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기획 야스쿠니와의 전쟁 제1편-야스쿠니와 세 여자 2006년 8월 13일 (일) 오후 8시, KBS 1TV(글,연출-이호경)
# 야스쿠니신사에 합장된 징용전사자 이사현씨의 딸 이희자 씨
# 타이완 원주민 출신 국회의원 가오진 쑤메이 씨(지와스 아리)
#A급 전범 도죠 히데키의 손녀 도죠 유우코 씨
@한국에 와서 국립묘지 참배 중,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유우코@
<유우코> 일본 야스쿠니에는 이렇게 군인들이 들어오지 못 합니다. 정말로 한국사람들이 부러워. 일본 군인들도 자신들의 선배들에 대해 이런 식으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데.. 너무 너무 부러워..
@세 사람이 모인 자리..@
<유우코> 야스쿠니신사에 대해서 많이들 오해하시는데 야스쿠니는 유골을 모시는 곳도 위패를 모시는 곳도 아닙니다. 야스쿠니신사는 246만 6천여 명 영령들의 영혼을 커다란 방석같이 하나의 신으로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쑤메이> 많은 일본인들이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제가 야스쿠니신사가 정말 어떤 곳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야스쿠니신사입니다. 신사 입구로 쓰고 있는 이 나무는 타이완의 아리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즉 일제 강점시기 타이완 식민지의 나무를 약탈한 것이죠. 야스쿠니신사에는 극히 일부의 민간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군인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략 아홉 차례 다른 나라를 침략할 때 앞장섰던 군인들 역시 야스쿠니신사에 들어가 있습니다.
<유우코> 타이완도 한국도 우리가 위법적으로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국제법에 입각해서 두 나라를 일본이 통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쑤메이> 제가 알려드리죠. 1896년부터 1920년까지 20여년 사이에 일본은 타이완 원주민을 상대로 138차례의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138차례의 전쟁에서 7,000여명을 살해했습니다. 살상한 수를 다 합치면 만 천여명에 달합니다. 당시 원주민의 인구는 8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원주민 8명 중 1명을 당신 일본인들이 죽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합법적인 통치인가요?
<유우코> 식민지에서 일본이 통치했던 방식을 말씀드리면 우선 교육수준을 높이고 인프라를 정비해서 일본과 같은 학력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사업부터 착수를 했습니다.
<쑤메이> 저런 말들은 모두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소위 말하는 교육수준이라는 것은 우리 원주민들에게 '너는 원주민이 아니다. 너는 일본인이다.'라고 세뇌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그 후 이 사람들을 전쟁터로 보내 천황에게 충성을 바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식민지에 대한 배려입니까? 만약 히틀러와 유태인들을 같은 곳에 모시고 추도를 하게 한다면 생각해보세요. 독일에서는 난리가 날 겁니다.
<유우코> 자꾸 독일하고 비교하시는데 독일은 자국민이었던 유태인을 죽였던 나라입니다. 자기나라에 있던 유태인들을요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것은 누가 뭐래도 미국이 오랫동안 준비한 책략 때문입니다. 미국이 일본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 생존권을 위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으킨 전쟁입니다. 따라서 독일의 히틀러와 비교하는 것은 완전 난센스.
<이희자> 아까 그 야스쿠니를 문제삼는 사람들이 어떠한 오해가 있는가 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중요한 것은 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고 죽은 사실을 가족한테 알리지 않았느냐 문제를 삼는 겁니다
<유우코> 야스쿠니가 자기 마음대로 합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의 규칙에 따라 야스쿠니합사를 실시합니다. 전쟁시기에는 일본 육군과 해군이 합사를 담당했지만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전하고 나서는 정부부처인 후생성이 이것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육해군을 대신해서.. 그러므로 야스쿠니신사가 자기 마음대로 합사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예요. 당신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마음대로 합사했다고 주장하시지만.. 이것은 일본의 룰이었어요. 전사한 사람은 어떻든지 야스쿠니에 모신다는 것은 일본의 룰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타이완도 한국도 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니 차별하지 않고 합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희자> 빼달라면 빼줘야 되는 것이고, 룰이 엄숙하다? 고쳐서라도 해야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룰을 왜 따라야되느냐? 왜 내 아버지가 왜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끌려가서 죽어야했던 그 당시 조선인 21,000여 명이 넘는 그분들이 거기에 합사되어야 했는가? 왜 그분들이 다 따라가야되는거에요? 그게 문제거든요. 지금의 야스쿠니를 문제삼는 것은
오해가 있어서 문제삼는 게 아니고 그런 야스쿠니의 강압적인 지금도 그 당시의 대만이나 한국이나 남의 나라를 지배했던 그 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하려고 하니까 그것을 문제삼는 것이거든요.
