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5년(태조 4) 만들어진 석각천문도(石刻天文圖). 가로 122.8㎝, 세로 200.9㎝, 두께 11.8㎝. 보물 제228호. 새로 창건된 조선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 흑요석(黑曜石)에 새겨 만들었다. 중국의 〈순우천문도 淳祐天文圖〉에 다음가는 가장 오래된 석각천문도이다.
1395년(태조4) 만들어진 석각천문도. 122.8*200.9*11.8㎝. 보물 제228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새로 창건된 조선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 이성계가 11명의 천문학자들에게 명하여 만든 것이다. 흑요석에 새겨 만든 이 천문도는 고구려천문도를 다시 그린 것이다.
〔제작경위〕 조선왕조를 수립한 이성계(李成桂)가 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 권근(權近)·유방택(柳方澤)·권중화(權仲和) 등 11명의 천문학자들에게 명하여 수년간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천문도는 고려에 전하여진 고구려천문도를 다시 그린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고구려천문도의 인본(印本)이 매우 희귀하였는데, 태조가 즉위하고 얼마 뒤 한 사람이 그 인본을 바쳤다. 그것을 중각(重刻)하도록 하였으나, 서운관(書雲觀)에서는 그 연대가 오래되어 성도(星度)에 오차가 생겼으므로, 새로운 관측에 따라 오차를 교정하여 새 천문도를 작성하기로 하고 새로 ≪중성기 中星記≫ 한편을 편찬하여 그에 따라 성도(星圖)를 돌에 새겨 완성한 것이다.
〔내 용〕 성도는 원형의 중심에 북극이 있고, 그 북극을 중심으로 하여 관측지의 출지도(出地度)에 따른 작은 원과 더 큰 적도 및 황도권(黃道圈)이 그려져 있다. 원의 주위에는 28수(宿) 별의 이름과 적도수도(赤道宿度)가 기록되어 있고, 각 수의 거성(距星)과 북극을 연결하는 선에 의하여 개개의 별의 입수도(入宿度)가 목산(目算)으로도 쉽게 읽어갈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관측기사에는 28수 거극분도(去極分度), 24기(氣)의 혼효(昏曉)에 자오선을 지나는 별에 대한 천상기사, 12국(國) 분야 및 성수분도(星宿分度), 일수(日宿)와 월수(月宿) 기사, 논천설(論天說), 천문도작성 경과, 작성자들의 관직과 성명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때 새로운 성도의 작성을 시도하지 않고 4∼6세기경에 관측된 고구려성도의 오차에 의한 중성(中星)의 오차만을 새로 관측하여 교정한 것은 그것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별들을 망라한 것이어서 성좌의 새로운 관측에 큰 의의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새 만원권 지폐에 나오는 천상열차분야지도
1395년(태조 4) 만들어진 석각천문도(石刻天文圖). 가로 122.8㎝, 세로 200.9㎝, 두께 11.8㎝. 보물 제228호. 새로 창건된 조선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 흑요석(黑曜石)에 새겨 만들었다. 중국의 〈순우천문도 淳祐天文圖〉에 다음가는 가장 오래된 석각천문도이다.
1395년(태조4) 만들어진 석각천문도. 122.8*200.9*11.8㎝. 보물 제228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새로 창건된 조선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 이성계가 11명의 천문학자들에게 명하여 만든 것이다. 흑요석에 새겨 만든 이 천문도는 고구려천문도를 다시 그린 것이다.
〔제작경위〕 조선왕조를 수립한 이성계(李成桂)가 왕조의 권위의 표상으로 권근(權近)·유방택(柳方澤)·권중화(權仲和) 등 11명의 천문학자들에게 명하여 수년간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천문도는 고려에 전하여진 고구려천문도를 다시 그린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고구려천문도의 인본(印本)이 매우 희귀하였는데, 태조가 즉위하고 얼마 뒤 한 사람이 그 인본을 바쳤다. 그것을 중각(重刻)하도록 하였으나, 서운관(書雲觀)에서는 그 연대가 오래되어 성도(星度)에 오차가 생겼으므로, 새로운 관측에 따라 오차를 교정하여 새 천문도를 작성하기로 하고 새로 ≪중성기 中星記≫ 한편을 편찬하여 그에 따라 성도(星圖)를 돌에 새겨 완성한 것이다.
〔내 용〕 성도는 원형의 중심에 북극이 있고, 그 북극을 중심으로 하여 관측지의 출지도(出地度)에 따른 작은 원과 더 큰 적도 및 황도권(黃道圈)이 그려져 있다. 원의 주위에는 28수(宿) 별의 이름과 적도수도(赤道宿度)가 기록되어 있고, 각 수의 거성(距星)과 북극을 연결하는 선에 의하여 개개의 별의 입수도(入宿度)가 목산(目算)으로도 쉽게 읽어갈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관측기사에는 28수 거극분도(去極分度), 24기(氣)의 혼효(昏曉)에 자오선을 지나는 별에 대한 천상기사, 12국(國) 분야 및 성수분도(星宿分度), 일수(日宿)와 월수(月宿) 기사, 논천설(論天說), 천문도작성 경과, 작성자들의 관직과 성명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때 새로운 성도의 작성을 시도하지 않고 4∼6세기경에 관측된 고구려성도의 오차에 의한 중성(中星)의 오차만을 새로 관측하여 교정한 것은 그것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별들을 망라한 것이어서 성좌의 새로운 관측에 큰 의의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增補文獻備考, 韓國科學技術史(全相運, 科學과 人間社, 1977).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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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佑 redseeker -- www.openppl.net 칠성문화의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