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각, 이미 누차 밝혔다시피 나는 평일에는 강의를 들은 뒤 곧바로 학원에서 중,고생들에게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다. 운이 좋게도 격일로 두 학원을 번갈아가며 일하느라 수입은 짭짤해졌다. 이리저리 그간의 빚들을 청산하는데 유용한 일자리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따뜻한 차 한 잔을 하며 노곤한 몸을 소파에 뉘인 채로 TV를 본다. `학력대물림,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다`란 도발적인 제하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다. 무언가 불편해지는 내 심정, 시선은 TV 브라운관에 고정된다.
2.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일주일간 다니는 학원이 무려 열 한 군데나 된다는 경악스런 소식에서부터, 대치동 일대의 학원가 일대의 전쟁이 터져 나온다. 지난 2월 내가 한 달간 일한 바있는 `학습 매니저` 시스템의 신종 사설 학원에 대한 소개도 나온다. 학생들의 학습 일정을 지정해주고 학습량이나 과제 이행에 대해 관리하는 정도의 업무를 보는 `학습 매니저`들을 모시는 학원이 태어났다. 이 학원의 한 달 등록비는 50만원선. 강남의 조기영어교육 붐은, 웬만한 대학생들보다도 더 원어민에 가까운 회화 실력을 지닌 `괴물`같은 어학 실력의 초등학생들을 양산해내었다. 한 해에 칠천만원의 영어교육비를 쏟아부은 한 초등학생의 어머니는, 이번에는 외국 유학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대 2006학년도 신입생들 중에서 서울 출신의 팔할은 강남 지역 거주자라는 데이터가 보도되고, 그 반면에 학원은 커녕 지역 저소득층 대상의 공부방에서 공부하면서 자기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공부방에서 공부한다는 사실을 숨긴다는 말을 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까지. 나는 TV를 끄고 만다.
3.
대한민국에서 학벌주의가 일정 부분 해체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기만이다. 공기업과 몇몇 굴지의 대기업체에서 인사 채용시 학력과 나이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하지만 선발된 자들 대다수는 고득점의 토익 실력을 지닌 소위 `일류대` 출신이 거진임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고만고만하게 먹고 사는 소시민들의 사회에서야 출신대학의 문제는 그리 민감하지 않으나, 대한민국 상위 1% 계층 내에선 여전히 학벌 재산이 가장 강력한 출세의 무기임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이 사회에서 유독 대치동을 비롯한 강남 일대에서 사교육 열풍이 거센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체험을 통해 깨달은 한국 사회의 냉혹한 진실 탓. 상위 1%의 안정적 삶을 유지하는데 그들은 동질적 클라스를 구성해야 하며, 이 클라스의 가입 조건 중 가장 우선되는 조건은 바로 `출신대학`이라는 것이라는 진실.
이 냉혹한 진실을 깨닫는 건 사실 대한민국 사천만 국민 모두이다. 다만, 이 진실을 깨우쳐 습득하는데는 필요한 게 있다. 바로 `돈`, 그리고 부모의 `직업, 지위`.
4.
이미 전에 게시판에 쓴 바 있으나, 나는 얼치기 강사이다. 대학 졸업 예정자도 아닌 내가 학원에서 정식 강사로 일을 할 수는 없기에 파트직으로 강의하곤 있으나 조그만 규모의 보습학원 수준에서 전임, 파트의 업무 구분이 그리 분명치만은 않기에 나는 전임의 몫도 부여받는다. 아이들을 위해 입시 전략을 짜고 수능과 논술까지 대비해야 하는 특강을 준비해야 하지만, 하루하루 학교 강의 따라가고 레포트 쓰고 틈틈이 되도 않는 영어 공부를 하는 나로서는 그러한 잡무를 성실히 할 여유가 없다. 변명일지 모르나, 그러기에 나는 결국 `아르바이트적` 개념으로 학원일을 할 뿐이다. 학원의 원장이나 강사들에겐 일말의 죄책감이나 미안함은 없다. 다만, 내 강의를 들으며 국어 공부에 흥미를 지니는 눈빛을 보이고 나를 응시하는, 학생들에게만은,
미안하다. 그리고 부끄럽다.
이 개같은 사교육의 나라에서 너희들을 기만하며 돈벌이하는 나를 용서해주렴. 이 엿같은 세상, 초등학교때부터 대학 졸업, 아니 평생에 걸쳐 과외와 경쟁의 촘촘한 그물망을 뒤짚어쓰고 살아야 하는 비극적 세계의 진실을 숨기며 강의하는 나를 용서해주렴. 자유와 창의적 다원주의가 넘치는 아름다운 조국 대한민국을 떠드는 나의 거짓말을 이해해주렴.
TV에서 보는 기운없는 아이들, 학원과 학원을 오가며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이른 나이에 삶에 대한 심드렁한 권태와 우울증을 겪는 표정들, 그러한 삶의 과정을 거쳐 대학에 들어온 캠퍼스의 학생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자식에게 또 얼만큼의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해야 하는지를 상상하다가 전율한다.
