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MIND MIND - 1

제이200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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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결혼이라고 하자면 결혼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나는, 그런 딱딱한 틀에 갇혀 살아가기도 싫고 문서상으로도 인정되지 못하는 이런 결혼은 별로 원하지 않음에 틀림없다. 난, 좀 더 자유롭고 싶고, 좀 더 이기적이고 싶다.

 

 

 

 “내일 가.”


 미련인가. 그 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갑자기. 붙잡는 손길이 싫지는 않았지만 딱히 좋지도 않다. 난 돌아가야 한다. 나의 생활로. 지금은, 나의 기본적인 생활과는 조금 동떨어진 시간이라고 해두자. 이 시간은 우리 둘 밖에 모르는 시간이다. 이 관계는 우리와 또 다른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관계이다. 그는 까맣게 모르고 있을 테니까.


 “미쳤구나.”


 정말 싫어서는 아니었지만 팔을 잡는 손을 뿌리치고 아직 덜 마른 머리를 손으로 대충 털었다. 날도 덥긴 참 덥다. 샤워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덥니. 이제 피서 철도 다 지난 이 시점에 무더위라니. 조금만 더 있으면 과열로 지구가 폭발해 버릴 것 같다. 더럽게 덥네.


 “내일 가. 자고 가라, 응?”


 이건 어려서인지 참 어리광도 많다. 근데 그것도 저 불리할 때만 그렇지 평소에는 온갖 샤프한 척, 시니컬한 척을 다한다. 뭐 그게 또 이 녀석의 멋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나오면 내가 난감해진단 말이지. 평소에 그렇던 녀석이 이렇게 적당한 어리광을 섞어 붙잡으면 정말 가기 싫어진다. 그래도 이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난 너에게 홀딱 빠져 이성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걸 너도 잘 알면서 왜 그래. 언제는 나 힘들게 안 하겠다며.


 “나 소박맞으면 니가 책임질 거냐.”


 소박이라. 말해놓고도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정말 결혼이라도 한 것 같이. 등본 상에 기재되지 않을 뿐, 결혼과 판이하게 다를 건 없지만. 헌데 녀석은 별로 이상하게 듣지 않았는지 심드렁하게 담배나 빼어 물고 있다. 그러지 뭐. 잠깐 담배를 손가락에 끼운 녀석이 그러지 뭐- 라고 하며 나를 보았다. 어쭈, 나이도 어린 게 까부네. 하는 생각에 피식 웃었더니 귀신같이 눈치만 빠른 녀석이 나 무시해?! 하며 인상을 팍 쓴다.


 “아, 몰라. 나 갈 거야.”


 무시한 건 맞는데 그걸 맞다고 대답을 하려니 티격태격 말 싸움이 날 것이 싫어서 그냥 몸을 일으켰다. 숨 쉬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말싸움까지. 단지 빈 손으로 다니기가 허전하여 메고 다니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가방을 집어 들고 현관까지 떼기도 귀찮은 발걸음을 움직여 신발을 신으니까 저만치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녀석이 걸어 나온다.


 “태워다줄게.”


 시간을 보니 그래도 상관없겠다 싶어 싫다는 말은 안했다. 솔직히 버스는 불편하고, 택시를 타기엔 가지고 나온 돈도 없고.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아무렇게나 놓인 슬리퍼의 짝을 찾아 신고 먼저 현관을 나간다. 날이 더워서 그런가, 직직 끌리는 슬리퍼 소리가 참 거슬린다. 듣기 싫어. 아, 정말. 나 오늘 왜 이래.


 “문 잠그고 천천히 내려와. 앞에 차 대놓을게.”


 녀석이 먼저 계단을 밟아 내려간다. 나는 녀석이 한 말대로 문을 잠그고 참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한칸, 한칸 정성스레 밟으면서.


