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정은임200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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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신 에로스와 프쉬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 때 만물의 씨앗이 두루 들어 있는

흙을 썼는지, 자신의 몸을 이루는 것과 같은 물질을 썼는지

그것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신화는 프로메케우스가 흙에다

물을 부어 이기고 신들의 형상과 비슷한 인간을 빚어 이를

 이레 동안 볕에다 말리고 여기에다 생명을 불어 넣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가 흙으로 빚은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하는 찰나,

지헤의 여신 아테나가 지나가다가 나비 한 마리를 날려 보냈다는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이 나비는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빚은

인간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스어로 나비는 '프쉬케(psyche)'다.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프쉬케

 

이제부터 신화의 묘미 ' 신들의 사랑 ' 이야기 중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신화속에서 가장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바로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사랑과 마음을 염두에 두고
에로스와 프쉬케의 이야기를 읽어보시길...


이 이야기는 기원전 2세기의 로마 작가 아풀레이우스가 쓴

『 황금나귀 』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아풀레이우스가 쓴 것인지, 기원전

2세기에 그가 지어서 쓴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옛날 어느 나라에 딸 셋을 둔 왕이 살고 있었다. 왕이 어질다는

소문과 딸들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넜던 것을

보면 참 살기 좋은 나라였던 모양이다. 세 딸 중 맏이와 둘째도

예사 미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셋째이자 막내인 프쉬케는

이 세상의 가난한 언어로는 도무지 다 그려 낼 수 없을 정도로

 빼너나게 아름다웠다. 이 막내가 아름답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먼 나라 가까운 나라를 불문하고 수많은 나라의 왕자들이

다 몰려와 막내의 아름다움을 한번 보고 가기를 소원했다.


왕자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 나라 국민들에게도 막내 공주를

한 번만이라도 보는 것이 소원 중에서도 큰 소원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막내 공주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최상급의 찬사를

공주에게 바쳤다. 공주가 받은 찬사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아니고는 받아 본 적이 없는 찬사였다.


사람들이 이렇듯 공주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보니 신들이 살던

신전에도 발걸음이 뜸해질 수 밖에 없었다. 아프로디테 신전을

찾는 사람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프로디테는 화가나고

자존심이 상했다.

 

"가당찮구나. 니 아프로디테의 명예가 저 인간의 계집 하나에

빛을 잃어? 파리스의 판정을 제우스 대신까지 승인하지 않았던가?

(세 여신[아테나,헤라,아프로디테]이 황금사과로 파리스에게 셋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게 이 황금사과를 던져보라고 했고,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파리스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말에 솔깃해진 파리스는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던져 주어 '미스그리스'가 되었다. 그것에 미움을 산 파리스는 헤라의 노여움으로 저주를 받게되고, 파리스는 진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나'(유부녀)를 신부로 맞이하게 된다. 그 여인이 바로 파리스의 나라를 불바다로 만드는 불씨가 된다.) 제우스

대신이 보는 앞에서 헤라와 아테나가 보는 앞에서 파리스는

종려 화관과 '미스 그리스'라는 명예를 바치지 않았던가?

오냐, 내 기어이 저 계집에게 앙갚음을 해서, 분수에 넘치는

영광을 앙갚음의 여신 네메시스가 어떤 눈으로 보는지 가르쳐

주리라."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불러들였다. 에로스는 그렇지

않아도 장난이 치고 싶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이 개구쟁이

꼬마 신 에로스에게는 화가 잔뜩 나 있는 어머니의 모습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저기 저 계집을 좀 내려다 보아라. 제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계집이 보이느냐? 프쉬케라는 계집이 보이느냐?"


아프로 디테는 프쉬케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물었다.


"프쉬케라면 나비가 아닌가요? 나비를 보고 계집이라뇨?"


에로스가 딴청을 부리자 아프로디테는 아들을 꾸짖었다.

 

" 잘들어라. 저 계집아이는 분수에 맞지 않게 아름답다.

저 계집아이 때문에 어미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으니 네가 이

어미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 저 계집아이가 받을 고통과 입을

상처가 크면 클수록 이 어미의 기쁨 또한 클 것이다. 어쩌려는냐?

 납화살을 쏘아 미움과 원망으로 한 세상을 살아가게 할 테냐?

아니면 금화살을 쏘아 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수컷을 그리워하다

 상사병으로 죽게 하려느냐?"


"에로스의 일은 에로스에게 맡기세요. 다그친다고 되는 일인가요?"


에로스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아프로디테의 신전 앞뜰에는

단물이 솟는 샘과 쓴물이 솟는 샘이 있었다. 단물은 없는 것을

있게하고, 모자라는 것을 넘치게 하고, 빈 것을 차게 하는 물이었고,

 쓴물은 있는 것을 없게 하고, 넘치는 것을 모자라게 하고, 찬 것을

비게하는 물이었다.


에로스는 두개의 병에다 각각 쓴물과 단물을 넣어 화살통에 메달고

는, 금빛 날갯짓도 가볍게 왕국의 도성으로 날아 내려갔다.

