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2006 김민수
ⓒ2006 김민수
비 온 뒤 혹은 아침이슬이 풀잎에 남아있을 때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는 달팽이를 본 적이 있으신지요? 사람들은 자기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그리워합니다. 정작 내 안에 있는 것들도 그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소원일 수도 있는 것들인데 그것은 별로 소중해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이겠지요.
‘느릿느릿’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그리워지는 것, 그것은 어쩌면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게 느껴지기 때문이겠지요. ‘느릿느릿’걸어도 결코 느리지 않다고 고백하면서 살아가지만 이미 내 삶의 걸음걸이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달팽이의 걸음걸이가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2006 김민수
ⓒ2006 김민수
시간에 맞춰 어딘가를 갈 때에는 옆 풍경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목적지만 보입니다. 목적지에 집중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각양각색의 풍광들에 눈을 주는 것도 소중한 일이겠지요. 조금의 여유, 그것을 누리면서 살아가도 사치는 아니겠지요.
그런데 우리 현실은 ‘오직 한 길!’만 바라봐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한 우물만 파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짧은 인생이니 이것저것 다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선택한 그 곳이 샘물이라고는 솟아날 수 없는 바위산이라면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숲과 나무를 함께 봐야 제대로 산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한 길, 목적지만을 향해서 가는 길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가끔씩은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궤도수정을 할 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적인 용어로 ‘회심’이겠지요.
ⓒ2006 김민수
ⓒ2006 김민수
회심한 사람들은 그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던 것들이었습니다. 이미 그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보이고 들리는 것입니다. 귀가 뚫리고 눈이 뜨이고, 혀가 풀리는 기적은 단순히 육체적인 병 고침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것에도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많은 이들은 도시의 편리함을 모두 가지고 거기에 자연환경까지를 접목하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전원생활을 하려면, 느릿느릿 살아가려면 도시의 편리함 중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누려오던 것들을 놓아버릴 수 있을 때 진정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도시에서도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인간이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2006 김민수
ⓒ2006 김민수
달팽이, 그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들이 채소를 얼마나 갉아먹는지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먹을 수 있는 것을 나도 먹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지요. 그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만으로 나 역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달팽이 걸음이 나에게 주는 상징적인 의미들, 풀 섶 어딘가에 이들이 살아있었구나 하는 신비를 통해서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의 진지성을 보는 것이지요.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는 폐지를 모으는 이들이 있습니다. 홍수같이 쏟아져 나온 무가지들은 사람의 손을 거쳐 지하철 선반 위에 올려져 있다가 다시 그들의 손에 의해서 새 종이로 만들어지겠지요. 이전에 담고 있었던 내용이 어떤 것이든 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또 어제의 이슈가 아닌 오늘의 이슈로 단장을 하고 사람들 손으로 오겠지요. 그 언젠가는 숲의 일부였을 그들, 도시의 지하철 안에 갇혀있는 자신들의 삶을 기구한 운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006 김민수
ⓒ2006 김민수
너무 풍족해서 교만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 가난해서 비참하지 않을 정도로 만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보면 간혹 구걸하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생각하다가도 이런 식의 도움이 무슨 소용일까 원론적인 생각을 합니다.
마음이 푸근한 날은 호주머니 속의 동전이나마 나누면서 아주 약간의 위로를 받지만 바쁘게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면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지나친 순간 잊어버립니다. 내가 무엇을 봤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이죠. 반추, 그것을 위해서는 조금 삶의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느릿느릿’은 게으름과 동일선상에서 이해되어 왔습니다. ‘빨리빨리’는 부지런함과 동일선상에 있었고요. 그런데 앞만 보고 달려온 그 길이 과연 빨랐는지는 의문입니다.
지금 걸어가시는 걸음걸이가 편안하신지요? 편하지 않고 불편하다면 오늘 하루 걸어온 길, 걸어가야 할 길을 호흡을 가다듬고 바라보는 것은 어떨지요. 오늘, 내가 걸어온 길, 걸어갈 길을 천천히 바라보아야겠습니다.
느림
‘느릿느릿’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그리워지는 것, 그것은 어쩌면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게 느껴지기 때문이겠지요. ‘느릿느릿’걸어도 결코 느리지 않다고 고백하면서 살아가지만 이미 내 삶의 걸음걸이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달팽이의 걸음걸이가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오직 한 길!’만 바라봐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한 우물만 파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짧은 인생이니 이것저것 다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선택한 그 곳이 샘물이라고는 솟아날 수 없는 바위산이라면 한 우물을 파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숲과 나무를 함께 봐야 제대로 산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한 길, 목적지만을 향해서 가는 길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가끔씩은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궤도수정을 할 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적인 용어로 ‘회심’이겠지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많은 이들은 도시의 편리함을 모두 가지고 거기에 자연환경까지를 접목하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전원생활을 하려면, 느릿느릿 살아가려면 도시의 편리함 중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누려오던 것들을 놓아버릴 수 있을 때 진정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도시에서도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인간이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달팽이 걸음이 나에게 주는 상징적인 의미들, 풀 섶 어딘가에 이들이 살아있었구나 하는 신비를 통해서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의 진지성을 보는 것이지요.
출근길에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는 폐지를 모으는 이들이 있습니다. 홍수같이 쏟아져 나온 무가지들은 사람의 손을 거쳐 지하철 선반 위에 올려져 있다가 다시 그들의 손에 의해서 새 종이로 만들어지겠지요. 이전에 담고 있었던 내용이 어떤 것이든 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또 어제의 이슈가 아닌 오늘의 이슈로 단장을 하고 사람들 손으로 오겠지요. 그 언젠가는 숲의 일부였을 그들, 도시의 지하철 안에 갇혀있는 자신들의 삶을 기구한 운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푸근한 날은 호주머니 속의 동전이나마 나누면서 아주 약간의 위로를 받지만 바쁘게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면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지나친 순간 잊어버립니다. 내가 무엇을 봤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이죠. 반추, 그것을 위해서는 조금 삶의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느릿느릿’은 게으름과 동일선상에서 이해되어 왔습니다. ‘빨리빨리’는 부지런함과 동일선상에 있었고요. 그런데 앞만 보고 달려온 그 길이 과연 빨랐는지는 의문입니다.
지금 걸어가시는 걸음걸이가 편안하신지요?
편하지 않고 불편하다면 오늘 하루 걸어온 길, 걸어가야 할 길을 호흡을 가다듬고 바라보는 것은 어떨지요. 오늘, 내가 걸어온 길, 걸어갈 길을 천천히 바라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