 탄생을 신이하게 장식하기 위해 동명신화의 모티브를 빌려왔던 것입니다. 고구려의 지배층이 선민사상을 바탕으로 시조전승을 구성하고, 국가형성기에 경쟁국가나 피지배층에게 신성성을 주장하려고 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5세기의 금석문이나 6세기의 고분벽화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장수왕이 414년에 세웠던 에 주몽[鄒牟王]은 북부여에서 나왔는데 천제의 아들로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며 알에서 태어났는데, 나면서부터 성스러웠다고 하였습니다. 중국 길림성 지안시(集安市)에 있는 5세기에 만들어진 모두루란 사람의 묘에 쓰여 있는 묘지명에는 하백의 손자이며 일월(日月)의 아들인 주몽[鄒牟聖王]이 원래 북부여에서 나왔는데, 천하사방이 고구려를 가장 성스럽게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화에서 유화는 물의 신(水神) 하백의 딸로 지신족(地神族)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유화는 고려시대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동명왕편에서 주몽에게 비둘기를 날려 보리씨앗을 전했던 신모(神母)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는 유화가 초기 고구려사회에서 생산을 보장하는 지모신(地母神)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주몽이 엄체수를 건널 때 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가 되었다든지, 송양국을 정벌할 때 7일간이나 장마비를 내리게 했다는 것은 유화가 수신 하백의 딸이었고, 주몽이 하백의 외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동명왕편에서 하백은 해모수와의 변신술 경쟁에서 사슴으로 변했는데, 주몽은 사슴을 위협하여 장마비를 오게 하였습니다. 이런 내용은 하백과 유화가 지신족의 대표로서 고구려의 건국과정에 기여했던 역사적인 사실이 신화로 구성된 것입니다.

 

하백과 유화 이외에도 건국을 돕거나 주몽에게 통합되었던 세력들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주몽과 함께 부여에서 남하했던 오이, 마리, 협부 등이 건국을 도왔고, 모둔곡에서 만난 재사, 무골, 묵거는 주몽에게 통합되었던 집단들이었습니다. 특히 재사, 무골, 묵거에게는 각각 극씨(克氏), 중실씨(仲室氏), 소실씨(少室氏)의 성이 내려졌습니다.

 

사성(賜姓)은 주몽이 통합한 집단들이 고구려 왕권에 재편되었던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원래 이런 집단들은 독자적인 시조전승과 독립적인 제사체계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백에서 이어지는 유화전승이 천신족 주몽에 대한 지신족의 전승으로서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서열적으로 편입되었던 것과 같이,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지신족으로 재편되었던 것입니다.

주몽은 졸본(卒本)에 도읍하여 비류수(沸流水) 가에 살면서,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고씨(高氏)로 성을 삼았습니다. 이 때 주몽의 나이는 22세였고, 기원전 37년(漢 元帝 建昭2)이었습니다. 사방에서 귀속하는 자가 많았고, 말갈(靺鞨)을 물리쳤으며, 비류수 상류의 송양국(松讓國)을 정벌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은 비류곡(沸流谷) 홀본(忽本) 서성산(西城山) 위에 도읍을 건설하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인의 기술인 비문의 내용을 중시해야겠지만, 『삼국사기』의 졸본은 비문의 홀본과 통하고, 비류수는 비문의 비류곡을 흐르는 물로 생각됩니다. 거의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류수는 압록강 중류의 지류인 혼강으로, 홀본은 요녕성 환인 일대로 생각됩니다. 최근에 환인 일대에서 조사되고 있는 오녀산성·상고성자고분군·하고성자토성·동고성자유적 등은 2대 유리왕이 국내성(集安市)으로 천도하기 이전의 고구려유적으로 이곳이 고구려의 첫 도읍지였을 입증해주는 유적들입니다.

 

고구려가 건국된 기원전 37년은 위만조선이 중국의 한(漢)을 상대로 1년여의 전쟁을 벌이다 멸망했던 기원전 108년에서 약 90년 정도가 지난 시기입니다. 세계 최고의 철기문명국이었던 한과 1년여 동안 전쟁할 수 있었던 위만조선은 성숙한 철기문화 사회였습니다. 따라서 이로부터 약 90년 후에 위만조선의 옛 땅에서 건국했던 주몽 역시 철기문화인이었고, 주몽신화 역시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성립한 건국신화였습니다.