<유우코> 그럼 나라의 룰로 그 사람들을 차별해서 당신들의 아버지들를 그 당시 합사하지 않았다면 "일본인으로 싸웠건만 왜 합사시켜주지 않는가?"라고 화내지 않았을까요?
<이희자> 아니 그런 정신을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잘 못 된거지
<유우코> 어찌됐든 일본인으로 싸워주셨으니까.. 일본인으로 싸우다 돌아가신 분은 모두 야스쿠니에 모신다는 것이 전쟁에 나가셨던 당신 아버지같은 병사와 국가간의 약속이었어요.
<이희자> 아니, 아니, 예, 무슨 말인지 알겠어
<유우코> 지금 한 말 꼭 좀 통역해주세요. 중요한 말입니다.
<이희자> 일본을 위해서 싸워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도와서 싸운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유우코>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이희자> 갈 수 밖에 없었으니까 전쟁터에 끌려간 거지
<유우코> 한국도 타이완도 민족의 슬픔을 딛고 싸워 주신것에 대해 일본은 정말로 감사히 생각합니다.
<이희자> 감사하게 생각 안 해도 좋고 예예 그러니까 지금 할아버지가 전범으로
돌아가신 것에 대해 억울하시죠?
<유우코> 1953년에 일본 국회에서 모든 당이 찬성해서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처형시기가 강화조약 체결 전이므로 아직 전쟁상태라고 봐야하고 그 경우 사형된 전범들은 모두 '전사자'로 인정하는 법안입니다. 따라서 범죄자가 아닙니다.
<이희자> 할아버지가 훌륭한 무사였다면 그 할아버지 훌륭한 무사로 인해서 아시아의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냈고 그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유우코> 한국 민족의 슬픔을 딛고 전장으로 나가신 아버님의 심정도 소중히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희자> (어이없어하며)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유우코> 아버님의 심정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당신의 척도로 당시 아버님의 심정을 전부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당시 한국, 타이완의 아버님들은 정말로 용감하게 싸우셨습니다. 그것을 60년도 더 지난 지금 아버님을 야스쿠니에서 빼내려고 하는 것은 아버님의 의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버님을 빼내고 싶으신가요?
<이희자> 예
<유우코> 그리고 또 하나.. 일단 합사를 하면 영혼들은 하나의 방석처럼 되어버립니다. 이 사람을 빼내고 저 사람을 빼내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합사라는 말은 사전에 있어도 분사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희자>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까?
<유우코> 에? 신도에 관해서요? 아니면 야스쿠니신사의 존재에 관해서요?
<이희자> 그것을 자랑이라고 생각하시냐구요
<유우코> 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차별없이 신으로 모시는 일본의 시스템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희자> 그럼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유우코> 당신의 슬픔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당신 아버님의 영혼이 평온하게 쉬고 계시는데
<이희자> 더이상 말할 것도 없어요
<유우코> 이런 식으로 야스쿠니신사를 흔들어대면 아버님이 좋아하시리라 생각하시나요? 분명히 아버님은 슬퍼하고 계실 겁니다.
<이희자> 그렇게 그 많은 신도들 모아놓고서는 방석을 만들어놓고 뭐하자는건데..
