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교육의 역사

양흥석200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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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교육의 역사


특수교육 역사에 관한 연구는 국내에서는 김병하 교수(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 kimha@biho.taegu. ac.kr)의 연구(특수교육의 역사와 이해. 형설출판사, 1998)가 대표적이며, 대한특수교육학회(1995)가 발간한 한국특수교육백년사는 한국 특수교육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다음 강의 내용은 김병하 교수의 특수교육의 역사와 이해와 청각장애교육(대구대학교 출판부, 1998)의 2장 청각장애 역사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1. 농교육의 역사 탐구가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것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농교육에 관련한 문제들을 지난 날 인류가 쌓아온 농교육의 업적에 비추어 재평가해 보게 하고,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농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숙고해 보게 한다.


2. 농교육의 시대 분류

  농교육의 역사적 발전을 통사적(通史的)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제 1기 : 농교육의 전사(前史) -고대와 중세시대

제 2기 : 교육가능성의 탐색과 개인 교수 시대 - 16·17세기

제 3기 : 농학교 교육 성립 시대 - 18세기이후 농학교 교육 성립과 농교육 방법논쟁의 전개과정을 논의하며, 마지막으로 우리 나라 농교육의 성립과 전개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3. 농교육의 전사(前史)

  고대사회에 있어 인간생활의 최대 관심은 어떻게 하면 파괴적인 자연력과 자기 이외의 동물들로부터 자신과 종족의 생명을 잘 보존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따라서 한 부족 공동체의 "안정과 단결"에 효과적으로 공헌하지 못하는 자는 가차 없이 추방당하거나 유기되었다.


가. 무관심과 방치의 시대

  스파르타를 비롯한 고대 사회에서는 시대적 가치기준인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맹인들과 정신박약자는 유기나 학살의 대상이 되었는가 하면, 지체부자유자는 쓸모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절멸시키고자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는 달리 농인은 외현적으로 특별한 장애를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한 학대의 대상이 되지는 않으나, 농아동은 말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므로 종종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왔다.


 1) 서양 역사에 나타난 농인에 대한 최초의 기록

  기원전 6세기경 헤르도투스(Herdotus)의 진술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원전 6세기경 리디아(Lidya)왕인 Croesus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아들은 날 때부터 듣지 못하는 선천 농아인 이었으므로, Croesus왕은 "나는 단지 아들이 하나뿐"이라고 하여, 듣지 못하는 농아들은 "마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Herodotus, Persian Wars, BookⅠ, pp.19-22.). 고대사회에서 농아인은 그들의 본능적 가능성과 유용성(주로 신체적 이유에서 본) 때문에 생존 자체는 가능했지만, 사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 자선 보호적 관심

  시작 - 장애인에 대한 자선 보호는 고대 동방사회의 이집트 제국에서 국왕과 승려들에 의해 행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국왕은 민중들로부터 "선정을 베푼다"는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한 방책으로 장애자에 대한 자선 보호를 시범적으로 나타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농아동의 부모가 정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막중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관심이었다.


확대 -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기독교 성직자들은 종교적 박애정신에 입각하여 장애인을 위한 자선사업을 펼쳐 왔다.


·모세 ; "농아인은 악마가 붙은 자"로 경계하면서도, "농아인이 듣지 못한다고 해서, 그에게 악담하지 말라" (레위기 19:14)

·탈무드 ; 농아인은 어리석고 지각 없는 자로서 행동에 책임을 묻지 말고, 사회적으로 수행해야 할 권리와 의무로 부터 제외시킨다.


·유스티니언 법전(Justinian Code) ; 농아인에 대한 특별한 주의와 보호 대책을 그들의 장애특성(즉, 듣지 못하고 말못하는 정도와 청각장애를 수반한 시기에 따라)에 따라, 각각의 범주를 나누어 따른 법적 권리와 의무의 한계를 규정해 놓고 있다.


