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Cocktail)이란 일반적으로 알코올 음료에 또 다른 술을 섞거나 혹은 과즙류나 탄산음료 또는 향료 등의 부재료를 혼합하여 만들며 맛, 향기, 색채의 세가지 요소의 조화를 살린 예술적 감각의 음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칵테일의 주재료로 쓰이는 술을 베이스(Base Liquor)라고 하고, 베이스의 종류에 따라 진 베이스, 위스키 베이스, 럼 베이스, 보드카 베이스, 브랜드 베이스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칵테일의 부재료는 각종 쥬스류나 탄산음료, 혼성주 등이 많이 사용되며 만드는 방법에 따라 사워, 슬링쿨러 등으로 나누고, 부재료로 쓰이는 과일이나 향미에 따라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 부재료를 통하여 알콜섭취로 인해 파괴되는 영양보완 (비타민, 단백질 등) ● 알콜도수를 낮추게 하여 위와 간의 부담을 적게한다.
● 미각적 : 달콤한 맛, 새콤한 맛, 쓴맛, 매운맛, 신맛 등 ● 시각적 : 쉐이커가 흔들리는 모양, 글래스에 부어 비치는 빛에 의해 반짝이는 얼음조각 등 ● 칼로리 보강 : 다양한 부재료를 통하여 칼로리를 보강.
칵테일의 역사는 바로 술의 역사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태초의 인간일지라도 원시적으로 만들어진 과실주를 그대로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물이나 과즙으로 거친 맛을 제거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 후 지혜로운 인간은 많은 효능이 담겨진 각종 술들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사람들은 오히려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칵테일은 자연 발생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서의 기록에 의하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정확하게 무엇을 혼합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믹스를 해서 마셨다는 기록이 있고, 또 기원 640년경 중국의 당나라에서는 포도주에 말젖을 첨가해 마셨고, 1180년에는 이슬람교인들 사이에 꽃과 식물을 물과 엷은 알코올에 섞어 마시는 것이 고안되었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칵테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870년 독일의 칼르린데에 의해서 암모니아 압축에 의한 인공 냉동기가 발명되고 여러가지 모양의 글래스가 일반화된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고, 미국을 시초로 해서 칵테일이 계승 발전되어 온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지요.
메이플라워호로부터 시작된 영국인들의 아메리카 신대륙 이주는, 마지막 범선인 커티샥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는데 이들 이주자들이 지닌 술이라고는 고향을 떠날 때 실은 지금의 스카치 위스키(Scotch Whisky) 뿐이었는데 아마도 개척자 정신에 불타있던 사람들에게 고향을 떠나 향수를 잊게 해주는 유일한 벗은 당시의 스카치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 후에도 스카치는 영국에서 미국을 왕복하며 장사하던 무역상인에 의해 부분적으로 들어왔으나 충분한 양이 되지 못하다가 드디어 1789년 미국의 켄터키주에서 위스키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위스키는 지금의 위스키에 비해 맛이나 향에서 미흡한 것으로 마시기에 역겨울 정도였습니다.
그후 여러가지 방법이 개발되었는데 중서부 지역의 목동들로부터 시작된 방법. 즉, 그들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소나 양의 젖을 배합하는 방법이 칵테일의 시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초기 미국 서부의 말상인들은 말가격이 하락하자 경매일마다 말에게 혼합된 술을 마시게 하여 활기있게 함으로써 비싸게 팔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Tory라는 농장을 경영하는 아일랜드 출신의 여주인은 하인들의 불평불만을 진압하기 위하여 혼합주 (펀치 - 5가지 이상의 음료가 혼합된 것)를 대접했더니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하인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무렵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지방에서도 혼합음료를 마셨는데, 그것은 '파페므와' 라고 불렀고, 한편 네덜란드의 암스텔담 근처의 바(BAR)에서는 술꾼들의 행패를 방지하기 위해 칵테일의 방법을 시도하여 성공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 후 1800년대 후기와 1900년대 초반에 걸쳐서 칵테일은 서서히 대중화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양상들은 아녀자들이 부엌에서 벗어나 빈번한 외식을 즐기면서 열기를 더해갔고, 좀 더 본격화 된 것은 미국의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는 동안 (1920년~1933년)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쥬스류나 크림, 탄산수 등을 혼합하여 마시면서부터 칵테일이 널리 보급된 것이었습니다.