<유우코> 앉아주세요 앉아주세요
<이희자> 남의 나라... 살아있는 유족들의 의사를 들어주는게 죽은 사람을 위하는 도리입니다.
<유우코> 좀 조용히 말씀하세요
<이희자> 조용히 못 합니다. 이제 그만 끝네요.
<쑤메이> 야스쿠니의 평온을 바라신다면 우리 원주민의 이름을 삭제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야스쿠니의 평온은 없습니다.
<유우코> 서로가 서로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조용히 말하지 않고 저렇게 감정적으로 나오면.. 저 얼굴 좀 보세요. 말할 때 표정이 너무 무서웠어요.. (웃음)
소름끼치는 이야기 (야스쿠니신사)
[KBS스페셜]
815기획 야스쿠니와의 전쟁 제1편-야스쿠니와 세 여자
2006년 8월 13일 (일) 오후 8시, KBS 1TV(글,연출-이호경)
# 야스쿠니신사에 합장된 징용전사자 이사현씨의 딸 이희자 씨
# 타이완 원주민 출신 국회의원 가오진 쑤메이 씨(지와스 아리)
#A급 전범 도죠 히데키의 손녀 도죠 유우코 씨
@한국에 와서 국립묘지 참배 중,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유우코@
<유우코>
일본 야스쿠니에는 이렇게 군인들이 들어오지 못 합니다.
정말로 한국사람들이 부러워.
일본 군인들도 자신들의 선배들에 대해
이런 식으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데.. 너무 너무 부러워..
@세 사람이 모인 자리..@
<유우코>
야스쿠니신사에 대해서 많이들 오해하시는데
야스쿠니는 유골을 모시는 곳도 위패를 모시는 곳도 아닙니다.
야스쿠니신사는 246만 6천여 명 영령들의 영혼을
커다란 방석같이 하나의 신으로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쑤메이>
많은 일본인들이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제가 야스쿠니신사가
정말 어떤 곳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야스쿠니신사입니다. 신사 입구로 쓰고 있는 이 나무는
타이완의 아리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즉 일제 강점시기 타이완 식민지의 나무를 약탈한 것이죠.
야스쿠니신사에는 극히 일부의 민간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군인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략 아홉 차례 다른 나라를 침략할 때 앞장섰던
군인들 역시 야스쿠니신사에 들어가 있습니다.
<유우코>
타이완도 한국도 우리가 위법적으로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국제법에 입각해서
두 나라를 일본이 통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쑤메이>
제가 알려드리죠. 1896년부터 1920년까지 20여년 사이에 일본은
타이완 원주민을 상대로 138차례의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138차례의 전쟁에서 7,000여명을 살해했습니다.
살상한 수를 다 합치면 만 천여명에 달합니다.
당시 원주민의 인구는 8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원주민 8명 중 1명을
당신 일본인들이 죽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합법적인 통치인가요?
<유우코>
식민지에서 일본이 통치했던 방식을 말씀드리면
우선 교육수준을 높이고 인프라를 정비해서
일본과 같은 학력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사업부터 착수를 했습니다.
<쑤메이>
저런 말들은 모두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소위 말하는 교육수준이라는 것은 우리 원주민들에게
'너는 원주민이 아니다. 너는 일본인이다.'라고
세뇌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그 후 이 사람들을 전쟁터로 보내
천황에게 충성을 바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식민지에 대한 배려입니까? 만약 히틀러와 유태인들을
같은 곳에 모시고 추도를 하게 한다면 생각해보세요.
독일에서는 난리가 날 겁니다.
<유우코>
자꾸 독일하고 비교하시는데 독일은 자국민이었던
유태인을 죽였던 나라입니다. 자기나라에 있던 유태인들을요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것은
누가 뭐래도 미국이 오랫동안 준비한 책략 때문입니다.
미국이 일본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 생존권을
위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으킨 전쟁입니다.
따라서 독일의 히틀러와 비교하는 것은 완전 난센스.
