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막 --기다림의 집 "여행?"정우는 눈이라도 퍼부을 듯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 하늘을 올려다보며 반문했다. 어느 날 갑자기 외국에서 날아온 엽서처럼 '여행'이란 낯설었다."그래, 여행!"수화기 저편에서 시은이가 힘주어 말했다."어디를 가고 싶은데?"정우는 그녀의 몸 상태로 여행이 가능할까를 생각하며 물었다."음...... 여기저기. 바다도 좋고, 산도 좋고......"시은이의 음성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바람이 불면 훨훨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언제쯤?""금요일에 출발했다가 일요일쯤 돌아오는 건 어때?""곤란한데......"아무리 생각해도 여행은 무리였다. 밤낮의 기운 차가 커서 건강한 사람도 여행을 떠나기에는 좋지 않은 시기였다. 특히 시은이 같은 말기암 환자는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지내는 게 현명했다."왜?""월차도 휴가도 모두 빼먹었거든.""참! 그렇지."허공을 날던 시은이의 음성이 나풀거리며 추락했다. 풀이 죽어 있을 모습이 떠올랐고 이내 가슴이 불편해졌다."방법을 찾아보고 내일 전화해 줄게.""그럴래?"다시금 시은이의 음성이 사뿐히 날아올랐다.수화기를 내려놓자 수업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들려 왔다. 정우는 영어책과 출석부를 들고 교무실을 나섰다.시은이 생각 때문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어두운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 아른거렸다.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한 채 멍한 상태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누군가 "퇴근 안 하세요?" 하고 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교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정우는 본관 건물을 나서며 하늘을 보았다. 붉은 노을이 근심처럼 서편 하늘에 걸려 있었다. 지상의 온갖 그리움과 아쉬움을 사르며 다시 하루가 지고 있었다.비탈진 언덕길을 내려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숲을 향해 왼편으로 돌아서자 잎을 떨구는 나무들 사이로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서자 잎을 떨구는 나무들 사이로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산 나무를 사이에 나란히 서 있지만 선 채로 말라죽은 나무.정우는 잎사귀 한 장 달고 있지 않은 나무를 올려다보며 습관처럼 시은이를 떠올렸다. 암과 투병하고 있는 이 세상에 하나뿐이 없는 누이. 산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그녀는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봄이 오기 전에 나무는 제풀에 쓰러지거나 베어지리라. 숲에서 나무 한 그루가 감쪽같이 사라져도 사람들은 향기로운 꽃과 따사로운 봄볕에 취해 그녀의 죽음을 잊을리라.시은이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정전된 듯 가슴이 먹먹했다. 정우는 가슴이 풀릴 때까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차들이 빠져 나간 주차장은 은행잎이 뒤덮고 있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회오리 바람을 타고 몇 장의 나뭇잎이 나풀거리며 떨어져 내렸다.본네트 위에 낙엽이 수북히 내려앉았다. 앞유리창에 쌓인 낙엽을 치우다 보니 윈도우 브러시 아이에 꽂혀 있는 한 마리 학이 눈에 띄었다. 학을 펼치자 낯익은 유리의 글씨가 보였다.ㅡ 하늘과 강물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기다릴게요. ㅡ정우는 차를 몰고 학교를 벗어났다. 몇 장의 낙엽이 철없는 아이들처럼 차 뒤꽁무니를 따라왔다.십여 분 남짓 달리자 포도 과수원이 나왔다. 과수원은 황량했다. 거인의 손바닥만한 이파리도, 달콤한 열매도 모두 떨궈 버린 포도나무는 황토에 몸을 묻은 채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포도 과수원을 지나자 도포변에 세워져 있는 유리의 빨간 승용차가 보였다. 승용차는 저녁 노을을 받아 불꽃처럼 타올랐다.차에서 내려 강쪽으로 다가갔다. 키보다 높이 자란 갈대 숲을 헤치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강물 앞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는 유리의 뒷모습이 보였다.강 하구에서 철새 떼가 수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새들은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하고는 비행기 편대처럼 열을 맞춰 남쪽으로 날아갔다."뭘 생각하고 있어?"유리 곁에 앉으며 물었다."정우 씨와 시은언니 생각......""어떤?"유리는 크고 작은 낙엽들이 강물에 몸을 싣고 하류로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정우 씨에게 시은언니 반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그게 무슨 소리야, 바보같이......"정우는 오른팔로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감았다. 그녀의 마음에서 시작된 잔잔한 물결이 이내 아음 속으로 밀려들어왔다."여행 다녀오세요.