 

에로스와 프쉬케


프쉬케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어찌나 깊이 잠들었는지 숨도 쉬지

않는것 같아서 에로스는 날개의 깃 하나를 뽑아 프쉬케의 코에

살며시 대어 보았을 정도였다.
에로스는 쓴물 두어 방울을 프쉬케의 입술에 떨어뜨렸다. 이로써

프쉬케의 입술은 어떤 사내의 얼굴도 붉히게 할 수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가엾다는 생각을 했으나, 그런 느낌에 버릇 들어 있지

않은 에로스는 금방 잊어버리고 프쉬케의 어깨에 금화살촉을

살며시 갖다 대었다. 너무 거리가 가까워 화살을 활시위에 메울

필요도 없었다.


프쉬케는 화살촉을 느껴서 그랬던지 그 큰 눈을 뜨고 에로스 쪽을

 바라보았다. 제 모습이 프쉬케 눈에 보일 턱이 없는데도 에로스는

 프쉬케가 눈을 뜨자 마치 어둡던 세상이 활짝 밝아진 것 같았다.

에로스는 한편으론 놀라고 또 한편으론 하도 황홀해서 무심결에

프쉬케를 찌르지 못한 화살을 치운다는 것이 그만 제 손을 찌르고

 말았다.


에로스가 프쉬케의 그 큰 눈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쓴물 한 방울로 제 손에 난 상처의 독을 뺄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에로스는 그 생각은 못 했다. 프쉬케가 가엾다는 느낌이

다시 일었기 떄문이다. 그래서 에로스는 제 손으로 벌인 장난을

거두어들인다고 프쉬케의 머리카락에 단물을 뿌려, 그 아름다움을

 거두기는 커녕 한층 더 아름답게 해 주었다.


프쉬케의 침실에서 돌아온 순간부터 에로스는 이미 그 전의 에로스가 아니었다. 금화살에 찔린 상처 때문에 프쉬케를 그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로스는 원래 나이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안테로스(사랑의 상대)가 나타나면 달라진다.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에로스와 프쉬케


프쉬케는 머리에 단물 방울이 묻은 날부터 나날이 아름다움을

더해 갔다. 그러나 입술에 묻은 쓴물 방울 때문에 나날이 더해

가는 아름다움으로도 아무 은혜를 누리지 못했다.


사람들의 눈이란 눈은 모조리 프쉬케의 아름다움을 좆고, 입이란

입은 남김없이 프쉬케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그러나 왕자나

귀족은커녕 하찮은 시정배들조차 지나가는 말로나마 청혼하는 일이

 없었다. 위로 두 공주는 왕자들과 혼인하여 차례로 왕국을 떠났지만, 프쉬케만은 까닭도 모른채 빈 방을 지키며 꽃같은 세월을 하는

 일 없이 앞세우고 살았다.

 


왕은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혹 프쉬케가 신의 노여움을 사거나

시기를 입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는 아폴론 신전이 있는

 델포이로 사람을 보냈다.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아폴론 신께 신탁을 받는 프쉬케

 


아폴론은 태양의 신, 음악의 신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운명을 점치는

 예언의 신이기도 하다. 아폴론은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다

한 인간 한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자기 뚯을 맡겨 놓는다. 

이 맡겨 놓은 뜻을, 신이 맡겨 놓은 뜻이락 해서 신탁 또는 탁선이라고 부른다.


아폴론 신전에서 아폴론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쳐녀는 인간의 아내가 도리 팔자가 아니다. 보아라. 올림포스 신들도 인간도 그 뜻을 거스를 수 없는 요사스런 괴물이 산꼭대기에서 처녀를 기다리고 있구나.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느냐? 아름다움이란 비와 같아서 모자라면 가뭄이라 하고 넘치면 홍수라 하지 않더냐."


아폴론의 뜻을 전해들은 왕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딸을 불러다 놓고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얘야, 이 일을 장차 어쩌면 좋겠느냐? 나는 곧 이 세상을 하직할 것이다만 이 땅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너는 장차 어쩌려느냐?"


그러나 프쉬케는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했다.


"아버지, 저도 상삼히자 않을 테니, 아버지도 제 팔자 때문에 상심하지 마세요. 아폴론 신의 뚯이라면 피할 수없는 운명입니다. 저 바위산 꼭대기에 사는 괴물의 나내가 될 운명이라니, 제 발로 가렵니다."


왕운 눈물을 머금고 신하들에게 명하여 공주를 바위산 꼭대기로

데려갈 준비를 하게 했다. 공주를 데리고 바위산으로 가는 행렬은,

혼례 행렬이기보다는 장례 행결에 가까웠고, 신부 프쉬케가 입은

옷은 공주가 결혼식날 입는 대례복이기보다는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수의에 가까웠다.


이윽고 행렬은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괴물이라는 신랑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공주를 모시고 왔던 사람들은 괴물이

두려웠던지 손가락 한 번 퉁길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고 산을

내려가 버렸다.


