果敢(과감)히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浴室(욕실)로 바로 뛰어가 찬물로 洗手(세수)를 한다. 비로소 疲困(피곤)함과 게으름에서 깨어난 새로운 自身(자신)을 보게 된다. 이제 平素(평소)보다 30分(분) 일찍 일어나 洗手(세수)하고 茶(차)를 마시고 生活(생활)을 바꾸기에 餘念(여념)이 없을 때 다시 작은 일부터 새롭게 始作(시작)하자.
찬물로 洗手(세수)하는 것은 하루를 맑은 精神(정신)으로 始作(시작)하기 爲(위)해서다. 찬물 맛사지가 長壽(장수)의 秘訣(비결)로 꼽히고 있기는 하지만 아침에 찬물로 洗手(세수)를 하는 것은 自身(자신)의 缺點(결점)을 일깨우기에도 좋은 方法(방법)이다. 懶怠(나태)한 생각과 몸을 올바로 추스르기에 가장 좋은 方法(방법)은 아침 일찍 일어나 찬물로 洗手(세수)를 하는 것이다. 精神(정신)이 맑아지면 暫時(잠시) 눈을 지긋이 감고 自身(자신)을 돌아보고 暫時(잠시)라도 冥想(명상)에 잠겨보자.
“마치 저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智慧(지혜)로운 사람은 뜻이 굳세어 誹謗(비방)과 稱讚(칭찬)에도 흔들림이 없다. 저 깊은 연못 속의 물은 본디 맑고 고요하며 깨끗한 것처럼 슬기로운 사람이 道(도)를 들으면 그 마음 고요하고 깨끗하기 그지 없다.”
산소리 물소리 가득한 山寺(산사)의 스님들만이 冥想(명상)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現代(현대)를 살아가는 生活人(생활인)에게도 冥想(명상)은 必要(필요)하다. 冥想(명상)은 不安(부정)하고 性急(성급)한 마음을 차분하고 愼重(신중)하게 이끌어준다. 혼자만의 空間(공간)에서 肅然(숙연)하고 바른 姿勢(자세)로 지긋이 눈을 감아 반쯤 뜬 채 다리는 半跏趺坐(반가부좌)를 틀고 손은 아랫배에 붙여 엄지손가락으로 圓(원)을 만들고 허리를 바르게 핀 후 冥想(명상)에 잠긴다.
비로소 언제와 오늘, 來日(내일)의 感覺(감각)이 새로워지고 마음속 葛藤(갈등)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지면서 머리는 맑아진다. 이렇게 값진 5分(분)의 冥想(명상)은 결코 宗敎人(종교인)들만의 專有物(전유물)이 아니다. 하지만 허둥대며 뛰쳐나가는 사람과 5分(분)의 冥想(명상)으로 하루의 아침을 爽快(상쾌)함이 가득해져서 나가는 사람들의 삶의 質(질)은 이미 다른 것이다.
“自身(자신)에 대한 敬意(경의)를 결코 잃지 말자. 自身(자신)의 눈 앞에서 自身(자신)을 값싸게 만들지 말자. 自身(자신)의 티끌 없고 탓할 것 없는 行實(행실)이 規範(규범)이 되어야 한다. 다른 어떤 規定(규정)보다도 自身(자신)에 대한 嚴格(엄격)한 判斷(판단)이 自身(자신)에게 더 많은 有益(유익)을 가져다 준다.”
24時間(시간) 바쁜 우리들. 아침 5分(분)의 冥想(명상)은 暫時(잠시)라도 自身(자신)의 거울이 되어 보자는 데 그 意義(의의)가 있다. 自身(자신)을 똑바로 제대로 볼 때 自身(자신)을 叱咤(질타)할 수도 있을 것이고, 自身(자신)을 尊敬(존경)할 수도 있을 것이다. 主觀的(주관적)인 것이 아니고 客觀的(객관적)인 立場(입장)에서 自身(자신)을 評價(평가)하기란 絶對(절대)로 쉽지 않다. 아침의 5分(분)의 冥想(명상)은 맑은 샘물같이 當身(당신)의 목을 축여준다. 목마른 當身(당신)에게……
懶 - 게으를 나 誹 - 비방할 비 謗 - 헐뜯을 방 跏 - 책상다리 가 趺 - 책상다리할 부 爽 - 시원할 상 叱 - 꾸짖을 질 咤 - 꾸짖을 타
아침 5分(분)의 冥想(명상)
果敢(과감)히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浴室(욕실)로 바로 뛰어가 찬물로 洗手(세수)를 한다. 비로소 疲困(피곤)함과 게으름에서 깨어난 새로운 自身(자신)을 보게 된다. 이제 平素(평소)보다 30分(분) 일찍 일어나 洗手(세수)하고 茶(차)를 마시고 生活(생활)을 바꾸기에 餘念(여념)이 없을 때 다시 작은 일부터 새롭게 始作(시작)하자.