Whisky Sour, Pink Lady, Tom Collins, Alexander등이 당시의 애주가들에게 마셔졌으며, 콜라나 세븐업의 사용이 대중화 되었습니다. 금주법이 해제되었을 때 칵테일의 시대는 열렸고, 1940년대 세계대전의 상황에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여성들까지도 가세하여 7 & 7, Rum & Coke, Daiquiri와 Bacardi들이 대중적이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보드카의 인기가 미국전역을 휩쓸면서 음주자들에게 새로운 세대의 영역을 맞게 했고, Ginger Beer와 Vodka로 혼합된 Moscow Mule이 Smirnoff회사에 의해 비중 높게 광고 되었으며, Screw Driver, Bloody Mary, Gimlet등이 대유행 하였습니다.
1970년대 초기에는 열광적인 일이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Harvey Wallbanger라는 술외판원에 의해 Galliano라는 알려지지 않은 주류가 선전되어 이 술을 넣은 칵테일 ( 하베이 웰벵거,버진 키스 등)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타임지의 머리기사에 자리잡을 만큼 유명하게 되었고 모두들 그것을 구입하려 했습니다.
이후 더욱 많은 리큐르 (혼합주)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새로운 술들이 개발될 때마다 항상 새롭고, 훌륭한 칵테일이 창작되어왔으며,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칵테일" 이라는 말에 대한 어원의 유래는 여러가지가 전해지고 있으나,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구분은 어렵습니다. 대략 18세기 중엽 즈음 미국으로부터 전해지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지요.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해 볼까요...
▶ 1 . 오랜 옛날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있는 캄페체란 항구 도시에 영국배가 기항했을때 상륙한 선원들이 어떤 바에 들어서니 카운터 안에서 한 소년이 껍질을 벗긴 나뭇가지를 사용하여 혼합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인들은 술을 스트레이트로만 마셨기 때문에 그 소년에게 그 혼합주에 대해 물었는데, 그 소년은 "Cora De Gallo"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 Cora De Gallo"는 스페인어로서 수탉의 꼬리를 의미하며 당시 그 소년은 자기가 들고 있는 나뭇가지의 모양이 수탉꼬리처럼 생겼다고 생각되어 말했으나 영국 선원들은 이때의 혼합주를 "Tail of Cock" 이라 부르며 즐겼고 이 말이 "Cocktail" 로 줄여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 2 . 19세기 중엽 미국의 허드슨강 부근에 윌리엄 클리포드라는 사람이 선술집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세가지의 자랑거리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강하고 늠름한 선수권을 갖고 있는 수탉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의 술창고에 세계의 명주를 가득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동딸 '에밀리'였습니다.
그 당시 허드슨강을 왕래하는 화물선의 선원이며 에밀리와는 연인사이였던 '애푸루운'이라는 젊은 사나이가 이 선술집에 매일밤 드나들었습니다. 윌리엄은 항상 애푸루운을 보고 ... "자네가 선장이 되면 에밀리와 결혼시킬 것이니 반드시 훌륭한 선장이 되어 다오." 라고 하였고, 몇 년이 흘러 마침내 애푸루운은 선장이 되어 에밀리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엄은 너무 기뻐서 가지고 있는 고급술을 여러가지와 혼합하여 수탉의 아름다운 꼬리털로 저어서 "코크테일(수탉의 꼬리) 만세" 라고 외쳤던 것이 그 후부터 Cocktail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 3 . 1795년 서인도 제도의 하나인 아이티(Haiti)섬 동부의 공화국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에 반란이 일어났을 때, 미국 중남부 루지애나(Louisiana)주의 수도 뉴 올리언즈(New Orleans)에 이주해온 Antoan Amedis Peychaud라는 사람이 로얄가(Royal Street) 437번지에 약방을 개업했습니다.
Peychaud가 만든 계란이 혼합된 음료를 불어를 사용하는 뉴올리언즈 사람들은 "Codquetier" (불어로 범주라는 뜻)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약용으로서의 의미는 잊어버렸고 그 명칭도 Cocktail로 부르게 되어 전해졌다고 합니다.