다. 교육 불가능론

  농인에 대한 자선보호가 기독교 단체가 중심이 되어 부분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아직 농인의 잠재 능력을 교육을 통해 개발하고자하는 생각에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 카루스(Titus L.Carus) - 기원전 일세기경 초기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

「 "농인은 어떤 방법으로도 가르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통해 뭔가 개선해 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 농아인에 대한 교육 불가능론의 입장의 배경

 첫째는 '청각장애'의 개념 그 자체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부족. 로마의 탁월한 의학자인 가렌(Claudius Galen)은 말하는 것과


교육 가능성의 탐색과 개인교수의 시작


장애인들이 가지는 장애에 대한 생각 혹은 사회적 인식과 태도는 기본적으로 그 사회가 지향하는 시대정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14세기 르네상스 이후 인문주의 사상이 대두되고, 종교개혁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 강조됨에 따라 종래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에도 점차 새로운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가. 장애인관의 개선과 교육 가능성의 탐색

 1) 르네상스가 근대 사회를 여는 데 미친 영향 :

① 신중심 → 인간중심

② 내세주의 → 현세주의

③ 금욕주의 → 자연주의

④ 교회중심주의 → 개인중심주의

⑤ 권위주의 → 이성주의


2) 인문주의의 등장과 장애인관의 변화

  인문주의 사상은 장애인에 대한 지금까지의 편견과 미신에서 탈피하여 한 인간이 보이는 '장애'의 특성을 현실적 인식의 바탕 위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종래와는 달리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잔존능력을 활용하여 교육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 벤더(Ruth E.Bender)교수는 「농교육사」(Conquest of Deafness, 1981)에서

   15·6세기의 농교육 역사를 "재각성"의 시대로 표현

*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 농인의 말읽기(독화)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이처럼,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말읽기에 의한 청각장애인의 언어이해 가능성이 언급되었다.


* 아그리코라(Rudolph Agricola, 독일 : 1443-1485) : 그의 저서(De Inventione Dialectic, 1528)에서, "나의 어린 시절에 한 청각장애인을 본적이 있는데, 그는 말은 하지 못하였지만 다른 사람이 글자를 써놓은 것을 모두 이해하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었다."고 기술함으로써 청각장애인도 읽기와 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예증


* 가르다노(Girolamo Gardano: 1501-1567, 이태리 파드아(Padua)대학교의 의사): 그는 문자언어의 이해와 표현을 통한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청각장애인에게 읽기로 듣기를 대신하게 할 수 있으며, 쓰기로 말하는 것을 대신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예증과 주장은 읽기와 쓰기에 의한 농인의 교육 가능성을 말해준 것이며, 농교육 성립의 "혁신적 선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 개인교수의 시작과 그 성과

1) 인류 최초의 농교육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스페인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2) 청각장애인에 대한 개인 교수를 실시한 최초의 교사

 스페인의 베네딕트 수도사인 퐁스 더 래옹(Ponce de Leon: 1520-1584)이다. 그는 스페인의 귀족 자녀 가운데 주로 선천성 농으로 알려진 몇명의 청각장애아동을 대상으로 철저히 개별지도를 실시하였다.


그는 "농아는 말하는 대신 쓸 수 있다"는 가르다노(Gardano)의 가정에 기초하여, 아동에게 먼저 명사를 중심으로 사물의 이름을 쓰게 하고, 그 단어의 반복적인 발성 연습을 시켰다. 그는 청각장애인의 언어교육에서 문자언어의 학습에서 출발하여 말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효과적임을 실천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3) 지문자에 의한 농교육의 시작

  17세기초 스페인의 보?(Juan Martin Pablo Bonet: 1579-1633)이 시작하였다. 1620년에 그의 저서 「소리의 단순화와 농아의 언어교수 방법」을 집필하였다. 이 책은 크게 두 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편에서는 알파?을 음성학적 요소와 관련지워 농아동의 읽기를 단순화하고자 하였다. 제2편에서는 농아동에게 말하기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그의 철학을 기술하고 있다. 먼저 그는 알파?; 철자의 모양과 관련하여 각 철자에 대한 "손의 위치를 나타내는" 한 손으로 된 지문자(指文字:one-handed manual alphabet)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농아동과 함께 생활하는 모든 가족들은 이 지문자를 익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페인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반에 걸쳐 농아동에게 체계적인 언어지도를 실시한 농교육의 선구적 국가이었다. 하지만, 농교육 방법의 보급을 위해 상호간에 미친 영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은 가장 문명화되고 부유한 귀족 가문의 선택된 소수 아이들에게만 개인교수를 통해 교육을 실시하였다.