5.
노동자로 살아갈 나는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며 내 아이가 노동자 계급의 투철한 정신을 지닌 건강한 사회주의자가 되길 소망한다. 그러하기에 나는 내 아이들을 결코 학원 나부랭이에 보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저 거대한 물결, 조금만 뒤쳐지면 학교라는 공교육 현장에서조차까지 왕따를 당하고 소외의 체험을 겪는 가난한 아이들의 말을 들으니 기운이 빠진다. 아아, 미안하다, 내 자식아, 너는 나를 닮아 `왕따`와 `소외`의 체험을 겪고 말겠구나, 그러나 아비처럼 비겁하게 살지 않고 그것을 스스로 이겨내리라 믿어 본다.
지금 도서관에서 취업과 안정된 보금자리를 위해 공부하는 당신들은, 더 하면 더할 입시지옥을 통과해왔다. 그리고 대학에서의 제2라운드에 돌입했다. 어느새 까마득히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 아이들이 당신의 그 끔찍한 10대를 다시 재체험할 것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바란다. 아니, 그것보다는, 당신이 한 아이의 가장이 되어 있을 때조차 지금처럼, 아이 사교육비로 몇 백만, 천만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기러기 아빠가 되어서라도 아이 사교육시키겠다고 당신 아내와 아이 보내고 홀로 남아 일벌레되다가 가정 파탄나봐라. 그 꼴 겪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나에게 악담도 정도껏 하라고 힐난하지 말아라. 지금 사교육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학벌주의에 대해 정당화한다면, 이러한 지옥의 되물림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떠들어대는 내 자신도 자격 없음을 안다. 생활의 문제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버리고 빵에서 나와 학원가로 들어간 386 운동권들, 지금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브랜드의 학원들 원장이 되어 있는 이들 꽤 있다. 그네들이 떠들어대는 교육개혁이 개구라인 것처럼, 나 역시 아무리 떠들어봐야 입에 풀칠한다는 비루한 변명을 방패삼아 아이들을 등 쳐 먹는 사기꾼이기에. 나는 두렵다. 똘레랑스와 자유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 사실은 말야, 서울대나 일류대는 가야지 너네가 남들 위에서 군림하고 산단다, 그게 성공이야, 대한민국에선 그래, 라고 말해야 하는 나의 그 처지가.
미안하다, 아이들아, 엿같은 세상, 엿같은 나를
1.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각, 이미 누차 밝혔다시피 나는 평일에는 강의를 들은 뒤 곧바로 학원에서 중,고생들에게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다. 운이 좋게도 격일로 두 학원을 번갈아가며 일하느라 수입은 짭짤해졌다. 이리저리 그간의 빚들을 청산하는데 유용한 일자리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따뜻한 차 한 잔을 하며 노곤한 몸을 소파에 뉘인 채로 TV를 본다. `학력대물림,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다`란 도발적인 제하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다. 무언가 불편해지는 내 심정, 시선은 TV 브라운관에 고정된다.
2.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일주일간 다니는 학원이 무려 열 한 군데나 된다는 경악스런 소식에서부터, 대치동 일대의 학원가 일대의 전쟁이 터져 나온다. 지난 2월 내가 한 달간 일한 바있는 `학습 매니저` 시스템의 신종 사설 학원에 대한 소개도 나온다. 학생들의 학습 일정을 지정해주고 학습량이나 과제 이행에 대해 관리하는 정도의 업무를 보는 `학습 매니저`들을 모시는 학원이 태어났다. 이 학원의 한 달 등록비는 50만원선. 강남의 조기영어교육 붐은, 웬만한 대학생들보다도 더 원어민에 가까운 회화 실력을 지닌 `괴물`같은 어학 실력의 초등학생들을 양산해내었다. 한 해에 칠천만원의 영어교육비를 쏟아부은 한 초등학생의 어머니는, 이번에는 외국 유학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대 2006학년도 신입생들 중에서 서울 출신의 팔할은 강남 지역 거주자라는 데이터가 보도되고, 그 반면에 학원은 커녕 지역 저소득층 대상의 공부방에서 공부하면서 자기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공부방에서 공부한다는 사실을 숨긴다는 말을 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까지. 나는 TV를 끄고 만다.
3.
대한민국에서 학벌주의가 일정 부분 해체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기만이다. 공기업과 몇몇 굴지의 대기업체에서 인사 채용시 학력과 나이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하지만 선발된 자들 대다수는 고득점의 토익 실력을 지닌 소위 `일류대` 출신이 거진임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고만고만하게 먹고 사는 소시민들의 사회에서야 출신대학의 문제는 그리 민감하지 않으나, 대한민국 상위 1% 계층 내에선 여전히 학벌 재산이 가장 강력한 출세의 무기임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이 사회에서 유독 대치동을 비롯한 강남 일대에서 사교육 열풍이 거센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체험을 통해 깨달은 한국 사회의 냉혹한 진실 탓. 상위 1%의 안정적 삶을 유지하는데 그들은 동질적 클라스를 구성해야 하며, 이 클라스의 가입 조건 중 가장 우선되는 조건은 바로 `출신대학`이라는 것이라는 진실.