▶ 4 . 1776년 미국 텍사스주의 '요오크 타운'이란 마을의 텍사스 주립군 Party석상에서 술이 얼큰하게 취한 한 장교가 닭고기 요리를 만든 뒤 그 꼬리를 빈 병에 꽂아둔 것을 보고 "Hey! Madam Cocktail 한잔만 더 ! ..." 라고 했던 말이 지금까지 Cocktail이라 전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 5 . 옛날 Spain이 뉴멕시코 지방을 정복했을 때 그 지방에는 아즈테크족이 살고 있었으며, Cocktail은 그들이 사용하는 하나의 언어였습니다.
그런데 아즈테크족 이전에는 그 지방을 돌대크족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 귀족의 하나가 진귀한 혼성주를 만들어 어여쁜 자기 딸 "콕톨"과 함께 왕에게 바치자 왕은 크게 만족하여 즉시 그 혼성주를 어여쁜 귀족의 딸 이름을 따서 "콕톨"이라 명명하였으며 그 후 부터 Cocktail이라고 불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 6 . 18세기 초 미국 남부의 군대와 아솔로토 8세가 거느리는 멕시코군 사이에 소규모의 충돌이 끊임없이 계속 되었는데 서로간에 손실만 커서 결국 휴전을 맺기로 합의하고 멕시코 왕궁에서 그 조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솔로토왕과 미국군을 대표하는 장군의 회견은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의 주연으로 이루어졌고 회견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왕의 외동딸인 공주가 조용히 그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공주는 자기 솜씨를 발휘하여 혼합한 술을 장군앞으로 들고 가서 권하자, 한모금 마신 장군은 너무나 좋은 맛에 놀랐으나, 그 보다도 눈앞에 서 있는 공주의 아름다움에 더 한층 넋을 잃어 자기도 모르게 공주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공주는 수줍어 하면서 "콕틸(Cocktail)"하고 대답했는데, 장군은 순간적 착상으로 "지금 마시는 이 술은 앞으로 콕틸이라고 부르자" 고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고 합니다.
그 콕틸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Cocktail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전합니다. 일곱. 미국 독립전쟁 당시 버지니아 기병대에 '파트릭 후래나간' 이라는 한 아일랜드인이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입대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전장에서 죽어버렸습니다. 따라서 그의 부인이었던 벳치라는 여자는 별안간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남편을 잊지 못하는 그녀는 죽은 남편의 부대에 종군할 것을 희망하였습니다. 부대에서는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부대 술집의 경영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그녀는 특히, 브레이사라고 부르는 혼합주를 만드는데 소질이 있어, 군인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한 반미 영국인 지주의 닭을 훔쳐다가 장교들을 위로하였는데 그 닭의 꼬리 즉, 콕스 테일(Cocktail)을 주장의 브레이사 병에 꽂아서 장식하여 두었다고 합니다. 장교들은 닭의 꼬리와 브레이사로 밤을 새워 춤을 추며 즐겼습니다. 그런데 장교들이 모두 술에 만취되어 있는 가운데, 어느 한 장교가 병에 꽂힌 콕스 테일을 보고 '야! 그 콕스 테일 멋있군!' 하고 감탄을 하니 역시 술취한 다른 한 사람이 (자기들이 지금 마신 혼합주의 이름이 콕스 테일인줄 알고) 그 말을 받아서 말하기를 '응 정말 멋있는 술이야!'하고 응수했다 합니다.
그 이후부터 이 혼합주인 브레이사를 Cocktail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7 . 칵테일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여진 시기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시절에 남아메리카 카리브해안을 따라 여러지역을 탐방한 바 있는 모험가들에 의해 나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모험가들은 방문한 지역에서 원시적이로 토속적인 방법으로 증류된 여러가지 술을 혼합해서 새의 깃과 비슷한 나무뿌리로 젓던 것이 발전된 것이라고 하는데, 모험가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여행 중에 맛보았던 믹스드 드링크(Mixed Drink)를 소개하였고 이 아이디어는 곧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합니다.