<이희자>
아까 그 야스쿠니를 문제삼는 사람들이
어떠한 오해가 있는가 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중요한 것은 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고
죽은 사실을 가족한테 알리지 않았느냐 문제를 삼는 겁니다
<유우코>
야스쿠니가 자기 마음대로 합사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의 규칙에 따라 야스쿠니합사를 실시합니다.
전쟁시기에는 일본 육군과 해군이 합사를 담당했지만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전하고 나서는 정부부처인
후생성이 이것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육해군을 대신해서..
그러므로 야스쿠니신사가 자기 마음대로
합사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예요.
당신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마음대로 합사했다고 주장하시지만..
이것은 일본의 룰이었어요. 전사한 사람은 어떻든지
야스쿠니에 모신다는 것은 일본의 룰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타이완도 한국도 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니 차별하지 않고 합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희자>
빼달라면 빼줘야 되는 것이고, 룰이 엄숙하다?
고쳐서라도 해야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룰을 왜 따라야되느냐?
왜 내 아버지가 왜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끌려가서 죽어야했던
그 당시 조선인 21,000여 명이 넘는
그분들이 거기에 합사되어야 했는가?
왜 그분들이 다 따라가야되는거에요? 그게 문제거든요.
지금의 야스쿠니를 문제삼는 것은
오해가 있어서 문제삼는 게 아니고
그런 야스쿠니의 강압적인 지금도 그 당시의 대만이나 한국이나
남의 나라를 지배했던 그 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하려고 하니까
그것을 문제삼는 것이거든요.
<유우코>
그럼 나라의 룰로 그 사람들을 차별해서
당신들의 아버지들를 그 당시 합사하지 않았다면
"일본인으로 싸웠건만 왜 합사시켜주지 않는가?"라고
화내지 않았을까요?
<이희자>
아니 그런 정신을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잘 못 된거지
<유우코>
어찌됐든 일본인으로 싸워주셨으니까.. 일본인으로 싸우다
돌아가신 분은 모두 야스쿠니에 모신다는 것이
전쟁에 나가셨던 당신 아버지같은 병사와
국가간의 약속이었어요.
<이희자>
아니, 아니, 예, 무슨 말인지 알겠어
<유우코>
지금 한 말 꼭 좀 통역해주세요. 중요한 말입니다.
<이희자>
일본을 위해서 싸워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도와서 싸운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유우코>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이희자>
갈 수 밖에 없었으니까 전쟁터에 끌려간 거지
<유우코>
한국도 타이완도 민족의 슬픔을 딛고 싸워 주신것에 대해
일본은 정말로 감사히 생각합니다.
<이희자>
감사하게 생각 안 해도 좋고 예예
그러니까 지금 할아버지가 전범으로
돌아가신 것에 대해 억울하시죠?
<유우코>
1953년에 일본 국회에서 모든 당이 찬성해서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처형시기가 강화조약 체결 전이므로
아직 전쟁상태라고 봐야하고 그 경우 사형된 전범들은
모두 '전사자'로 인정하는 법안입니다.
따라서 범죄자가 아닙니다.
<이희자>
할아버지가 훌륭한 무사였다면
그 할아버지 훌륭한 무사로 인해서
아시아의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냈고
그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유우코>
한국 민족의 슬픔을 딛고 전장으로 나가신
아버님의 심정도 소중히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희자>
(어이없어하며)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유우코>
아버님의 심정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당신의 척도로 당시 아버님의 심정을
전부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당시 한국, 타이완의 아버님들은
정말로 용감하게 싸우셨습니다.
그것을 60년도 더 지난 지금 아버님을
야스쿠니에서 빼내려고 하는 것은
아버님의 의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버님을 빼내고 싶으신가요?
<이희자>
예
<유우코>
그리고 또 하나.. 일단 합사를 하면
영혼들은 하나의 방석처럼 되어버립니다.
이 사람을 빼내고 저 사람을 빼내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합사라는 말은 사전에 있어도 분사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희자>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까?
<유우코>
에? 신도에 관해서요? 아니면 야스쿠니신사의 존재에 관해서요?