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통화하는 거 들었어?""네. 우연히......""나도... 그럴 생각이야."정우는 붉게 물든 강물에 시선을 던졌다. 물 속의 하루도 소리 없이 지고 있었다."집안 분위기는 어때?""안 좋아요. 특히 엄마의 반대가 심하세요.""미안해. 그 일만 아니었더라도......""쉿! 우리 이제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않기로 해요."유리가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다 갖다 대며 뒷말을 막았다."오늘은 노을이 무척 예쁘네요."산 위에 걸린 붉은 구름을 한동안 올려다보던 유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나 봐. 노을이 예쁘다고 하는 걸 보니......""열심히 살고 싶어요. 아니, 열심히 살 거예요. 요즘...... 그래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껴요."유리가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노을이 지면서 붉은 구름은 잿빛으로 변해 갔고, 이내 먹빛으로 물들어 갔다. 어둠이 내리자 사방이 물 속처럼 고요해졌다.서걱거리는 갈대밭을 헤치고 도로로 나왔다. 어둠 속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시커먼 도로에 서자 자주 본 풍경인데도 흑백사진 속으로 갑자기 들어선 것처럼 서먹서먹했다."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을까?""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해요. 아빠를 확실하게 내 편으로 끌어 들어야 하거든요."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합병원 원장인 유리 아버지의 서글서글한 얼굴이 떠올랐다."여행 잘 다녀오세요."유리가 차문을 열었다. 정우는 그녀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를 매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았다."참, 시은 언니에게 제가 몹시 보고 싶어하더라고 전해 주세요."유리가 차창을 내리며 말했다."그러지."정우는 손을 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 유리의 승용차가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cywordl.com.lexa1004 ⓑy。『♬레옹™』
[소설] 해/바/라/기 ---- 1막 1장
제 1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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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집
"여행?"
정우는 눈이라도 퍼부을 듯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 하늘을 올려다보며 반문했다. 어느 날 갑자기 외국에서 날아온 엽서처럼 '여행'이란 낯설었다.
"그래, 여행!"
수화기 저편에서 시은이가 힘주어 말했다.
"어디를 가고 싶은데?"
정우는 그녀의 몸 상태로 여행이 가능할까를 생각하며 물었다.
"음...... 여기저기. 바다도 좋고, 산도 좋고......"
시은이의 음성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바람이 불면 훨훨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언제쯤?"
"금요일에 출발했다가 일요일쯤 돌아오는 건 어때?"
"곤란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행은 무리였다. 밤낮의 기운 차가 커서 건강한 사람도 여행을 떠나기에는 좋지 않은 시기였다. 특히 시은이 같은 말기암 환자는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지내는 게 현명했다.
"왜?"
"월차도 휴가도 모두 빼먹었거든."
"참! 그렇지."
허공을 날던 시은이의 음성이 나풀거리며 추락했다. 풀이 죽어 있을 모습이 떠올랐고 이내 가슴이 불편해졌다.
"방법을 찾아보고 내일 전화해 줄게."
"그럴래?"
다시금 시은이의 음성이 사뿐히 날아올랐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수업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들려 왔다. 정우는 영어책과 출석부를 들고 교무실을 나섰다.
시은이 생각 때문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어두운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 아른거렸다.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한 채 멍한 상태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누군가 "퇴근 안 하세요?" 하고 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교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정우는 본관 건물을 나서며 하늘을 보았다. 붉은 노을이 근심처럼 서편 하늘에 걸려 있었다. 지상의 온갖 그리움과 아쉬움을 사르며 다시 하루가 지고 있었다.
비탈진 언덕길을 내려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숲을 향해 왼편으로 돌아서자 잎을 떨구는 나무들 사이로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서자 잎을 떨구는 나무들 사이로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산 나무를 사이에 나란히 서 있지만 선 채로 말라죽은 나무.