4) 실학주의의 등장과 농교육

  17세기의 실학주의 교육사상의 대표자인 코메니우스(J.A.Comenius: 1592-1671)는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실물로 교수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이 실학주의는 영국으로 건너와 경험주의 철학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때부터 과학적 발견과 과학적(귀납적) 방법이 문제해결 방법으로 중시되어 왔다.

이 같은 사상적 경향에 영향을 받아 청각장애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그 접근에도 큰 진전을 가져 왔다.


* 스코틀랜드의 달가르노(George Dalgarno) : 1661년에 「의사소통 기법」 (Art of Commumication: A Universal Letter Common to All and Philosophical Speech)을 저술하였다. 그는 농교육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단한 노력"이며, 청각장애인에게 언어지도를 하는 것은 언어가 담고 있는 개념을 이해하도록 하는 데 궁극 목적이 있으므로, 개념 확립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언어는 공허한 것이라고 했다.


* 전문적 교사의 출현 :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중엽에 걸쳐 청각장애아 교육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교사가 출현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아망(Amman)과 뻬라르(Pereire)를 들 수 있다.


- 아망(Johann Konrad Amman: 1669-1724)은 농아인에게 맑은 목소리로 발성하게 하고, 다음에 그 발성을 잘 조절하도록 하는데 가장 강조를 두었다. 그의 주된 관심은 언어 그 자체 보다는 조음의 발성 기제에 모아지고 있었다.

- 뻬라르(Jacobo Rodrigues Pereire:1715-1780)는 남부 프랑스에서 최초의 전문 농교육 교사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 그는 이따르(Itard)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므로서 정신박약아 교육의 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종래의 한 손으로 표시되는 지문자를 사용했지만, 이것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재조정하여 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의 위치에 따라 손가락의 위치를 정한 일종의 '표음 지문자'를 고안했다. 그가 나타내는 알파?은 철자들이 아니라 음성학적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즉 지문자를 방법적 한 수단으로 사용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발성훈련을 위한 지도의 기초로 활용되었다. 그가 개발한 이 '음성학적 지문자 체제'는 오늘날 코?(R. O. Cornett) 교수가 개발한 큐드 스피치"Cued Speech"의 선구가 되고 있다


학교교육의 성립과 방법 논쟁의 제기


18세기에는 계몽사상이 등장하고, 계몽사상에 영향을 받아 교육면에서는 현대 교육의 기초가 되는 루쏘(J.J.Roussesau)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을 비롯해서, 인간 평등의 이상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박애(범애)주의 교육사상이 대두됨으로써 장애아동을 위한 학교교육이 실현케 되는 주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첫째,일부소수의 특권층 자제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의 자제를 위한 집단 교육이 실시되었됨

둘째, 전문적인 농교육자의 출현으로 농교육의 전문성을 확보하게 됨

셋째, 18세기 후반기에 성립하기 시작한 농학교 교육은 주로 기숙제 시설(Institute)의 형태 

 로 실시되었으나, 이것은 이후에 19세기 후반부터 농교육을 공적 관점에서 국민교육제도의 

 하나 로 통학제 공립 농학교를 출현케 하는 하나의 필연적 발전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가. 세계 최초의 농학교와 레뻬(de I' Epee)의 수화법

1) 세계 최초의 농학교

  파리 농학교 - 레뻬(Charles Michel de I'Epee : 1712-1789)는 종교적 자선정신에서 청각장애아동의 교육에 관심을 가진 이래, 의도적으로 가난한 청각장애아동을 대상으로 보호·구빈하는 가운데 1760년 세계에서 최초로 농학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2) 레뻬의 교육철학

  레뻬 이전의 농교육자들이 모두 부유층의 자제를 대상으로 많은 보수의 대가로 교육을 실시한 것과는 그 근본 취지가 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그의 교육방법을 공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형편에 있는 청각장애인 대중을 의식한 무한한 애정과 사명감에 입각하여 교육을 시작하였다. 때문에 레뻬의 농교육 업적과 그 정신은 프랑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의 각국에까지 농교육의 보급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3) 구미 농교육에 미친 영향

  그의 후계자인 시까르(Sicard)를 비롯해서 많은 제자들이 구미의 각지에서 농학교를 신설하는데 직접·간접으로 기여하였다.


