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보려고 엘레베이터를 탔다. 무심코 오른 쪽 옆에 달린 거울을 보니 왼쪽 거울에 비친 내 뒷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앞태만 못난 줄 알았더니 뒷태도 너무 못났다. 나는 안그럴줄 알았는데 나도 역시 나이를 먹고 있다고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난 안그럴줄 알았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 였는데....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들어 인사하는데 나는 무시하고 현관 앞에 뻔뻔하게 서있는 거울 앞에 섰다. 실증적인 사물을 그대로 투영하는 물체라는 것이 맘에 안들어서 거울도 잘 안보는데 왠지 좀 나를 까발리고 싶었는지 군대이등병처럼 서버렸다. 배는 들어가고 허리를 곶게 펴고 턱은 당기고 다리를 십일자에 주먹은 사과를 살짝 쥔채로 재봉선에 맞춘다.
"야.. 힘빼.. 숨쉬어 숨~!"
군대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넘이 조교처럼 말한다. 핀잔을 주니 자기는 교련선생님이란다. 말도 안되는 넌센스 유머에 웃었더니 몸이 바로 풀어진다. 곧을 대로 곧은 이 투영체는 나보고 뚝배기란다. 그래도 이왕 되는 거 큰 항아리가 되고 싶었지만 키가 남들만큼 (남들만큼의 기준은 180이다.)되지 않으니 뚝배기란다. 몸매 생각만 하니 군대 생각이 간절했다. 군대에서는 빠지기 싫어도 빠졌는데. 정말 살이 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간절하다.... 그러고 보니 사실 내 살 이야기보다 더 간절한 사연이 있다. 안타깝고 간절한 사연이...
한 달전까지 나는 선미(가명)의 키다리 아저씨였다. 뚝배기에서 키다리 아저씨로 격상 시켜주신 선미는 시흥에서 할머니와 어렵게 사는 아이였다. 선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시흥의 H복지관에서 일하시는 어느 복지사 분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그 복지사님과는 기차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 분의 간곡한 권유로 선미를 알게 되었다. 마침 그때 나는 한국복지재단에 매달 얼마씩 기부를 할 생각이였다. 복지재단에 기부 하려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복지사님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였다. 내가 복지재단에 기부하면 전액이 불우한 사람을 위해서 쓰이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았다. 특히나 여지껏 내가 ARS로 기부했던 1000원의 일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엉성한 복지제도와 법때문에 혜택을 받아야할 사람이 혜택을 못받고 엉뚱한 사람이 2배 ~ 3배 씩 받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약간의 흥분과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작은 돈이지만 내 돈 전부를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해준 그 복지사님을 통해 선미란 아이의 후견인이 되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렇게 나는 선미의 작은 키다리 아저씨가 되었다. 선미라는 아이를 복지사님을 통해서 매번 알게 되었을 때 마다 참 마음이 안타까웠다. 선미는 할머니랑 단둘이 작은 단칸 오피스텔에 사는데 할머니가 밤늦게 일하시고 새벽에 들어오시는 관계로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할 수 없었다. 매번 식은 빵과 우유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학교는 다니기는 했지만 등교시간을 훌쩍 넘긴 12시 쯤 되어서 등교를 했다. 밥만 먹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기본적인 공부는 전혀 뒷전이였다. 사실 이보다 더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던 것은 현재 선미의 아버지는 다른 여성과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으며 상습적으로 선미를 폭행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선미는 사랑이란 단어를 모르고 사랑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모르는 아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미는 내가 누군지 몹시 궁금하다고 들었었다. 아마도 자기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매달 자기를 위해 돈을 보내온 다는 것에 신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래 내가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는 이 아이의 작은 후견인이 되자. 라고 마음을 먹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이로 인해 선미가 관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오랫동안 하자 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먹은지 반년도 안되서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지금 선미는 내가 모르는 아동 보호소 혹은 보육원에 있을 것이다. 한달 전 선미는 못나고 못난 아버지의 폭력에 보다못한 선미의 할머니와 복지사님이 고육지책으로 선미를 보호소에 맡기기로 합의를 봤다. 나는 그때 복지사님의 고뇌를 복지사님이 보낸 메일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 어린 것에게 보호소라는 낯설고 두려운 단어를 어떻게 설명해야 했을까? 그 설명이 얼마나 마음이 아픈 것이였을까? 더욱이 선미가 기댈 수 있었던 오빠마져 범죄행위로 소년원으로 복역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겸해서 들었을 때는 나는 절망을 해버렸다. 너무 세상에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더 마음이 아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선미에게 마지막 후원금을 보내는 거였다. 단돈 3만원을.....
그 일이 있은 이후에 나는 계속해서 내가 돈을 버는 한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 할지라도. 선미가 그렇게 가고 난 후에 복지사님은 어느 3남매에게 후원을 권유 하셨다.이번에는 나 혼자는 아니고 내 여자친구와 같이 후원을 하기로 했다. 흔쾌히 같이 후원을 해주자는 여자친구가 매우 사랑스러웠다. 비록 둘이 합해서 5~6만원 돈이지만 매달 힘들게 사는 3남매에게 여유를 줄 수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자신이 벌었던 부를 사회에 환원을 하겠다는 말과 동시에 부시 대통령의 상속제 폐지를 반대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었고 얼마나 벌었고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들은 적어도 하나의 사회가 오랜 시간동안 상생을 위해서는 나눠야 한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미국 대통령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안타까웠다. 우리나라에는 저렇게 순수한 마음과 동기에서 사회에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고 말이다.
나눈다는 것.
