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젖은 초코파이를 먹던 시절, 나는 초코파이 속에 있던 하얀 부분 는 절대 인체에서 분해가 되지 않아 먹는 족족 쌓인다는 루머를 있는 그대로 믿던 해맑은 심성의 군인이었다-_-; (물론 그러면서도 초코파이를 없어서 못먹는 솔직한 식탐까지 겸비했었지만-_-;;) 그 당시에 짬좀 차서 라디오를 듣었을때는 정지영씨의 스윗 뮤직박스 팬 - 일명 달콤가족-_-; 이어서인지 정지영씨가 번역한 이 책을 보고나서 떠오르는건 국방색이었다. (누군가가 북방색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색깔은 눈에 잘 띄지 않게 국방부에서 자체 제작한 숲 색깔인데 이 무늬는 왠지 인파속에 있으면 한눈에 참 잘 들어올정도로 주목이 된다-_-+) 물론 마시마로 토끼를 떠올리는것보다 나은 발상이었겠지만...;; 책의 주 내용은 마시멜로라는 사탕을 이용한 실험에 관련된 인생에 대한 지침을 동화처럼 쉽게 풀어낸 이야기이다. '어린아이에게 15분을 이 사탕을 먹지 않고 참으면 하나를 더 준다' 라는 조건에서 그걸 참지 못하고 먹는 아이보다 참고 결국 두개 먹는 아이가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실험 결과와 함께 인내가 건내 준 성공 스토리들로 가득차 있다. 15분의 대가로 100%의 수익률이라면 해볼만한 투자다. 하지만 보다 본능적인 욕구가 강하고 절제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아이들에게 그 투자의 대가인 15분은 지독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한다면 두배의 기쁨이 찾아온다는 교훈은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을 '자신'으로 설정하고 '마시멜로'와 '15분'을 자신에 맞게 대입한다면 충분히 응용할 수 있는 훌륭한 격언이 된다. 그렇지만 조금 삐딱선을 타보자. (다소 당황스러울수도 있다^^;) 아이에게 사탕 하나보다 15분이 더 중요한 경우는 어떨까? 캐로로 할 시간이라거나 동네 친구와 딱지치기 약속이 있는 경우. 아니면 15분 참느니 먹고 끝내자는 주의인 경우. 아이에게 사탕 둘이나 하나가 똑같은 경우는 어떨까? 본디 그렇게 많이 먹고 싶지 않은 아이는 이빨이나 썩어대게 두개 나 먹고 싶지 않은 경우. 그냥 하나로도 충분한데 굳이 기다려서 먹고 싶지 않은 경우. 이 실험이 아이의 참을성과 연개가 없는 경우는 어떨까? 그냥 기다리면 두개준다는 어찌보면 명령조로 인식할 수 있는 아이 에게 순종적인 성격의 아이는 그냥 기다려야되나보다 라는 피지배성에 기인된 다소 의지력이 부족한 아이의 경우. 물론 어쩌면 말도 안되는 태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관점은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조사결과처럼 마시멜로 실험을 신빙성이 결여된 맥락의 결과로 판단할 수도 있다. 물론 실험이 가정한 이야기만을 가능성 운운하며 딴지 거는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가 말하려고 하는 본질을 놓치진 않았다. 오늘의 쾌를 참고 내일을 준비하면 보다 성공에 가까워진다는 다소 진부한 '격언'은 분명 맞는 소리긴 하지만 최근 '권선징악'적 주제를 가진 옛고전의 새로운 해석과 같이 '미래'를 위한 '현실'의 희생이 최근에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되고 있고 그 가치판단의 잣대가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점이 인정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책의 내용중 래리버드라는 농구선수가 매일 하루 두시간 농구장의 상태를 직접 점검하는 내용을 성공을 위한 꾸준함과 철저 한 준비성으로 인정할 수도 있지만 짧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고 점검원을 시키는 등의 유연함이 결여 되었고 만에 하나의 경우에 대해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강박증을 가졌으며 너무 극단적이고 무식한 방법이다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교훈이 그런 비판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빛이 나는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한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일깨워준 점이다. 나도 이 책을 읽고 달콤한 낮잠을 자고 나서 아차 했던게 잠깐의 달콤함을 위해 (달콤가족인데 난 ㅠ.ㅠ) 일주일 후의 시험공부를 희생했던것이 마시멜로를 15분을 참지 못하고 꿀떡 삼킨 마치 쑥과 마늘을 참지 못한 호랑이 꼴이 된듯한 부끄러움을 지각할 수 있게 되었다. 신랄한 비판을 한 뒤엔 그 본질은 보지 못한채, 단지 깍아낸 뒤의 우월함에 도취된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수용하는 태도보다야 훨씬 지각이 있다라고 볼 수 있지만 특히 대학생 층이(나같은 놈--) 비생산적인 비판만 즐기는 경향이 있다. 창의적이고 기발하고 유연한 사고관을 가지기엔 필수적인 비판이 지만 그러기 위해선 정석으로 그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포용력도 또한 겸비해야겠다라고 생각이 미친다. 나도 15분 뒤 두개의 마시멜로를 위해 조금 참는 법을 배워야겠다. 1
마시멜로 이야기
눈물젖은 초코파이를 먹던 시절, 나는
초코파이 속에 있던 하얀 부분 는 절대 인체에서
분해가 되지 않아 먹는 족족 쌓인다는 루머를
있는 그대로 믿던 해맑은 심성의 군인이었다-_-;
(물론 그러면서도 초코파이를 없어서 못먹는
솔직한 식탐까지 겸비했었지만-_-;;)
그 당시에 짬좀 차서 라디오를 듣었을때는
정지영씨의 스윗 뮤직박스 팬 - 일명 달콤가족-_-; 이어서인지
정지영씨가 번역한 이 책을 보고나서 떠오르는건 국방색이었다.