 계단을 다 내려왔더니 벌써 차를 대놓은 녀석이 따분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너무 천천히 내려왔나. 근데 뭐, 쟤가 천천히 내려오라고 했는걸. 따분한 표정은 보지 못한 척 차에 올라타자, 계단 만들어서 내려왔냐. 하며 심드렁하게 말하고는 기어를 바꾼다. 차 안은 생각보다 그런대로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근데 멀뚱히 앉아있다 생각해보니 기어만 바꿨지 출발할 생각을 않는다. 뭐야, 태워다 준다며.


 “안 가?”
 “공짜가 어디 있냐. 차비. 내 차는 무임승차 안돼.”


 짓궂게 말한 녀석이 손이 아니라 얼굴을 내 쪽으로 내민다. 기가 막혀서 웃었더니 씨익 웃은 녀석이 가볍게 키스하고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차비보다 내 입술이 더 비싸. 했더니 또 웃는다. 뭐가 웃겨서 그렇게 웃니. 난 하나도 재미없는데. 웃지 마, 정들어. 코앞에 있는 얼굴을 밀어냈더니 속도 없는 이 녀석은 뭐 좋다고 또 웃는다.


 “정들어야 매일 나 보러 오지.”


 흥, 이런 나쁜 놈.

 

 

 

 

 

 


 매끈하게 잘 빠진 녀석의 차를 보고 있노라면 딱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돈도 있고, 면허도 있는데, 나도 이런 차 한대 뽑아서 끌고 다닐까.
 얘는 이 차 뽑은 할부, 언제 다 갚아나갈까.


 “할부 몇 개월이나 남았냐.”
 “뭐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다섯 달인가?”


 아이고, 맙소사. 다섯 달(또는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 해서 차 할부 메울 생각을 하면 난 벌써 골로 가셨다. 근데 뭐, 얘는 뺀 질한 얼굴로 아르바이트도 설겅설겅. 그러면서 어째 돈은 벌긴 버는가보다. 인생살이가 그다지 힘들지 않은 모양새로 보인다. 아직 어려서 다 즐겁기만 하려나. 저땐 나도 그랬었나. 근데 따지고 보면 나도 그렇게 늙은 건 아닌데. 어차피 얘랑 두 살 차이뿐이 안 나는 걸.


 “소박맞으면 나한테 올 거야?”


 이게 오냐오냐 해줬더니 못하는 말이 없다. 너 할부 메우기도 바쁜데 날 어떻게 먹여 살려. 시큰둥하게 대답하니까 제 딴에는 기분이 좀 나빴는지 툴툴거린다. 역시 어린애는 별 수 없는가보다.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눈이 없어 막연히 현재의 감정에만 충실하다. 그저 막연히. 아직 철들려면 멀었어.


 “나 돈 많아!”


 내 시큰둥한 대답이 억울했는지 빽 소리를 치는데 난 웃기기만 했다. 돈이 많으셔? 근데 왜 학비며 세금이며 생활비는 부모님한테 타서 쓰니. 돈 많은 네가 다 내고 풍요롭게 살지.


 “돈 많으면 그 돈으로 그냥 일시불 하지 그랬어, 이 차.”


 말문이 막히니까 또 툴툴거린다. 아우씨, 이게 아닌데. 짜증내고 고시랑거리면서도 운전은 참 똑바르게 잘한다. 그래도 딴 짓 하다가 큰일 날까 싶어, 그만 고시랑거리고 운전이나 똑바로 하라고 핀잔을 줬다. 얘는 내 말은 어지간하면 잘 듣는 편이라 내 핀잔을 들은 후에는 입 꾹 다물고 운전만 했다. 착하기도 하지.


 차도 안 막히고, 신호도 거의 걸리지 않아서 집에는 금방 도착을 했다. 내리려고 메고 있던 안전벨트를 푸는데 녀석이 내 손목을 덥석 잡는다. 어린 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이제 드라마 같은 대사를 또 줄줄이 읊을 차례이려나. 가지 마. 라던가, 너 하나 먹여 살릴 만큼은 되니까 나한테 와. 이런 대사. 그런 대사 몇 천 번을 해도 나한테는 씨도 안 먹히니 그만두렴. 이젠 듣는 것도 귀찮다.


