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을 위한 변론

김기정200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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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한 민국은 한국영화의 한 별을 잃었다.

나도 얼마전 김기덕의 분노를 찌질거림이라 폄하하며 글을 썼는데

난 그가 이렇게까지 감수성이 예민하리라 생각지 못했다. 이점에 대해 감독에게 미안하다.

 

김기덕은 그 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로 한국영화를 한단계 드높힌

몇안되는 감독중의 하나이다.

 

난 지금까지의 김기덕 작품중 파란대문 해안선 사마리아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봄 섬 거짓말 최근의 활까지 7작품정도 보았다. 어느 하나 날 실망시킨 영화는 없었다.

 

내가 김기덕 작품을 인정하는 이유는 단순히 해외에서 상을 몇개 탓다고 해서만이 아니다.

 

 그의 영화는 두가지 측면에서 그 창의성과 예술성을 인정할 수 있다.

 

첫째, 내용적 측면에서 보면

그의 영화는 모두 인간의 내면 깊숙히 잠재하는 본성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후벼파는 아픔을 지닌 영화다. 그래서 보고나면 마치 내 자신이 김기덕의 송곳으로 난자당한 느낌이 들어 아프다. 하지만 아픈만큼 오래도록 기억된다.

 

모든 예술은 감성의 소통을 본질로 한다. 김기덕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슬픔의 감성을 소통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 부터 사랑받지 못하지만 소수의 마니아들이 존재한다.

 

둘째, 형식적 측면에서 보면

그의 영화는 폐쇄성을 지향한다. 항상 폐쇄된 공간을 상정하고 그 공간 속에서 상황 변화에 따라 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가감없이 까발린다. 그것도 대사가 아닌 배우들의 눈빛과 아름다우면서 슬픈 영상으로 스크린에 담아낸다.

 

바로 이 폐쇄된 공간설정은 새로운 한국 영화형식의 물꼬를 틀었다고 보여진다. 예를 들면 주유소 습격사건이나 최근의 왕의 남자도 모두 김기덕식 폐쇄적 공간 설정으로 재미를 본 영화다. 바로 주유소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어떻게 양아치가 절대자로 군림하는지 코믹한 터치로 잘 그려내어 성공한 작품이고 왕의 남자 역시 조선시대 가장 미천한 신분인 광대가 궁궐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당대의 최고 권력자들을 어떻게 농락해 가는지를 감동적으로 스크린에 담아냄으로써 성공한 작품이다. 다만 김기덕의 작품은 등장인물의 최소화 대사의 최소화 소통의 도구로써 슬픔을 이용한다는 것이 다른것이다.

 

한국은 헐리우드에 비해 자본력에 있어 절대적 열위관계에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지를 김기덕의 영화형식은 잘 보여주고 있다. 바로 폐쇄적 공간 설정이다.

폐쇄적 공간 설정은 영화가 갖는 시간적 한계에서 영화가 담아내고자 하는 본질적인 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담아낼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저예산으로 대박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김기덕 감독은 한국 영화에서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몇몇 메이저 배급사에 의해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질식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김기덕 감독의 아름다운 분노를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많은 누리꾼들에게 뭇매를 맞고 영화계에서 퇴장당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지금은 그에게 돌을 던지기 보단 사랑으로 감싸안을 때인거 같다.

 

오늘이 한국영화사에 비극으로 기록되지않고 한국영화의 새로운 부활의 날로 기록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