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7일 조정에서 주상을 높여 황제로 받들 적에 광무(光武)란 연호를 제정하였고,
신하들이 권진(勸進)한 글에도 모두, “갑오년(1894, 고종31)의 경장(更張)으로 전장(典章)과 문물(文物)이 찬란하게 일신되었습니다.” 하고 또, “아, 훌륭하도다. 이른바 ‘주(周) 나라가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천명은 새롭다.’라는 것입니다.” 하였으며,
이때 와서 또 조칙(詔勅)을 내렸는데 대략은, “조신(朝臣)의 복장을 변통하는 것은 대개 시대에 따라 합당하게 제정하여 간편하도록 힘쓴 것이다.” 하고 또, “경장(更張) 이후에 미처 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하고 또, “고금의 제도와 법식을 참작하고 또한 각국에서 통용하는 규례를 모방하여 마련해서 들이라.” 하였다.
선생은, “군부의 존호(尊號)를 신자가 본래 폄삭(貶削)할 수 없는 것이나, 그 옳지 못함을 한 차례 밝힘도 없이 대중을 따라 순종만 한다면 또한 ‘임금에게는 직간하고 숨기지 않는다.’는 의리가 아니다.” 하고, 재차 상소를 올리고 인하여 논변하였는데 그 대략에,
" 경장(更張)’이란 것은 바로 갑오년(1894, 고종31) 6월에 김홍집(金弘集)ㆍ유길준(兪吉濬)ㆍ어윤중(魚允中)ㆍ김윤식(金允植)ㆍ안경수(安駧壽)ㆍ김가진(金嘉鎭)의 무리가 몰래 박영효와 결탁하여 왜적을 불러들여, 임금을 내맡기고 나라를 내맡겨 버린 일입니다.
아, 그때의 변란을 오히려 차마 말할 수 있습니까. 군부께서 유폐(幽閉)되어 가지고 계시는 것은 허기(虛器)뿐이요, 종사가 거의 망하게 되어 끊어지지 않은 것은 허명(虛名)뿐입니다. 왕궁을 분탕하고 국법을 소멸(掃滅)하여, 4천 년 중화의 정맥이 이때에 끊어지고 5백 년 선왕의 선정(善政)이 이때에 끊어지게 하였으니, 예부터 나라를 망친 화가 하나뿐이 아니었으나 이때보다 심한 적이 없습니다.
대저, 갑오년의 변란을 ‘훌륭하다.’ 하고, 나라의 전장(典章)을 소멸한 것을 ‘찬란하게 일신되었다.’고 한다면, 박영효ㆍ김홍집ㆍ유길준의 무리는 중흥의 일등공신(一等功臣)이 되어야 할 것이요, 왜적이 우리 왕궁을 분탕하고 우리 종사를 전복시킨 것이 도리어 크게 도운 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소중화(小中華 작은 중화라는 말로 우리나라를 말함)를 소일본(小日本)으로 만들어 놓고 ‘천명이 새롭다.’ 한다면, 오랑캐를 따르는 수치는 없고 중화를 변혁하는 다행이 있는 것이니, 이는 속임이 될 뿐입니다.
당당한 천승(千乘)의 나라로서 진실로 스스로 높아지고 싶으면, 이와 같이 황통(皇統)이 오래 끊어진 때를 당하여 권도로 황제라 칭하는 것도 그다지 의리에 해롭지 않은데, 구구하게 구라파와 서양 각국의 예를 모방하였으니, 이는 욕이 될 뿐입니다.
속임이 이러하고 욕됨이 이러한데, 성명께서 바야흐로 거만하게 스스로 큰 체하여, 오직 구라파와 서양 각국과 함께 동등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십니다. 위령(威令)이 금문(禁門)을 나가지 못하면서도 실상이 없는 명칭만 가지고 있고, 위망이 조석에 박두했는데도 아첨하는 말만 믿으시며, 유식한 사람의 비웃음을 불러들이고 후세의 조롱거리를 남기시니, 성명께서 장차 무엇을 영화롭고 귀하게 여기시렵니까?
신이 첫 번 상소에서 ‘명칭과 실상이 맞지 않는다.[名實不副]’는 4자로 그 단서를 대략 일으켰으나 감히 말을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전례대로 호칭하고 스스로 달리하지 않았던 것은 진실로 하찮은 말이지만 급히 상달하여 만에 하나라도 성상의 마음을 혹 깨우칠까 해서이고, 구구한 의리는 오히려 다음의 일에 속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배(時輩)들이 구차스럽게 높인 것과는 같지 않으나 스스로 임금을 속이고 위를 욕보인 죄를 범하였으니, 진실로 백세토록 군자의 의리에 의한 주벌(誅罰)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성명께서 스스로 하시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진실로 이로 인하여 진보하여 실지로 제왕의 업을 일으키고 참으로 천자의 직을 닦으신다면, 비록 중국에 임하여 사방 오랑캐를 어루만지며 천하의 의주(義主)가 되는 것까지도 가능할 것이니, 덕을 힘쓰기에 달렸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시일을 보내기만 일삼으며 구차하게 목전의 일만 도모하여, 중화를 가벼이 변개하고 이적을 즐겨 따른다면, 신은 아마도 황천이 돌보지 않고 조종이 진노(震怒)하여 비록 스스로 면하려 하여도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알 수 없습니다만, 성상께서는 어느 것을 택하겠습니까? "
명칭과 실상이 맞지 않는다.[名實不副]-최익현.
● 12월 재차 상소하여 사직하고 겸하여 소회를 진달하였다.