 

건국 후에 귀속하는 자가 많았고 말갈과 송양국을 정벌하였다는 것은 건국 후에도 정복전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며, 주몽의 영웅적 정복활동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신화입니다. 다만 송양국 정벌에 관한 내용은 동명왕편에 상세하게 전하는데, 비류수 상류지역과의 분쟁이라는 점과 7일간의 장마비로 송양국을 멸망시켰다는 내용은 비류수의 수리관개권을 둘러싼 쟁탈전과 같은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모가 주몽에게 보리종자를 전해주었던 것을 아울러 생각하면, 고구려사회에서 농경이 중요시되었던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따르면, 주몽의 정복활동은 행인국(荇人國)·북옥저(北沃沮)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유리왕, 대무신왕, 태조왕의 사물택(沙勿澤), 개마국(蓋馬國), 황룡국(黃龍國) 등의 소국병합 전쟁은 주몽의 영웅적 활동을 계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국병합 전쟁은 태조왕대에 일단락되었고, 이후가 되면 중국을 상대로 하는 대외전쟁의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고구려의 고대국가 체제와 영역이 확정되었던 것은 태조왕대의 일로, 이전까지 통합되었던 여러 소국들을 지신족으로 편입시키면서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완성되었습니다.

 

부여왕의 아들 주몽은 삼국유사가 전하는 것처럼 당연히 해씨(解氏)였을 것이지만, 신화는 주몽이 고씨를 성으로 표방하였다고 전합니다. 이는 건국신화를 완성했던 태조왕에 의해 고쳐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태조왕은 그 시호에서 짐작되듯이 고구려의 중시조에 해당하는 왕으로, 고구려의 고씨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부여의 해씨에서 고씨로 바꾸었던 것은 5세기 말까지 계속되던 부여국과의 경쟁이 강하게 의식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조왕은 『삼국유사』의 기록과 같이 시조 주몽이 하늘의 아들이고 햇빛으로 탄생했음을 근거로 하늘같이 높다는 고씨를 새로운 성으로 표방하였던 것입니다. 고구려 왕실은 하늘에서 선택되었다는 선민의식과 자존의식을 내세웠습니다. 고구려는 비록 부여에서 나왔지만, 현실적 경쟁상대였던 부여국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보다 신성한 출자임을 표방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 건국신화에서 영웅전승의 성격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주몽신화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몽에게 영웅적 성격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주몽은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활쏘기에 능했다는 것은 영웅적 성격과도 연결되지만, 활은 주술적 능력이 있는 샤만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엄체수를 활로 치자 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가 되었다는 대목은 주술도구로서 활을 보여 주는 것이며, 주술적 능력을 아울러 가진 주몽의 역사적 성격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주몽은 아버지와 형제에게 억압을 받는 성장과정에 있었으나, 말을 잘 길렀기 때문에 신천지를 찾아 부여국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샤마니즘에서 말은 일반적으로 천계와 인간계를 연결하는 메신저로서, 또는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天馬圖)와 같이 죽은 자의 영혼이나 샤만을 태우고 이승과 저승을 왕래하는 신마(神馬)로 간주됩니다. 말을 잘 키우고, 말을 타고 강을 건너 여행할 수 있었던 것에서 주몽의 주술능력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활과 말의 주술적 의미는 주몽이 고난을 극복하고 신천지에서 인민을 모아 나라를 세우는 영웅적 면모와 더불어 샤만적 성격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 주몽의 고구려 건국 신화 해설 =========================


천신의 하강은 유목민신앙, 난생은 남방 농경민신앙
두 요소 어우러져 장엄한 고구려 건국신화

 

 

우리에게는 단군신화를 모태로 한 가야의 수로왕신화, 고구려의 주몽신화, 신라의 박혁거세신화와 석탈해신화를 비롯해 조대마다 건국에 관한 크고 작은 신화들이 전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내용에서 풍부한 신화소들을 잘 어우르고 있을뿐만 아니라, 짜임새에서도 완벽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건국신화다.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엮인 로마의 건국신화와 견주어 보면, 그 특색이 더욱 돋보인다.

 

천제인 해모수(解慕水)가 햇빛으로 물의 신인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어루만지고 뱃속을 비추니 그녀에게 태기가 생겨 마침내 알 하나를 낳는다. 깨뜨릴 수도 없고 짐승들이 범접하지도 않는 이 신기한 알에서 영특한 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그가 바로 주몽이다. 나이 겨우 일곱 살에 활을 만들어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되니 ‘주몽’(‘활을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불렀다. 부여 왕자들이나 신하들의 모해가 우려된다는 어머니의 권유를 받고 주몽은 세 동료들과 함께 기듯 부여를 떠난다. 엄체수(掩遞水)란 큰 강에 이르렀을 때 활로 물고기와 자라를 불러 다리를 만들게 하여 강을 무사히 건너고 추격자들을 따돌린다. 신력을 발휘한 셈이다. 졸본(卒本) 땅에 이르러 그곳의 지배자 송양왕(松讓王)과 서로의 능력을 검증하는 일련의 대결 끝에 그를 제압한다. 그리곤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였으며 성을 고씨로 삼았다. 주몽은 기원전 37년, 약관을 갓 벗어난 나이에 등극한 후 주변국들을 병합해 대국 고구려의 터전을 닦아놓았다.