칵테일
칵테일(Cocktail)이란 일반적으로 알코올 음료에 또 다른 술을 섞거나 혹은 과즙류나 탄산음료 또는 향료 등의 부재료를 혼합하여 만들며 맛, 향기, 색채의 세가지 요소의 조화를 살린 예술적 감각의 음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칵테일의 주재료로 쓰이는 술을 베이스(Base Liquor)라고 하고, 베이스의 종류에 따라 진 베이스, 위스키 베이스, 럼 베이스, 보드카 베이스, 브랜드 베이스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칵테일의 부재료는 각종 쥬스류나 탄산음료, 혼성주 등이 많이 사용되며 만드는 방법에 따라 사워, 슬링쿨러 등으로 나누고, 부재료로 쓰이는 과일이나 향미에 따라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 부재료를 통하여 알콜섭취로 인해 파괴되는 영양보완 (비타민, 단백질 등)
● 알콜도수를 낮추게 하여 위와 간의 부담을 적게한다.
● 미각적 : 달콤한 맛, 새콤한 맛, 쓴맛, 매운맛, 신맛 등
● 시각적 : 쉐이커가 흔들리는 모양, 글래스에 부어 비치는 빛에 의해 반짝이는 얼음조각 등
● 칼로리 보강 : 다양한 부재료를 통하여 칼로리를 보강.
칵테일의 역사는 바로 술의 역사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태초의 인간일지라도 원시적으로 만들어진 과실주를 그대로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물이나 과즙으로 거친 맛을 제거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 후 지혜로운 인간은 많은 효능이 담겨진 각종 술들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사람들은 오히려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칵테일은 자연 발생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서의 기록에 의하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정확하게 무엇을 혼합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믹스를 해서 마셨다는 기록이 있고, 또 기원 640년경 중국의 당나라에서는 포도주에 말젖을 첨가해 마셨고, 1180년에는 이슬람교인들 사이에 꽃과 식물을 물과 엷은 알코올에 섞어 마시는 것이 고안되었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칵테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870년 독일의 칼르린데에 의해서 암모니아 압축에 의한 인공 냉동기가 발명되고 여러가지 모양의 글래스가 일반화된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고, 미국을 시초로 해서 칵테일이 계승 발전되어 온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지요.
메이플라워호로부터 시작된 영국인들의 아메리카 신대륙 이주는, 마지막 범선인 커티샥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는데 이들 이주자들이 지닌 술이라고는 고향을 떠날 때 실은 지금의 스카치 위스키(Scotch Whisky) 뿐이었는데 아마도 개척자 정신에 불타있던 사람들에게 고향을 떠나 향수를 잊게 해주는 유일한 벗은 당시의 스카치 뿐이었을 것입니다.
그 후에도 스카치는 영국에서 미국을 왕복하며 장사하던 무역상인에 의해 부분적으로 들어왔으나 충분한 양이 되지 못하다가 드디어 1789년 미국의 켄터키주에서 위스키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위스키는 지금의 위스키에 비해 맛이나 향에서 미흡한 것으로 마시기에 역겨울 정도였습니다.
그후 여러가지 방법이 개발되었는데 중서부 지역의 목동들로부터 시작된 방법. 즉, 그들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소나 양의 젖을 배합하는 방법이 칵테일의 시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초기 미국 서부의 말상인들은 말가격이 하락하자 경매일마다 말에게 혼합된 술을 마시게 하여 활기있게 함으로써 비싸게 팔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Tory라는 농장을 경영하는 아일랜드 출신의 여주인은 하인들의 불평불만을 진압하기 위하여 혼합주 (펀치 - 5가지 이상의 음료가 혼합된 것)를 대접했더니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하인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무렵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지방에서도 혼합음료를 마셨는데, 그것은 '파페므와' 라고 불렀고, 한편 네덜란드의 암스텔담 근처의 바(BAR)에서는 술꾼들의 행패를 방지하기 위해 칵테일의 방법을 시도하여 성공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 후 1800년대 후기와 1900년대 초반에 걸쳐서 칵테일은 서서히 대중화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양상들은 아녀자들이 부엌에서 벗어나 빈번한 외식을 즐기면서 열기를 더해갔고, 좀 더 본격화 된 것은 미국의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는 동안 (1920년~1933년)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쥬스류나 크림, 탄산수 등을 혼합하여 마시면서부터 칵테일이 널리 보급된 것이었습니다.