 “그 새끼보다 만족하게 해줄게.”


 인마, 넌 그 인간한테 한주먹거리도 안돼. 상대를 제대로 알아보고 말씀하셔야지. 너 객기부리다가 저세상 구경하는 수도 있어.


 “그런 상황이 오면 그 때 생각해볼게.”


 아직 한창인 녀석의 열정에 차마 얼음물을 끼얹을 수는 없어서 마지못해 대답했더니, 이건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씨익 웃는다. 이 웃음은 상대로 하여금 덩달아 웃음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얘가 왜 이럴까, 그 저의가 뭘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아, 애매한 건 딱 질색인데.


 “나 좀 집에 가게 손 좀 놔주지 않을래.”


 잡힌 손목이 아프다 못해 저릿저릿 저려 와서 인상을 쓰고 말했더니 또 씨익 웃고는 조용히 놔준다. 저놈의 주둥이 콱 째놓던지 해야지 정말.


 “내일 학교 갈 때 데리러 올게, 전화해-”


 참 살갑게도 손을 흔든 녀석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좋아 죽겠다는 듯 웃고는 차를 몰고 사라진다. 나한테 너무 빠졌어. 저러다 나중에 계속 붙잡고 늘어지면 어떡하지. 혹시 스토커라도 되는 거 아냐?! 으, 싫다. 역시 이래서 젊은 것들은 위험하다. 너무 불타는 청춘에 목숨을 걸어 결국 나중에는 다 타버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남는 것 없이.


 나는 뭐, 너무 일찍 불타버린 청춘이랄까. 다 타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나이만큼 파릇한 몸뚱이 하나다. 이제 막 20대 중반을 들어선 지칠 줄 모르는 몸뚱이.


 그나저나 오늘따라 허리가 아파 죽겠다. 들어가서 얌전히 잠이나 자야지.

 

 

 

 

 

 


 현관에 들어서고는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오늘 야근한다더니 벌써 집에 와있다. 이런 뻥쟁이.


 “뭐하느라 이제 들어와.”


 오, 신이시여. 이제 내 주특기를 살릴 차례다. 거짓말.


“학교에서 작업했어.”


 그럴싸한 핑계라고는 학교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는 피곤함에 가방만 저만치 팽개치고 침대로 가 쓰러지듯 누웠다. 언제 왔는지 간편한 옷차림의 그는 멀뚱히 내 모습만 지켜보다가 천천히 침대가로 걸어온다. 지은 죄가 있어 심장이 방망이질을 했다. 최선의 방법은 그냥 자는 거다. 옷도 갈아입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자는 수밖에.


 “학교에서 샤워도 하고 오냐.”


 이 인간은 좀 미심쩍다 싶으면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내 옆에 누워서 옅지 않은 샴푸 향을 맡은 모양이다. 아니면 물기가 덜 말랐거나. 그냥 좀 넘어가면 어디가 덧나나.


 “작업 한번만 해봐. 땀나지, 물감 묻지, 페인트 묻지 그것 말고도 묻는 건 더 많긴 해. 땀 냄새, 페인트 냄새 폴폴 풍기고 버스를 타야겠어? 미대에 샤워 실은 괜히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너 버스 안탔잖아.”


 다시 자려고 자리 잡다가 눈을 번쩍 떴다. 뭐야, 다 보고 있었어?! 짜증을 확 낼 뻔 했으나 참았다. 여기서 걸리면 안 된다. 벌써 걸리면 어떡해,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여전히 심장은 방망이질을 해댔지만 역시 좀 전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을 했다.


 “후배 차 같이 타고 왔어.”


 답지 않게 눈치도 빠른 그가 요즘 내 방황을 살짝 눈치 채기라도 한 것인지, 모든 일에 약간의 의심을 품고 다가선다. 물론 밖에서 겉도는 나도 잘한 건 없다만. 이 나쁜 놈, 벌써 의처증이냐?!