프쉬케는 산꼭대기에 혼자 남았다. 제 발로 온 셈이기는 하지만

나이 어린 프쉬케에게도 괴물을 만나기는 무서운 일이었다.

프쉬케는 오돌오돌 떨면서 바위에 몸을 기대고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자 인정많은 서풍의 신 제퓌로스가 다가왔다. 제퓌로스는

조개 껍데기를 밟고 서 있던 아프로디테를 퀴프로스 섬 해변으로

데려다 준 바로 그 바람의 신이다. 제퓌로스는 프쉬케를 가볍게

들어 골짜기로 데려다 주었다. 꽃이 참 흐트러지게도 핀 골짜기였

다. 꽃향기 덕분에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게 된 프쉬케는 풀이 무성

하게 자라있는 둑에 앉아 잠시 눈을 붙여서 기운을 차리고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 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키 큰 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서

서 보기 좋은 숲이있었다.


프쉬케는 숲으로 들어갔다가 뜻밖에도 엄청나게 크고 웅장한 궁전

을 보았다. 어디로 보나 인간의 손으로 만든 여느 구조물 같지가

않았다. 프쉬케의 눈에 그 궁전은 올림포스의 딸림 신들이 세운

궁전으로 보였다. 프쉬케는 차 한잔 끓일 시간 동안 넋을 놓고

궁전을 올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 형편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물러서려고 해 봐야 물러설곳도 없다.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이제 나밖에 없다. 오냐, 더 물러설 곳이 없으니 차라리 용기를 내서 들어가 보자.'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에로스의 정원으로 들어서는 프쉬케

 

 

프쉬케는 용기를 내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그 안에 있는 것, 그 안에서 보이는 것 가운데 프쉬케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않는 것,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는 것은 하

나도 없었다. 둥근 천장을 받치고 있는 것은 황금기둥이요, 황금 기

둥이 놓인 바닥은 설화 석고였다. 이루 헤라일 수 없이 많은 방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물이 쌓여 있었다.

 

프쉬케가 정신을 놓고  사방을 살피는데 어디에선가 귀에 선 목소리

가 들려왔다. 둘러보아도 소리 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왕이시여, 보시는 것은 모두 여왕의 재물이며, 들으시는 것은 힘

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여왕을 받들 하인의 목소리 입니다. 우선

 안방으로 드시어 부드러운 거위 깃털 침대에 쉬시고, 혹 내키시면

가까이에 있는 욕실을 찾아 몸을 닦으세요. 목욕을 마치시면 식탁은

 정자에다 마련하면 어떨까 합니다. 여왕께서 괜찮으시다면 그리 모

실까 합니다."


프쉬케는 목소리만 들리는 시종의 말대로 깃털 침대에서 쉬고 욕실

에서 몸을 씻은 위 정자로 건너갔다. 정자에는 차린 맵시와 맛이 두

루 산해진미라고 할 만한 음식이 있었고, 그 맛과 향이 두루 근심을

 잊게 하는 술이라고 할 만한 음료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음악가가

 빚는 가락도 있었다. 누군가가 나직이 노래를 부르자 또 누군가가

수금을 탔으며, 마지막에는 여럿이 한 목소리로 잘 어울리는 화음으

로 노래했다.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프쉬케는 괴락하고 요사스러운 괴물이라던 신랑을 한번도 보지 못

한 채 그 궁전에서 신혼을 보냈다. 신랑은 늘 한밤중에 들어왔다가

날이 새기 전에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으로 본 적은 없어

도 손끝으로 가늠한 바는 없지 않았다. 신랑은 프쉬케가 더듬어 알

기에 요사스러운 괴물은 아닌듯했다.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어느 날 프쉬케는 신랑에게 오래 망설이던 말을 했다.


"제 지아비가 어둠이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만져도 손끝에 걸리

지 않을 테니 보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손끝에 더듬어지는데

 보지 못하는 제 심정을 헤아리실 수 있으신지요?"


신랑의 음성이 들려왔다.


"더듬어 알 수 있되 보지 못하는 자를 우리는 장님이라고 하고, 보

되 들을 수 없는 자를 우리는 귀머거리라고 하지요. 성한 사람도 장

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남편의 음성은 뜻밖에도 앳되었다.


"모습을 보이시지 않는 까닭이 있으면 그거라도 가르쳐 주세요.

시중드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까닭이라도 가르쳐 주세요."


"내가 좋아서 이러는 것이니 굳이 내 모습을 보려 하지 마세요.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데 내 사랑이 믿어지지 않는 건가요? 믿어지

지 않으면 내 곁을 떠나세요.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에는 사랑이 깃

들이지 못해요. 내가 그대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랄 뿐이지 삼가거나 섬기기를 바라지는 않기 때

문이에요."


프쉬케는 이 말에 힘을 얻어 본 마음을 되찾고 얼마간은 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신랑에 대한

의심은 사라졌으나 딸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부모생각, 동생이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언니들 생각이 프

쉬케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어느날 프쉬케는 또 오래 망설이던 말을 했다.


