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도에서 9년째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하는 K씨는 현재 대학생 자녀 2명을 두고 있다.
아들 석진 군은 현재 중국 최고명문인 베이징대 치의예과 2학년생이고, 딸 동은 양은 우리나라 최고인 서울대 법학과 1학년생이다.
두 명의 자녀를 각각 중국과 한국의 최고 명문대학에 입학시킨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찾아가 비법을 들어보았다.
K씨는 1994년 11월에 남편과 함께 중국 청도에 왔다.
석진 군이 초등학교 3학년, 동은 양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한국에서 중국어를 배운다든가 하는 준비 없이 중국에 왔다.
우선 아이들을 중국에 적응시키기 위해 중국학교에 보냈고 너무나도 열악한 기숙사환경을 알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기숙사생활을 하도록 했다. 철저히 중국에 적응시키기 위해 부모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한국인과 완전히 격리된 생활 속에서 아이들은 다행히도 잘 적응해주었다.
그러나 2년 정도 지나 아이들이 잘 적응했다고 생각할 즈음에 교육상 문제점이 드러났다.
아이들이 한국어를 잊어가고 있다는 것과 중국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발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집에서 등하교를 시키면서 영어는 원어민 교사가 가르치는 학원에서 배우도록 하고, 한국어는 부모와 생활하면서 공부하여 감각을 잃지 않도록 했다. 아이들이 대체로 학교생활을 잘하며 적응했지만 중국학생과 완전히 융화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념적으로 중국의 공산주의 이론을 배운다든가, 역사인식에서 우리나라와 다르거나 심지어 상반된 내용을 배울 때는 중국아이들과 다투거나 따돌림을 당하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올바른 우리나라의 역사관이나 이념을 갖도록 지도하며 위로해주었고, 아이들도 성장하며 양국의 시각이 왜 틀린지 이해해가는 것 같았고 그러는 와중에 이미 대학을 준비할 시간이 돌아왔다.
K씨는 대학을 전략적으로 준비했다. 둘 모두를 최고의 명문대학에 보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들 석진 군의 경우, 당시의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국에서 명문대학을 나와도 국내기업에서 그 만큼 대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대학을 시도했다. 하지만 고려대 응시에서 실패했다.
K씨는 차선책을 검토했다. 당시에는 중국 내 대학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 명문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국내에서 대우해주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 예상하고 베이징대에 문을 두드렸다. 외국인 특별전형에서 지나치게 경쟁이 치열하고 그래서 장래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중의학과를 피했다.
대신 중국인과 직접적인 접촉이나 경쟁을 피하면서 졸업 시 자신의 전문영역을 살려 개인병원을 낼 수 있는 치의예과를 선택했다.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전공 관련 과목을 보는 입학시험은 주로 수강능력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는데 석진 군은 합격했다.
현재 우리와 달리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엄격한 검증에서 탈락자가 생기는 중국 북경대의 학제에서 중국학생과의 경쟁에 도태되지 않고 2학년을 다니고 있다.
동은 양은 국내 서울대에 도전했다.
아들의 전례를 거울삼아 미리부터 한글논술(K씨는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자영업자의 자녀인 경우 한글논술을 봄. 이와 비교해 공무원이나 회사파견 등으로 나간 부모의 자녀인 경우는 해당 외국어로 논술을 보게 됨)을 준비하고, 중국 내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봉사하는 한국법조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과 법학이 한자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법학과를 지원했다.
그리고 인터뷰 시에도 중국의 많은 한국인이 한국법조인의 법률서비스를 필요로 하지만 그에 필요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본인이 그러한 업무에 종사하며 조국에 봉사할 것임을 강조한 것이 높은 점수로 작용해(추정) 합격할 수 있었다.
물론 동은 양의 경우 서류전형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HSK 10급(중국어 평가시험으로 최고는 11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살피건대 본인들의 수준 높은 중국어 실력과 철저한 준비가 있었고, 중국에 와서 공부하고 얻은 외국인 특별전형이라는 일종의 혜택을 적절히 활용해 둘 모두 훌륭하게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K씨는 학원 사무실에 자랑스러운 아들과 딸의 입학사진을 걸어두었다. 아이들 표정만큼이나 본인의 표정도 환하다. 아마 그 자체가 자랑이요, 학원에 오는 학생들에 대한 광고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까지 2회에 걸쳐 중국에서 아이교육에 성공한 사례를 살펴보았다. 교육도 사업처럼 부모에게 있어서는 그 과정에 있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얻어지는 하나의 성공드라마란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우선 자녀를 중국에 철저히 적응하게 하기 위해 1년 이상 중국학교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도록 했다는 점과 어느 정도 언어와 문화에 적응한 다음에는 중국학교에서 받는 교육의 문제점이나 부족한 점을 학원이나 과외 등을 통해 보충하면서 성공적인 교육이 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사업이나 근무, 아이교육 등을 위해 중국에 오고 있다. 짧은 두 편의 성공스토리가 그들과 이글을 읽는 지인들의 자녀교육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딸은 서울대, 아들은 북경대(한국아이 중국에서 교육하기)
중국 청도에서 9년째 영어와 중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하는 K씨는 현재 대학생 자녀 2명을 두고 있다.
