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반(反)세계”가 아니라 “반(半)세계”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작자가 “半세계”를 만들면,
수용자 측이 또 한 편의 “半세계”를 만들어 내 “전세계”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론은 연극, 영화에 한하지 않고 모든 작품에서 통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연극실험실 텐조사지키의 사람들이 테라야마의 영화제작에 관계되기 이전에도
몇 가지 영상작품을 만드는 시도를 했었(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을 위한 대본뿐만 아니라)지만,
우선 라는 16밀리 작품을 편집하는 작업에서 텐조사지키의 스텝이 본격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다치키 요시히로씨가 촬영한 러쉬 필름을 창고에서 꺼내와 마츠자와씨와
오기하라씨가 편집을 시작한 것이 첫 작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작품이 일반 개봉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테조사지키 안에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 표현도 열린 대지(大地)로 나타난 것이다.
나 자신도 아직 영화배우가 될 마음은 있어도 영화제작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연극제작 쪽이 바빠서 그랬던 것인지 지금은 잊었지만, 에도 오기하라 감독 작품 에도 스탭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극단에 영화제작부가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어 텐조사지키 영화의 남자 배우가 될
생각으로 입단했는데 어느새 극단의 스탭이 되어 있었다.
▲ 테라야마 슈지의 실험영화
지금은 와 으로 두 작품이 되어 버렸지만, 처음엔 한
시간이 넘는 장편이었다. 나는 이 작품이 더 좋았지만, 에서
퍼스트 조감독을 했던 시라이 타카세씨에게 테라야마 본인이 “스마트한 영화로 만들어달라”
고 의뢰하여 두 개의 짧은 작품이 된 것이다.
한편, 내가 테라야마 영상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제1회 장편작품 ATG
영화 부터 였다. 연극실험실 텐조사지키의 모든 세력을 이
영화에 쏟아 붇기로 결정하고 연극활동은 잠시 쉬기로 했다. 원래 연극보다도 영화를 더
좋아했으므로 이 기회가 나에겐 즐거운 일었다.
나는 스크립터로 임명되었다. 스크립터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좋다고 받아들였다.
“시라이씨가 가르쳐 줄거니까 걱정마”라고 테라야마는 말한다. 그 이후 테라야마 영화에서
도에이의 이외, 모든 영화의 스크립터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짜 스크립터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것은 때였다. 프랑스 제작자 측에서 한 명이
스탭으로 참가한 실베드 보도르 아주머니, 이 사람이 진짜 스크립터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알랑 레네의 로 일본에 온 적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고
그녀는 놀랄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을 했다. 렌즈가 몇 밀리인지, 조리개는 얼마인지,
피사체와의 거리가 몇 미터인지, 카메라의 높이는 몇 센티인지, 필름이 몇 피트 돌았는지
배우의 눈길이 어땠는지, 의상은 무엇을 입었는지, 대사는 대본대로 바르게 말했는지, 등등,
대체 그녀의 신경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놀랄 정도로 섬세하여 무엇이든 기록하고 있었다.
보도르 아주머니집에 초대받아 파리로 갔을 때, 더듬거리는 영어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녀는 알랑 레네의 모든 작품, 폴란스키의 후반 모든 작품, 일본에서는 로
유명한 코스타 카브라스 감독의 작품에, 스크립터로서 참가해 왔다고 했으며 심지어
감독의 부인 같은 자격으로 시나리오 헌팅의 단계부터 참가한다고 한다. 그녀는 감독의
머리 속에 완성되어 있을 영화의 이미지가 그대로 이미지화 되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엄밀하게 기록해 가는 작업을 했다. 한번이라도 좋으니 그녀의 흉내를
내보려 생각했지만, 테라야마 슈지 영화 제작에는 나 같이 애매하고 적당한 것이 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대본은 거의 매일 바뀐다. 배우가 말하기 쉽게 대사도
바뀐다. 컷을 끊는 것은 카메라맨에게 맡기기 때문에 더욱 내가 스크립터로 있을 수
있었다. 보도로 아주머니 덕분에 나는 어쩌면 테라야마 영화의 스크립터밖엔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정도였다.