" 저는 행복합니다. 다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할 뿐입니다. 시집간

 제 언니들에게 제가 누리고 있는 행복을 한 자락이라도 보일수 있

다면 좋겠습니다. 언니들은 저 때문에 한숨으로 세월을 보네고 있을

 겁니다."


"사랑의 그릇은 무엇을 넣음으로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 냄으

로써 채우는 것이라는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그대의 언니들이

 그대 사랑의 그릇을 줄여 놓는 것을 바라지 않을 뿐이에요."


프쉬케는 신랑의 반허락이 떨어지자 서풍의 신 제퓌로스에게 소식

을 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제퓌로스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 프쉬

케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언니들을 궁전으로 데려오기까지 했다.

 

 


프쉬케는 언니들과 오래 나누지 못한 정을 나누었다. 두 언니는 프

쉬케의 시중을 알뜰살뜰 들어주는 보이지 않는 하인들, 집안을 음악

으로 가득 채우는 보이지 않는 악사들, 방방에 넘쳐나는 엄청난 재

물에 혀를 내둘렀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수로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프쉬케

에게 견주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오두막이 아닌가?'


언니들에게 질투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러나 언니들은 그런 마음을

 꾹누르고 막내에게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물었다. 뽐내고 싶은 사람에게 질문만큼 기다려지는 것은 없는 법이다. 프쉬케는 궁전살이

에 대해 언니들이 묻는 말에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언니들의 질문

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는 했다.


"신랑은 뭘 한대?"


"사냥 다녀."


"자주 봐?"


"응"


"밤늦게 사냥터에서 돌아오고 날새기 전에 사냥터로 돌아간다면

, 그 모습을 네가 자주 보았을리 없잖아?"


"....."


두 언니의 이런 질문에는 프쉬케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의심의 가닥 하나를 잡은 뒤부터 언니들이 하는 질문과 추궁은 집요

했다. 착한 프쉬케는 유도 심문에 걸린 셈이었다. 결국 프쉬케에게

서 신랑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실토를 받아 낸 언니들은 막내의

가슴에 의혹의 맞불을 놓아 저희 가슴에 인 질투의 불길을 잡으려

했다.


"아폴론 신게서 저 신전의 예언자에게 맡겼던 뜻을 네가 설마 잊은

것은 아닐 테지? 이 골짜기 사람들은 네 신랑이 '괴악하고 요사스러

운' 뱀이라고 하더라. 좋은 음식과 좋은 포도주를 넉넉하게 먹여 너

를 살찌운 연후에 너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여러

말 하지말고 등잔과 잘 드는 낫을 구하여 네 신랑 눈에 띄지 않을 곳

에 숨겨 두어라. 그리고 네 신랑이 잠든 사이에 살며시 일어나 등잔

에 불을 켜서 골짜기 사람들 말이 옳은지 그른지 네 눈으로 확인해

보아라. 그리고 사람들 말이 사실이거든 추호도 망설이지 말고 낫으

로 그 목을 도려 버려라. 그래야만 네가 살 수 있다."


처음에 프쉬케는 두 언니의 과격한 말에 쓴웃음만 지었다. 마음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나그네의 옷과

 같은 것, 마음에 이는 의심은 나그네의 옷에 내리는 가랑비와도 같

은 것이다. 꿈길을 가는 것이 아닌 한 오래 맞으면 아무리 가랑비라

도 마침내는 젖고 마는 것이다. 두 언니는 프쉬케의 마음 속에다 의

심의 가랑비를 내려놓고는 산을 내려갔다. 가랑비가 나그네의 옷을

적시듯이, 의심하는 마음은 프쉬케의 마음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신랑은 나에게 그러지 않았

는가?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이지 못한다고....'


프쉬케는 신랑이 하던 말을 떠올리며 의심을 삭이려 했다. 하지만

의심을 삭이려는 노력이 번번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었다. 의심

은 프쉬케의 마음이 조금만 헐거워지면 불쑥 고개를 들고는 했다.


'의심이 고개를 들면 그 고개를 누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의심의 뿌리는 그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떻

게 하면 의심의 뿌리를 캐내어 버릴 수 있을까? 그렇다. 사살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면 된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는 순간 의심은

 뿌리째 뽑힌다.'


의심은 오래지 않아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신랑의 살갗은 보드라웠다. 신랑의 음성은 앳되었다. 대체 어떻게

 생긴 분일까...'


호기심은 상사병과 같은 것이다. 상사병이 식욕을 떨어뜨리듯이 죄

 없는 호기심 또한 채워지지 않으면 입맛을 떨어지게 한다. 프쉬케

는 먹는 재미를 잃고 나날이 여위어 갔다.