<이희자>
그것을 자랑이라고 생각하시냐구요
<유우코>
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차별없이 신으로
모시는 일본의 시스템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희자>
그럼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유우코>
당신의 슬픔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당신 아버님의 영혼이 평온하게 쉬고 계시는데
<이희자>
더이상 말할 것도 없어요
<유우코>
이런 식으로 야스쿠니신사를 흔들어대면
아버님이 좋아하시리라 생각하시나요?
분명히 아버님은 슬퍼하고 계실 겁니다.
<이희자>
그렇게 그 많은 신도들 모아놓고서는
방석을 만들어놓고 뭐하자는건데..
<유우코>
앉아주세요 앉아주세요
<이희자>
남의 나라... 살아있는 유족들의 의사를 들어주는게
죽은 사람을 위하는 도리입니다.
<유우코>
좀 조용히 말씀하세요
<이희자>
조용히 못 합니다. 이제 그만 끝네요.
<쑤메이>
야스쿠니의 평온을 바라신다면 우리 원주민의 이름을 삭제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야스쿠니의 평온은 없습니다.
<유우코>
서로가 서로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조용히 말하지 않고
저렇게 감정적으로 나오면.. 저 얼굴 좀 보세요.
말할 때 표정이 너무 무서웠어요.. (웃음)
재방송을 보면서 소름이 확 끼쳤다.
다시 KBS 다시보기를 보며 글로 옮기면서
정말 일본인들과의 벽을 실감했다.
2시간 반 동안 세 사람의 토론장 분위기
안 봐도 알듯하다.
국립묘지에서 유우코가 눈물을 흘릴 때
난 우리나라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야스쿠니에는 군인들이 들어와서 선배들을
참배할 수 없다고 서러워한 거라니..
토론에서 유우코는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변명만 늘어놨다.
일제시대 대빵의 손녀는 과연 엘리트답게
그럴듯한 말들로 오히려 설득하려고 했다.
심지어 자신의 할아버지가 범죄자가 아닌 이유를
1953년 국회 법안, 조약체결전 어쩌고 하면서 열변했다.
대만의 국회의원인 가오진 쑤메오는
국회의원인 만큼 아주 멋지게 차근차근 반박했다.
그에 비해 징용전사자의 딸로서 일개시민에 불구했던
이희자씨는 비록 화려한 언변을 펼지친 못 했으나
국가니, 룰이니, 민족이니를 다 떠나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처참히 밟힌
한 가족, 한 개인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셨다.
대만은 국회의원이 팔을 걷고 나서는데
왜 우리나라는 참다못한 당사자가 나서는가 하는 아쉬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건 미국 때문이라고?
책임을 떠 넘기는 전형적인 변명이다.
지금은 미국 부시와 고이즈미 사이가 너무 좋군..
그리고 또, 일본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야스쿠니 합사는 야스쿠니신사에서 독자적으로하는 일이니
일본이라는 국가는 책임이 없다고 기각하고
소송금 일체를 원고가 물게 하더니
유우코씨는 합사는 야스쿠니 마음대로하는게 아니라
후생성 담당이라며 내뺀다.. 이상하지 않아?
야스쿠니신사를 흔들어대면 그분들이 슬퍼하실꺼라고?
자신을 강제징용해간 놈들과 함께 뒤섞여
하나의 신으로 되어있는 지금이 슬프지..
아직까지 일본 장교들의 서슬아래서
얼마나 분통이 터지시겟어?
민족의 슬픔을 딛고 싸워 주신것에 대해 감사해?
어이가 없다..
많은 일본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유우코에 말대로 일본의 룰을
아직까지 한국과 대만 등이 따라야한다는 생각은
아시아 여러국가들에 대한 침략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J-pop, 일본영화, 한일 민간교류.. 그래, 좋아한다.
하지만 이렇게 일본이 뒤통수를 칠때면 혼란스럽다.
내가 민족주의에 빠져 우리입장에서만 생각하는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유우코씨의 말들, 일본인들의 말들
그럴듯 하지만 분명 아닌 부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