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느님! - 순수로의 회귀 [J의 드라마

이승은2006.08.31
조회37

안녕하세요, 하느님! - 순수로의 회귀


 
[J의 드라마에 관한 짧은 수다] 

 

  
요즘은 ‘순수남’이 인기라고 한다.
전도연, 황정민 주연의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인기 이후, 한 여자만을 향한 순애보적 사랑을 보내는 남자 캐릭터의 인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밀고 당기는, 그래서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 끔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감과 이러한 사랑놀음 혹은 게임에 지친 이들은 한번 쯤 이렇게 그 반작용으로 한 사람만을 좋아하는 사랑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게 아닐까.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또한 이러한 연장선에 있는 듯한 모습이다.


 

안녕하세요, 하느님! - 순수로의 회귀  [J의 드라마


 

- 소년은 성장한다.

이 드라마의 소재는 독특하다. 여타 트렌디 드라마와 소재를 달리하고 내러티브의 흐름 또한 다르다.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남자 주인공을 등장 시키고, 이러한 남자 주인공이 수술을 통해 평균, 혹은 평균 이상의 아이큐를 가지게 된다는 설정을 시킴으로써 사랑이야기 외에도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지켜보게 한다.
‘하루(유건 분)’의 빠른 성장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소년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고,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본다. 그 과정이 빠르기 때문에 극 중 여 주인공 서은혜(김옥빈 분)나 시청자들은 어른이 된 하루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를 반영하듯 서은혜는 사랑을 고백하는 하루에게 너무나 깨끗해서 차마 사랑을 받아 줄 수 없노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어른의 이기심이다. 아이가 성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그 성장과는 반해서 아이가 평생 아이 답기를 원하는 것은 어른의 질투심 섞인 이기심인 것이다.
하루의 성장이 올바른 것인지 지켜봐 주어야 하는 것이, 그리고 하루가 성장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서은혜의 이야기가 앞으로 드라마에게 남은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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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순수함, 그렇다면 어른은?

보통 우리는 ‘철이 들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인 성장을 의미하고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른은 도대체 무엇으로 규정되는 것인가. 어른스러운 행동이란 무엇인가.
어른은 순수하지 않은 것인가.
스스로를 못됐다고 평가하는 서은혜에게 박동재(이종혁 분)는 사실은 착하다고 그 평가를 정정해 준다. 그리고 반대로 서은혜는 박동재에게 쿨한 척 하지만 사실은 따뜻한 남자라는 평가를 내려준다.
어른은 겉으로는 쿨해야 하고, 때로는 못돼보이기도 해야한다. 자신의 몫은 자신이 책임질 수 있어야 하고, 상처로 투덜대는 일 없이 스스로 치료해 내야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거나, 순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순수함을 잘 감추어 내고 있을 뿐.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순수함을 적절하게 감추거나 내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이 급했던 하루는 아직 그 방법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감추고 있는 순수함을 아직 알지 못하는 서은혜는 하루를 거부한다. 아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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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소, 그리고 웃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해 주는 방법 7가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하루는 자신의 감정을 감출 줄 모르고 그대로 표현한다. 자신이 가진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서은혜와 박동재는 서로의 마음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눈치만을 살핀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본심과는 다른 말로 상처주기도 한다. 자라버린 우리는 하루의 사랑의 모습을 웃고, 박동재와 서은혜의 감정에 동조하기도 한다.
냉소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비웃음은 사실 쉽다.
현실에 대해 불만 가득한 웃음을 날려버리면 그만인 냉소는 그래서 많다. 그리고 다들 그 쉬운 길을 택해간다.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상처를 감추고 웃어버린 듯, 잊어버린 듯 말하면 그만인 것이다.
반면에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부딪혀 내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현실이 받아들이던, 아니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현실과 부딪혀 내는 것은 그래서 보기 어렵다. 우직한 바보가 세상을 바꾸어가리란 어느 책의 문구는 그래서 고개가 끄덕여 지는 말인 동시에, 갸웃하게 되는 어려운 말이다.
하루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세상을 향해 돌진한다. 세상은 여전히 자신을 인형, 혹은 바보취급하지만 하루는 숨거나, 자신의 모습을 치장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게 아직 성장하는 중인 하루의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다듬어지며 어른이 되겠지만, 하루가 온몸으로 부딪혀 나가는 그 과정이 헛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깨달을 것이다. 솔직하게 세상과 부딪혔던 그 시간들이 소중했다는 것을.
냉소 어린 얼굴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출 일 만은 아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며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때로는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일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일이라는 것. 하루를 보며 느낀다. 하루가 하는 어설픈 어른 흉내가 우습지만, 한편으로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줄 아는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 한번쯤 저렇게 우직한 바보가 되어 세상을 바꿔갈 수만 있다면, 혹은 바보짓이 때로는 세상을 행복하게 웃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가치있는 일 아닐까?

 

2006-01-30 

 

J  josuebi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