'내가 이 호기심을 채우지 못하고 나날이 여위어 가면 신랑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그래, 확인해 보자. 신랑이 어떤 분인지 확인해 보

자. 이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고 결국은 신랑에게도 좋은 일이다.'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프쉬케와 언니들


마침내 이렇게 결심한 프쉬케는 언니들이 가르쳐 준 대로 등잔과 낫

을 준비하고는 신랑이 돌아오고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냥 나갔던

신랑은 밤이 이슥해질 녘에야 밤이슬에 젖어서 돌아왔다. 둘은 잠자

리에 들었지만 프쉬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프쉬케는 한밤중에

살며시 일어나 등잔을 켜 들고 신랑의 얼굴에 비추어 보았다. 산으

로 올라오고는 처음 켜 본 등이었다.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에로스는 사랑을하게되면 청년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나 신랑은 뱀이기는 커녕 금빛 고수머리가 흡사 양털같고 이목

구비가 반듯하며 피부가 눈처럼 흰 미소년이었다. 어깨에는 밤이슬

에 젖은 날개도 달려 있었다. 그 날개의 은빛깃은 봄에 피는 꽃잎 만

큼이나 보드라웠다.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프쉬케를 떠나는 에로스

 


프쉬케는 신랑의 풍채에 넑을 놓고 있다가 등잔의 뜨거운 기름 한

 방울을 그만 에로스의 어깨에 떨어뜨리고 만다. 에로스가 프쉬케의

머리카락에 단물 방울을 떨어뜨렸듯이 그렇게 떨어뜨리고 만 것이

다.


아, 그렇다. 그가 바로 사랑의 신 에로스였다. 에로스는 퍼뜩 눈을

뜨고 프쉬케를 노려보더니 검다 희다 말 한마디 없이 그 흰 날개를

펴고는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프쉬케는 에로스를 잡으려고 창 쪽으로 달려갔다가 그만 보람없이

 창틀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에로스는 잠시 날갯짓을 멈추

고 흙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프쉬케를 내려다보며 내뱉듯이 말했

다.


"어리석어라, 프쉬케여. 내 사랑에 대한 보답이 겨우 이것이오? 사

랑에대한 보답이 겨우 파국이오? 내가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그대를 사랑했기 때문이오. 사랑의

 그릇은 채움으로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움으로써 채우는 것이라

던 내 말의 이치가 그렇게 알아듣기 힘들던가요? 가세요.그대에게

따로 벌을 내리지는 않겠어요. 사랑이 남아 있다면 영원한 이별보다

더 큰 벌은 없을 테니까.... 우리는 오로지 영원히 헤어져 있을 따름

이오. 의심이 자리잡은 마음에는 사랑이 깃들이지 못한다는 말을 알

아듣기가 그렇게 힘들던가요?

그래요. 의심이 자리잡은 그대 '프쉬케(마음)에게 나 '에로스(사랑)'는 깃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소."

 


에로스가 밤하늘에 한 줄기 빛을 그으며 날아가 버린 뒤 프쉬케는

한동안 땅을 치며 울었다. 울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손끝에 닿는 바

닥은 설화 석고가 아니라 땅이었다. 프쉬케는 이상하게 여기며 주위

를 둘러보았다. 궁전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자신은 어느새 황야의

맨땅위에 엎드려 있었다.


프쉬케는 두 언니를 찾아가 자기가 겪은 그간의 일을 하나도 빠짐없

이 얘기하면서 오직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두 언니는 함

께 후회하고 슬퍼해주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각기 딴 마음을 먹었

다.


'오냐, 그것이 과분한 분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너는 이제 화를 입었

으니 내가 그 복을 다시 지어 보아야겠다.'


두언니는 날이 밝자마자 앞을 다투어 프쉬케가 살던 바위산을 기어

올랐다. 산꼭대기 까지 오른 두 언니는 제퓌로스를 불러 프쉬케가

살고 있던 그 궁전까지 실어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제퓌로스

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벼랑 위에서 뛰어내렸다. 제퓌로스가 있

던 자리에서 비켜 버리자 자매는 천길 벼랑에서 떨어져 그 의롭지

못한 삶을 좀 일찍 끝내고 말았다.


프쉬케는 한동안 정을 붙이고 살았던 신랑 에로스를 찾아서 온 그리

스 땅을 다 누볐다. 하지만 사람들은 에로스가 신인지라 그 행방을

알지 못했다. 신들은 알 테지만 프쉬케로서는 신들을 만날 수 없었

다. 그러던 어느 날 프쉬케는 산을 넘다가 산꼭대기에 자리잡고 있

는 신전 앞을 지나게 되었다. 누구의 신전인지 짐작할 도리도 없었

다. 프쉬케는 신전 앞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느 신의 신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전이 있으니 반드시 임자가 있

겠지. 그래, 이 신전에서 신랑에게 지은 죄를 속죄하자. 신랑이 알아

주지 않으면 어떠랴? 신랑에게 지은 내 죄를 용서받는 길은 땀을 흘

리고 수고를 들이는 길밖에 없다.'


프쉬케는 신전으로 들어갔다. 신전 안에는 뜻밖에도 곡식 낟가리가

있었다. 낟가리 중에는 단으로 묶인 것도 있었고, 베어서 실어온 채

로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것도 있었다. 낫, 갈퀴 같은 연장도 이곳저

곳에 널려 있었다.