아들 석진 군은 현재 중국 최고명문인 베이징대 치의예과 2학년생이고, 딸 동은 양은 우리나라 최고인 서울대 법학과 1학년생이다.
두 명의 자녀를 각각 중국과 한국의 최고 명문대학에 입학시킨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찾아가 비법을 들어보았다.
K씨는 1994년 11월에 남편과 함께 중국 청도에 왔다.
석진 군이 초등학교 3학년, 동은 양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한국에서 중국어를 배운다든가 하는 준비 없이 중국에 왔다.
우선 아이들을 중국에 적응시키기 위해 중국학교에 보냈고 너무나도 열악한 기숙사환경을 알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기숙사생활을 하도록 했다. 철저히 중국에 적응시키기 위해 부모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한국인과 완전히 격리된 생활 속에서 아이들은 다행히도 잘 적응해주었다.
그러나 2년 정도 지나 아이들이 잘 적응했다고 생각할 즈음에 교육상 문제점이 드러났다.
아이들이 한국어를 잊어가고 있다는 것과 중국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발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집에서 등하교를 시키면서 영어는 원어민 교사가 가르치는 학원에서 배우도록 하고, 한국어는 부모와 생활하면서 공부하여 감각을 잃지 않도록 했다. 아이들이 대체로 학교생활을 잘하며 적응했지만 중국학생과 완전히 융화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념적으로 중국의 공산주의 이론을 배운다든가, 역사인식에서 우리나라와 다르거나 심지어 상반된 내용을 배울 때는 중국아이들과 다투거나 따돌림을 당하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올바른 우리나라의 역사관이나 이념을 갖도록 지도하며 위로해주었고, 아이들도 성장하며 양국의 시각이 왜 틀린지 이해해가는 것 같았고 그러는 와중에 이미 대학을 준비할 시간이 돌아왔다.
K씨는 대학을 전략적으로 준비했다. 둘 모두를 최고의 명문대학에 보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들 석진 군의 경우, 당시의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국에서 명문대학을 나와도 국내기업에서 그 만큼 대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대학을 시도했다. 하지만 고려대 응시에서 실패했다.
K씨는 차선책을 검토했다. 당시에는 중국 내 대학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 명문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국내에서 대우해주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 예상하고 베이징대에 문을 두드렸다. 외국인 특별전형에서 지나치게 경쟁이 치열하고 그래서 장래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중의학과를 피했다.
대신 중국인과 직접적인 접촉이나 경쟁을 피하면서 졸업 시 자신의 전문영역을 살려 개인병원을 낼 수 있는 치의예과를 선택했다.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전공 관련 과목을 보는 입학시험은 주로 수강능력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는데 석진 군은 합격했다.
현재 우리와 달리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엄격한 검증에서 탈락자가 생기는 중국 북경대의 학제에서 중국학생과의 경쟁에 도태되지 않고 2학년을 다니고 있다.
동은 양은 국내 서울대에 도전했다.
아들의 전례를 거울삼아 미리부터 한글논술(K씨는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자영업자의 자녀인 경우 한글논술을 봄. 이와 비교해 공무원이나 회사파견 등으로 나간 부모의 자녀인 경우는 해당 외국어로 논술을 보게 됨)을 준비하고, 중국 내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봉사하는 한국법조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과 법학이 한자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법학과를 지원했다.
그리고 인터뷰 시에도 중국의 많은 한국인이 한국법조인의 법률서비스를 필요로 하지만 그에 필요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본인이 그러한 업무에 종사하며 조국에 봉사할 것임을 강조한 것이 높은 점수로 작용해(추정) 합격할 수 있었다.
물론 동은 양의 경우 서류전형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HSK 10급(중국어 평가시험으로 최고는 11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살피건대 본인들의 수준 높은 중국어 실력과 철저한 준비가 있었고, 중국에 와서 공부하고 얻은 외국인 특별전형이라는 일종의 혜택을 적절히 활용해 둘 모두 훌륭하게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K씨는 학원 사무실에 자랑스러운 아들과 딸의 입학사진을 걸어두었다. 아이들 표정만큼이나 본인의 표정도 환하다. 아마 그 자체가 자랑이요, 학원에 오는 학생들에 대한 광고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까지 2회에 걸쳐 중국에서 아이교육에 성공한 사례를 살펴보았다. 교육도 사업처럼 부모에게 있어서는 그 과정에 있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얻어지는 하나의 성공드라마란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우선 자녀를 중국에 철저히 적응하게 하기 위해 1년 이상 중국학교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도록 했다는 점과 어느 정도 언어와 문화에 적응한 다음에는 중국학교에서 받는 교육의 문제점이나 부족한 점을 학원이나 과외 등을 통해 보충하면서 성공적인 교육이 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사업이나 근무, 아이교육 등을 위해 중국에 오고 있다. 짧은 두 편의 성공스토리가 그들과 이글을 읽는 지인들의 자녀교육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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