Whisky Sour, Pink Lady, Tom Collins, Alexander등이 당시의 애주가들에게 마셔졌으며, 콜라나 세븐업의 사용이 대중화 되었습니다.
금주법이 해제되었을 때 칵테일의 시대는 열렸고, 1940년대 세계대전의 상황에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여성들까지도 가세하여 7 & 7, Rum & Coke, Daiquiri와 Bacardi들이 대중적이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보드카의 인기가 미국전역을 휩쓸면서 음주자들에게 새로운 세대의 영역을 맞게 했고, Ginger Beer와 Vodka로 혼합된 Moscow Mule이 Smirnoff회사에 의해 비중 높게 광고 되었으며, Screw Driver, Bloody Mary, Gimlet등이 대유행 하였습니다.
1970년대 초기에는 열광적인 일이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Harvey Wallbanger라는 술외판원에 의해 Galliano라는 알려지지 않은 주류가 선전되어 이 술을 넣은 칵테일 ( 하베이 웰벵거,버진 키스 등)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타임지의 머리기사에 자리잡을 만큼 유명하게 되었고 모두들 그것을 구입하려 했습니다.
이후 더욱 많은 리큐르 (혼합주)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새로운 술들이 개발될 때마다 항상 새롭고, 훌륭한 칵테일이 창작되어왔으며,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칵테일" 이라는 말에 대한 어원의 유래는 여러가지가 전해지고 있으나,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구분은 어렵습니다.
대략 18세기 중엽 즈음 미국으로부터 전해지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지요.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해 볼까요...
▶ 1 . 오랜 옛날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있는 캄페체란 항구 도시에 영국배가 기항했을때 상륙한 선원들이 어떤 바에 들어서니 카운터 안에서 한 소년이 껍질을 벗긴 나뭇가지를 사용하여 혼합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인들은 술을 스트레이트로만 마셨기 때문에 그 소년에게 그 혼합주에 대해 물었는데, 그 소년은 "Cora De Gallo"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 Cora De Gallo"는 스페인어로서 수탉의 꼬리를 의미하며 당시 그 소년은 자기가 들고 있는 나뭇가지의 모양이 수탉꼬리처럼 생겼다고 생각되어 말했으나 영국 선원들은 이때의 혼합주를 "Tail of Cock" 이라 부르며 즐겼고 이 말이 "Cocktail" 로 줄여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 2 .
19세기 중엽 미국의 허드슨강 부근에 윌리엄 클리포드라는 사람이 선술집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세가지의 자랑거리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강하고 늠름한 선수권을 갖고 있는 수탉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의 술창고에 세계의 명주를 가득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동딸 '에밀리'였습니다.
그 당시 허드슨강을 왕래하는 화물선의 선원이며 에밀리와는 연인사이였던 '애푸루운'이라는 젊은 사나이가 이 선술집에 매일밤 드나들었습니다.
윌리엄은 항상 애푸루운을 보고 ... "자네가 선장이 되면 에밀리와 결혼시킬 것이니 반드시 훌륭한 선장이 되어 다오." 라고 하였고, 몇 년이 흘러 마침내 애푸루운은 선장이 되어 에밀리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엄은 너무 기뻐서 가지고 있는 고급술을 여러가지와 혼합하여 수탉의 아름다운 꼬리털로 저어서 "코크테일(수탉의 꼬리) 만세" 라고 외쳤던 것이 그 후부터 Cocktail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 3 . 1795년 서인도 제도의 하나인 아이티(Haiti)섬 동부의 공화국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에 반란이 일어났을 때, 미국 중남부 루지애나(Louisiana)주의 수도 뉴 올리언즈(New Orleans)에 이주해온 Antoan Amedis Peychaud라는 사람이 로얄가(Royal Street) 437번지에 약방을 개업했습니다.