프쉬케는 무더위에 지친 농부들이 그냥 팽개칙 달아났으려니 생각

하고는 곡식과 연장들을 종유별로 고르고 나누어 제각기 있어야 할

자리에 마땅한 상태로 깔끔하게 정돈했다. 프쉬케는, 어떤 신에게든

죄를 얻었더라도 믿음으로 덕행을 쌓으면, 등을 돌렸던 신도 다시

돌아앉는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에로스를 잃고 방황하며 나름

대로 겨눈 가늠이고 헤아린 짐작이었다.


과연 그랬다. 신전은 다름아닌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바쳐진 신

전이었다. 하지만 프쉬케는 나이가 어려, 낟가리가 있는데도 불구하

고 그것이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 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는 프쉬케가, 신전 제단의 휘장

뒤에서 여신이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어찌 짐작할 수 있었으랴. 데

메테르 여신은 며칠 동안 프쉬케가 일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로보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프쉬케여, 네가 복을 지었다. 내 비록 아프로디테의 저주에서 너를

풀어 줄 힘은 없으나, 여신의 분노를 삭일 방도쯤이야 어찌 일러 줄

수 없겠느냐. 네 신랑이었던 이가 아프로디테의 여신의 아들 에로스

임을 네가 알았느냐? 어서가서 여신의 손에 네 몸을 붙이고 겸손과

 순종으로 용서를 빌어라. 인간과 금수와 초목 중에 인간만큼 신을

노엽게 하는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인간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돌아앉은 신을 다시 돌아앉힐 수는 없다. 그러니 나에게 용서를 빌

지 말고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용서를 빌어라."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아프로디테 앞에 프쉬케

 


프쉬케는 데메테르가 가르쳐 준 대로 아프로디테의 신전을 찾아갔

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프쉬케가 문안을 여쭙기도 전에 꾸짖기 부

터 했다.


" 이 하찮고 믿음이 적은 것아, 네가 신을 섬기는 한낱 인간에 지나

지 않는 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느냐? 네 신랑은 내 말을 귓가로 흘

리고 너같이 하찮은 것에게 사랑을 기울이더니 어깨에는 화상, 가슴

에는 상처를 입고 돌아와 몸져누웠다. 참으로 밉살스럽고 비윗장이

틀리는 것아, 내가 이제부터 너를 시험하리라."


아프로디테는 프쉬케를 신전의 곳간으로 데려갔다. 신전 곳간에는

비둘기의 모이가 될 밀, 보리, 기장, 살갈퀴, 볼록콩 등이 섞인 채 수

북이 쌓여 있었다. 비둘기는 바로 아프로디테를 상징하는 새였다.


"네가 데메테르에게 길을 물어 내게로 왔으나, 내가 데메테르를 탓

할수는 없다. 자, 여기 있는 곡식을 종류별로 고르되 한 알도 남김없

이 골라 무더기로 각기 쌓아 놓아라. 저녁때가 되기 전에 끝마치지

못하면 네 입에 들어갈 것은 하나도 없다."


여신은 이렇게 말하고 신전 곳간을 떠났다. 프쉬케는 그 엄청난 일

감에 기가 꺾여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망연자실 앚아 눈물만 떨

구었다.


에로스는 비록 프쉬케의 철없는 행동 때문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

기는 했지만 그래도 프쉬케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식은 것은 아니었

다. 에로스는 프쉬케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 들판의 임자인 뮈르미

도네스에게 가서 프쉬케를 도와주라고 했다. 뮈르미도네스는 '개미

떼'라는 뜻이다.


개미 왕은 에로스의 명에 따라 부하는 이끌고 신전 곳간으로 갔다.

개미떼는 차 한 잔 끓여서 마실 만한 시간동안 낟알을 종류별로 골

라 각각 있어야 할 곳에 말끔히 정리했다. 일을 마친 뮈르미도네스

는 삽시간에 곳간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아프로디테는 저녁 무렵에야 신들의 잔치에서 돌아와 앙칼진 목소

리로 프쉬케를 꾸짖었다. 장미꽃 관을 쓰고 호령하는 여신의 입에서

는 신들의 술인 향긋한 넥타르 냄새가 풍겨나왔다.


"앙큼한 계집이로구나. 네가 일은 잘 했다만, 나는 네 일 솜씨를 본

것이 아니고 내 아들에게 아직 너를 향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

다."


여신은 저녁 끼니로 검은 떡 한 조각을 던져 주고는 프쉬케를 곳간

에 가두었다. 가엾은 프쉬케는 포도주도 없이 그 빵을 먹고는 싸늘

한 곳간에서 밤새 떨었다.


다음날 아프로디테는 또 하나의 일감을 주었다.


" 저기 숲, 물가로 길게 나앚은 숲을 보아라. 가면, 주인 없는 양떼

가 있을 것이다. 가서 보면 알 테지만 털이 모두 금빛이다. 냉큼 가

서 한 마리 한 마리의 털을 한 줌씩 뽑고 이것을 모두 모아 오너라.