친구를 보려고 엘레베이터를 탔다. 무심코 오른 쪽 옆에 달린 거울을 보니 왼쪽 거울에 비친 내 뒷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앞태만 못난 줄 알았더니 뒷태도 너무 못났다. 나는 안그럴줄 알았는데 나도 역시 나이를 먹고 있다고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난 안그럴줄 알았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 였는데....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들어 인사하는데 나는 무시하고 현관 앞에 뻔뻔하게 서있는 거울 앞에 섰다. 실증적인 사물을 그대로 투영하는 물체라는 것이 맘에 안들어서 거울도 잘 안보는데 왠지 좀 나를 까발리고 싶었는지 군대이등병처럼 서버렸다. 배는 들어가고 허리를 곶게 펴고 턱은 당기고 다리를 십일자에 주먹은 사과를 살짝 쥔채로 재봉선에 맞춘다.
"야.. 힘빼.. 숨쉬어 숨~!"
군대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넘이 조교처럼 말한다. 핀잔을 주니 자기는 교련선생님이란다. 말도 안되는 넌센스 유머에 웃었더니 몸이 바로 풀어진다. 곧을 대로 곧은 이 투영체는 나보고 뚝배기란다. 그래도 이왕 되는 거 큰 항아리가 되고 싶었지만 키가 남들만큼 (남들만큼의 기준은 180이다.)되지 않으니 뚝배기란다. 몸매 생각만 하니 군대 생각이 간절했다. 군대에서는 빠지기 싫어도 빠졌는데. 정말 살이 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간절하다.... 그러고 보니 사실 내 살 이야기보다 더 간절한 사연이 있다. 안타깝고 간절한 사연이...
한 달전까지 나는 선미(가명)의 키다리 아저씨였다. 뚝배기에서 키다리 아저씨로 격상 시켜주신 선미는 시흥에서 할머니와 어렵게 사는 아이였다. 선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시흥의 H복지관에서 일하시는 어느 복지사 분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그 복지사님과는 기차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 분의 간곡한 권유로 선미를 알게 되었다. 마침 그때 나는 한국복지재단에 매달 얼마씩 기부를 할 생각이였다. 복지재단에 기부 하려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복지사님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였다. 내가 복지재단에 기부하면 전액이 불우한 사람을 위해서 쓰이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았다. 특히나 여지껏 내가 ARS로 기부했던 1000원의 일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엉성한 복지제도와 법때문에 혜택을 받아야할 사람이 혜택을 못받고 엉뚱한 사람이 2배 ~ 3배 씩 받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약간의 흥분과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작은 돈이지만 내 돈 전부를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해준 그 복지사님을 통해 선미란 아이의 후견인이 되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렇게 나는 선미의 작은 키다리 아저씨가 되었다. 선미라는 아이를 복지사님을 통해서 매번 알게 되었을 때 마다 참 마음이 안타까웠다. 선미는 할머니랑 단둘이 작은 단칸 오피스텔에 사는데 할머니가 밤늦게 일하시고 새벽에 들어오시는 관계로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할 수 없었다. 매번 식은 빵과 우유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학교는 다니기는 했지만 등교시간을 훌쩍 넘긴 12시 쯤 되어서 등교를 했다. 밥만 먹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기본적인 공부는 전혀 뒷전이였다. 사실 이보다 더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던 것은 현재 선미의 아버지는 다른 여성과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으며 상습적으로 선미를 폭행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선미는 사랑이란 단어를 모르고 사랑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모르는 아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미는 내가 누군지 몹시 궁금하다고 들었었다. 아마도 자기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매달 자기를 위해 돈을 보내온 다는 것에 신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래 내가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는 이 아이의 작은 후견인이 되자. 라고 마음을 먹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이로 인해 선미가 관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오랫동안 하자 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먹은지 반년도 안되서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지금 선미는 내가 모르는 아동 보호소 혹은 보육원에 있을 것이다. 한달 전 선미는 못나고 못난 아버지의 폭력에 보다못한 선미의 할머니와 복지사님이 고육지책으로 선미를 보호소에 맡기기로 합의를 봤다. 나는 그때 복지사님의 고뇌를 복지사님이 보낸 메일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 어린 것에게 보호소라는 낯설고 두려운 단어를 어떻게 설명해야 했을까? 그 설명이 얼마나 마음이 아픈 것이였을까? 더욱이 선미가 기댈 수 있었던 오빠마져 범죄행위로 소년원으로 복역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겸해서 들었을 때는 나는 절망을 해버렸다. 너무 세상에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더 마음이 아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선미에게 마지막 후원금을 보내는 거였다. 단돈 3만원을.....
그 일이 있은 이후에 나는 계속해서 내가 돈을 버는 한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 할지라도. 선미가 그렇게 가고 난 후에 복지사님은 어느 3남매에게 후원을 권유 하셨다.이번에는 나 혼자는 아니고 내 여자친구와 같이 후원을 하기로 했다. 흔쾌히 같이 후원을 해주자는 여자친구가 매우 사랑스러웠다. 비록 둘이 합해서 5~6만원 돈이지만 매달 힘들게 사는 3남매에게 여유를 줄 수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자신이 벌었던 부를 사회에 환원을 하겠다는 말과 동시에 부시 대통령의 상속제 폐지를 반대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었고 얼마나 벌었고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들은 적어도 하나의 사회가 오랜 시간동안 상생을 위해서는 나눠야 한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미국 대통령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안타까웠다. 우리나라에는 저렇게 순수한 마음과 동기에서 사회에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고 말이다.
나눈다는 것. 그것은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빛내는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