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영2006.08.24
조회19
*

 

 

 

 

 

너랑 전화 끊고 집 앞에 뭘 좀 사러 나가는데 우리 아파트 양지 뒤쪽

 

에 노란 개나리꽃이 보였어. 이렇게 추운데도 노랗게 피어난 거야.

 

홍아, 때로는 봄에도 눈이 내리고 한겨울 눈발 사이로 샛노란 개나

 

리 꽃이 저렇게 피어나기도 하잖아. 한여름 쨍쨍한 햇살에도 소나기

 

가 퍼붓고, 서리 내리는 가을 한가운데에서도 단풍으로 물들지 못하

 

고 그저 파랗게 얼어 있는 단풍나무가 몇 그루 있는 것처럼, 이 거대

 

한 유기체인 자연조차 제 길을 못찾아 헤매는데, 하물며 아주 작은

 

유기체 인간인 네가 지금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해서 너무 힘들어하

 

지는마. 가끔은 하늘도 마음을 못 잡고 비가 오다 개다 우박 뿌리다

 

가 하며 몸부림 치는데 네 작은 심장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해도

 

괴로워 하지마.

 

그냥 시간에게 널 맡겨 봐.  그리고 너 자신을 들여다봐. 약간은 구

 

경하는 기분으로 말이야. 네 마음의 강에 물결이 잦아들고 그리고

 

고요해진 다음 어디로 흘러가고 싶어하는지,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

 

봐.  그건 어쩌면 순응 같고 어쩌면 회피 같을지 모르지만 실은 우리

 

가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대응일지도 몰라.  적어도 시

 

간은 우리에게 늘 정직한 친구니까. 네 방에 불을 켜듯 네 마음에 불

 

을 하나 켜고......이제 너를 믿어봐.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