Peychaud가 만든 계란이 혼합된 음료를 불어를 사용하는 뉴올리언즈 사람들은 "Codquetier" (불어로 범주라는 뜻)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약용으로서의 의미는 잊어버렸고 그 명칭도 Cocktail로 부르게 되어 전해졌다고 합니다.
▶ 4 . 1776년 미국 텍사스주의 '요오크 타운'이란 마을의 텍사스 주립군 Party석상에서 술이 얼큰하게 취한 한 장교가 닭고기 요리를 만든 뒤 그 꼬리를 빈 병에 꽂아둔 것을 보고 "Hey! Madam Cocktail 한잔만 더 ! ..." 라고 했던 말이 지금까지 Cocktail이라 전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 5 . 옛날 Spain이 뉴멕시코 지방을 정복했을 때 그 지방에는 아즈테크족이 살고 있었으며, Cocktail은 그들이 사용하는 하나의 언어였습니다.
그런데 아즈테크족 이전에는 그 지방을 돌대크족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 귀족의 하나가 진귀한 혼성주를 만들어 어여쁜 자기 딸 "콕톨"과 함께 왕에게 바치자 왕은 크게 만족하여 즉시 그 혼성주를 어여쁜 귀족의 딸 이름을 따서 "콕톨"이라 명명하였으며 그 후 부터 Cocktail이라고 불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 6 . 18세기 초 미국 남부의 군대와 아솔로토 8세가 거느리는 멕시코군 사이에 소규모의 충돌이 끊임없이 계속 되었는데 서로간에 손실만 커서 결국 휴전을 맺기로 합의하고 멕시코 왕궁에서 그 조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솔로토왕과 미국군을 대표하는 장군의 회견은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의 주연으로 이루어졌고 회견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왕의 외동딸인 공주가 조용히 그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공주는 자기 솜씨를 발휘하여 혼합한 술을 장군앞으로 들고 가서 권하자, 한모금 마신 장군은 너무나 좋은 맛에 놀랐으나, 그 보다도 눈앞에 서 있는 공주의 아름다움에 더 한층 넋을 잃어 자기도 모르게 공주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공주는 수줍어 하면서 "콕틸(Cocktail)"하고 대답했는데, 장군은 순간적 착상으로 "지금 마시는 이 술은 앞으로 콕틸이라고 부르자" 고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고 합니다.
그 콕틸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Cocktail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전합니다. 일곱.
미국 독립전쟁 당시 버지니아 기병대에 '파트릭 후래나간' 이라는 한 아일랜드인이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입대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전장에서 죽어버렸습니다.
따라서 그의 부인이었던 벳치라는 여자는 별안간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남편을 잊지 못하는 그녀는 죽은 남편의 부대에 종군할 것을 희망하였습니다. 부대에서는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부대 술집의 경영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그녀는 특히, 브레이사라고 부르는 혼합주를 만드는데 소질이 있어, 군인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한 반미 영국인 지주의 닭을 훔쳐다가 장교들을 위로하였는데 그 닭의 꼬리 즉, 콕스 테일(Cocktail)을 주장의 브레이사 병에 꽂아서 장식하여 두었다고 합니다.
장교들은 닭의 꼬리와 브레이사로 밤을 새워 춤을 추며 즐겼습니다.
그런데 장교들이 모두 술에 만취되어 있는 가운데, 어느 한 장교가 병에 꽂힌 콕스 테일을 보고 '야! 그 콕스 테일 멋있군!' 하고 감탄을 하니 역시 술취한 다른 한 사람이 (자기들이 지금 마신 혼합주의 이름이 콕스 테일인줄 알고) 그 말을 받아서 말하기를 '응 정말 멋있는 술이야!'하고 응수했다 합니다.
그 이후부터 이 혼합주인 브레이사를 Cocktail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7 . 칵테일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여진 시기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시절에 남아메리카 카리브해안을 따라 여러지역을 탐방한 바 있는 모험가들에 의해 나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모험가들은 방문한 지역에서 원시적이로 토속적인 방법으로 증류된 여러가지 술을 혼합해서 새의 깃과 비슷한 나무뿌리로 젓던 것이 발전된 것이라고 하는데, 모험가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여행 중에 맛보았던 믹스드 드링크(Mixed Drink)를 소개하였고 이 아이디어는 곧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