이 냉혹한 진실을 깨닫는 건 사실 대한민국 사천만 국민 모두이다. 다만, 이 진실을 깨우쳐 습득하는데는 필요한 게 있다. 바로 `돈`, 그리고 부모의 `직업, 지위`.
4.
이미 전에 게시판에 쓴 바 있으나, 나는 얼치기 강사이다. 대학 졸업 예정자도 아닌 내가 학원에서 정식 강사로 일을 할 수는 없기에 파트직으로 강의하곤 있으나 조그만 규모의 보습학원 수준에서 전임, 파트의 업무 구분이 그리 분명치만은 않기에 나는 전임의 몫도 부여받는다. 아이들을 위해 입시 전략을 짜고 수능과 논술까지 대비해야 하는 특강을 준비해야 하지만, 하루하루 학교 강의 따라가고 레포트 쓰고 틈틈이 되도 않는 영어 공부를 하는 나로서는 그러한 잡무를 성실히 할 여유가 없다. 변명일지 모르나, 그러기에 나는 결국 `아르바이트적` 개념으로 학원일을 할 뿐이다. 학원의 원장이나 강사들에겐 일말의 죄책감이나 미안함은 없다. 다만, 내 강의를 들으며 국어 공부에 흥미를 지니는 눈빛을 보이고 나를 응시하는, 학생들에게만은,
미안하다. 그리고 부끄럽다.
이 개같은 사교육의 나라에서 너희들을 기만하며 돈벌이하는 나를 용서해주렴.
이 엿같은 세상, 초등학교때부터 대학 졸업, 아니 평생에 걸쳐 과외와 경쟁의 촘촘한 그물망을 뒤짚어쓰고 살아야 하는 비극적 세계의 진실을 숨기며 강의하는 나를 용서해주렴.
자유와 창의적 다원주의가 넘치는 아름다운 조국 대한민국을 떠드는 나의 거짓말을 이해해주렴.
TV에서 보는 기운없는 아이들, 학원과 학원을 오가며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이른 나이에 삶에 대한 심드렁한 권태와 우울증을 겪는 표정들, 그러한 삶의 과정을 거쳐 대학에 들어온 캠퍼스의 학생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자식에게 또 얼만큼의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해야 하는지를 상상하다가 전율한다.
5.
노동자로 살아갈 나는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며 내 아이가 노동자 계급의 투철한 정신을 지닌 건강한 사회주의자가 되길 소망한다. 그러하기에 나는 내 아이들을 결코 학원 나부랭이에 보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저 거대한 물결, 조금만 뒤쳐지면 학교라는 공교육 현장에서조차까지 왕따를 당하고 소외의 체험을 겪는 가난한 아이들의 말을 들으니 기운이 빠진다. 아아, 미안하다, 내 자식아, 너는 나를 닮아 `왕따`와 `소외`의 체험을 겪고 말겠구나, 그러나 아비처럼 비겁하게 살지 않고 그것을 스스로 이겨내리라 믿어 본다.
지금 도서관에서 취업과 안정된 보금자리를 위해 공부하는 당신들은, 더 하면 더할 입시지옥을 통과해왔다. 그리고 대학에서의 제2라운드에 돌입했다. 어느새 까마득히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 아이들이 당신의 그 끔찍한 10대를 다시 재체험할 것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바란다. 아니, 그것보다는, 당신이 한 아이의 가장이 되어 있을 때조차 지금처럼, 아이 사교육비로 몇 백만, 천만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기러기 아빠가 되어서라도 아이 사교육시키겠다고 당신 아내와 아이 보내고 홀로 남아 일벌레되다가 가정 파탄나봐라. 그 꼴 겪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나에게 악담도 정도껏 하라고 힐난하지 말아라. 지금 사교육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학벌주의에 대해 정당화한다면, 이러한 지옥의 되물림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떠들어대는 내 자신도 자격 없음을 안다. 생활의 문제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버리고 빵에서 나와 학원가로 들어간 386 운동권들, 지금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브랜드의 학원들 원장이 되어 있는 이들 꽤 있다. 그네들이 떠들어대는 교육개혁이 개구라인 것처럼, 나 역시 아무리 떠들어봐야 입에 풀칠한다는 비루한 변명을 방패삼아 아이들을 등 쳐 먹는 사기꾼이기에. 나는 두렵다. 똘레랑스와 자유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 사실은 말야, 서울대나 일류대는 가야지 너네가 남들 위에서 군림하고 산단다, 그게 성공이야, 대한민국에선 그래, 라고 말해야 하는 나의 그 처지가.
6.
속에서 죽어가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바로 우리 모두의 인간적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