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밀가루 약.’ 화학적 성분은 같지만 약효가 크게 떨어지는 의약품을 일컫는 말이다. 경험이 많은 의사라면, 밀가루 약의 혐의가 짙은 의약품 이름을 몇 개는 댈 수 있다고 한다. 밀가루 약은 여러 측면에서 부작용이 많다.
우선, 환자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약효가 떨어지는 약을 복용하면 치료가 더딜 뿐 아니라 질병에 따라서는 합병증 발생과 사망 위험까지 높아진다. 또 이런 약을 복용한 환자는 더 많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전체 의료비 지출이 크게 늘어난다. 의사로서도 이런 약을 피하고자 비싼 오리지널 의약품을 선호하게 된다. 이런 약을 팔기 위한 각종 편법이 성행하게 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밀가루 약이 시중에서 버젓이 팔리는 데는 현행 건강보험의 의약품 등재제도 탓이 크다. 현 제도는 일부 비급여 약을 뺀 사실상 모든 약을 보험 급여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소화성 궤양치료제로 널리 처방되는 시메티딘의 경우, 시중에서 팔리는 같은 성분의 약이 무려 46가지에 이른다. 이 가운데 41가지가 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돼 있다. 41가지 상품 중에는 약효가 의심스럽거나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있다.
이처럼 숱한 의약품들 가운데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못한 채, 안전하고 약효가 좋은 약을 먹기 위해서는 오로지 의사의 경험과 양심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이런 점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을 꼽아 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하겠다는 정부의 의약품 등재제도 개편 방안은 지극히 상식적인 정책이다. 오히려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단언컨대, 약제비 지출을 적정화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의약품 선별등재 제도는 국민건강과 건강보험 재정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많은 선진국이 예전부터 시행하고 있던 정책이다. 당혹을 금치 못하는 건 이런 국내 공공정책에 대해 다른 나라가 왈가불가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대상국이 우리나라가 아닌 유럽의 어느 나라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다국적 제약사는 의약품 선별등재 제도가 혁신적 신약 도입을 저해하고, 결국 희귀·난치병 환자의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약효가 입증된 혁신적 신약은 당연히 국민건강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된다. 단, 약효에 상응하는 적정 가격을 책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혁신적 신약을 통해 폭리를 취하려는 제약사한테는 매우 불리하겠지만, 적정 가격을 받고자 하는 제약사한테는 훨씬 유리한 시장 환경을 조성해 준다. 혁신적 신약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희귀·난치병 환자들조차 ‘약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비싼 약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죽는다’며 다국적 제약사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선 상태다.
‘그림의 떡’이 사람의 배를 부르게 하지 못하듯, ‘비싸기만 한 의약품’은 국민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 약효가 떨어지는 의약품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의약품 선별등재 제도는 국민건강과 건강보험 재정 보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결코 포기하거나 물러설 수 없는 정책이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 의료관리학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특히 성분명이 같은 수없이 많은 약중에서 무엇을 쓰는 것이 환자에게 가장 좋을지 모든 임상의사들이 각자 시험해 볼수도 없지 않은가?
솔직히 그 효능을 보기 위해서 같은 증상의 환자들에게 성분명이 같은 다른 이름의 약을 처방해보기도 하지만 그 결과를 어떻게 입증한다는 말인가?
각 환자들의 상태가 모두 다르지 않은가?(즉 대조군으로서의 조건이 적합하지 않다. 또한 윤리적 문제도 따른다.)
최소한 보험수가를 인정해주는 약은 효능이 동등하다는 보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밀가루 약과 의약품 선별등재
[한겨레] ‘밀가루 약.’ 화학적 성분은 같지만 약효가 크게 떨어지는 의약품을 일컫는 말이다. 경험이 많은 의사라면, 밀가루 약의 혐의가 짙은 의약품 이름을 몇 개는 댈 수 있다고 한다. 밀가루 약은 여러 측면에서 부작용이 많다.
우선, 환자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약효가 떨어지는 약을 복용하면 치료가 더딜 뿐 아니라 질병에 따라서는 합병증 발생과 사망 위험까지 높아진다. 또 이런 약을 복용한 환자는 더 많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전체 의료비 지출이 크게 늘어난다. 의사로서도 이런 약을 피하고자 비싼 오리지널 의약품을 선호하게 된다. 이런 약을 팔기 위한 각종 편법이 성행하게 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밀가루 약이 시중에서 버젓이 팔리는 데는 현행 건강보험의 의약품 등재제도 탓이 크다. 현 제도는 일부 비급여 약을 뺀 사실상 모든 약을 보험 급여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소화성 궤양치료제로 널리 처방되는 시메티딘의 경우, 시중에서 팔리는 같은 성분의 약이 무려 46가지에 이른다. 이 가운데 41가지가 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돼 있다. 41가지 상품 중에는 약효가 의심스럽거나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있다.
이처럼 숱한 의약품들 가운데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못한 채, 안전하고 약효가 좋은 약을 먹기 위해서는 오로지 의사의 경험과 양심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이런 점에서 비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을 꼽아 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하겠다는 정부의 의약품 등재제도 개편 방안은 지극히 상식적인 정책이다. 오히려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단언컨대, 약제비 지출을 적정화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의약품 선별등재 제도는 국민건강과 건강보험 재정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많은 선진국이 예전부터 시행하고 있던 정책이다. 당혹을 금치 못하는 건 이런 국내 공공정책에 대해 다른 나라가 왈가불가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대상국이 우리나라가 아닌 유럽의 어느 나라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다국적 제약사는 의약품 선별등재 제도가 혁신적 신약 도입을 저해하고, 결국 희귀·난치병 환자의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약효가 입증된 혁신적 신약은 당연히 국민건강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된다. 단, 약효에 상응하는 적정 가격을 책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혁신적 신약을 통해 폭리를 취하려는 제약사한테는 매우 불리하겠지만, 적정 가격을 받고자 하는 제약사한테는 훨씬 유리한 시장 환경을 조성해 준다. 혁신적 신약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희귀·난치병 환자들조차 ‘약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비싼 약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죽는다’며 다국적 제약사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선 상태다.
‘그림의 떡’이 사람의 배를 부르게 하지 못하듯, ‘비싸기만 한 의약품’은 국민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 약효가 떨어지는 의약품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의약품 선별등재 제도는 국민건강과 건강보험 재정 보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결코 포기하거나 물러설 수 없는 정책이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 의료관리학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특히 성분명이 같은 수없이 많은 약중에서 무엇을 쓰는 것이 환자에게 가장 좋을지 모든 임상의사들이 각자 시험해 볼수도 없지 않은가?
솔직히 그 효능을 보기 위해서 같은 증상의 환자들에게 성분명이 같은 다른 이름의 약을 처방해보기도 하지만 그 결과를 어떻게 입증한다는 말인가?
각 환자들의 상태가 모두 다르지 않은가?(즉 대조군으로서의 조건이 적합하지 않다. 또한 윤리적 문제도 따른다.)
최소한 보험수가를 인정해주는 약은 효능이 동등하다는 보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당연하다.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야 의사는 마음껏 배운대로 약을 처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