 “차 사줄게. 다른 사람 차타고 다니지 마.”


 이게 웬 횡재냐 싶으면서도 기분은 썩 좋지 못하다. 이건 나를 의심함에 틀림없는 증거다. 내가 다른 놈 차를 타고 다니니까 배알이 꼴리는 거다. 내가 밖에 나가서 뭘 하고 다니는지 확인을 못하니까 우선 모든 관계에 의심을 갖는다고나 할까. 나쁜놈나쁜놈나쁜놈나쁜놈! 난 친구도 만나지 말라는 거냐?!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이 다 게이는 아니거든?!


 “야, 정윤호!”


 아아, 나는 이게 문제였다. 조금 일찍 철이 들었나 싶어도 이 성질머리는 어쩔 수가 없다. 생각으로는 이게 아니지, 아니지 하면서도 실제로는 바락 대들고, 소리 지르고. 이번에도 머리보다 입이 더 앞섰다. 꼭 이러다가 꼬리를 잡힌다. 어차피 어떤 거짓말이든 언젠간 들통 날 것이 뻔하지만. 또 뭣 하러 소리를 질렀니. 요 성질 고약한 주둥이야.


 “뭐.”


 어쩌라고. 하고 말하는 듯한 감흥 없는 대답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냥 잠을 청할 수도 있었지만 내 입은 그 것마저 허락지 않는다. 입이 방정이지, 정말.


 “너 요즘 나 의심하지!”


 우리가 싸우면 항상 손해 보는 것은 나였다. 싸움이랄 것도 없다. 나 혼자만 잔뜩 화내고 정윤호는 언제나 감흥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딱딱하고 짧은 대답을 뱉는다. 왜, 뭐, 근데. 이런 정도? 그래, 나는 언제나 제 성에 못 이겨 악을 질렀고 정윤호는 뭘 해도 항상 여유롭다. 나이는 헛먹은 게 아닌가 보다. 싸움 같지도 않은 싸움은 항상 내가 지게끔 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억울하다. 입이 방정맞아서 억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만 청춘이야.


 “그래.”


 잘못한 것은 나임에도 불고하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다가 저런 식의 대답이 나오면 전의를 상실해 버린다. 그는 항상 저런 식으로 내 목소리를 죽여 놓고 더 이상 대들음의 여지가 없도록 말뚝을 확실히 박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억울한 것이다. 좀 아니라고 해주면 뭐가 잘못 되느냐는 말이다. 의심하는 게 뭐 자랑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 하고 대답을 해서 내 자존심을 팍팍 죽여 놓느냔 말이야. 나쁜 새끼.


 “너도 피곤하고, 나도 피곤하니까. 그러니까, 그냥 자려면 얌전히 자. 니가 밖에서 딴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아닌지 굳이 확인하게 하지 말고.”


 정말 이대로 확인하려 들면 정말 소박맞고 녀석에게 가야할 처지가 올 것 같아 가만히 꼬리를 내리고 잠을 청하려 한다. 언제나 내 멋대로 살던 이 인생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아, 이제는 참으로 비참한 인생이도다.


 옷 갈아입기는 정말 귀찮아져서 그냥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니 문득 녀석의 말이 머릿속에 스친다. 그 새끼보다 만족하게 해줄게. 역시나 만화나 소설, 드라마쯤에 나올법한 대사이지만 묘하게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사람의 욕구란 충족시키고 충족시켜도 끝이 없는 법. 자신을 더욱 만족시킬 대상을 찾아 헤매고 또 헤맨다. 난 여기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이렇게 가슴 졸일 바에야.


 여기까지 생각하고서야 혼자 놀라고 말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더위에 내가 잠시 미쳤는가보다. 정윤호를 떠날 생각을 하다니.

 

 

 

 

 


** 공유프로그램에서 씨게 돌고있는 마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