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과 하와에 관한 중요 문구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 2:25) 전혀 숨지 않았다. 숨을 이유가 없었다. 온전히 아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서 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상실했다.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이 아담과 함께하러 오셨을 때, 아담의 반응은 벗은 것을 두려워하여 숨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동산에 들어오시면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다.
왜 그 질문을 하셨을까? 전지하신 분이 혼동하셨을까? 하나님이 정말 아담이 있는 곳을 모르셨을까? 수년 동안 나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그 질문을 읽었다.
이 질문은 성경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질문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숨기를 허락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존재는 하나님에 의해서조차 강요될 수 없다. 그것은 자원하는 마음에서 드려져야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 있다. 하나님은 아담이 숨는 것을 허락만 하시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찾으셨다. 비록 아담이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선택된 자들을 보호하는 주도권을 갖고 계신다.
예수님의 잃어버린 양 이야기에서, 길을 잃은 한 마리는 혼자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양은 총명한 동물이 아니다.
양은 나쁜 습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피조물이다. 양들만 남겨 두면 그들은 홈이 파일 정도로 한 길만 따라간다. 언덕이 광야의 불모지가 될 때까지 풀을 뜯어먹는다.
양은 능동적인 동물이 아니다. 수동적이다. 양 한 마리가 절벽으로 가면 양 떼 전체가 따라간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은 무섭게 일그러진 자기 얼굴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쓴다. 그리고 자기 존재와 잘못된 행동을 숨기기 위해 오래된 오페라 하우스 안에 산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그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이야기의 최고 절정에서 그의 가면이 제거된다. 순간 그는 알려지기로, 보여지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기 얼굴이 섬뜩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기에 크리스틴이 공포에 질려 소리칠 거라 생각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은 긍휼과 동정으로 감동되었다. 크리스틴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흉한 얼굴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사랑이 그를 변화시켰다. 적어도 조금은... 그는 그녀를 보내 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자유를 줄 수 있었다. 그것이 그의 꿈의 마지막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잠시 동안 그가 숨기기를 그쳤을때, 그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고 사랑받을 수 있었다.비록 그가 대단히 추하게 생겼다 해도...
먼저, 가면이 벗겨져야 한다. 그러면 사랑이 심장을 꿰뚫을 수 있다.
당신이 만약 예수님보다 더 영적이라는 것을 발견하면, 당신은 지나치게 멀리 간 것이다.
나오라, 네가 어떤 사람이건 나오라. 숨는 시간이 끝나고,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벌금도, 벌칙도, 잡히는 것도 없고 오직 집으로 가는 것뿐이다. 나를 믿으라.
★ 누더기 하나님 - 존 오트버그 11. 숨바꼭질무언가
★ 누더기 하나님 - 존 오트버그
11. 숨바꼭질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한 마리의 잃은 양 찾기를 멈추지 않으시는 목자와 같다고.
우리는 숨기를 계속하고, 하나님도 찾기를 그만 두지 않으신다.
다음은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과 하와에 관한 중요 문구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 2:25) 전혀 숨지 않았다. 숨을 이유가 없었다. 온전히 아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서 우리는 이러한 자유를 상실했다.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이 아담과 함께하러 오셨을 때, 아담의 반응은 벗은 것을 두려워하여 숨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동산에 들어오시면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다.
왜 그 질문을 하셨을까? 전지하신 분이 혼동하셨을까? 하나님이 정말 아담이 있는 곳을 모르셨을까? 수년 동안 나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그 질문을 읽었다.
이 질문은 성경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질문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숨기를 허락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존재는 하나님에 의해서조차 강요될 수 없다. 그것은 자원하는 마음에서 드려져야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 있다. 하나님은 아담이 숨는 것을 허락만 하시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찾으셨다. 비록 아담이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선택된 자들을 보호하는 주도권을 갖고 계신다.
예수님의 잃어버린 양 이야기에서, 길을 잃은 한 마리는 혼자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양은 총명한 동물이 아니다.
양은 나쁜 습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피조물이다. 양들만 남겨 두면 그들은 홈이 파일 정도로 한 길만 따라간다. 언덕이 광야의 불모지가 될 때까지 풀을 뜯어먹는다.
양은 능동적인 동물이 아니다. 수동적이다. 양 한 마리가 절벽으로 가면 양 떼 전체가 따라간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은 무섭게 일그러진 자기 얼굴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쓴다. 그리고 자기 존재와 잘못된 행동을 숨기기 위해 오래된 오페라 하우스 안에 산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그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이야기의 최고 절정에서 그의 가면이 제거된다. 순간 그는 알려지기로, 보여지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기 얼굴이 섬뜩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기에 크리스틴이 공포에 질려 소리칠 거라 생각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은 긍휼과 동정으로 감동되었다. 크리스틴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흉한 얼굴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사랑이 그를 변화시켰다. 적어도 조금은... 그는 그녀를 보내 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자유를 줄 수 있었다. 그것이 그의 꿈의 마지막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잠시 동안 그가 숨기기를 그쳤을때, 그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고 사랑받을 수 있었다.비록 그가 대단히 추하게 생겼다 해도...
먼저, 가면이 벗겨져야 한다. 그러면 사랑이 심장을 꿰뚫을 수 있다.
당신이 만약 예수님보다 더 영적이라는 것을 발견하면, 당신은 지나치게 멀리 간 것이다.
나오라, 네가 어떤 사람이건 나오라. 숨는 시간이 끝나고,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벌금도, 벌칙도, 잡히는 것도 없고 오직 집으로 가는 것뿐이다. 나를 믿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