▲ 영화 , 1971년작
때, 아주 좋아하는 카메라맨 이이다 마사요시씨는 첫
영화였지만(CF에서는 16밀리지만 JAZZ의 대단한 것이 있다), 퍼스트 조감독인 시라이씨
는 신도 카네토 팀의 베테랑이며, 카메라 보조로는 오시마 나기사 팀의 나리지마
토이치로의 센겐 세이조仙山誠三 씨가 맡았고, 녹음에는 이치가와 콘 감독팀의 오바야시
테츠야씨가, 편집은 베테랑인 우라오카 코이치씨로, 우리들 영화 만들기의 영자도 모르는
텐조사지키의 사람들에게도 영화가 가능한 체제를 ATG측이 만들어 줘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테라야마는 이 작품에서 철저하게 영화 문법을 지키기 않는 것을 기본 컨셉으로 두었다.
컷을 자르지 않은 롱숏 (레스토랑의 신만 시라이씨에게 편집 하도록 했다. 편집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동시 녹음용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동시 녹음
(카메라의 모터 노이즈가 약간 들어가 있다). 스튜디오 촬영이 없이 올로케이션(라스트
씬의 스튜디오 촬영은 로케이션으로서 스튜디오를 사용했다). 미술은 모리 세이이치씨와
에모토 료이치 씨에게 전혀 영화적이지 않은 것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주인공도
완전 초보, 시인의 사사키씨 (무대판 에서는 자작 시를 낭독 하였으나
제대로 된 배우 경험은 없다)를 기용하여 테라야마의 대본이 바로 사사키씨의 삶의
언어가 되도록 쓰고, 준 주인공인 아버지 역에는 영화, 연극평론가 사이토 마사히로씨를
배치하였다. 조모 역에는 베테랑 다나카 후데코, 등등 텐조사지키와 도쿄 키드 브라더스의
연극 공연에서 이미 완성된 작품들이라 촬영 전에 음악녹음의 반은 끝나 있어 현지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촬영하는 마치 뮤지컬 영화와 같았다.
▲ 영화 중에서
정말 이렇게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불안은 모두의 머리 속에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그런
말을 입밖에 내는 사람은 없었다.
한 편 대부분 촬영이 끝나면 나는 편집실로 불려가게 된다. 내가 제출한 스크립트 용지만이
촬영 현장과 편집실을 이어주는 것이었다. 시라토 산페이白土三平의 만화 의
움직이지 않는 그림을 훌륭한 영화로 만든 우라오카씨를 존경하고 있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편집실로 가면, 우라오카 편집장은 “알기 쉬워, 귀여운 그림을 그려줘 고마워” 라며 우선 내
스크립트 용지의 만화 같은 그림을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편집의 기본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면서, 계속해서 영상을 이어갔다. 연극실험실 텐조사지키의 대표이자 테라야마의 대리로
와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영화의 세계로 끌려 들어갔다...
*** 관련 영화 섹션 : 서울영화제 마니페스타
2006-08-17 모리사키 헨리쿠(森崎
1949년 효고현출생. 17세 고교중퇴 및 가출. 그 이후 테라야마 슈지에게 사사, 이후
테라야마 슈지의 배우이자 스탭으로 활동했다..
연극에서는 음향을 주로 담당하였고 영화에서는 조감독과 기록, 사진에서는 인화,
신문 잡지에서는 디자인 담당. 현재는 주로 “연극실험실, 만유인력”, “제3에로티카”,
“연극집단, 연못의 아래”등의 포스터, 전단, 디자인 사진집의 편집 디자인을 하였다.
파르코 영화 “운타마기르” , “푸”의 조감독, 다카하시 한메이 감독의 “사라의 신세계”의
타이틀 디자인 등도 담당하였다.
테라야마 슈지 감독작품 “로라”, “심판”, “청소년을 위한 입문” 등에서는 배우로서
출연하였고, “로라” 상영을 위해서 베를린 영화제, 에딘버러 영화제, 타이완 영화제도
참가한 바 있다. ,
[연재] 모리사키 헨리쿠가 말하는 <내가 추억하는 테라야마>
[연재] 모리사키 헨리쿠가 말하는
테라야마 슈지 감독과 영화를 만드는 동안, 영화의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면서도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불안은 모두의 머리 속에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그런 말을 입밖에 내는 사람은 없었다...
