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출발만큼 큰 열정으로 직장과 세계 복음화
[인터뷰] 한국직장선교연합회장 육병엽 장로 [2006-08-29 17:07]
▲한국직장선교연합회장 육병엽 장로
40대의 늦은 나이에 예수님을 영접한 뒤 민족복음화를 위해 직장선교사 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한국직장선교연합회의 육병엽 장로(60). 내년이면 벌써 환갑이지만 선교에 대한 열정은 20대 젊은이 못지 않다. 그는 백발이 무성한 모습으로 “내가 조금만 더 젊었어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선교했을 것”이라며 못내 아쉬워 한다. 그러나 그는 젊은 청년들과 함께 선교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면서 못 다 이룬 꿈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이뤄가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초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이하 한직선) 회장으로 선출된 육병엽 장로는 그동안 한직선에서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한직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전북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와 전주기독교법조회, 전주안디옥교회 등에서 활발한 선교사역을 펼쳤다. 특히 그는 지난 2002년에 김제, 남원, 익산, 전주, 정읍, 장수지역 기독교인들을 직접 발로 뛰며 모아 전북직장선교연합회를 창립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런 그가 요즘엔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C.C.C 전주지부 형제, 자매들은 매월 세번째 목요일이 되면 육병엽 법무사 사무소로 모여든다. 기도모임을 갖기 위해서다. 30년간 검찰공무원으로 지낸 육 장로가 정년퇴임 후 시작한 일이 법무사 사무소인데, 이 사무소 현관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크리스찬 육병엽 법무사 사무소’라고 쓰여 있다.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다.
C.C.C 청년들은 육 장로가 무척이나 편한듯 그에게 서슴없이 다가와 1개월 동안 사역하면서 일어났던 일들을 신명나게 늘어놓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버지와 자녀들의 대화처럼 들릴 정도다.
C.C.C 전주지구는 C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육 장로는 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직접 선교 상황을 체험하기 위해 당국에 다녀왔다. 연안을 따라서 선교 거점을 만들어가고 있는 C.C.C의 선교 상황을 직접 체험한 육 장로는 “현지인들이 하나씩 세워진 것을 보고 기뻤다”며 “그 땅에 가서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큰 은혜를 체험했다”고 당시의 소감을 전했다.
육 장로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는 나갔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이른 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수십년간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세속의 욕망을 따라 살아온 그는 ‘교회를 다니라’는 어머니의 유언이 있은 후부터 새 삶을 살기 시작했다. 40대 초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의 인생을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단한 육 장로는 지금은 이처럼 자비량 선교사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이뿐 아니라 육 장로는 한직선에서는 처음으로 전북직장선교대학을 개설해 지난해 12월 1기를 배출하기도 했다. 직장선교대학은 민족복음화를 위해 직장선교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육 장로는 “많은 기독직장인들이 직장 내에서 선교활동을 원하면서도 선교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집회만 참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오늘날 직장선교의 부흥은 평신도 직장선교사를 육성하는 일에 달려 있기에 이 일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재 직장선교대학은 서울과 수원, 광주, 전주, 울산 등 8개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다.
육 장로는 “하나님은 약한 것들을 들어 쓰신다는 사실을 나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신다”며 “앞으로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직장과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영원한 직장선교사
40대의 늦은 나이에 예수님을 영접한 뒤 민족복음화를 위해 직장선교사 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한국직장선교연합회의 육병엽 장로(60). 내년이면 벌써 환갑이지만 선교에 대한 열정은 20대 젊은이 못지 않다. 그는 백발이 무성한 모습으로 “내가 조금만 더 젊었어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선교했을 것”이라며 못내 아쉬워 한다. 그러나 그는 젊은 청년들과 함께 선교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면서 못 다 이룬 꿈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이뤄가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초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이하 한직선) 회장으로 선출된 육병엽 장로는 그동안 한직선에서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한직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전북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와 전주기독교법조회, 전주안디옥교회 등에서 활발한 선교사역을 펼쳤다. 특히 그는 지난 2002년에 김제, 남원, 익산, 전주, 정읍, 장수지역 기독교인들을 직접 발로 뛰며 모아 전북직장선교연합회를 창립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런 그가 요즘엔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C.C.C 전주지부 형제, 자매들은 매월 세번째 목요일이 되면 육병엽 법무사 사무소로 모여든다. 기도모임을 갖기 위해서다. 30년간 검찰공무원으로 지낸 육 장로가 정년퇴임 후 시작한 일이 법무사 사무소인데, 이 사무소 현관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크리스찬 육병엽 법무사 사무소’라고 쓰여 있다.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다.
C.C.C 청년들은 육 장로가 무척이나 편한듯 그에게 서슴없이 다가와 1개월 동안 사역하면서 일어났던 일들을 신명나게 늘어놓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버지와 자녀들의 대화처럼 들릴 정도다.
C.C.C 전주지구는 C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육 장로는 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직접 선교 상황을 체험하기 위해 당국에 다녀왔다. 연안을 따라서 선교 거점을 만들어가고 있는 C.C.C의 선교 상황을 직접 체험한 육 장로는 “현지인들이 하나씩 세워진 것을 보고 기뻤다”며 “그 땅에 가서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큰 은혜를 체험했다”고 당시의 소감을 전했다.
육 장로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는 나갔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이른 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수십년간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세속의 욕망을 따라 살아온 그는 ‘교회를 다니라’는 어머니의 유언이 있은 후부터 새 삶을 살기 시작했다. 40대 초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의 인생을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단한 육 장로는 지금은 이처럼 자비량 선교사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이뿐 아니라 육 장로는 한직선에서는 처음으로 전북직장선교대학을 개설해 지난해 12월 1기를 배출하기도 했다. 직장선교대학은 민족복음화를 위해 직장선교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육 장로는 “많은 기독직장인들이 직장 내에서 선교활동을 원하면서도 선교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집회만 참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오늘날 직장선교의 부흥은 평신도 직장선교사를 육성하는 일에 달려 있기에 이 일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재 직장선교대학은 서울과 수원, 광주, 전주, 울산 등 8개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다.
육 장로는 “하나님은 약한 것들을 들어 쓰신다는 사실을 나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신다”며 “앞으로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직장과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박종배 기자 jbpark@chtoday.co.kr
2006년8월30일 크리스천 투데이 보도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