찬물로 洗手(세수)하는 것은 하루를 맑은 精神(정신)으로 始作(시작)하기 爲(위)해서다. 찬물 맛사지가 長壽(장수)의 秘訣(비결)로 꼽히고 있기는 하지만 아침에 찬물로 洗手(세수)를 하는 것은 自身(자신)의 缺點(결점)을 일깨우기에도 좋은 方法(방법)이다. 懶怠(나태)한 생각과 몸을 올바로 추스르기에 가장 좋은 方法(방법)은 아침 일찍 일어나 찬물로 洗手(세수)를 하는 것이다. 精神(정신)이 맑아지면 暫時(잠시) 눈을 지긋이 감고 自身(자신)을 돌아보고 暫時(잠시)라도 冥想(명상)에 잠겨보자.
“마치 저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智慧(지혜)로운 사람은 뜻이 굳세어 誹謗(비방)과 稱讚(칭찬)에도 흔들림이 없다. 저 깊은 연못 속의 물은 본디 맑고 고요하며 깨끗한 것처럼 슬기로운 사람이 道(도)를 들으면 그 마음 고요하고 깨끗하기 그지 없다.”
산소리 물소리 가득한 山寺(산사)의 스님들만이 冥想(명상)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現代(현대)를 살아가는 生活人(생활인)에게도 冥想(명상)은 必要(필요)하다. 冥想(명상)은 不安(부정)하고 性急(성급)한 마음을 차분하고 愼重(신중)하게 이끌어준다. 혼자만의 空間(공간)에서 肅然(숙연)하고 바른 姿勢(자세)로 지긋이 눈을 감아 반쯤 뜬 채 다리는 半跏趺坐(반가부좌)를 틀고 손은 아랫배에 붙여 엄지손가락으로 圓(원)을 만들고 허리를 바르게 핀 후 冥想(명상)에 잠긴다.
비로소 언제와 오늘, 來日(내일)의 感覺(감각)이 새로워지고 마음속 葛藤(갈등)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지면서 머리는 맑아진다. 이렇게 값진 5分(분)의 冥想(명상)은 결코 宗敎人(종교인)들만의 專有物(전유물)이 아니다. 하지만 허둥대며 뛰쳐나가는 사람과 5分(분)의 冥想(명상)으로 하루의 아침을 爽快(상쾌)함이 가득해져서 나가는 사람들의 삶의 質(질)은 이미 다른 것이다.
“自身(자신)에 대한 敬意(경의)를 결코 잃지 말자. 自身(자신)의 눈 앞에서 自身(자신)을 값싸게 만들지 말자. 自身(자신)의 티끌 없고 탓할 것 없는 行實(행실)이 規範(규범)이 되어야 한다. 다른 어떤 規定(규정)보다도 自身(자신)에 대한 嚴格(엄격)한 判斷(판단)이 自身(자신)에게 더 많은 有益(유익)을 가져다 준다.”
24時間(시간) 바쁜 우리들. 아침 5分(분)의 冥想(명상)은 暫時(잠시)라도 自身(자신)의 거울이 되어 보자는 데 그 意義(의의)가 있다. 自身(자신)을 똑바로 제대로 볼 때 自身(자신)을 叱咤(질타)할 수도 있을 것이고, 自身(자신)을 尊敬(존경)할 수도 있을 것이다. 主觀的(주관적)인 것이 아니고 客觀的(객관적)인 立場(입장)에서 自身(자신)을 評價(평가)하기란 絶對(절대)로 쉽지 않다. 아침의 5分(분)의 冥想(명상)은 맑은 샘물같이 當身(당신)의 목을 축여준다. 목마른 當身(당신)에게……
懶 - 게으를 나 誹 - 비방할 비 謗 - 헐뜯을 방 跏 - 책상다리 가 趺 - 책상다리할 부
爽 - 시원할 상 叱 - 꾸짖을 질 咤 - 꾸짖을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