 


늑대젖 빼면 허술한
로마건국신화와 비할까

 


한편, 고대 서양에서의 대표적인 건국신화로는 로마 건국신화를 꼽는데, 그 주역은 에네아스와 로물루스이다. 소아시아 서북부에 자리한 트로이가 망하자 왕자 에네아스는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에 추종자들을 이끌고 탈출하여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표착했다가 이탈리아의 티베르 강가에 돌아온다. 그는 전쟁으로 주변 여러 왕족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지배자가 된다. 그로부터 13대 후손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왕위 쟁탈전에서 아우 아물리루스는 형을 국외로 추방하고 조카딸 실비아를 신전의 무녀로 만들어 평생 처녀로 살게 한다. 어느날 실비아는 숲에 갔다가 늑대를 만나 동굴로 피했는데, 거기서 그녀의 마르스 신을 만나 쌍둥이 형제를 낳는다. 겁에 질린 왕(삼촌)의 명에 따라 쌍둥이는 광주리에 담겨 티베르강가에 버려진다. 마침 암늑대가 그들을 거두어 젖을 먹여 살리고, 양치기가 양자로 삼아 키운다. 양치기로부터 자신들의 처지를 알게 된 형제는 아물리루스를 몰아내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게획을 세우던 중 의견이 엇갈려 형 로물루스는 동생을 죽이고 혼자서 카피톨 언덕 위에 도시를 세운다. 그것이 바로 로마이고, 이로써 로마제국은 건국의 주춧돌을 놓게 되었다.

 

보다시피, 두 건국신화의 내용이나 구조를 비교해 보면 신화의 보편성에서 오는 공통점도 있으나, 뚜렷한 차이점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고구려 건국신화는 다양한 신화소를 갈무리하고 있다. 천강소인 하늘의 신(해모수)과 물의 신(하백)의 결합은 천지조화를 말하며, 여기에 난생소가 얹히는데, 원래 천강은 북방 유목민들의 신앙이고 난생은 남방 농경민들의 신앙이나, 주몽신화에서는 그것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게다가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주는 기적소도 곁든다. 한마디로 하늘의 도움과 신의 보우를 받는 천조신우(天助神佑)의 신화소가 대단히 돋보이는 복합신화이다. 이에 비해 로마의 건국신화에는 신화소가 빈약하다. 실비아가 동굴에서 마르스 신을 만나 쌍둥이 형제를 낳고,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난 것 말고는 별다른 신화소가 없다.

 


상쟁보다는 상생의 신화

 

다음으로, 그 차이점은 이념적 지향점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상대를 눌러 이겨야 권력을 잡고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것이 건국인만큼 그 과정에 갈등과 분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것을 풀어나가는 길에서는 서로가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주몽은 오이(烏伊) 등 세 죽마고우들과 끝까지 시련을 함께 이겨내면서 건국의 위업을 달성하고, ‘구르는 돌과 박힌 돌 사이’인 송양왕과의 관계에서도 어디까지나 활쏘기나 변신술의 대결, 그리고 비를 다스리는 신력 등 지혜와 능력의 검증을 통해 그를 설복시킴으로써 상생과 합일로 건국에 이른다. 이에 반해 에네아스는 오로지 전쟁수단으로 주변세력들을 물리치고 지배자가 되며, 그 후예들도 형제간에 권력을 둘러싸고 골육상잔을 벌임으로써 상극과 분열로 건국의 목적을 달성한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옛터에서 중국의 한나라가 설치했던 군현들을 쫓아내고 부여계 종족들을 규합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그 과정이 건국신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 주역인 주몽은 신성한 능력을 갖춘 신화적 존재이자 강인한 의지를 지닌 역사적 인물이다. 그에 의해 엮인 건국신화는 불시에 어디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고조선 단군의 개국신화를 내용이나 구조면에서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겨레의 건국신화전통을 이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애당초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건국신화와는 차원이 다른 독자적인 건국신화의 주인공으로 신화무대에 등장하였다. 후대에 이르러 곳곳에 시조 주몽신을 모시는 사당이 건립되어 주몽은 고구려 중심의 천하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승화되었다. 아울러 앞선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된 강력한 고구려는 내내 명실상부한 동북아시아의 대강국으로서 나름의 천하관과 국가관을 가지고 한 시대를 풍미한 자주적인 나라였다. 이렇게 개국부터 다른 천하를 가꾸어 온 고구려가 중국의 ‘변방 속국’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역사에 대한 어이없는 왜곡이요, 어불성설이다. 왜곡된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더불어, 우리는 일본건국신화의 기조로 강조되는 이른바 ‘팔굉일우’(八紘一宇:팔방을 덮어 집을 삼다), 즉 ‘온 세상을 일본 천하에 둔다’는 팽창주의 망령에도 경각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때 이 망령에 덩달아 춤춘 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며,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조화와 상생, 합일의 이념과 철학에 바탕한 우리 고유의 신화전통, 문화전통을 굳건히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