정우는 잎사귀 한 장 달고 있지 않은 나무를 올려다보며 습관처럼 시은이를 떠올렸다. 암과 투병하고 있는 이 세상에 하나뿐이 없는 누이. 산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그녀는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봄이 오기 전에 나무는 제풀에 쓰러지거나 베어지리라. 숲에서 나무 한 그루가 감쪽같이 사라져도 사람들은 향기로운 꽃과 따사로운 봄볕에 취해 그녀의 죽음을 잊을리라.
시은이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정전된 듯 가슴이 먹먹했다.
정우는 가슴이 풀릴 때까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차들이 빠져 나간 주차장은 은행잎이 뒤덮고 있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회오리 바람을 타고 몇 장의 나뭇잎이 나풀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본네트 위에 낙엽이 수북히 내려앉았다. 앞유리창에 쌓인 낙엽을 치우다 보니 윈도우 브러시 아이에 꽂혀 있는 한 마리 학이 눈에 띄었다. 학을 펼치자 낯익은 유리의 글씨가 보였다.
ㅡ 하늘과 강물이 입맞춤하는 곳에서 기다릴게요. ㅡ
정우는 차를 몰고 학교를 벗어났다. 몇 장의 낙엽이 철없는 아이들처럼 차 뒤꽁무니를 따라왔다.
십여 분 남짓 달리자 포도 과수원이 나왔다. 과수원은 황량했다. 거인의 손바닥만한 이파리도, 달콤한 열매도 모두 떨궈 버린 포도나무는 황토에 몸을 묻은 채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포도 과수원을 지나자 도포변에 세워져 있는 유리의 빨간 승용차가 보였다. 승용차는 저녁 노을을 받아 불꽃처럼 타올랐다.
차에서 내려 강쪽으로 다가갔다. 키보다 높이 자란 갈대 숲을 헤치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강물 앞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있는 유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강 하구에서 철새 떼가 수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새들은 허공을 한 바퀴 선회하고는 비행기 편대처럼 열을 맞춰 남쪽으로 날아갔다.
"뭘 생각하고 있어?"
유리 곁에 앉으며 물었다.
"정우 씨와 시은언니 생각......"
"어떤?"
유리는 크고 작은 낙엽들이 강물에 몸을 싣고 하류로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정우 씨에게 시은언니 반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
"그게 무슨 소리야, 바보같이......"
정우는 오른팔로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감았다. 그녀의 마음에서 시작된 잔잔한 물결이 이내 아음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여행 다녀오세요.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통화하는 거 들었어?"
"네. 우연히......"
"나도... 그럴 생각이야."
정우는 붉게 물든 강물에 시선을 던졌다. 물 속의 하루도 소리 없이 지고 있었다.
"집안 분위기는 어때?"
"안 좋아요. 특히 엄마의 반대가 심하세요."
"미안해. 그 일만 아니었더라도......"
"쉿! 우리 이제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않기로 해요."
유리가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다 갖다 대며 뒷말을 막았다.
"오늘은 노을이 무척 예쁘네요."
산 위에 걸린 붉은 구름을 한동안 올려다보던 유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나 봐. 노을이 예쁘다고 하는 걸 보니......"
"열심히 살고 싶어요. 아니, 열심히 살 거예요. 요즘...... 그래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껴요."
유리가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노을이 지면서 붉은 구름은 잿빛으로 변해 갔고, 이내 먹빛으로 물들어 갔다. 어둠이 내리자 사방이 물 속처럼 고요해졌다.
서걱거리는 갈대밭을 헤치고 도로로 나왔다. 어둠 속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시커먼 도로에 서자 자주 본 풍경인데도 흑백사진 속으로 갑자기 들어선 것처럼 서먹서먹했다.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을까?"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해요. 아빠를 확실하게 내 편으로 끌어 들어야 하거든요."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합병원 원장인 유리 아버지의 서글서글한 얼굴이 떠올랐다.
"여행 잘 다녀오세요."
유리가 차문을 열었다. 정우는 그녀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를 매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참, 시은 언니에게 제가 몹시 보고 싶어하더라고 전해 주세요."
유리가 차창을 내리며 말했다.
"그러지."
정우는 손을 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 유리의 승용차가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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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레옹™』