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가슴막이"라 내 가슴이 답답하네

신재구200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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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가슴막이'라 내 가슴이 답답하네

 

새번역의 문제(1)

 

성경의 번역에 대하여 문제를 들먹이는 것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예컨대, 일반 교인들 사이에 번역된 성경을 불신하게 만드는 경향을 은근히 유포하는 것을 말함), 차후에 나올 더 나은 번역을 위하여, 또 그릇된 번역으로 인한 오해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잘못된 번역에 대한  문제 제기와 비평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때 밥벌이로 번역을 했던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번역자들의 고뇌와 고충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교회 공동체의 공동의 선을 위해서 이러한 작업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993년에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하고 펴냈던 표준새번역 성경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주목했던 한 가지를 2001년에 다시 고쳐 펴낸 에서는 어떻게 했는 지 살펴 본 것이 있다.  아직도 익숙한 개역성경의 에베소서 6:14 번역인 ‘의(義)의 흉배’라는 말이 ‘정의의 가슴막이’라는 말로 번역된 것을 볼 때,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흉배 대신에 ‘가슴막이’라고 한 것과 ‘의’라는 말을 일방적으로 ‘정의’라는 말로 재정의해 준 것이 못 내 아쉬웠다.

 

이러한 번역은 에서도 그대로 남게 되었는데, 아마도 독자들 편에서 충분하고 설득력 있는 지적이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흉배 대신에 가슴막이라고 한 것은 한자살이에서 점점 더 벗어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적절한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방어용으로 가슴을 막는 방패와 같은 것을 ‘가슴막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뭉치 연구를 통해서 더 확인할 일이겠지만.

 

다만 유감으로 남는 것은 번역하는 이들의 신학적 이해를 주입시키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정의’라는 낱말의 선택이다. 물론, 원문 dikaiosunh에 대하여 ‘정의’라는 말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옮기는 이의 판단이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 판단이 정당하며 일관성이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을 때만 그러한 판단은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한글성경에서 ‘의’라고 번역한 것이 얼마나 훌륭한 번역인가에 대하여 항상 흐믓하게 생각해 오고 있다. 영어 번역들이 이 면에서는 한자문화권에 있는 우리를 도저히 능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바름’을 주로 의미하는 ‘righteousness’나 사회의 질서와 정의를 뜻하는 ‘justice’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영어번역은 포괄적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의'(義)라는 말은 두 가지의 뜻, 곧 개인의 바름(individual rectitude)과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를 포함할 뿐 아니라, 그 밖의 플러스 알파적인 뜻까지 담고 있다. 성경은 바로 그 플러스 알파의 뜻을 구약성경의 qd,c,와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dikaiosunh라는 말을 통해 표현하고 싶어한다.  

 

 

‘관계적 의’가 그것인데, 예컨대, 우리말에서 “의리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관계를 엉터리로 하는 몹쓸 사람이라는 말이고, “너, 나하고 의절하자는 얘기냐?”고 누가 대들면 관계를 끊자는 말이냐고 들이대는 말인 것처럼, 특히 개역성경이 '의'라고 번역한 구/신약의 이들 낱말은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 를 말하고자 할 때 쓰는 경우가 많다 (cf. 창15:6, 마3:15).  반면, 영어성경들에서는 righteousness로 하든 justice로 하든 바로 그 ‘관계적 의’라는 뜻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의미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러한 형편을 충분히 고려했더라면, 이든지, 그것을  고쳐서 새로 낸 에서 차라리 ‘의’라고 포괄적으로 두었어야 했을 것을 어떤 곳에서는 ‘정의’(예: 시45:6; 렘 31:23; 엡6:14; 히7:2; 약3:18; 벧후 3:13 등)라고 원문의 뜻을 번역자가 알아서 선택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구태여 ‘정의’라고 못 박는 것보다는 그대로 ‘의’라고 두는 편이 더 나았을 부분들이다. 이러한 것은 번역이 아니라, 해석이 되버리는 것이다.

 

 

© 신재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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