▲ 모리사키 헨리쿠가 출연한 영화
테라야마 슈지의 작품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관객이 적극적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테라야마는 “만든 쪽과 관객의 상상력이 하나가 되어 작품을 완성 시킨다”고 했다. 그는
또한 “반(反)세계”가 아니라 “반(半)세계”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작자가 “半세계”를 만들면,
수용자 측이 또 한 편의 “半세계”를 만들어 내 “전세계”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론은 연극, 영화에 한하지 않고 모든 작품에서 통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연극실험실 텐조사지키의 사람들이 테라야마의 영화제작에 관계되기 이전에도 몇 가지 영상작품을 만드는 시도를 했었(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을 위한 대본뿐만 아니라)지만, 우선 라는 16밀리 작품을 편집하는 작업에서 텐조사지키의 스텝이 본격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다치키 요시히로씨가 촬영한 러쉬 필름을 창고에서 꺼내와 마츠자와씨와 오기하라씨가 편집을 시작한 것이 첫 작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작품이 일반 개봉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테조사지키 안에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 표현도 열린 대지(大地)로 나타난 것이다. 나 자신도 아직 영화배우가 될 마음은 있어도 영화제작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연극제작 쪽이 바빠서 그랬던 것인지 지금은 잊었지만, 에도 오기하라 감독 작품 에도 스탭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극단에 영화제작부가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어 텐조사지키 영화의 남자 배우가 될 생각으로 입단했는데 어느새 극단의 스탭이 되어 있었다.▲ 테라야마 슈지의 실험영화
지금은 와 으로 두 작품이 되어 버렸지만, 처음엔 한
시간이 넘는 장편이었다. 나는 이 작품이 더 좋았지만, 에서
퍼스트 조감독을 했던 시라이 타카세씨에게 테라야마 본인이 “스마트한 영화로 만들어달라”
고 의뢰하여 두 개의 짧은 작품이 된 것이다.
한편, 내가 테라야마 영상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제1회 장편작품 ATG
영화 부터 였다. 연극실험실 텐조사지키의 모든 세력을 이
영화에 쏟아 붇기로 결정하고 연극활동은 잠시 쉬기로 했다. 원래 연극보다도 영화를 더
좋아했으므로 이 기회가 나에겐 즐거운 일었다.
나는 스크립터로 임명되었다. 스크립터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좋다고 받아들였다. “시라이씨가 가르쳐 줄거니까 걱정마”라고 테라야마는 말한다. 그 이후 테라야마 영화에서 도에이의 이외, 모든 영화의 스크립터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짜 스크립터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것은 때였다. 프랑스 제작자 측에서 한 명이 스탭으로 참가한 실베드 보도르 아주머니, 이 사람이 진짜 스크립터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알랑 레네의 로 일본에 온 적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고 그녀는 놀랄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을 했다. 렌즈가 몇 밀리인지, 조리개는 얼마인지, 피사체와의 거리가 몇 미터인지, 카메라의 높이는 몇 센티인지, 필름이 몇 피트 돌았는지 배우의 눈길이 어땠는지, 의상은 무엇을 입었는지, 대사는 대본대로 바르게 말했는지, 등등, 대체 그녀의 신경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놀랄 정도로 섬세하여 무엇이든 기록하고 있었다. 보도르 아주머니집에 초대받아 파리로 갔을 때, 더듬거리는 영어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녀는 알랑 레네의 모든 작품, 폴란스키의 후반 모든 작품, 일본에서는 로 유명한 코스타 카브라스 감독의 작품에, 스크립터로서 참가해 왔다고 했으며 심지어 감독의 부인 같은 자격으로 시나리오 헌팅의 단계부터 참가한다고 한다. 그녀는 감독의 머리 속에 완성되어 있을 영화의 이미지가 그대로 이미지화 되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엄밀하게 기록해 가는 작업을 했다. 한번이라도 좋으니 그녀의 흉내를 내보려 생각했지만, 테라야마 슈지 영화 제작에는 나 같이 애매하고 적당한 것이 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대본은 거의 매일 바뀐다. 배우가 말하기 쉽게 대사도 바뀐다. 컷을 끊는 것은 카메라맨에게 맡기기 때문에 더욱 내가 스크립터로 있을 수 있었다. 보도로 아주머니 덕분에 나는 어쩌면 테라야마 영화의 스크립터밖엔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정도였다.