지난해 9월 17일 조정에서 주상을 높여 황제로 받들 적에 광무(光武)란 연호를 제정하였고,
신하들이 권진(勸進)한 글에도 모두, “갑오년(1894, 고종31)의 경장(更張)으로 전장(典章)과 문물(文物)이 찬란하게 일신되었습니다.” 하고 또, “아, 훌륭하도다. 이른바 ‘주(周) 나라가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천명은 새롭다.’라는 것입니다.” 하였으며,
이때 와서 또 조칙(詔勅)을 내렸는데 대략은, “조신(朝臣)의 복장을 변통하는 것은 대개 시대에 따라 합당하게 제정하여 간편하도록 힘쓴 것이다.” 하고 또, “경장(更張) 이후에 미처 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하고 또, “고금의 제도와 법식을 참작하고 또한 각국에서 통용하는 규례를 모방하여 마련해서 들이라.” 하였다.
선생은, “군부의 존호(尊號)를 신자가 본래 폄삭(貶削)할 수 없는 것이나, 그 옳지 못함을 한 차례 밝힘도 없이 대중을 따라 순종만 한다면 또한 ‘임금에게는 직간하고 숨기지 않는다.’는 의리가 아니다.” 하고, 재차 상소를 올리고 인하여 논변하였는데 그 대략에,
" 경장(更張)’이란 것은 바로 갑오년(1894, 고종31) 6월에 김홍집(金弘集)ㆍ유길준(兪吉濬)ㆍ어윤중(魚允中)ㆍ김윤식(金允植)ㆍ안경수(安駧壽)ㆍ김가진(金嘉鎭)의 무리가 몰래 박영효와 결탁하여 왜적을 불러들여, 임금을 내맡기고 나라를 내맡겨 버린 일입니다.
아, 그때의 변란을 오히려 차마 말할 수 있습니까. 군부께서 유폐(幽閉)되어 가지고 계시는 것은 허기(虛器)뿐이요, 종사가 거의 망하게 되어 끊어지지 않은 것은 허명(虛名)뿐입니다. 왕궁을 분탕하고 국법을 소멸(掃滅)하여, 4천 년 중화의 정맥이 이때에 끊어지고 5백 년 선왕의 선정(善政)이 이때에 끊어지게 하였으니, 예부터 나라를 망친 화가 하나뿐이 아니었으나 이때보다 심한 적이 없습니다.
대저, 갑오년의 변란을 ‘훌륭하다.’ 하고, 나라의 전장(典章)을 소멸한 것을 ‘찬란하게 일신되었다.’고 한다면, 박영효ㆍ김홍집ㆍ유길준의 무리는 중흥의 일등공신(一等功臣)이 되어야 할 것이요, 왜적이 우리 왕궁을 분탕하고 우리 종사를 전복시킨 것이 도리어 크게 도운 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소중화(小中華 작은 중화라는 말로 우리나라를 말함)를 소일본(小日本)으로 만들어 놓고 ‘천명이 새롭다.’ 한다면, 오랑캐를 따르는 수치는 없고 중화를 변혁하는 다행이 있는 것이니, 이는 속임이 될 뿐입니다.
당당한 천승(千乘)의 나라로서 진실로 스스로 높아지고 싶으면, 이와 같이 황통(皇統)이 오래 끊어진 때를 당하여 권도로 황제라 칭하는 것도 그다지 의리에 해롭지 않은데, 구구하게 구라파와 서양 각국의 예를 모방하였으니, 이는 욕이 될 뿐입니다.
속임이 이러하고 욕됨이 이러한데, 성명께서 바야흐로 거만하게 스스로 큰 체하여, 오직 구라파와 서양 각국과 함께 동등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십니다. 위령(威令)이 금문(禁門)을 나가지 못하면서도 실상이 없는 명칭만 가지고 있고, 위망이 조석에 박두했는데도 아첨하는 말만 믿으시며, 유식한 사람의 비웃음을 불러들이고 후세의 조롱거리를 남기시니, 성명께서 장차 무엇을 영화롭고 귀하게 여기시렵니까?
신이 첫 번 상소에서 ‘명칭과 실상이 맞지 않는다.[名實不副]’는 4자로 그 단서를 대략 일으켰으나 감히 말을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전례대로 호칭하고 스스로 달리하지 않았던 것은 진실로 하찮은 말이지만 급히 상달하여 만에 하나라도 성상의 마음을 혹 깨우칠까 해서이고, 구구한 의리는 오히려 다음의 일에 속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배(時輩)들이 구차스럽게 높인 것과는 같지 않으나 스스로 임금을 속이고 위를 욕보인 죄를 범하였으니, 진실로 백세토록 군자의 의리에 의한 주벌(誅罰)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성명께서 스스로 하시기에 달렸을 뿐입니다. 진실로 이로 인하여 진보하여 실지로 제왕의 업을 일으키고 참으로 천자의 직을 닦으신다면, 비록 중국에 임하여 사방 오랑캐를 어루만지며 천하의 의주(義主)가 되는 것까지도 가능할 것이니, 덕을 힘쓰기에 달렸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시일을 보내기만 일삼으며 구차하게 목전의 일만 도모하여, 중화를 가벼이 변개하고 이적을 즐겨 따른다면, 신은 아마도 황천이 돌보지 않고 조종이 진노(震怒)하여 비록 스스로 면하려 하여도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알 수 없습니다만, 성상께서는 어느 것을 택하겠습니까? "
하였는데, 상이 비답하지 않았다.
최익현..진짜 존경하는 사람 중에 한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