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더기 하나님 - 존 오트버그 2. 사랑은 관심

박셀라200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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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더기 하나님 - 존 오트버그   2. 사랑은 관심


★ 누더기 하나님 - 존 오트버그

 

2. 사랑은 관심이다

음식, 물과 더불어 관심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 중의 하나다.

 

누군가 마터 테레사에게 가난한 자 중 가장 가난한 자들이 사는 캘커타 거리를 걸으며 무엇을 보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부모 잃은 아이들, 굶주린 사람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보냐는 것이었다. 그녀의 대답이다. "비참한 모습으로 변장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주된 장소는 일상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이력을 가질 필요도, 요직에 앉을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라면 보셨을 것을 나도 보고, 예수님이라면 보이셨을 반응으로 나도 반응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전에 소경이었던 이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기뻐해야 할 이유는 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했다. 그저 안식일을 범한 것만 보았을 뿐이다. 자기네의 영적 우월성을 지탱해 주는 종교 체제에 대한 위협만 보았을 뿐이다. 예수님이 쳐다보신 바로 그 사람을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이 보신 것을 보지는 못했다. 자기네 지위에만 관심을 갖는 데 급급해서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다.

 

요한은 그들의 마음이 닫혀 있는 것(그들은 세 차례나 "우리는 아노라"고 말했다.)과 이 남자가 자기의 무지를 고백하는 것(그는 세 차례나 "내가 알지 못하나"라고 말했다.)을 계속 대조한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전에 소경이던 남자가 말을 잇는다.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요 9:25)

 

하나님이 내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이럴 때가 많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에겐 우리의 입에 달 단추가 필요하다.

 

"나는 우주의 하나님이요, 하늘과 땅의 창조자란다. 내가 네 몸을 설계했고, 네 세계를 형성했고, 네 잠재력을 창조했단다. 내게는 지혜와 보호와 너와 의사소통하길 원하는 사랑이 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구나. 네 마음과 삶은 너무나 시끄럽구나. 나는 소리 지르지는 않을 거다. 사랑한다 얘야, 하지만 넌 네 입에 단추를 달아야겠구나."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이기 위한 '잔잔함'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호수의 비유를 든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돌은 넓은 파장을 만든다. 하지만 오직 호수가 잔잔할 때만 그렇다. 호수가 조용하고 잔잔할 때 돌이 들어오면 그것은 전 수면에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호수가 잠잠하지 않을 때, 이미 수면이 어지럽게 흔들릴때에는 돌이 들어왔는지를 감지할 수 없다. 바람이 수면을 흔드는 곳에서는 돌이 파장을 일으킬 수 없다. 폭풍우가 치는 곳은 이미 너무 많이 동요되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약간의 파장의 생기는지의 여부를 알아챌 수 없는 것이다. 그 파장은 수면의 미친 듯한 움직임 속에 묻혀 버릴 것이다.

잔잔함은 수용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잡음과 소음이 가득할 때에는 전화와 텔레비전이 전하는 메시지를 받을 수 없다. 잔잔함이 먼저이고 경청은 그 다음이다. 이 순서는 바뀔 수 없다. 시편기자는 말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분주함 때문에 내 마음은 고요함을 잃어버린다. 너무나 많은 책임과 너무나 부족한 잠, 너무나 많은 자극, 너무나 많은 말... 이 모든 것들이 잔잔함을 방해해서 하나님의 '작고 잔잔한 음성'을 분별할 수 없게 만든다.

 

야고보는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고 말했다. 이는 우리가 성경을 통틀어 가장 쉽게 어기는 명령이다.

 

사랑은 행위의 한 형태다. "사랑의 행위가 취하는 주된 형태는 관심이다. 서로를 사랑할 때 우리는 관심을 쏟는다. 우리는 그 사람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인다."

 

제임스 린치 박사는 '관심'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심장혈관 조직에 대한 진짜 치료는 '경청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혈압은 말할 때 올라가고 들을 때 내려갔다.

 

하나님은 자기를 잊지 않으셨음을 알았다. 무시당하며 산 세월을 끝내고, 이제 하나님이 누더기 인형 중 가장 비천한 자에게 조차도 얼굴을 돌리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눈물을 세시는 분이다.

 

이 남자는 이제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가 자기의 남은 인생을 예수님이 본 대로, 보는 법을 배우는 데 썼을 거라 생각한다.

 

그게 바로 눈이 존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