한 마리라도 빠뜨리면 경을 칠 줄 알아라. "


프쉬케는 물라고 내려갔다. 하지만 양의 수가 너무 많았다. 며칠 동

안 뽑아도 다 뽑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하염없이 눈물만

떨구고 있는데, 강가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

는 것 같았다. 가만히 들어 보니 강의 신이 갈대를 흔들면서 프쉬케

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모진 시럼에 걸리신 아가씨, 강을 건너려고도 마시고, 저 무서운

양떼에게 다가갈 생각도 마세요. 떠오르는 해의 정기를 받고 있을

동안에는 저것은 여느 양이 아니라 인간을 뿔로 찌르고 발길로 걷어

차는 무서운 짐승이랍니다. 그러니 한낮의 태양이 양떼를 나무그늘

로 보내면, 내가 양떼를 그 그늘에서 쉬게 할 테니 가만히 있기나 하

세요. 내가 도와 드리지요. 해질녘이 되거든 다시 이리 나오세요.

그러면 덤불과 나무 둥치에 양털견본이 가득 걸려 있을 테니, 그것

을 거두어 가시면 됩니다."

 


강의 신의 도움으로 프쉬케가 양털을 거두어 갔지만 아프로디테의 앙칼진 호령은 여전했다.


"미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네가 아느냐? 한번 눈 밖에 난 것은 미

운 짓을 해도 미워지고 예쁜짓을 하면 더 미워지는 법이다. 내 너에

게 또 일을 맏기겠다. 여기 상자가 하나 있으니 가지고 저승으로 내

려가 저승의 왕비 페르세포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제 주인이신 아프로디테 여신께서 얼굴 단장에 필요한 단장료(丹

粧料)를 조금 나누어 주셨으면 하더이다. 몸져누우신 아드님을 돌

보시느라고 그 아름답던 얼굴이 조금 수척해지셨다고 하더이다.'

알겠느냐? 한 자 한 획도 틀림없이 전해야 한다. 심부름을 반듯하게

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신들의 잔치에 나가야 한다. 네가 단장료를

가져와야 그걸 얼굴에 찍어 바르고 갈 수 있을 테니, 심부름에 착오

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지하 세계의 프쉬케


아득한 옛날에는 문자가 없었다. 그래서 심부름꾼은 주인이 하는 말

을 단어 하나도 틀리지 않게 외고 가야 했다. 프쉬케는 그제야 죽을

 때가 온 것을 알았다. 제 발로 걸어 저승에 간다는 것이 곧 죽는 것

임을 프쉬케가 모를 리 없었다. 프쉬케는 천길 낭떠러지 위에 있는

첨탑으로 올라가 거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곧 저승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프쉬케가 막 뛰어내

리는 것이 곧 저승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 또한 모르지 않

았다. 그러나 프쉬케가 막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형상이 없는 목소리

가 이렇게 말했다.


" 여러 번 신들의 가호를 입은 그대가 이렇게 목숨을 끊어 이제껏

도와 주던 신을 슬프게 하고 이제껏 미워하던 신을 즐겁게 해서야

되겠는가."


목소리의 임자는 이어서 저승으로 가는 길, 저승의 문을 지키는 머

리가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 옆을 무사히 지나가는 방법, 그리고 되

짚어오는 길을 소상하게 일러 주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페르세포네가 그 상자에 단장료를 넣어 주거든 고이 품고 나오되,

 절대로 뚜껑을 열어보아서는 안된다. 그대는 인간이다. 여신들의

단장료를 너무 궁금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여라."


프쉬케는 그 목소리의 임자 덕분에 무사히 저승에 이르러 페르세포

네를 배알할 수 있었다. 프쉬케가 아프로디테 여신의 말을 한마디도

틀리지 않게 전하자 페르세포네가 말했다.


" 나와 아프로디테 여신 사이에는 풀어야 할 감정의 매듭이 없는 것

은 아니지만, 하찮은 것으로 내 속을 보이고 싶지는 않구나."


그러고는 프쉬케에게 편한 자리와 맛있는 음식을 권했다. 그러나 프

쉬케는 이를 사양하고 죄인에게는 거친 자리, 하찮은 음식이 오히려

죄값을 무는 보람이라고 했다. 게다가 프쉬케는 잠시 다니러 저승에

간 사람은 무엇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윽고 상자는 뚜껑이 닫힌 채 페르세포네의 손에서 프쉬케의 손으

로 넘어왔다. 프쉬케는 가던 길을 되짚어 다시 태양이 비치는 곳으

로 나왔다. 그러나 인간은 역시 어쩔 수 없는가, 아니면 여성은 어쩔

 수 없는가? 프쉬케는 호기심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상자 안에 무

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상자를 열어보는 프쉬케


'감히 신들의 단장료를 가지러 저승에까지 갔던 내가 아니냐? 내가

고생을 사서 하는 뜻은 다 신랑을 찾고자 함인데, 단장료의 힘을 빌

려 신랑의 눈길을 조금 끌고 싶어하는 것을 누가 지나친 욕심이라고

할 것인가? 얼굴을 단장하는 것은 여성의 의무이자 권리가 아니던

가?'