(누군가가 북방색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색깔은 눈에 잘
띄지 않게 국방부에서 자체 제작한 숲 색깔인데 이 무늬는 왠지
인파속에 있으면 한눈에 참 잘 들어올정도로 주목이 된다-_-+)
물론 마시마로 토끼를 떠올리는것보다 나은 발상이었겠지만...;;
책의 주 내용은 마시멜로라는 사탕을 이용한 실험에 관련된 인생에
대한 지침을 동화처럼 쉽게 풀어낸 이야기이다.
'어린아이에게 15분을 이 사탕을 먹지 않고 참으면 하나를 더 준다'
라는 조건에서
그걸 참지 못하고 먹는 아이보다 참고 결국 두개 먹는 아이가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실험 결과와 함께
인내가 건내 준 성공 스토리들로 가득차 있다.
15분의 대가로 100%의 수익률이라면 해볼만한 투자다.
하지만 보다 본능적인 욕구가 강하고 절제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아이들에게 그 투자의 대가인 15분은 지독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한다면 두배의 기쁨이 찾아온다는 교훈은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을 '자신'으로 설정하고
'마시멜로'와 '15분'을 자신에 맞게 대입한다면 충분히 응용할 수
있는 훌륭한 격언이 된다.
그렇지만 조금 삐딱선을 타보자. (다소 당황스러울수도 있다^^;)
아이에게 사탕 하나보다 15분이 더 중요한 경우는 어떨까?
캐로로 할 시간이라거나 동네 친구와 딱지치기 약속이 있는 경우.
아니면 15분 참느니 먹고 끝내자는 주의인 경우.
아이에게 사탕 둘이나 하나가 똑같은 경우는 어떨까?
본디 그렇게 많이 먹고 싶지 않은 아이는 이빨이나 썩어대게 두개
나 먹고 싶지 않은 경우. 그냥 하나로도 충분한데 굳이 기다려서
먹고 싶지 않은 경우.
이 실험이 아이의 참을성과 연개가 없는 경우는 어떨까?
그냥 기다리면 두개준다는 어찌보면 명령조로 인식할 수 있는 아이
에게 순종적인 성격의 아이는 그냥 기다려야되나보다 라는
피지배성에 기인된 다소 의지력이 부족한 아이의 경우.
물론 어쩌면 말도 안되는 태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관점은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조사결과처럼
마시멜로 실험을 신빙성이 결여된 맥락의 결과로 판단할 수도 있다.
물론 실험이 가정한 이야기만을 가능성 운운하며 딴지 거는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가 말하려고 하는 본질을 놓치진 않았다.
오늘의 쾌를 참고 내일을 준비하면 보다 성공에 가까워진다는
다소 진부한 '격언'은 분명 맞는 소리긴 하지만
최근 '권선징악'적 주제를 가진 옛고전의 새로운 해석과 같이
'미래'를 위한 '현실'의 희생이 최근에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되고
있고 그 가치판단의 잣대가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점이 인정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책의 내용중 래리버드라는 농구선수가 매일 하루 두시간
농구장의 상태를 직접 점검하는 내용을 성공을 위한 꾸준함과 철저
한 준비성으로 인정할 수도 있지만
짧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고 점검원을 시키는 등의 유연함이 결여
되었고 만에 하나의 경우에 대해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강박증을
가졌으며 너무 극단적이고 무식한 방법이다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교훈이 그런 비판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빛이 나는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한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일깨워준 점이다.
나도 이 책을 읽고 달콤한 낮잠을 자고 나서 아차 했던게 잠깐의
달콤함을 위해 (달콤가족인데 난 ㅠ.ㅠ) 일주일 후의 시험공부를
희생했던것이 마시멜로를 15분을 참지 못하고 꿀떡 삼킨 마치
쑥과 마늘을 참지 못한 호랑이 꼴이 된듯한 부끄러움을 지각할 수
있게 되었다.
신랄한 비판을 한 뒤엔 그 본질은 보지 못한채, 단지 깍아낸 뒤의
우월함에 도취된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수용하는 태도보다야 훨씬 지각이 있다라고
볼 수 있지만 특히 대학생 층이(나같은 놈--) 비생산적인 비판만
즐기는 경향이 있다.
창의적이고 기발하고 유연한 사고관을 가지기엔 필수적인 비판이
지만 그러기 위해선 정석으로 그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포용력도
또한 겸비해야겠다라고 생각이 미친다.
나도 15분 뒤 두개의 마시멜로를 위해 조금 참는 법을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