때, 아주 좋아하는 카메라맨 이이다 마사요시씨는 첫 영화였지만(CF에서는 16밀리지만 JAZZ의 대단한 것이 있다), 퍼스트 조감독인 시라이씨 는 신도 카네토 팀의 베테랑이며, 카메라 보조로는 오시마 나기사 팀의 나리지마 토이치로의 센겐 세이조仙山誠三 씨가 맡았고, 녹음에는 이치가와 콘 감독팀의 오바야시 테츠야씨가, 편집은 베테랑인 우라오카 코이치씨로, 우리들 영화 만들기의 영자도 모르는 텐조사지키의 사람들에게도 영화가 가능한 체제를 ATG측이 만들어 줘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테라야마는 이 작품에서 철저하게 영화 문법을 지키기 않는 것을 기본 컨셉으로 두었다. 컷을 자르지 않은 롱숏 (레스토랑의 신만 시라이씨에게 편집 하도록 했다. 편집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동시 녹음용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동시 녹음 (카메라의 모터 노이즈가 약간 들어가 있다). 스튜디오 촬영이 없이 올로케이션(라스트 씬의 스튜디오 촬영은 로케이션으로서 스튜디오를 사용했다). 미술은 모리 세이이치씨와 에모토 료이치 씨에게 전혀 영화적이지 않은 것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주인공도 완전 초보, 시인의 사사키씨 (무대판 에서는 자작 시를 낭독 하였으나 제대로 된 배우 경험은 없다)를 기용하여 테라야마의 대본이 바로 사사키씨의 삶의 언어가 되도록 쓰고, 준 주인공인 아버지 역에는 영화, 연극평론가 사이토 마사히로씨를 배치하였다. 조모 역에는 베테랑 다나카 후데코, 등등 텐조사지키와 도쿄 키드 브라더스의 연극 공연에서 이미 완성된 작품들이라 촬영 전에 음악녹음의 반은 끝나 있어 현지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촬영하는 마치 뮤지컬 영화와 같았다.▲ 영화 , 1971년작
정말 이렇게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불안은 모두의 머리 속에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그런 말을 입밖에 내는 사람은 없었다. 한 편 대부분 촬영이 끝나면 나는 편집실로 불려가게 된다. 내가 제출한 스크립트 용지만이 촬영 현장과 편집실을 이어주는 것이었다. 시라토 산페이白土三平의 만화 의 움직이지 않는 그림을 훌륭한 영화로 만든 우라오카씨를 존경하고 있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편집실로 가면, 우라오카 편집장은 “알기 쉬워, 귀여운 그림을 그려줘 고마워” 라며 우선 내 스크립트 용지의 만화 같은 그림을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편집의 기본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면서, 계속해서 영상을 이어갔다. 연극실험실 텐조사지키의 대표이자 테라야마의 대리로 와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영화의 세계로 끌려 들어갔다...▲ 영화 중에서
* 8월 25일 2편에 계속됩니다.
** 관련기사 : [Book ing] 테라야먀 슈지
*** 관련 영화 섹션 : 서울영화제 마니페스타 2006-08-17 모리사키 헨리쿠(森崎
1949년 효고현출생. 17세 고교중퇴 및 가출. 그 이후 테라야마 슈지에게 사사, 이후 테라야마 슈지의 배우이자 스탭으로 활동했다.. 연극에서는 음향을 주로 담당하였고 영화에서는 조감독과 기록, 사진에서는 인화, 신문 잡지에서는 디자인 담당. 현재는 주로 “연극실험실, 만유인력”, “제3에로티카”, “연극집단, 연못의 아래”등의 포스터, 전단, 디자인 사진집의 편집 디자인을 하였다. 파르코 영화 “운타마기르” , “푸”의 조감독, 다카하시 한메이 감독의 “사라의 신세계”의 타이틀 디자인 등도 담당하였다. 테라야마 슈지 감독작품 “로라”, “심판”, “청소년을 위한 입문” 등에서는 배우로서 출연하였고, “로라” 상영을 위해서 베를린 영화제, 에딘버러 영화제, 타이완 영화제도 참가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