프쉬케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 든 것은 단장료가

 아니었다. 프쉬케는 상자의 뚜껑을 여는 순간 페르세포네 여신이

하던 말을 떠올렸다.


'나와 아프로디테 여신 사이에는 풀어야 할 감정의 매듭이 없는 것

은 아니지만, 하찮은 것으로 내 속을 보이고 싶지는 않구나......'


상자속에 들어있는 것은 얼굴 단장하는 데 쓰는 단장료가 아니라 잠

의 씨였다.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가 된 것도 다 아

프로디테와 그 아들 에로스 때문이었다. 페르세포네는 그때 자기가

당한 것을 앙갚음 하느라고 상자에다 단장료 대신 잠의 신 휘프노스

에게서 덛어 둔 잠의 씨를 넣어서 프쉬케에게 건네 준 것이었다.


상자의 뚜껑이 열리자 잠의 씨들이 일제히 나와 프쉬케를 쓰러뜨렸

다. 저승의 잠에 떨어진 프쉬케 옆에서는 초목도 자라기를 멈추었으

니, 이제 프쉬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프쉬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에로스는 나비 편에 그 소식을 듣고

는 급히 그곳으로 날아갔다. 에로스는 신어어서 프쉬케를 덮친 잠의

씨를 모두 거두어 다시 상자에 넣을 수가 있었다. 잠의 씨 수습이 끝

나자 에로스는 화살 끝으로 프쉬케를 건드렸다. 프쉬케가 깨어나자

에로스는 부드럽게 꾸짖었다.


"분수를 몰라서 신세를 망치고 의심을 무리치지 못하여 만고의 고

생을 사서 하더니, 이제 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이 꽇이 되다니....

어서 일어나 내 어머니 신전에 가서 기다리세요. 나는 다녀올 곳이

이으니...."

 

[신화]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


 


에로스는 하늘을 가르는 화살처럼 올림포스로 날아 올라가 제우스

대신에게 프쉬케의 죄를 용서해 줄 것을 탄원했다. 제우스 대신은

에로스가 어느새 훤칠한 청년이 되어 제 각시를 걱정하는 것(에로

스는 실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화가들의 그림속에 많이 등장한

다. 에로스는 원래 아이의 모습으로 나이를 먹지 않지만, 사랑을 하

게되면 연인앞에서는 키가 훤칠한 청년의 모습으로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 프쉬케와 함께가 아니면 모든 그림속에서는 어린아이의 모

습을 하고 있는것 같다.우리가 말하는 '큐피드'가 바로 에로스다.에

로스는 '사랑'이라는 뜻이며, 사랑에 빠진 사람을 '큐피드의 화살에

맞았다'라고 표현을 한다)을 어여삐여기고, 아프로디테에게 청했

다.


"신들도 의심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데, 한낫 사람이 그걸 어떻

게 다 이길 수 있겠어요? 그만하면 되었으니, 그대가 인간들의 어려

운 사랑의 끝도 아름답게 맺어 주듯이 그대의 아들 에로스와 프쉬케

의 사랑도 그 끝을 아름답게 해 주면 좋겠어요. 이는 내가 바라는 것

이에요."


아프로디테는 다 자란 아들을 쓸쓸한 눈길로 한동안 바로보았다. 쓸

쓸한 눈길로 바라본 것은 아들이 드디어 자기 슬하를 떠날 때가 되

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우스 대신은 발빠르기로 유명한 헤르메스를 보내어 프쉬케를 올

림포스로 데려오게 했다. 프쉬케가 오자 제우스 신은 신들의 음식과

신들의 술을 몸소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프쉬케여, 마음이여, 이것을 먹고 마시어 내가 베푸는 불사의 은

혜, 영원히 사는 은혜를 얻으라. 네가 설 자리를 네가 든든하게 다지

고 지혜로써 너를 지켜라. 너는 이제 불사의 몸이 되었으니 신랑 에

로스도 이 인연을 끊지 못할 것인즉, 이 혼인은 영원하다."


에로스와 프쉬케는 이로써 하나로 맺어졌다.


아프로디테가 육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아프로디테 포르네(음란한

사랑의 여신)'이라고 불린 것은 사실이다. (음란한 여신이라고 불린

이유는 아프로디테가 '사랑''육체적인 사랑'의 상징 신이기 때문이

기도 하지만, 아프로디테의 섬에있는 '처녀샘'이 있다는 속설때문에

 그렇게 불려지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프로디

테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보라, 그 아들인 에로스는 '프쉬케(마음)'를 사랑하여 마침내 사랑을 한 단계 드높이지 않았는가? 마침내

인간이 본받아야 마땅한 사랑의 본보기를 보이지 않았는가?


에로스와 프쉬케 사이에서 딸이 태어난다. 이 딸의 이름이 무엇이겠

는가? 바로 '기쁨' 이다. '사랑'과 '마음'이 짝을 이루니 그 딸이 '기

쁨'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