4) 교육 방법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교육목적의 실현을 위해서 구화법은 부적합한 것으로 판단하여 농아인의 교수 방법으로는 "자연수화"의 기초 위에 모국어(불어)의 어법에 따른 수화법(手話法, manualism)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5) 농인의 언어에 대한 관점(수화법)

  레뻬는 청각장애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그들의 손으로 표현되는 싸인을 사용하는 것은 마치 정상인들이 그들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그것은 청각장애인의 '모국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수화는 청각장애인의 모국어"와 같은 것이므로, 이를 통해 청각장애인은 사고하고, 그 도덕성이 개발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기초 위에서 청각장애인에게도 구화가 성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나. 세계 최초의 공립 농학교와 하이니케(Heinicke)의 구화법

 1) 세계 최초의 공립 농학교

독일의 하이니케(Samuel Heinicke : 1727-1790)는 1778년에 세계 최초로 공립 농학교를 설립하였다.

2) 공교육으로서의 농교육

  당시 프러시아에서는 이미 의무교육 제도를 법제화하고, 이를 추진하여 왔으므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립 농학교를 설립하여, ① 교육 대상자의 연령을 6세 이상으로 하고, ② 교육내용은 일반아동과 동일하게 하며, ③ 교육목적은 장래의 자립인, 사회의 유능한 성인이 되게 하는 데 있었다.


3) 하이니케의 교육 방법

  독일의 농학교는 전술한 레뻬의 농교육 시설에 비해 휠씬 근대적인 성격을 띠고 출발하였다. 하이니케는 철저히 구화주의에 입각하여 농교육을 실시했다. 그는 수화법을 지팡이에 비유하여 보행이 불가능한 자에게는 지팡이 자체도 하나의 장애가 될 뿐이라고 하여, "농아인이 말하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말하도록 가르치는 길뿐"이라고 확신하였다.


4) 프랑스 소화법과 독일 구화법의 갈등

  수화법으로서 프랑스법과 구화법으로서 독일법은 레뻬와 하이니케의 출현을 기점으로 격렬한 논쟁을 벌리게 된다.

1784년경에 레뻬는 그 자신의 방법을 옹호하면서, 하이니케에게 구화법의 문제점을 묻는 편지를 보냈으며, 하이니케로부터 방법에 관한 뚜렸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레뻬는 쮜리히 아카데미에 하이니케와의 서신 왕래 자료를 제시하여 그들로 하여금 판정을 내리게 하여 그 논쟁을 객관적으로 심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쮜리히 아카데미는 레뻬의 요청을 받아들여 두 사람간의 방법을 소개한 자료를 분석·평가하였다. 그들은 하이니케의 방법에 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고 노력하였으나, 하이니케는 "자신의 비법을 공개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그 이상 새로운 것을 얻어낼 수가 없었다.

쮜리히 아카데미에서는 하이니케가 미각을 활용하여 구화지도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한 주장에 대해 퍽 당황하였다. 이에 반해 레뻬의 방법에 관해서는 풍부한 자료를 입수할 수 있어, 마침내 1783년 2월 6일자로 "레뻬의 방법이 타당하다"는 회신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방법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최선의 것이 될 수 없다고 보았으며, 하이니케의 방법은 레뻬의 방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의혹이 있다고 판정하였다.


다. 미국의 농교육 성립과 발전과정

1) 서구 농교육의 전파

  18세기 후기 서구에서 농학교 교육이 보급되면서, 미국은 서구의 농교육 방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곧 미국의 독창적인 농교육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주로 농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미국인들은 능동적으로 유럽에 건너 가거나, 혹은 전문 교사를 유럽에 파견하여 유럽의 농교육 방법을 익혀 왔다.


2) 미국 농교육의 선각자

  미국에서 농학교 교육의 성립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목회자인 걀로뎃(Thomas Hopkins Gallaudet: 1787-1851)의 농교육 업적에 의해 그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는 이웃에 살고 있는 9세된 농소녀 콕스웰(Alice Cogswell)을 보고 많은 관심을 가져, 그녀가 읽고 쓰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걀로뎃은 쓰기 지도에 병행해서 싸인과 지문자를 결합해서 농소녀를 지도했다.


3) 걀로뎃의 영국 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